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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YA Oct 22. 2022

풍요의 삶

여유의 시간이 준 선물

 누군가가 막 스물이 된 나에게 나를 위해 시간을 쓰지 못하는 순간에서야 비로소 어른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했다. 그때의 나는 나의 시간을 온전히 나를 위해 쓰고 있었고 이후에도 그런 시간들은 충분히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당시에도 충분히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내가 너무 어린 나머지, 그 사람의 말을 온전히 헤아리지 못했다.

 나는 어느새 어른이 되었다. 내게 나만을 위한 시간은 충분하지 않다. 나에게 오늘은 책을 읽고, 내일은 운동을 하며 한가로이 사색에 잠기는 여유는 당분간 없을 것이다. 나를 위한다며 공부를 하고 연구를 하고 논문을 읽지만, 그것을 온전히 나를 위한 행위라기보다는 사회 속 나를 위한, 내가 속한 집단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오로지 나의 양식을 채우는 시간이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지난날에 여유를 다시는 부리지 못할 것 같아 퍽으로 섭섭하지만, 한편으로는 당시의 그 여유가 감사하다. 나는 그 여유로 인해 풍요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연주


  올해는 사회 속 나로서 내 역할을 충분히 하기 위해 여러모로 바쁜 해였다. 대학원에 입학해 새로운 공부를 하며, 나의 연구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고민하고 있다. 이에 더해 이 연구를 바탕으로 창업에 뛰어들었으니, 나에게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여유가 없다는 사실은 어찌 보면 타당하다. 그럼에도 그 시간이 지치지는 않는다. 오래전에 흩뿌려 놓았던 많은 이벤트들이 나를 반겨주기 때문이다.


 우연히도 유난히 바쁜 올해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었다. 매년 개최하는 아이유 콘서트는 차치하더라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프로스포츠인 메이저리그(MLB) 올스타가 한국을 찾고, 반 클라이번 콩쿠르 최연소 우승자인 임윤찬의 콘서트도 있었다. 여러 이유로 참여하지 못했지만, 프리즈 서울, 아시아프, ATP 150 코리아 오픈 등과 같은 행사들도 있었다. 여기서 아이유 콘서트를 제외하고 대부분 그 ‘여유’가 있었던 2018년부터 2020년 사이에 관심을 갖게 된 취미다. 그 전에는 메이저리그에 대한 관심은 전무했으며, 오히려 야구라는 스포츠를 스포츠가 아니라며 격하하기도 했다. 클래식은 여전히 잘 알지는 못하지만, 필라델피아에서 보다 쉽게 경험할 수 있어서 적어도 심리적 장벽은 상당히 낮아졌다. 미술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도 저 시기다. 만약 그 여유의 시기가 없었다면, 나는 이러한 것들에 관심을 갖기는커녕 내 앞에 닥친 문제들만을 고민했을지도 모른다.

LA 다저스와 뉴욕 양키스의 경기

 내게 지금 당장 새로운 스포츠에 관심을 갖거나, 예술에 대한 흥미도를 높이라고 말한다면 나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할 것이다. 적어도 나는 매주 미술관을 가서 명화들을 감상하거나, 매주 공연장에 가서 클래식을 들을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없다. 게다가 이들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이것들을 즐기는 것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한다. 작품의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 작가, 환경, 시대, 역사 등을 이해해야 한다. 만약 지금 이 시점에서 내가 이러한 것들에 시간을 쏟고 있다면, 나는 사회 속 내가 성장하기를 포기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나는 여유를 내가 추구하는 방향으로 활용했기 때문에 사회 속 나를 포기하지 않고서 내 삶을 풍요롭게 보낼 수 있다. 이것이 그 시간들이 내게 준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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