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스스로 나의 감정을 흔들지 않는 것
무엇인가 변한다는 건 어느 방향이든 불안을 동반한다. 사람이 긍정적으로 변해도 "혹시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 아냐?" 불안하고 부정적으로 변하면 "역시... 똑같네..." 라며 불안하고 실망하게 된다. 결국 우리는 어떤 변화에 대해 "상대가 이러는 건 어떤 큰 원인이 있으며 결국엔 변화가 어떤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거야!"라는 생각에 휩싸이게 된다.
하지만 가만히 보면 변화란 우리에겐 기분과 같은 것으로 좋았다가 나쁘고 나쁘다가도 좋아지기도 하는 것처럼 너무 자연스럽고 자주 있는 일이라는 거다.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대를 내가 원하는 쪽으로 끌어오기보다 상대가 변화를 겪을 땐 그냥 그 자리에 있어 주는 것, 나 스스로 나의 감정을 흔들지 않는 것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26살의 사회초년생 여자입니다. 여고를 나와서 20살에 첫 연애에 나쁜 남자를 만나 데고 두어 차례 더 연애를 하고 이번이 네 번째 연애네요... 지금 제 남자 친구는 자신의 비전을 향해 열심히 노력하고 바쁜 와중에도 저를 살뜰히 챙기는 좋은 남자 친구인데요.
문제는 지난번에 대화중에 지난 연애에 대해 이야기를 했었는데 자기는 연애를 오래 한 적이 딱 한 번밖에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나머지는 다 한두 달 정도 만나다 헤어지게 되었다고... 자기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여자 쪽에서 고백을 해왔었고 자기도 좋아서 만났었지만 한두 달이 지나면 연애를 계속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들고 결국 헤어지게 되었다네요...
저도 걱정이 되긴 했지만 저희 케이스는 오빠가 먼저 적극적으로 대시를 했었고 지금 세 달째인데 정말 제게 잘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최근 갑자기 일이 바빠지면서 눈에 띄게 연락이 줄어들더라고요. 물론 바쁜 와중에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는 건 느껴지지만... 달라진 건 사실... 예전에는 애정표현도 많이 했었는데... 요즘은 회사일로 스트레스받는다는 이야기만 하더라고요...
혹시 남자 친구의 전연애처럼 제가 질려버린 걸까요...? 단도직입적으로 나도 이제 질려버린 거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바로님께서 오히려 그런 질문들이 트러블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말씀에 일단은 참고 있어요... 이전 연애의 패턴이 반복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정말 바빠서 그러는 건지... 정말 모르겠네요... 저는 이 관계를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요?
- H 양
아니... 자기 입으로 짧은 연애를 많이 했다고 겁을 줘놓고 꼴랑 세 달 만에 바쁘다는 핑계로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다니! H양이 그래도 노력을 해주는 것 같다라며 편을 들어주고는 있지만 속으론 얼마나 속이 새까맣게 타고 있을까? 오죽하면 "이제 나 질린 거야!?"라는 최후의 수단을 쓸 생각까지 했겠는가?
바빠지면서 연락과 애정표현이 줄어드는 남자 친구라... 이전 짧은 연애 패턴의 반복인지 아니면 너무 바빠서 어쩔 수 없는지를 궁금해하는 H양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이 문제는 변한 거냐, 바쁜 거냐를 딱 잘라 나눌 수 없는 문제다.
얼마 전 나의 뽐뿌질에 넘어와 PS4에 입문하게 된 친구가 있다. 블랙프라이데이에 PS4를 구매하고 나서 하루에도 몇 번씩 내게 PS4 게임 타이틀을 추천해달라며 징징거리던 그 녀석, 나의 추천 세례에 PS4가 오기도 전에 55인치 TV와 10여 개의 게임 타이틀을 구매해놓은 그 녀석은 아직 게임 타이틀의 비닐도 다 못 뜯어보고 있다.
한동안 업무 이외의 모든 시간을 게임에 쏟겠다던 그 녀석에게 각종 업무가 터진 거다. 외주업체에서 사고를 치고, 대표와 트러블을 겪고, 결국 이직을 결정하고 준비를 하는 그 녀석에게 게임은 뒷전이 되어버렸다. 이 녀석은 제대로 해보지도 않은 게임에 질린 걸까? 아니면 게임이 싫어진 걸까?
H양의 남자 친구도 이 친구와 비슷한 마음일 거다. 새로 시작한 연애가 너무 즐겁고 행복하지만 일이 쏟아지며 치이기 시작하니 H양과의 연애보다는 당장의 일이 더 급한 거다. 정확히는 하루를 시작하며 오늘 하루의 우선순위를 정할 때 H양과의 연애를 맨 밑으로 밀어둔 것이 아니라 우선순위를 정할 겨를도 없이 치고 들어오는 일을 간신히 처리하고 있는 거다.
