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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YA May 30. 2024

고인다.

going down


 대전을 관통하는 가장 주요한 키워드는 재미다. 말 그대로 재미가 없는 도시로 유명하다. 150만 정도의 나름 규모가 있는 도시면서, 주변에 청주, 세종, 천안 등과 같은 지방 대도시들이 모여 있는 충청권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도시임에도 특색이 없고 외지인들이 찾을만한 맛집, 명소들도 부족하다. 대전의 또 다른 키워드인 과학기술은 나와 같은 연구직종이나 관심을 가질 법하지, 대전을 들를 요소가 되지는 못한다.


 2년 반 전, 대전에 살기로 시작한 시점부터 대전의 이러한 특징들은 나에게 긍정적인 부분으로 작용했다. 서울의 백화점이나 번화가에 모이는 수많은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기력이 빠지기 일쑤였고 카페를 찾아 전전하기 급급했다. 2년 반동안 조용하면서도, 대도시로서 갖는 편의성을 갖춘 대전은 내게 안성맞춤의 공간이었다. 연구에 집중하기도 좋았고 테니스나 러닝을 하기에도 접근성이 좋았다. 그래서 나는 나만 생각한다면 대전에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지만, 최근에 그 생각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내 주변을 둘러보면, 가히 황금기라고 칭할 수 있을 정도로 본인의 인생에 몰두하고 있는, 나와 비슷한 유형의 사람들이 많이 있다. 대학원에도 그렇고 창업 팀도 마찬가지다. 이들 모두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열심히 사는 걸까?'와 같은 궁금증이 들 정도로 밤낮을 가리지 않으며, 주말에 일을 하는 것에도 거리낌이 없다. 나 또한 워크 홀릭이기는 하지만, 이는 주어진 상황 상(창업활동& 대학원 연구 활동) 어쩔 수 없는 선택일 뿐이다. 한 마디로 나는 지금 두 가지 일을 하고 있으니, 주말에도 업무를 보는 것이 한편으로는 당연하다고 볼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창업만, 혹은 연구만 하고 있는데도 나만큼 출퇴근 도장을 찍고 있는 것이다.

 연구와는 별개로, 건강을 위해서 운동도 꾸준히 하며, 청춘사업도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주변에 가득하다. 가끔은 교수님의 안목에 감탄을 할 정도로 모두가 self-motivation이 충분하다. 이들을 보며 많은 것들을 배워나가고 있으며, 좋은 점들을 습득하고자 부단히 관찰하며, 노력하고 있다.


 이렇게 충분한 인재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나이지만, 여전히 한편으로는 갈증이 있다. 바로 다양성이다. 연구실이나, 창업 회사나 모두 각자의 분야의 전문가이고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사실 이 두 영역은 내가 이전부터 준비해 오던 영역이다. 즉,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분야라는 것이다. 내가 이 길을 위해 몇 년 간 열심히 달렸으니, 내 주변에 이런 사람들이 많은 게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역시 대전이라는 도시가 발목을 잡는다.

 대전이 큰 도시기는 하지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기 좋은 도시는 아니다. 이공계로 이뤄진 학교 특성상, 교내 활동에서 이공계를 만나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외부 사람들과 경기를 하는 테니스 같은 경우에도 연구원, 학교, 기업부설 연구소 등에 재직하고 있는 분들을 만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지만,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만 만나고 있는 것이다. 다양하지 않은 나와 비슷한 사람들.


 물은 고이면 썩는다. 이는 사람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생각도 다양한 관점에서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면, 한쪽으로 편향될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다른 의견에 귀를 닫아버리고 만다. 나는 최근에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통해서 내 삶 속에서 다양성이 줄어들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의 세계는 하루하루가 상당히 급박하게 돌아가는 변혁의 시대에 살고 있는데 그 친구의 삶은 평온했다. 그 친구는 오늘과 내일, 어쩌면 본인의 은퇴 시점에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만 같은 안정감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오히려 안정감이 주는 위기의식이 그를 불안에 떨게 하는 요인이었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에도, 삶을 살아가는 환경에 따라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구나를 그때 깨달았다. 그리고 지금처럼 대전에만 머물러서도 안 되겠다고 판단했다.

 지금이라고 시간이 썩 많은 것은 아니지만, 이제부터는 약간의 여유가 있을 때마다 나와는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려고 한다. 기회가 될 때마다 조금씩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른 생각과 삶을 내게 노출시키려고 한다. 예전 같았으면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미뤘겠지만, 이렇게 하다가는 고인다. 그리고 나는 어느새 뒤처져버려 구닥다리 의견이나 내는 뒷방늙은이가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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