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년허브 Dec 22. 2022

재미있는 일과 ‘워라밸’의 관계

<한반도평화경제포럼> 인터뷰 

2022년 청년허브에서는 청년들이 변화하는 기술, 기후, 노동 환경을 자기 삶의 변화로 받아들이고 주도적 일 경험을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문제해결 솔루션랩>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조직 내에서 마주하는 난제를 공동의 노력을 통해 해결 과정을 탐색하여 실제 현장에 적용하는 실험실이 되고자 하였는데요. 조직 내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싶어 <문제해결 솔루션랩>의 문을 두드린 7개 팀은 어떤 이야기를 갖고 있을까요? 일in연구소의 황세원 대표님이 한 팀 한 팀을 만나 본 인터뷰를 시리즈로 연재합니다. 


일에 있어서 ‘재미’란 무엇일까? 사람들이 어떤 일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일의 재미’가 무엇인지를 먼저 정의할 필요가 있다. 자신만의 ‘좋은 일’ 기준을 말해달라고 할 때 ‘재미’라는 단어가 흔히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의미는 매번 조금씩 다르다. 


서울시 청년허브의 ‘문제해결 솔루션랩’ 지원사업에 참여한 7개 팀의 인터뷰를 진행하면서도 ‘재미’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역시 그 의미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성장한다는 느낌, 또는 성취감을 재미로 표현했다. 어떤 사람은 “연극배우가 연극을 할 때는 재미를 느끼겠지만”이라고 좁게 해석하면서, 자신은 일에서 재미를 추구하지는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에 있어서 ‘재미’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면서도 “재미라는 말로 표현해서는 안 되지만”이라는 말을 매번 덧붙여야 했던 사람도 있었다. 사단법인 한반도평화경제포럼 사무처장으로 일하고 있는 홍준호씨다. 우리가 일에서 느끼는 감정의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은지 이 인터뷰에서 알 수 있었다.


한반도평화경제포럼 홍준호 사무처장


포근하던 날씨가 갑자기 얼어붙었던 12월 1일 오전, 서울 방배동에 위치한 한반도평화경제포럼 사무실에서 준호씨를 만났다. 한 시간 남짓한 인터뷰 내내 유쾌한 말투로 이야기를 이어간 준호씨는 중간중간 “에잇, 그때 그러지 말걸”, “아우, 이제는 그렇게 못해요” 등의 푸념을 터트렸다. 20대 중반부터 10여 년 동안 비영리 섹터의 여러 단체를 넘나들며 쌓인 이런저런 감정들이 살짝 드러난 순간들이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인터뷰 전체를 가로지르는 톤은 일정했다. 자신의 성향으로 볼 때 어차피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인 듯했다.


준호씨를 포함한 상근자가 4명, 상임이사까지 총 5명이 일한다는 이 단체는 일반적 시민사회단체들에 비해 재정 여건이나 근무 환경이 좋아 보인다. 살짝 물어본 준호씨의 급여 수준도 비영리 섹터에서 적은 편은 아니었다. 기업인들이 뜻을 모아서 만든 단체이기 때문에 활동비나 급여 수준은 어느 정도 보장된다고 했다. 다섯 살 딸아이를 둔 아빠로서 유치원 등하원의 일정 부분을 책임질 수 있을 만큼 출퇴근 시간의 유연성이 있는 것도 장점이다. 요즘 말로 ‘워라밸’이 지켜지는 직장이다.


문제는 일 자체에 있다. 통일부 등록 단체로 “평화경제를 통한 한반도 평화와 공동번영을 추구”한다는 이 단체의 목적에 맞는 활동을 펼치는 것이 준호씨의 일인데 시대적, 사회적 환경이 이를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단체가 구성되고 창립된 2018~2019년은 남북관계가 좋은 편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한국사회에서 ‘통일’을 자신과 관계없는 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추세다.



이에 대한 고민이 청년허브의 ‘문제해결 솔루션랩’에 지원한 이유이기도 했다. 어떻게든 ‘통일’이라는 의제를 확산시키기 위해서 준호씨는 최근 몇 달간 청년 세대를 대상으로 공론장 형태의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해 왔다. 단체의 기본적 운영과 홍보에 필요한 업무들을 그대로 담당하는 가운데 이 일까지 덧붙여진 셈이어서 정신없이 바빴다고. 다른 상근자들은 각자 담당하는 다른 일이 있기 때문에, 이 업무들은 최종 단계의 회계 정산만 빼고는 고스란히 준호씨의 일이었다.


질문에 답한 내용들만 보면 바쁘다고 하소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준호씨의 말투는 담담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래 쭉 이런 식으로 일해왔기 때문이다. ‘통일’이라는 주제와 ‘공론장’이라는 방식은 준호씨의 지난 이력과 잘 부합하는 것들이기도 하다. 첫 직장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서 ‘통일’ 담당 활동가였고, ‘세상을 바꾸는 꿈(바꿈)’이라는 비영리 단체에서 공론장을 열고 진행하는 일을 했다. 


약간 다른 맥락의 이력은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4·16 세월호 참사 특별 조사위원회(사참위)’에서 조사관으로 1년 반 가량 일한 것이다. 공무원 신분이었지만 사참위는 준호씨에게는 가장 안정성이 떨어지는 직장이었다. 예측하지 못한 시점에 조사 권한이 없어지면서 그만두게 됐기 때문이다. 이 일은 그 밖에도 만족스럽지 못한 점이 있었다. 


