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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hoo Kim Jan 30. 2023

에로 게임의 역사 (3)

00년대 후반의 에로 게임




세상에서 가장 글러먹은 사랑世界でいちばんNGな恋



들어가며



00년대 후반, 그러니까 05~09년도까지는 대체적으로 에로 게임의 시나리오 측면이 원숙해진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00년대 초에 데뷔한 라이터들의 필력이 일취월장하여 '읽는 오락 요소'로서의 에로 게임은 소설이나 만화 등 비슷한 소비 유형의 타 매체와 비교할 때 충분히 동일 선상에서 논할 수준으로 올랐다고 보는 시기이다.

개인적으로도 그 시기가 그나마 감성과 체력만큼 시간이 받쳐 주던 때라서 비교적 많은 게임을 할 수 있어 참 운이 좋았다. 나의 가장 깊숙한 가치관과 타인을 바라보는 관점에 영향을 끼치고 그것이 성인이 된 지 한참 지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가히 운명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이번 편에서는 특별히 에로 게임과 더불어 당시부터 지금까지 나의 음악적 영혼을 비추고 또 위로해 준 관련 가수들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다. 그들을 모르던 독자들은 이 글을 통해 뜻 깊은 새로운 만남의 계기가 되길 소망한다.



소녀는 언니를 사랑한다処女はお姉さまに恋してる



(1) 00년대 후반의 에로 게임 – 1



① 학원의 추앙받는 언니는 여장남자, 『소녀는 언니를 사랑한다処女はお姉さまに恋してる』


05년 1월 캐러맬박스キャラメルBOX의 『소녀는 언니를 사랑한다処女はお姉さまに恋してる』가 발매된다. 참고로 정식 독음은 오토메와보쿠니코이시테루おとめはボクに恋してる로, 언니お姉さま의 독음이 보쿠ボク, 즉 남성 일인칭 대명사다. 그래서 약칭 오토보쿠라 불린다. 당해의 화제작 중 하나로 용모 수려하고 공부, 운동 모두 잘하는 하이스펙의 소년 카부라기 미즈호鏑木瑞穂가 모종의 사정으로 성별을 속이고 여장하여 아가씨 학원으로 전학을 가서는 전교생의 우상인 ‘언니お姉さま’가 된다는 내용이다. 양갓집 규수들을 둘러싼 우아한 분위기를 유려하게 그려낸 이야기나 개그 장면의 인상적인 SD 작화 등으로 유저들의 호평을 받았다. 등장인물은 왕도 중의 왕도 츤데레 아가씨로 이름 높은 이츠쿠시마 타카코厳島貴子를 시작으로 어느 캐릭터도 가련하고 사랑스러우나 여장한 미즈호의 활약상이 너무나도 ‘언니’스러워서 “미즈호 언니가 작중 제일 귀여운 히로인이다”라고 평한 사람도 많았다.

네 다음 남자, 라고 조소하며 넘어가기엔 실제 공식 인기투표 1위다. 게임 형식은 평범한 주인공 1인칭 텍스트 AVG다만 꽤 빈번히 타 캐릭터 시점으로 전환되는지라 주인공 미즈호를 바깥에서 관찰하는 감각이 강하다. 그런 연출인지라 남성향 연애 게임으로는 드물게 통상시부터 이벤트 장면 한 장 한 장마다 주인공의 얼굴이 노출되며 심지어 목소리까지 붙어 있다. (안타깝게도(?) 성우는 여자다) 사실상 한 명의 히로인의 지위까지 겸임하고 있으니 인기가 높을 만도 했다.



마리아님이 보고 있어マリア様がみてる



아가씨 학교라는 무대와 그 안의 규율 등에 대한 묘사는 당시 애니메이션이 인기를 끈 마리아님이 보고 있어マリア様がみてる 붐에서 영향을 찾을 수 있다. 정확히는 애니메이션 2기(2004년 3/4분기)로부터 네 달 후 오토보쿠가 발매되었다.