H양이 애정이 줄어들었다고 느낀다면 그건 분명 맞을 거다. 문제는 남자 친구가 H양에게 이전과 달리 애정을 덜 쏟는 것에는 어떤 의미나 의도가 없다는 거다. 질려서 덜 쏟는 것도 아니고 바빠서 일부러 나중으로 미뤄둔 것도 아니고 그냥 정신이 없고 인지를 못하고 있을 뿐이다.
대부분의 경우 상대의 어떤 행동이나 태도는 방향성이 없다. 대부분의 경우 정신없이 하루를 간신히 버텨내고 있는 것이지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라는 식으로 계획이나 의도를 가지고 해내는 경우는 드물다. 이 방향성이라는 건 결국 H양과의 관계 정확히는 H양의 태도를 통해 정해지게 된다.
아마 H양의 남자 친구의 이전 연애의 패턴은 이랬을 거다. 처음 연애를 시작하고 한동안 연애 초반의 분위기에 흠뻑 취해 있다가 점점 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을 거다. 이건 연애가 질린 것도 아니고, 싫은 것도 아니다. 그저 미뤄놨던 일과 현실이 보였고 그것에 집중한 것뿐이다. 문제는 이것에 대해 여자 친구 입장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는 거다. 예전엔 연락도 자주 하고 사랑한다고 매번 울부짖던 사람이 갑자기 JTBC 손석희 사장처럼 차가운 무표정을 하곤 일에 매진하고 스트레스를 받아하는 모습을 누가 긍정적으로 받아 줄 수 있겠는가?
그러니 이러한 문제에 대해 여자 친구 입장에서는 남자 친구에게 문제를 제기하게 되고, 남자 친구는 그제야 문제의식을 갖고 이것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되는데, 문제는 남자 친구가 보이기에 이 문제의 해법이 없다는 거다. 단지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애정표현을 하면 될 일을 남자 입장에서는 과연 이렇게 바쁘고 일에 치여 살면서 여자 친구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또 자신에겐 그럴 여력이 없다고 단정 지어버리는 거다. 그러니 여자 입장에서는 사소한 것을 요구했는데 이렇다 할 변화가 없는 남자 친구의 모습에 속이 터지고 남자 친구는 그런 여자 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역시 이 관계는 안 되겠어..."라고 생각해버리는 거다.
그러면 어쩌라는 건가? 남자 친구가 바쁜 일이 끝날 때까지 언제까지고 참고 있으라는 건가? 물론 그렇지 않다. 다시 얼마 전 PS4를 구매한 내 친구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그 친구가 PS4를 사며 나와 함께 미지의 세계를 탐험할 게임 타이틀 하나를 함께 샀다. 바쁘기 전만 해도 나중에 어딜 함께 가고 레벨을 어떻게 올려서 지존의 반열에 오르자고 함께 의지를 불태웠지만 앞서 말했듯 그는 요즘 일 때문에 그 타이틀을 PS4에 넣어보지도 못하고 있다.
그럼 나는? 그 친구의 일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까? 아니면 함께 하기로 약속해서 산 건데 뭐하는거냐며 게임 타이틀을 환불해 버렸을까? 전혀! 나는 그냥 나 혼자 하고 있다. 함께 하기로 한 게임이었지만 혼자 게임 공략 영상들을 보며 하나하나 공략을 해가고 멋있는 장면 좋은 아이템을 발견하면 스크린숏을 찍어서 그 녀석에게 보내며 놀려먹고 있다. 그 친구가 바쁘니까 참고 기다리며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나는 나대로 신나게 게임을 하고 있을 뿐이다.
H양도 나처럼 해보는 건 어떨까? "혹시 내가 질린 건가?", "언제쯤 다시 예전처럼 애정을 표현해주려나...?", "예전 약속하곤 다르잖아!"라며 불안과 분노 속에 있을 것이 아니라 "많이 바쁜가 보네? 그럼 뭐... 나 혼자라도 놀아야지~" 라며 친구들과 핫플레이스를 돌아다니며 예쁜 사진을 찍고 남자 친구에게 보내자. "여기 분위기 정말 좋다~ 다음에 같이 오자~"라고 이야기해줄 수 있지 않을까? 남자 친구를 위해 참고 인내하는 게 아니라 H양은 H양대로 즐겁게 생활하고 남자 친구가 바쁜 일이 끝나면 언제든 웃으며 함께 할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