“사참위 조사관은 지금까지 경험한 중에서 가장 ‘권한’이 큰 일이었어요. 기업과 공공기관들도 정보 열람을 요청해서 받아낼 수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재미가 없더라고요. 누가 잘못했는지 캐내고 밝혀내는 일에 희열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건 제가 찾는 가치와는 좀 달랐어요.”

‘재미’라는 말이 여기서 처음 나왔다. 정부가 부여한 큰 권한을 행사하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재미있는 일’일 수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자신이 찾는 재미는 아니라고 한 것이다. 



그렇다면 준호씨는 어디서 일의 재미를 느낄까? 이 질문에 그는 첫 직장이었던 경실련 시절을 이야기했다.

“원래 ‘통일’에 관심이 있어서 경실련에 들어간 건 아니었어요. 입사하고 나니까 당시 총장님이 젊은 에너지로 이 이슈에 활력을 넣어보라 해서 맡은 거죠. 그 직후부터 개성공단이 폐쇄되는 등 남북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어요. 일이 좋다 싫다 할 겨를이 없었던 거죠. 제가 쓴 성명서가 바로 뉴스에 나오고, 기자회견을 열면 그 내용이 바로 퍼져 나갔어요. 그 그 일련의 과정들이 참... 흥미롭고 재미있었어요.”

이 말에 바로 이어서 준호씨는 “남북관계가 안 좋아지는 상황에서의 일을 ‘재미있다’고 하면 안 되죠”라면서 “의의와 보람이 있었다고 하겠다”라고 표현을 정정했다. 이후로도 경실련에서 군 PX 납품비리 내부고발을 사회에 알리고 공론화시켰던 일 등을 설명하면서 준호씨는 몇 번 ‘재미’라는 말을 꺼냈다가 ‘의의와 보람’으로 정정했다. 


정리해 보면, 준호씨가 일하며 ‘재미’를 느낀 순간들은 사회적 의제가 자신을 통해서 공론화되는 과정을 경험할 때였다. 그럴 때 자신의 일에 의미가 있다고 느꼈고, 그 경험을 통해서 성장해온 것이다. 다만 공론화가 효과적이었다는 것은 곧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공감을 얻어낼 만큼 엄중한 사안이었다는 뜻이므로 ‘재미’라는 말을 쓰기를 조심스러워한 것이다.


https://youtu.be/UsUS-PxNTFw

서울특별시 청년허브 2022 문제해결 솔루션랩 <한반도평화경제포럼>


청년 세대가 개인의 관점에서 분단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관심을 갖도록 장을 펼쳤다는 데서 의의와 보람을 느꼈어요.


지금의 하는 일, ‘통일’이라는 의제를 젊은 세대에게로 확산하는 일에 대해서도 준호씨는 자신의 표현대로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탈북 처녀와 결혼하세요”라고 쓰인 현수막을 동네에서 보게 되는 일, 북한에서 나오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기후위기에 미치는 영향 등, 청년 세대가 개인의 관점에서 분단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관심을 갖도록 장을 펼쳤다는 데서 “의의와 보람을 느꼈다”라고 한 것이다.

이제 다시는 공무원으로는 일하고 싶지 않고, 국회에서 일할 기회도 거절해 왔다면서 준호씨는 “저에게 있어서 일순위는 아무래도 재미인가 봐요”라고 했다.


일의 의미에 대한 지향은 이렇게 분명한 편이지만, 일해온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은 최근에 알게 됐다. 첫째는 너무 바쁘게만 일하면서 ‘워라밸’을 지키지 못했다는 점이다. 지금 단체에 들어오면서 육아에 할애할 시간을 보장받은 것은 나아진 점인데, 여전히 퇴근 후까지도 일을 붙들고 있다는 점은 고쳐보려는 중이다. 아이에게 시간을 더 쓰기 위해서다. 일에서 재미를 추구면서도 워라밸을 철저히 지키는 흔치 않은 모델을 실험하는 중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둘째는 같이 일하는 동료가 없다는 점이다. 지나온 단체들에서도 주로 혼자서 일당백으로 일해왔고, 지금 조직에도 일을 나눠서 같이 하는 동료가 없다. 그 점이 매너리즘을 부르거나 반대로 번아웃이 되는 원인일 수 있다는 것을 이번 ‘문제해결 솔루션랩’에서 배웠다면서 준호씨는 “이제부터는 같은 부문에 있는 사람들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려 한다”고 했다.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그렇게 서로 자극을 주면서 같이 갈 때 더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아서다.


예정된 인터뷰 시간이 끝날 즈음 준호씨는 마음이 급해보였다. 다음 일정 때문에 만나기로 한 사람이 하필 추워진 날씨에 밖에서 기다릴까봐 걱정이 되는 눈치였다. 바로 조금 전에 “이제는 너무 바쁘게 안 살려고요”라고 했으면서, 몸은 뛰쳐나가면서 고개로는 이쪽을 보며 인사하고 입으로는 다른 직원에게 무언가 외친 뒤 문 밖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준호씨는 오늘도 재미있게 일하는 중인 것 같았다.




황세원

일in연구소 대표. ‘좋은 일이란 무엇일까?’라는 연구 주제를 가지고, 일로써 연구를 하고 있는 독립 연구자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