Ripple ~ 블루 씰에 어서오세요ブルーシールへようこそっ〜



② 시나리오 라이터 마루토 후미아키丸戸史明


05년 전후에 이름을 알린 시나리오 라이터 중에도 마루토 후미아키는 주목할 만한 인물이다. 게임 시나리오 라이터 호조互助 집단 기가야企画屋 소속으로, 초기에는 주로 HERMIT와 기가戯画에서 집필했다. 기가의 『Ripple ~ 블루 씰에 어서오세요 ~ Ripple 〜ブルーシールへようこそっ〜』(2002)로 업계에 데뷔하였고, 이듬해 『쇼콜라~메이드 카페 큐리오~ショコラ 〜maid cafe "curio"〜』(2003)와 『FOLKLORE JAM』(2003)으로 자신의 스타일을 확고히 하였다.



쇼콜라~메이드 카페 큐리오~ショコラ 〜maid cafe "curio"〜



국내에선 한글패치로 유명해진 『파르페~쇼콜라 세컨드 브루~パルフェ 〜ショコラ second brew〜』(2005)는 쇼콜라 당시의 게임 엔진을 개선해 더욱 호평을 받았는데, 무엇보다도 평범한 일상 속에서 과거로 인한 어떤 난국의 관계든 정면으로 맞서는 후미아키류 ‘슈퍼맨 주인공’과 왕도적이면서도 농후한 감정 묘사가 유저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파르페~쇼콜라 세컨드 브루~パルフェ 〜ショコラ second brew〜



이듬해인 06년 3월 마루토는 기가의 『이 푸른 하늘에 약속을この青空に約束を―』에도 참여한다. 섬마을 학원 기숙사에 사는 주인공과 히로인들의 일상을 산뜻하게 그려낸 이 작품은 소프륜 가맹 메이커들이 주관하는 미소녀 게임 어워드美少女ゲームアワード(현재는 모에 게임 어워드萌えゲーアワード)에서 2006년도 대상・순애계 작품상・시나리오상・주제가상・유저 지지상을 수상하였다. 이를 통해 후미아키류 시나리오는 유저는 물론 업계의 호평까지 받고 있음이 입증되었다.



마마러브ままらぶ



HERMIT 작품으로 눈을 돌리면 주인공 또래의 딸이 있는 연상 여성과의 연애를 그린 『마마러브ままらぶ』(2004)와 거꾸로 조카뻘 연하녀와의 관계를 그린 『세상에서 가장 글러먹은 사랑世界でいちばんNGな恋』(2007)에서 필력을 발휘한 바 있다. 특히 후자는 미소녀 게임 어워드에서 08년도 순애계 작품상 금상과 시나리오상 은상을 수상하여 러브코미디에서 후미아키류 시나리오의 보증수표 파워를 단적으로 드러내었다.

후미아키류 시나리오에 대해서는 《서브컬처와 철학 (6) ~『사랑의 기술』과 함께 읽는 마루토 후미아키~》 ( https://brunch.co.kr/@erasmut/47 )를 참고하길 추천한다.



School Daysスクールデイズ



③ 얀데레 히로인 붐을 알린 『School Days』


05년 4월 오버플로우는 『School Daysスクールデイズ』를 발매한다. 엔딩의 강렬한 임팩트 때문에 애니메이션이 종영한 지 십오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작품으로,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일단은 삼각관계 수라장 전개를 이용한 학원연애물이 게임 본편의 내용이다. 주인공 이토 마코토伊藤誠는 등굣길에 같은 열차를 타는 동급생 미소녀 카츠라 코토노하桂言葉를 짝사랑하게 되는데, 둘을 이어주기 위해 뛰어다니던 마코토의 급우 사이온지 세카이西園寺世界가 그를 좋아하게 되어버리는, 그런 흔한 이야기다. 문제는 시작은 풋풋한 청춘 연애물이었을 이야기가 진행을 거듭하다가 선택지 몇 개 차이로 과격한 결말로 치닫는다는 것.

마코토가 불성실한 행동을 저지른 결과 메인 히로인 둘 중 한쪽은 마음이 망가져 마코토나 상대 연적을 톱으로 썰어 죽이거나 칼로 찔러 죽이거나 달리는 열차로 밀어 죽이거나, 눈앞에서 투신자살을 하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죽음이 도처에 도사리고 유혈이 낭자한 엔딩이 널려 있다.

