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은 곧 독이 되어 대학원생을 형성한다
어렸을 적 우리 집에서는
만화를 보는 것 자체가
안 좋은 행동으로 분류됐었다.
애니메이션 만화는 물론이고
종이로 된 만화책도 당연히 포함이었다.
몰래 한 두권 친구들에게 빌려서 보거나
시험이 끝났을 때 협상을 통해 얻어냈던
동네 비디오 대여점 이용 비용.
그것들이 전부였던 삶 속에
직접 사주셨던 몇 안 되는 만화책은
일명 당시에 유행하던 학습만화 시리즈였다.
내 또래는 물론이고
우리 부모님 세대부터
현재 누군가의 부모님인 분들 모두에게 익숙할
Why 시리즈, 보물찾기 시리즈, 살아남기 시리즈가
바로 그 주인공들인데
그중에 나는 살아남기 시리즈를
가장 재밌게 읽었었다.
잠들기 전에는 항상
내가 어딘가에 고립되는 상황을 가정한 채
어떻게 헤쳐나갈지 상상하느라 바빴고
나는 언제나 가장 의지가 강하고
순발력이 좋은
빛과 소금 같은 존재로 그려졌다
어느 순간부터
잠들 때 더 이상
상어에게 쫓길 필요도
열대 지방에서 먹을 것을 구할 필요도
없어져버렸다
삶이
살아남는 과정이라서
그랬다는 것을
믿어주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하루하루
자본의 거대함과 이루고픈 꿈의 기로에서
갈팡질팡하며
소소한 선택에도
수 없이 망설이다
결정적 순간에 넋 놓고
살아지는 대로 살아가버리는
그저 그런 흔한
서울 자취 대학원생
흔히들
대학원생은
사람이 아니고 대학원생이라고 하지만
대학원생이 그러고 싶어서 그랬겠나
관심이, 흥미가 나의 즐거움이
고통이 되는 것은
종이 한 장보다 얇은 차이밖에 없음을
누구보다 가장 뼈저리게 느끼고 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즐거움에
작은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그런 흔한 대학원생이
잠들기 전만큼은
가장 빛나고 싶어서
끄적이는
대학원생이
연구 폭격과 자취 비용 사이에서
살아남는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