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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YA Jan 02. 2022

군대에 가지 않았다면

나의 바운더리를 넓히다.


대학원 입시까지 마무리된 이 시점에서 조금은 아쉬운 결정이 하나 있다. 바로 군입대 문제다. 대학원을 과학기술원으로 오게 되면서, 결과적으로 나는 군대를 대학원 과정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아쉬운 결정이지만, 돌이켜보면 내가 군입대를 미루고 대학원으로 군대를 해결하려고 했다면 나는 지금의 내가 되지 않았을 것 같다. 왜냐하면 군대에서 보낸 2년이 나를 꽤 많이 바꿔놨기 때문이다. 

군입대가 결정된 2016년 겨울까지만 하더라도, 내게는 뚜렷한 꿈이 없었다. 기계공학과 수학을 복수 전공하면서 어떤 진로를 갈지 갈팡질팡하던 때였다. 본 전공이었던 수학은 이미 해석학이라는 중간보스를 만나며 좌절한 상태였고 복수전공인 기계공학은 내가 바랐던 전공이라기보다는 주변 선배들의 조언으로 떠밀려 선택한 길이었다. 당시 나는 어떤 주관도 없이,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는 나룻배였다. 

 군대는 적절한 때에 찾아온 여유였다. 내게는 취업, 진학 등의 진로를 바로 택할 식견이 부족했다. 시간이 필요했다. 눈앞에 놓인 현상보다는 내 인생을 짚어 볼 본질, 본질에 대한 공부가 필요했다. 운이 좋게도 나는 청주시청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를 하게 되었다. 

 실제로 시청 근무는 여유 그 자체였다. 20~40분 정도만 일을 하면 해낼 수 있는 분량의 업무만 주어졌고 나는 나머지 시간을 독서, 공부 및 여러 강의로 채웠다. 다행히도, 주변에 시립도서관이 있어 나는 매주 월요일이면, 시립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1주일에 3~4권의 책을 읽곤 했다. 나는 당시 일 년간 대략 140권가량의 책을 빌려 읽었고 지금 내 책장에는 당시 구매한 책이 몇 줄을 차지한다.

터키-그리스 여행을 준비하던 당시

 솔직히 말하면, 나는 공익을 하던 시점이 조금은 부끄러웠던 과거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책을 한 권만 읽은 사람이라는 말이 있듯이, 나는 그때 책을 분야별로 한 두 권 정도를 읽었다. 철학도, 정치도, 역사도, 미술도, 과학도 모두 그랬다. 한 가지 관점만을 받아들이며, 마치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굴었다. 자만이었고 안하무인이나 다름없었다. 

 돌이켜보면 모든 일에는 단계가 있다. 인생도 마찬가지였다. 다양한 관점을 받아들이기 위해선 적어도 한 관점을 들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한 관점을 받아들일 때 쾌감은 상당하다. '아 이렇게 명쾌하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겠구나!' 하는 감탄이 뒤따른다. 그리고 그 잣대를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면, 온갖 부조리 투성이다. '멍청하게 저런 생각을 하다니'부터 시작해서 소위 전문가 집단에게도 고나리질을 시전 한다. 

 여기서 머물게 되면, 흑백 논리에 뒤덮여 아름다운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지 못하게 된다. 그다음 관점을 받아들이는 시점에 다다라야 '아, 이 세상은 단편적으로만 보기에는 복잡하구나!'라는 생각으로 귀결된다. 내 생애 처음으로 다독을 하던 공익 시절의 나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오히려 나조차도 피하고 싶은 인간상이었다. 내가 무조건 맞고 상대방은 틀리다는 관념에 사로잡혀 현실을 바라보지 못했다. 

 '지금의 나는 그렇지 않은가?'라고 자신에게 묻는다면, 선뜻 답을 하기 어렵다. 아무리 세상이 복잡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그 모든 관점을 헤아리기엔 너무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도 마찬가지다. 아직 어렸을 때부터 배운 편견, 편향이 남아있고 그런 것들이 가끔씩 튀어나올 때마다 자신이 아직 멀었음을 느낀다. 그리고 오히려 내가 바라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애써 외면하려고도 한다. 언젠가는 그 빚을 갚겠다고 다짐하지만, 그것은 사실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전에 없던 무력감, 번민도 들었지만, 나는 당시 2년이 내게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다. 적어도 2년 동안 사회적 성공을 위한 공부가 아닌 인간이라면 꼭 한 번쯤은 거쳐야 할 고민들을 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와 같은 인간이 오랫동안 고민해왔던 질문들 말이다. 학교를 다니는 중에는 이런 고민을 할 수 없다. 시험에 쫓겨, 과제에 쫓겨 머나먼 공상을 하기엔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 당시 나는 1주일 동안 죽음에 대해 탐구한다고 하더라도 어떠한 페널티도 없었다. 오히려 책을 다 읽지 못해 1주일을 더 읽었던 적도 많았다. 나는 이전까지는 쳐다보지도 않았던 우리의 뿌리(역사), 세계인들의 믿음(종교), 인류가 걸어온 발자취(문화) 등을 음미해보면서, 내가 아닌 더 넓은 바운더리에서 바라 볼 기회를 얻었다. 이 기간은 당연히 내 삶에 조금씩 녹아들었고 가치관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지금 당장 내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는지를 말하는 것은 굉장히 조심스럽다. 우선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그리고 지금의 내가 아직 바라보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목표 안에는 단순히 내가 아니라 나와 사회가 모두 성장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들이 담겨 있다. 인위적인 행위가 아니라 내가 바라고 또, 사회가 바라는 그 무언가를 할 날을 위해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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