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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돼지 Apr 26. 2020

사랑은 로맨스보다 인생의 동반자를 찾는 것

불꽃 튀는 사랑은 중독이 된다

불과 년 전만 해도 가벼운 관계가 좋았다. 상대가 잘 보이겠다고 셔츠를 차려 입고, 그럴 싸한 식당에서 밥을 사주는 게 좋았다. 나도 화장을 한껏 하고 가장 마음에 드는 치마를 차려입었다. 데이트가 끝나면 내가 거절을 하기도 하고 거절을 당하기도 다. 인스턴트 음식처럼 빨리 만나고 헤어지고,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를 반복하다 보니 깨달은 것이 있다.


이렇게 살다가 평생 진지한 관계는 못 가지겠구나.


겉만 번지르르 한 남자보다 내가 정착할 남자를 찾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지금 남자 친구를 만났다.



남자 친구와 진지한 관계로 정착을 하고 나니 로맨스 드라마와 영화에서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사랑에 대한 허상을 심어줬는지 알게 다. 상대의 외모나 이성적인 면에 끌려서 불꽃 터지는 연애를 하는 건 비교적 쉽다. 정말 어려운 것은 그 이후 연애를 잘해나가는 거다. 결혼도 결혼보다 결혼생활을 잘 유지하는 게 어렵다고 하지 않는가.


2004년 방영되었던 드라마 '파리의 연인'부터 2018년 '김비서가 왜 그럴까'까지 꾸준하게 나오는 드라마 소재가 있다. 부잣집 남자 주인공과 가난하지만 밝은 여자 주인공이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힘든 상황을 이겨내어 마침내 결혼을 한다는 피상적인 사랑이야기를 들려준다.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신분 차이도 막을 수 없었던 위대한 사랑. 현실에는 몇이나 될까? 서른이 넘도록 본 적 없다. 대부분은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 산다. 하지만 우리 내 마음에는 사랑이란 그만큼 위대한 것이라서, 서로 맞지 않아도, 상대가 연인으로서 자격 미달이라도, 위대한 사랑으로 이겨낼 수 있을 거란 착각을 하게 된다. 보통 20대에 이런 잘못된 생각으로 연애를 하다가 마음고생을 하고, 30대에는 사랑보다도 상대가 '괜찮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나이가 먹은 터라 꼭 이 사람 어야 할 이유를 찾기는 힘들다. 조금만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마음을 정리하고 다른 사람을 찾는다.

나이 서른에 결혼을 해서 죽을 때까지 파트너와 살아야 한다고 가정하면 약 50년을 같이 살아야 된다. 그러나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피상적인 로맨스는 그 50년 중 1년도 안 된다. 누구에게 반하고 가슴 떨리고, 가질 수 없을 거 같아서 걱정하고, 상대를 만나는 게 꿈같다가 관계가 진척되면 온 세상을 다 가진 것 같다. 드라마에서는 이런 자극적인 게임 같은 과정만 보여준다. 열매를 따는 과정만 보여주고 열매를 따고 그 이후에 이 열매로 무엇을 할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같이 시간을 보낼 50년을 고려했을 때, 썸이나 연애 초반의 스릴과 불꽃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다.


1. 함께 있는 시간이 즐거운지


남자가 여자를 얻을 수 있는 열쇠는 여자를 웃게 만들 수 있는지에 달렸다는 말이 있다. 마찬가지로 여자도 남자를 웃게 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요즘 같이 집에만 있어야 하는 시기에, 서로 유머 코드가 맞거나 함께 즐길 것들이 있다면, 즐겁게 보낼 수 있다.

한국은 봉쇄를 하지 않았만, 영국은 한 달 넘게 봉쇄 라 한 달 내내 남자 친구와 붙어 지내고 있다. 만약 이런 상황에 같이 사는 사람과 함께 웃을 일이 없다면 끔찍할 것이다. 우리 같은 경우는 내가 철이 덜 들고, 남자 친구도 아이 같은 면이 있어서 이상한 농담과 장난을 많이 치는 편이다.