게임 진행방식은 애니메이션 영상이 흘러가는 와중 중간중간에 선택지가 등장하는 그 옛날 인터랙티브 무비를 방불케 한다. 이에 따라 플레이어는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하기보단 등장인물 전원의 행동을 전지적 관점에서 지켜본다는 느낌이 강하다. 사족으로 선택지를 고르지 않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내용이 재개되기도 하는데, 이러한 LIPPS 시스템은 그 옛날 사쿠라대전サクラ大戦에서 처음 선보였었다.

이 년 후 TVA가 방영되던 07년도 당시, 최종화 방영 하루 전 16세 소녀가 부친을 손도끼로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나는 바람에 내용 면에서 히로인들의 참살극과 겹치느라 급하게 방영을 중단하는 등 작품 외적으로도 화제가 끊이지 않았다. 결국 최종화는 이후 애니메이션 전문 채널 AT-X에서 무삭제 방영되었는데 그야말로 원작 이상의 피와 죽음의 결말(배신당한 세카이가 마운팅 자세로 마코토를 식칼로 수차례 찔러 죽이고, 이에 코토노하가 톱으로 세카이의 배를 갈라 죽이고 마코토의 머리를 잘라 배를 타고 도피하는)에 지금까지도 치정극의 극단적인 결말로서 ‘Nice boat’라는 이름으로 후대에 전해지고 있다.


단 화제는 되었을지언정 개인적으로는 이런 식으로 히로인을 ‘얀데레ヤンデレ’화하는 전개야말로 전형적으로 편의주의적이고 싸구려인 작법이라 생각한다. 문단 제목에서도 밝혔듯 스쿨데이즈와 이보다 한 해 전 방영한 SHUFFLE! TVA를 계기로 ‘얀데레’가 주목받게 되는데, 얀데레란 사랑하는 마음이 병적인 집착이 되어 중간의 여러 장애물을 도덕에 구애받지 않고 배제한 끝에 결과적으로 집착의 대상을 신체적・정신적으로 속박하는 애정의 형태를 말한다.

여명기의 에로 게임은 그저 히로인의 옷을 벗기거나 스스로 옷을 벗게 하는 데 주안점이 맞춰진 포르노였다. 내용 면의 발전에 따라 에로 게임은 어느새 꾸덕꾸덕한 욕망의 베일을 벗기는 식으로 본질이 바뀌어 갔다. 히로인이 주인공을 마주하는 유형의 폭도 넓어진 가운데 ‘주인공에 대한 히로인의 호의를 어떻게 확실하게 나타내느냐’가 에로 게임이 엔터테인먼트로서 성립하는 문제의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그에 대한 답 중 하나가 ‘마음이 망가질 정도면 주인공을 좋아하는 증거로 충분하지 않을까’에서 착안한 얀데레 캐릭터였다.

분명 극단은 일종의 미학을 내포하고 있긴 하다. 일전에 쓴 《허무주의, 반지성주의, 그리고 파시즘 ~ (3) 허위의식이 불러일으키는 파시즘의 유혹 ~ 》 (  https://brunch.co.kr/@erasmut/14 )와 여러 글들에서 나는 이를 인정하고 있다. 코토노하가 톱을 휘두르며 피를 흩뿌리는 일순의 자태는 공포와 동시에 철저하고도 순수한 결정과도 같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후의 전개는 비슷한 밈과 기믹의 양산일 뿐이다. 결과 허무로서의 얀데레는 자기복제를 통해 연장되었고, 극단이라는 이름의 전형이 되어 버렸다. 작품과 캐릭터를 조형하기 위한 일련의 사색은 그만큼 경시되었다. 그래서 나는 일종의 밈으로 정착한 지금의 얀데레 사조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야카시비토あやかしびと



④ 크리에이터 히가시데 유이치로東出祐一郎


05년 6월, 전기 액션물 사조에 새로운 획을 긋는 작품이 발매되었다. 히가시데 유이치로가 기획・시나리오를 맡은 『아야카시비토あやかしびと』로 당시 신예 메이커 propellerプロペラ의 두 번째 작품이다. 무대는 2차 대전 후의 세계, 이능과 이형을 지닌 초超인류인 요인妖人이 차례차례 나타나고, 국가는 일종의 질병으로서 그들을 관리한다. 본작은 요인들의 도시로 도망쳐 온 주인공의 학원 생활과 그의 곁에 있는 소녀를 노리는 세력과의 싸움을 그리고 있다.



