<아시아평화를향한이주(M.A.P.)> 팀 인터뷰
2022년 청년허브에서는 청년들이 변화하는 기술, 기후, 노동 환경을 자기 삶의 변화로 받아들이고 주도적 일 경험을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문제해결 솔루션랩>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조직 내에서 마주하는 난제를 공동의 노력을 통해 해결 과정을 탐색하여 실제 현장에 적용하는 실험실이 되고자 하였는데요. 조직 내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싶어 <문제해결 솔루션랩>의 문을 두드린 7개 팀은 어떤 이야기를 갖고 있을까요? 일in연구소의 황세원 대표님이 한 팀 한 팀을 만나 본 인터뷰를 시리즈로 연재합니다.
어떤 일이 자신에게 ‘좋은 일’인지에 대한 판단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고, 일자리를 공부 잘 한 순서로 일렬로 세우는 사회일수록 “나는 좋은 일을 하고 있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적을 수밖에 없다고, 지난 몇 년간 수없이 말해왔다. ‘일in연구소’라는 이름으로 연구하고 글을 쓰는 것도 이런 이야기를 더 많이 하기 위해서다.
그런 나에게 근래 들어서 가장 큰 ‘현타’를 안겨준 사람이 있다. ‘나도 결국은 고정관념 속에 있었구나’ 하고 깨닫게 해준 사람이다. 지난 12월 1일 오후 장충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난민 인권운동 단체 ‘아시아 평화를 향한 이주(M.A.P.)’ 활동가 문성준씨다.
M.A.P.는 청년허브 ‘문제해결 솔루션랩’에 참여한 7개 팀 중 하나다. 청년 자원 활동가들의 참여로 주요 사업들이 수행된다는 특징을 가진다. 올해 대학을 졸업한 스물세 살 성준씨도 대학생 때 자원 활동가로 이 단체와 인연을 맺었고, 지금은 상근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질문할 것이 많았지만 가장 궁금한 것부터 물었다.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성준씨가 로스쿨을 준비했었다는 말을 들었기에, 어떻게 여기서 일하게 된 것인지 질문한 것이다. 그런데 들어보니 성준씨는 준비만 한 것이 아니라 합격까지 했는데 등록을 포기한 것이라 했다. 그것도 소위 ‘스카이’라고 불리는 대학 정치외교학과를 다니다가 졸업 전에 로스쿨에 합격한 것이었다.
“로스쿨을 준비한 건 어릴 때부터의 꿈인 ‘난민 인권 옹호 활동가’가 되려는 과정 중 하나였어요. 변호사 자격이 있으면 활동에 도움 될 것 같아서요. 오래 준비해서 합격하기는 했는데, 그때 마침 이 단체의 상근자 제의도 받았어요. 생각해 보니 제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은 현장에서 난민들을 직접 만나고, 지금 꼭 필요한 것들에 대해 도움을 주는 현장 활동가더라고요. 그래서 등록을 포기하고 여기서 일하게 됐습니다.”
겉으로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조금 당황했다. 일단 로스쿨에 갔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카페 문을 열고 장충동 사거리에 나가 물어봐도 누구나 그렇게 말할 것 같았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질문해 봤다. “변호사가 되면 난민 운동 현장에서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요?” 성준씨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난민 신청을 하면 소득 활동이 6개월간 제한되는데
그 기간동안 버텨야 하는 분들에게는 경제적, 심리적 지원이 다 필요해요.
저는 그 일을 직접 하는 활동가가 되고 싶었어요.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난민들이 본국에 송환되지 않으려면 체류 자격을 얻고 비자를 받는 게 중요한 일이니까, 그 부분을 도우려면 변호사가 되는 것이 좋겠다고요. 그런데 현장을 접해보니 난민 인정 소송은 전체 활동 중 일부에 불과했어요. 변호사가 할 수 있는 역할은 그중 한 부분이고요. 난민 신청을 하면 소득 활동이 6개월간 제한되는데 그 기간 동안 버텨야 하는 분들에게는 경제적, 심리적 지원이 다 필요해요. 저는 그 일을 직접 하는 활동가가 되고 싶었어요.”