스펠링 오타는 무시 부탁 드립니다.
유치하고 더럽지만 우리는 한 사람이 화장실에 갈 때마다 메세지를 주고 받는다.
2. 인성이 괜찮은지


살면서 가지고 있는 많은 의문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범죄자나 바르지 못한 사람들이 어떻게 다 결혼을 했을까 하는 의문이다. 끼리끼리 만나는 경우에 본인들은 괜찮고, 주변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겠지만, 내가 괜찮은 사람인데 상대방이 바르지 않은 사람이라면 여러모로 50년을 함께 살아가는데 갈등이 많을 것이다. 회사 동료나 부하직원을 막 대하는 사람이 나에게 잘할 수 있을 리 없다. 사람의 인성과 성품은 일관적인 것이라 어느 때는 너무 좋고, 어느 때는 너무 나쁠 수 없다. 너무 좋거나, 보통이거나, 너무 나쁘거나 하는 식이다. 평소에 하는 작은 행동이나 발언, 사고관 등 잘 보고 걸러야 된다.


3. 계산하지 않고 마음으로 대해주는지


개인적으로 나도 잘 안 지켜지는 부분이다. 같이 살다 보면 본인이 좀 더 하거나 덜 하게 되는 부분이 있다. 상대방이 이런 부분을 이해하고, 계산적이지 않고 마음으로 대해주는지 보자. 한 사람만 너무 많은 것을 한다면, 건강한 관계가 될 수 없다. 양쪽 다 비슷하게 할 일들을 하면서 내가 더 많은 것을 부담할 때도 있음을 인정하고 서로 이해하면 갈등을 줄 일 수 있다.


4. 경제적으로 안정적인지?


씀씀이나 벌이가 안정적이어야 경제적 위기도 같이 이겨낼 수 있다. 나는 올해 초 권고사직을 당해 수입이 없는 상황인데, 다행히 남자 친구는 수입이 안정적인 편이라 큰 문제없이 상황을 대처하고 있는 중이다. 둘 다 수입이 없었다면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5. 상대방의 단점을 포옹해줄 수 있는지


썸을 타는 기간이나 연애 초에는 어떤 점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관계를 끝낼 생각을 어렵지 않게 하게 된다. 하지만 관계를 오래 유지해 갈수록 그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계속 만나게 된다. 나는 게으르고 집에 있으면 잘 안 씻는다. 정리정돈을 못한다. 남자 친구는 나를 만나기 전에 요리를 해본 적이 없어서, 마늘이 어떻게 생겼는지 새우가 익기 전에는 검은색이고 익은 후에는 빨간색이란 사실도 몰랐다. 그래도 우리는 서로 보듬으면서 잘 산다. 우리 엄마가 내가 게으르고 더럽다고 나를 버리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남들이 보기엔 공부 못 하고 잘 나지 못한 딸이지만 끝까지 먹여주고 재워주셨다. 사소한 단점은 덮고 계속 함께 인생을 같이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이어야 한다.

50년을 함께 살다 보면 새로 알게 될 단점들도 있을 것이다. 지금 알지 못하는 단점은 고려하지 못하더라도, 지금 알고 있는 단점이 마음에 많이 걸린다면 그 관계는 결혼은 하지 말고 연애만 하든가, 다시 고려해봐야 할 관계일 것이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로맨스가 중요하지 않단 이야기가 아니다. 로맨스는 시작하는 방법이고 그 이후에 장기적으로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면 봐야 할 것들이 분명 더 많다는 거다. 상대방이 괜찮은 사람인지도 중요하지만, 내가 괜찮은 사람인지도 역시 중요하다. 자극적인 연애에 중독되지 말고, 평생 함께할 파트너를 찾는다면 상대방의 다른 면모들도 어떤지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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