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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돼지 Jun 09. 2020

김래원의 '모과 테스트'에 견주는 나의 페미니스트 선언

페미니스트면 안 되나

배우 김래원 씨가 방송에서 좋아하는 여자에게 모과를 선물로 주고 반응을 본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여자 친구에게 가방 대신 모과를 주면 표정으로 티가 나는데, 소중히 모과를 여길 여자를 더 선호한다는 내용이다. 요즘은 초등학생에게라도 모과를 주면 표정이 안 좋을 텐데, 조금 모자라는 여자가 이상형인지는 몰라도 당시 반응은 신선하다였다.


http://www.sportsseoul.com/news/read/334005 



의도적으로 테스트하려 한 것은 아니지만, 데이트하는 남자들에게 내가 '페미니스트'라고 한 것은 일종의 테스트 역할을 하게 되었다. 영국에 와서 새 사람을 만나면 '왜 영국으로 오게 되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럼 나는 한국의 빡빡한 근무 환경과 더불어 여성으로 삶이 어렵다고 대답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남자는 나에게 페미니스트인지 묻고 나는 '그렇다.'라고 답한다.

실제로 내가 페미니스트라고 밝히면 남자들의 머리에 어떤 생각들이 오가는지는 몰라도, 내가 페미니스트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남자와는 데이트하고 싶지 않았다. 여성으로서 나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칭하게 되기까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를 받아들일 이해심과 공감 능력이 있는 남자를 만나고 싶었다. 나의 페미니스트 선언 후에도 전혀 그 사실을 꺼려하지 않고 나를 만나는 남자들이 있었다.


한국에서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하는 것은 많은 안티를 불러온다. 비단 '82년생 김지영' 책과 영화를 홍보한 여배우에게 악플이 쏟아졌던 일만 봐도 그렇다. 페미니스트라는 인식이 좋지 않은 사회적 분위기에서 데이트하는 남자에게 페미니스트 선언을 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젠더 갈등에 대한 소재 자체를 꺼내기가 어렵다. 이런 대화를 시작으로 젠더 갈등에 대한 대화의 물꼬를 터서 언쟁이 시작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썸 초기 단계에 이런 젠더 감수성을 볼 수 있는 대화를 상대방과 해볼 것을 추천한다.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고, 본인이 젠더 문제에 예민한 경우에 상대가 그에 반하는 의견을 가진다면 단지 의견만 다른 것이 아니라 젠더 인식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오래 사귀더라고 많은 갈등을 갖게 될 것이다. 본인이 페미니스트라고 칭하는 여자와 반 페미니스트인 남자가 만난다고 하면, 가부장적인 태도 문제로 좁혀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2015년 온라인에서 '메갈리아'라는 사이트가 개설되면서 남자에 대해 과격한 단어를 써서 비난을 하자, 페미니즘에 대해 남녀 할 거 없이 많은 이들이 비난을 했다. 메갈리안들은 온라인에서는 과격하게 말을 했지만 모금 운동을 해 여성단체에 도움을 주고, 여성들이 한국에서 살아가기 위한 조언들을 주고받으며, 기존에 있던 여성 비하 용어의 개선을 위해 여자의 적은 여자가 아니라, 여자는 여자가 돕는다는 식의 인식 개선 운동에도 힘을 보탰다. 10년 이상 불법 몰카를 공유해왔지만 경찰은 해외에 서버가 있어서 잡을 수 없다는 음란 사이트인 소라넷을 폐쇄하는 운동을 시작하여 정치적 관심을 끌어모아 결과적으로 소라넷을 폐쇄시키는데도 일조하였다.


