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본이 결정을 내리는 방법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인간은 태어남과 동시에 수많은 선택을 한다. 어떤 대학에 진학할 지부터 점심에 무엇을 먹을지까지 인생은 선택과 결정의 연속이다. 항상 최고의 선택지를 택하는 것이 이상적이나, 사실 흘러가는 대로 인생을 결정하는 경우도 많다. 단순히 메뉴 선택 정도가 아니라 대학 진학 혹은 전공 선택처럼 어떻게 보면 인생에 중차대한 영향을 주는 선택도 남이 하는 얘기를 듣고 별생각 없이 휙휙 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인생에 중요한 결정임에도, 쉽게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바로 대학원 진학이다. 대학원 진학은 생각보다 매력적인 선택지다. 우선, 유교 기반 사회인 한국에서 공부는 신성한 행위로 여겨진다. 학문을 스스로 하겠다는 학생을 싫어하는 학교나 부모님은 많지 않다. 주변 여건만 받쳐준다면 말이다. 그리고 대학원 진학은 생각보다 쉽다. Stanford, M.I.T, Harvard처럼 해외 유명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이 아닌 이상, 한국에서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우며 이는 한국 최고의 명문대학들도 마찬가지다. 즉, 학생 입장에서 대학원 진학은 쉬운 난이도에 비해 공부 혹은 연구와 같은 좋은 핑곗거리가 있기 때문에 어려운 취업 대신에 진학을 선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당연히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대학원에 진학한 입장에서 나 자신은 절대 아니라고 확신한다. 전에 쓴 글에서 볼 수 있듯이, 취업이 어려워 대학원 진학을 택한 것은 절대 아니다. 나와 함께 학교 생활을 했던 친구들 모두 한 번에 굴지의 대기업 취업에 성공했다. 그들은 취업을 택했지만, 나는 배우고 싶은, 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기 때문에 진학을 선택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건 대학원 입학 전, 많은 예비대학원생들이 하는 말이다. 이 시기에는 공부를 하고 싶어, 연구를 하고 싶어 대학원에 진학했다고 말하는 학생들이 태반일 것이다. 나 또한, 그런 모집단에 속한 하나의 샘플에 불과하다. 지금이야 동기부여와 자신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차있지만, 언제 이 열정이 식을지는 나 자신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이제 대학원 생활을 시작한다. 사실 연구에 참여한 지는 꽤 되었다. 생각보다 일찍부터 인턴으로 연구실 과제에 참여했고 이미 연구실 사람들과는 많은 친분을 쌓은 상태다. 하지만 학부생이기도 했던 지난날은 경계인 정도였다. 실제로, 매주 대전과 인천을 오가는 강행군을 이어갔으며, 연구와 공부를 병행하며 시간을 보냈다. 맛보기였지만, 그 시간을 통해 앞으로 2년 간 내게 수많은 기회가 찾아오리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연구실에서 연구를 한다. 그리고 공부를 하며, 수업을 듣는다. 때때로는 기업과 프로젝트 미팅을 갖기도 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수많은 기회를 얻을 것이다. 연구를 통해 세상에 없던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수도 있고 공부를 하며 앎에 대한 즐거움을 느낄 수도 있다. 수업을 들을 때면, 전에 만나보지 못한 사람과 사업계획을 해보는, 그리고 그것을 구현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기업과 프로젝트를 할 때에는 그들로부터 입사 제의를 받을 수도 있다.(실제로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 그리고 내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새로운 방법으로 기회가 찾아올 수도 있다. 이들은 알게 모르게 지나갈 테지만, 내게 찾아오는 기회다.
나는 그 모든 기회를 택할 수는 없다. 여러 선택지 중에서 하나를 택해야 한다. 그때, 쉬운 결정을 내리지 말자.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이며, 경계하는 단 한 가지다. 인생은 쉽지 않다. 당장 편하겠다고 달콤한 유혹에 넘어간다면, 지금까지 결정은 수포로 돌아간다. 쉽게 살 생각이었으면, 지금 당장 취업 시장에 뛰어드는 편이 경제적 측면으로 보나, 시간 효용적 측면에서 보나 낫다. 내가 바라는 가치관, 그리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데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지금이 있는 것이고 그 고생을 하는 것이다.
모두가 한 번쯤은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사는 시기가 있다. 보통은 어렸을 때 이런 경우가 많은데, 나는 20대 초반과 중반 사이에 찾아왔다. 이런 시기가 다른 이들에 비하면 꽤 늦게 왔고 어떻게 보면 최근에 찾아왔다. 그 시기를 거치면서 내린 결론은 ‘나는 다른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라는 것이다. 조금은 다른 특징을 가졌다고 해도, 어차피 보통의 범주 내에서다. 오히려 ‘특별한 나’를 ‘보통의 나’로 내려놓으니 한결 편해졌다. 무언가를 할 때, ‘나는 마땅히 그래야 해.‘가 아니라 ’그러는 게 좋지.‘가 되니 하고자 하는 일들도 잘 풀렸고 아집도 조금은 사라졌다. 지금 이 글도 마찬가지다. 내가 특별하다면 나는 항상 최고의 선택지를 택할 테지만, 나는 평범한 사람이기에 최선의 선택지를 택한다. 그리고 그 최선은 상당히 주관적이다. 내가 중요한 선택을 할 때, 자기 합리화를 하지 았았으면 한다. 단순히 쉽다고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치열하게 고민하고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제 인생은 실전이다.
내가 아웃라이어라고 확신하는 것보다 차라리 나도 다른 이들과 별반 다를 것 없다며 경계하는 편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