이번에는 더 깊이 고개가 끄덕여졌지만, 솔직히 다 이해가 된 것은 아니었다. 미진한 채로 있던 의문이 탁 풀리게 된 것은, 인터뷰 뒷부분에 성준씨가 한 말을 듣고서였다. 나와 같은 의문을 가지고 이 글을 읽는 분들을 위해 먼저 전하면, “변호사 자격이 꼭 필요하다 싶으면 나중에 다시 도전하면 되죠”라는 말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랬다. 지금 당장 하나의 기회를 포기했다고 해서 성준씨라는 사람이 가진 능력과 자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한국사회는 미리 정해놓은 순서대로 실수 없이 살아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공백기 없이 ‘좋은 일자리’에 진입해야만 평생 안정적으로 살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때의 ‘성공’이나 ‘좋은 일자리’ 기준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어차피 그런 규범은 의미가 없어진다.
성준씨는 남들 눈에 보여주기 위한 ‘자격’보다는 자기 안에 직접적으로 쌓이는 ‘경험’을 우선시하고 싶다고 했다. “제가 제 자신을 인정하는 것도 힘든데, 다른 사람들까지 만족시키는 건 너무 어렵잖아요”라면서.
이렇게 자기 커리어에 대한 확고한 상을 가진 성준씨지만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열악한 여건 속에서 활동가라는 일을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청년허브의 ‘문제해결 솔루션랩’에 지원한 것도 그 방법을 찾기 위해서였다.
성준씨는 현재 주 3일 근무를 하고 있는데, ‘워라밸’을 위해서가 아니라 단체가 주 5일에 해당하는 성준씨 급여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인데도 그렇다. 사업비도 여유롭지 않아서, 성준씨가 기획한 활동들을 시도할수록 단체에 돈이 부족해지는 현상이 빚어지기도 한다.
성준씨는 재정적 어려움 때문에 자원 활동가들에게 최소한의 격려 표시도 할 수 없는 문제를 먼저 토로했지만, 상근 활동가의 처우 문제가 더 커 보인다는 지적에도 동의했다. 자신은 틈틈이 과외를 부업으로 하면서 생활비를 감당하고 있지만 후배 직원이 온다 할 때 똑같이 감내하라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번 ‘솔루션랩’ 지원 사업을 통해서 모금 교육을 받았고, 단체 활동의 의의를 알리기 위한 홍보 방법도 더 고민 중이라면서 성준씨는 “예전 활동가들은 거의 무급으로도 일했다지만, 최저임금도 못 받고 일하는 것은 아무래도 지속가능하지 않고, 저도 그 점에서 타협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이어서 “저 다음에 올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조건은 충족되는 일터 환경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한참 동안 현실적 어려움을 주제로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성준씨가 그 점에 대해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는 점은 인상적이었다. 비영리 분야에서 일하고자 했을 뿐인데 다른 직업을 택한 친구들보다 현저히 소득이 적을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자, 그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우연히 돈으로는 보상을 못 받는 일이구나, 이렇게 정신승리를 하는 단계”라면서 웃었다.
“하고 싶은 일을 택했는데 금전적 보상까지 따라오는 사람들, 예를 들면 대기업 직원, 전문직 종사자 같은 사람도 있는 반면 저 같은 사람도 있는 거죠. 그 대신 이렇게 작은 단체에서 활동가로 일하면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어요. 제가 하는 프로젝트가 사실상 하나의 작은 사업이 되는 거죠. 틀에 박힌 일만 하기를 극도로 싫어하는 저로서는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인터뷰를 마치고 단체 사무실을 보러 같이 이동했다. 사무실이 바로 근처인데도 카페에서 이야기하자고 한 것은, 작은 공간에서 여러 명이 일하고 있어 방해될까 봐서라고 했다.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인 건물의 한 공간을 열고 들어가자 다른 상근자 한 명과 자원 활동가 두 명이 일하고 있었다. 작은 공간이지만 한쪽에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장식돼 있었다. 성준씨가 만든 것이라고 다른 상근자가 귀띔해 주었다. 자기 일에 대한 그의 애정을 엿볼 수 있었다. 조금 전, 왜 세상이 일렬로 세워놓은 줄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느냐고 다그쳐 물을 뻔했던 내가 새삼 더 부끄러웠다.
황세원
일in연구소 대표. ‘좋은 일이란 무엇일까?’라는 연구 주제를 가지고, 일로써 연구를 하고 있는 독립 연구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