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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희정 Mar 14. 2024

네가 어떤 팬티를 입든 간에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한수희, 자기만의 방, 2019

안녕 하나야. 

수프와 샌드위치를 파는 지인의 작고 아름다운 가게에 갔다가 이 책을 발견하고 빌려왔어. 절반정도 읽었는데 하나에게 이야기하고 싶더라. 


엄마는 40살이 되어서 무리하지 않는 것에 대해 자주 생각해. 엄마라는 자리가 가진 것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긴 하지만 일을 할 때나 너를 키울 때나 삶의 모든 면에서 최선을 다할 때와 무리하지 않을 때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걸 몸으로 느끼고 있거든.


 

내 나이쯤 되면 다들 지금껏 너무 무리하며 살아왔다는 걸 깨닫게 된다. 20대나 30대는 무리할 수밖에 없는 나이였다. 다시 말하면 자기 한계를 모르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이제 내게는 그 시절만큼의 에너지나 시간이 남아 있지 않다. 그 사실을 깨달음과 동시에 내 한계가 명확히 보인다. 어떻게든 가진 것들을 잘 굴려 살아나가야 한다. 나 자신을 파괴하면서까지 애쓸 일은 없다.

p.77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이 책을 쓴 작가님은 엄마보다 6살이 많은데 이 글은 딱 엄마 나이 때에 글이라 마치 친구처럼 동료처럼 느껴지더라. 나중에 너와 비슷한 또래의 작가나 너와 비슷한 나이에 쓴 책을 찾아 읽어봐도 좋을 것 같아.


이 책을 읽다 푸핫 웃음이 터져버린 글을 얘기해 줄게.



그날 밤 샤워를 한 후 새로 산 맥시팬티를 꺼내 입었다. 깜짝 놀랐다. 몸에 딱 맞았다. 충격이었다. 딱 맞는 것뿐만 아니라 너무 편했다. 나는 거울 앞으로 달려갔다. 뭐야, 왜 이렇게 잘 어울리는 거지? 이래도 되는 거야? 심지어 맥시팬티는 맵시도 대단했다. 맥시팬티는 내 아랫배에 눈처럼 소복하게 쌓인 중년의 뱃살을 부드럽게 감싸주었다. 임신과 출산을 두 번 경험하며 넓어진 골반도 넉넉하게 받쳐주었다. 그냥 볼 때는 촌스럽던 무늬도 입고 보니 사랑스러웠다. 이것이 바로 맥시팬티의 신세계인가.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처음에 맥시팬티가 잘 맞으면 비참한 기분이 들 줄 알았어. 그런데 아니야. 편하고 예뻐. 이런 팬티는 처음이야. 기분이 너무 좋아.”

p.56 맥시팬티의 신세계



아직 너는 엄마가 사준 분홍색 땡땡이 사각팬티와, 엉덩이에 키티가 그려진 하늘색 팬티를 입고 있지만 언젠가는 네 스스로 팬티를 고르겠지? 차르르 흐르는 부드러운 원단을 좋아하거나 레이스가 있는 걸 좋아할 수도 있을 거야. 속으로 나는 나이가 들어서도 맥시팬티 같은 건 입지 않을 거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엄마도 아직 맥시팬티를 입어본 적은 없어. 맥시팬티가 아줌마 팬티라서가 아니라 딱히 팬티를 고민해서 사본적이 없어서야. 예전부터 입던 것을 지금까지 아무 저항 없이 계속 입고 있었던 것 같아. 이 글을 읽으면서 엄마도 맥시팬티가 궁금해 지네. 



지난 40년간 내가 입은 수백 장의 팬티들은 하나같이 몸을 꼭 죄었다. 그 팬티들은 팬티로써의 존재감을 강하게 주장하는 팬티들이었다. 그 팬티들은 내게 팬티만 입고 스트립쇼라도 하라고 부추기는 것 같았다. 그런데 맥시팬티는 다르다. 만날 때마다 푸근하게 끌어안아주는 넉넉하고 따뜻한 아주머니를 입고 있는 기분이 든다.

p.58 맥시팬티의 신세계



특히 이 부분을 읽으며 공감했어. 젊은 날의 속옷은 맵시에 신경을 많이 쓴 것 같아. 거울 속 내가 예쁜지, 다른 사람이 보기도 예쁜지가 가장 중요했지. 데이트를 할 때는 위아래 속옷을 세트로 입으려고 했고 심지어 갑자기 응급실에 실려다도 내 허름한 팬티를 보일 순 없다고 생각하며 골랐어. 응급실에 간 마당에 대체 그게 무슨 소용이람. 그렇지? 

어찌 됐던 젊다는 건 그런 것 같아. 아니, 여자들에게는 유독 그런 거겠지. 외모에 대해 평가받는 말들을 의식하기 어려울 정도로 흔하게 들었을 테니까. 나밖에 보지 않는 속옷을 고를 때도 타인의 시선에서 홀가분하게 벗어날 수 없었을 거야. 


엄마는 지금 속옷을 위아래로 맞춰 입지 않아. 살구색과 회색 검은색으로 무난하고 평범한 5개 들이 팬티를 입지. 위에는 벗으면 손수건처럼 구겨지는 아주 가벼운 브라를 입어. 가슴을 압박하는 와이어나 땀이차는 두꺼운 패드도 들어있지 않지. 이렇게 편하고 좋을 수가 없어. 물론 옷을 입었을 때 맵시는 좀 덜하지만 그걸 신경 쓰지 않고 산 지 오래됐거든. 화장을 하지 않고 미용실에 가지 않은지도 오래되었어. 구불구불한 반곱슬 머리를 생머리처럼 펴지 않고 부스스한 내 모습 그대로 살기로, 이렇게 살아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되었단다. 


이건 나이와 상관없지만 엄마는 마흔이 되어서야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어. 한 번은 다른 사람들과 거울을 주제로 글을 썼는데 엄마가 거울을 잘 보지 않는다는 것도 깨달았지. 내가 보는 거울 속 나는 그냥 나일 뿐이야. 예쁘다거나 못났다거나 주름이 있다거나 주근깨가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 오히려 피곤해 보이지는 않는지, 치아는 깨끗한지, 생기 넘치고 눈빛이 살아있는지 확인하지. 거울 앞에 서서 깨끗하고 단정하게 나를 정비하고 밖으로 나가서 좋은 인상으로 기억되는 빛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 뿐이야. 


하지만 예쁘게 화장을 하고 속옷까지 완벽하게 입고 싶어 하는 사람도 좋아해. 그 사람들이 자신에게 들이는 공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누군가는 보이는 것을 그다지 중요하지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내가 보이고 싶은 대로 보여주고 싶을 수 있는 거니까.


이 글을 읽는 넌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네가 외출하기 전 공들여 아이라인을 그리고 고데기롤 하고 나가는 어른이 되었을지, 로션도 바르지 않고 검정 고무줄로 질끈 묶고 나갈지 모르겠지만 어떤 모습이든 넌 충분할거야. 

네가 원하는 대로의 네 모습으로 살고 있길 바라. 무엇보다 스스로 널 마음에 들어 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아무튼 내가 자른 머리 모양의 나는 대한민국 평균이 아니다. 내 실력이 그에 미치지 못한다. 그저 길이에 맞춰 싹둑 자른 것이기에 세련미라고는 당최 찾을 수가 없다. 하지만 자연스럽다. 이상하게 자연스럽다. 그것은 내가 무언가가 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를테면 대한민국 평구)이 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머리카락의 길이를 달리하고 싶었을 뿐이고, 머리를 잘랐어도 나는 여전히 나다.

p.123 한밤중에 머리 자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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