메갈리안은 알려진 대로 메르스 관련 게시판에서 한 남성이 여성들과 갈등을 조장하는 글을 게시했다 분노한 여성들의 댓글이 기원이 돼 등장했다. 이후 여성을 비하하는 남성들에 대항하던 조직은 체계적으로 변모해왔다.
실제로 지난 7월 한 래퍼가 TV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임산부를 비하하는 랩을 한 데 대해 논란이 일자 메갈리안은 대한산부인과협회의 성명을 이끌고 해당 방송사에 대해서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 하여금 최고 징계인 과징금을 부과하게 했다. 몰카 근절 스티커를 제작해 소라넷의 심각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했고, 소라넷 폐쇄를 위한 청원으로 4만 명의 서명을 받기도 했다. 남성잡지 맥심이 성범죄를 미화하는 사진과 문구를 싣자 미국 맥심 본사에 연락해 사과문을 얻어내고 해당 잡지의 전량 폐기를 이끌어낸 데도 메갈리안의 덕이 컸다.

출처: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51130000520


학교에서 들었던 역사 수업을 떠올려보면, '마틴 루터 킹', '넬슨 만델라'와 같은 흑인 인권 운동이나 '간디'의 독립운동은 꽤 자세히 배운 것 같지만, 여성 참정권 운동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중요하게 배운 것 같지 않다. 영국 여성 참정권 운동은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어 더 알게 되었는데, 서프러제트들이 운동을 할 때, 건물을 부시고, 방화를 하는 등 다소 과격하게 참정권 운동을 했다고 한다.

팽크허스트는 처음에 집회와 선전활동, 낙선운동 등 평화롭고 합법적인 운동을 택했다가 1908년에 자유 내각이 들어서자 전투적 투쟁 노선으로 바꿨다.
돌을 던져 상점의 창을 깨고, 우체국을 폭탄으로 날려버렸다. 또 전선을 끊어버리고 심지어 신축 공사 중인 차관의 자택에 폭탄을 터뜨리기도 했다. 당시로선 영국 사회를 충격에 빠트리는 급진적 행동들이었다. 1913년 더비 경마대회에서 서프러제트 에밀리 데이비슨은 국왕의 말에 몸을 던지는 순교를 행하기도 했다.

출처: https://m.yna.co.kr/view/AKR20180206203351085

여성들이 폭력적인 운동을 해서야 여성에게 참정권이 주어졌다. 대학교 때 들었던 '권인숙' 교수님의 여성학 수업에서 교수님이 말씀하신 내용 중에, 흑인 참정권 이후에 여성 참정권이 주어졌고, 미국에 흑인 대통령은 있지만 아직 여성 대통령은 없다는 이야기를 나는 잊을 수 없다.  Black lives matter로 전 세계에 시위가 한참인데, 여성차별이 인종차별보다 낫다는 생각을 했다면 다시 한번 해볼 문제이다.


메갈리아 사이트에서는 일상에서 불공평한 일들에 대한 문제 제기를 했었다. 역사는 남성만을 위해 써지며, 알려지지 않은 여성 독립가에 대해 했다. 한 방송에서 설민석 강사도 여성 의병에 대한 기록이 없다며, 역사 속에서 사라진 여성 위인들에 대한 언급을 하였다. 똑똑한 남자들도 불공평한 사실은 지적할 줄 안다.

메갈리아에서는 독립운동가 중 윤봉길 '의사', 안중근 '의사'라고 칭하면서 유관순은 '누나'라고 칭하는 것이 차별이라고 지적하였다. 일상적인 언어에서는 결혼을 하면 남편 가족은 시, 아주버, 도련, 아가씨이라 칭하고, 부인 가족은 처가, 처형, 처남, 처제라는 호칭에서 남편 가족의 호칭이 더 존대된다고 문제 제기하였다. 일상에 파고든 차별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누군가가 지적하지 않으면 티가 나지 않고, 차별 속에서 인지하지 못한 채 살아가게 된다.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26089630&memberNo=29949587&vType=VERTICAL



남녀차별의 증거는 일상에 만연해 있다. 자신의 여자 친구가 페미니스트인 것을 받아들이는 남자와 받아들여주지 않는 남자, 누가 더 이해심이 높을까? 요즘 남자들은 여자가 젠더 갈등에 예민한 줄 알기 때문에 여자를 위해 연기를 할 가능성도 높다. 여자도 단지 이해해주는 남자와 정말 진심으로 이해주는 남자를 판별할 수 있는 능력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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