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7층, 701호에 산다. 아침 출근길에 현관문을 열자 7살 막내 수아와 함께 옆집 엄마가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옆집 702호는 초등학교 3학년 쌍둥이와 1학년, 그리고 막내 수아까지 아이가 넷이다. 우리 집도 아이가 넷. 7층에 딱 두 집인데 아이가 여덟. 아직 아이들이 어린 702호 엄마를 만날 때면 난 괜히 마음이 짠해지고 안쓰럽다. 6년 전 처음 이사 온 해, 늘 집 앞에 쌓여있던 기저귀 택배 상자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택배 상자의 주인이던 수아가 벌써 7살이 되어 어린이집에 다닌다.
"안녕하세요?"
"수아, 어린이집 가니?"
인사를 건네며 엘리베이터 앞으로 다가서자 수아 엄마의 푸석한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다음 주에 또 연휴예요."
깊이 한숨을 쉬더니 중고등학생도 5일에 학교에 가지 않는지 묻는다. 사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그런 것 같다고 하자 계속되는 연휴가 힘들다며 하소연했다.
"그죠? 계속 밥만 하다 하루가 다 가는 것 같아요."
맞장구를 치니 해시시 웃는다.
"참, 저희 둘째 이번에 대학 입학했어요. 두 아이가 서울에서 자취해서 집에 식구가 확 줄었어요."
"어머, 좋으시겠다."
"그죠? 저 요즘 이틀에 한 번만 빨래할 때도 있어요."
"세상에. 애들 샤워하고 씻으면 하루에 수건이 스무 개도 더 나와요. 매일 빨래하고 전쟁하는 것 같아요. "
"맞아요. 빨래 매일 하는 것 정말 힘들죠? 그것도 한 보따리씩 할 거 아니에요?"
"진짜 부러워요."
"이런 날도 오네요."
7층에서 1층까지, 잠깐의 시간. 부러움이 한가득 담긴 눈으로 수아 엄마가 나를 본다.
"수아야, 잘 다녀와! 수아 엄마, 힘내요!"
닫히는 엘리베이터 틈새로 손을 흔들었다.
그러고는 지하로 내려오는 엘리베이터에서 혼자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잠시예요. 시간이 얼마나 빨리 가는 줄 알아요? 나중에 그리워진다고요. 지금이 얼마나 소중한 순간인지 다시 생각해 봐요. 아까운 순간 놓치지 말고 아이들과 추억 많이 만들어요.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체력도 점점 떨어져 가고 언제까지 아이들이 쫓아다닐 줄 알아요. 다 한때라니까요. 어쩌고 저쩌고.'
"이런 이야기들을 늘어놓지 않은 나를 칭찬해!"
힘들다는 사람에게 단지 "그래, 힘들겠구나" 하고 말해주는 게 필요할 때가 있다.
"좀 더 힘을 내 봐."라고 나를 응원해 주는 목소리에 "나도 알거든. 뭘 더 얼마나 더 힘을 내라는 거야?"라며 눈을 치켜뜨던 내가 떠오른다.
수아 엄마는 또 아이들을 씻기고 먹이고 집을 정리하고 자신의 일을 하겠지. 내가 이렇게 힘들어요. 말하고 싶었던 마음이 쌓여서 폭발하기 전 그냥 말하는 것만으로도 기운이 날 때가 있으니 말이다. 수아 엄마가 건강하고 행복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