흡혈대섬吸血大殲



히가시데 유이치로는 원래 개인 사이트에서 다수의 흡혈귀물 및 총기 액션 장르의 만화・게임・영화를 망라한 대형 스케일의 이차창작소설 『흡혈대섬吸血大殲』을 고안・집필하여 인터넷에서 인기를 끌던 인물로, 아야카시비토가 나왔을 당시 그의 독자들은 “마침내 상업 작품에서 이 사람의 테이스트를 맛볼 수 있었다”고 평한 바 있다. 참고로 또 한 명 흡혈대섬의 고안자가 있는데 앞서 소개한 데몬베인 등을 집필한, 현재 니트로플러스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인 하가네야 진鋼屋ジン이다.



Bullet Butlers



이후 히가시데가 메인으로 집필한 작품으로는 근대적 상업 사회에 판타지 종족이 있는 세계에서 총검과 마법으로 싸우는 집사들을 그린 『Bullet Butlers』(2007), 테라포밍된 화성에서 주인공이 로봇 군단이나 생명진화의 끝을 목표로 하는 남자와 싸우는 SF물 에볼리미트エヴォリミット(2010), 성서 소재를 있는 대로 차용한 『도쿄 바벨東京バベル』(2012) 등이 있다. 사족으로 아야카시비토, 불릿 버틀러즈, 에볼리미트의 원화는 앞서 소개했던 전 니트로플러스 소속이자 당시 프리랜서였던 츄오 히가시구치다.



Fate / Grand Order



최근 히가시데는 TVA도 절찬리에 방영된 『Fate / Grand Order』의 시나리오에 참여하고 있다. 동서양 고전의 정사와 야사에 등장하는 전기적 인물들의 배틀을 소재로 한 미디어의 전개를 주력 스토리텔링으로 하는 작품인 만큼 그의 취향과 특기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사쿠라무스비さくらむすび



⑤ 원화가 가야로☆画野朗와 시나리오 라이터 토노이케 다이스케トノイケダイスケ


05년 8월 F&C에서 독립한 가야로☆画野朗와 토노이케 다이스케トノイケダイスケ가 설립한 유한회사 CUFFS의 데뷔작 『사쿠라무스비さくらむすび』가 발매되었다. 양친을 여의고 유일한 혈육인 여동생과도 떨어져버린 주인공이 자신의 진로나 벚꽃을 둘러싼 괴현상과 마주하는 드라마를 그리고 있다. 가야로의 귀엽고 가녀린 그림과 토노이케의 아득한 감각을 자극하는 스토리는 놀라울 정도로 시너지를 발휘한다.



스이게츠水月



F&C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면 가야로와 토노이케 콤비는 02년도에 『스이게츠水月』를 내놓아 히트시킨 바가 있다. 기억상실증을 앓는 소년이 상냥한 메이드라든지 꿈에서 본 아이와 똑같이 생긴 소녀와 함께, 마요이가マヨイガ와 관련된 전설처럼 민속학적 모티프를 바탕으로 몽환스러운 분위기가 감도는 세계에 살아가는 한때를 그린 작품이다. 히로인 중에는 특히 메이드인 유키雪가 마치 주인공을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듯(본작을 플레이하면 ‘주인공을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게 맞다) 모성과도 같은 자애로움이 넘치는, 본작의 간판과도 같은 존재다.

게임이 버그 투성이라 플레이에 수시로 난항을 겪는 일만 없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말이다. 워낙 그림이 미려하다보니 캔버스, 피아캐롯 시리즈를 제외하면 국내에 경험자가 그럭저럭 있는 몇 안 되는 F&C 작품 중 하나다.  



Garden



이 콤비는 사쿠라무스비 이후 또 다른 작품으로 『Garden』(2008)을 내놓는다. 당초 발매 예정이던 07년도 10월에서 연기한데다 수록 예정이었던 히로인 두 명분 공략 루트가 생략되어, 사실상 미완성작이나 다름없다. 이후 둘 중 한 명분의 시나리오만 다운로드를 통해 배포되었고, 13년도 1월 제작사는 끝내 루리瑠璃 루트의 개발 동결을 선언했다.



요스가노소라ヨスガノソラ



토노이케가 직접 시나리오를 쓴 작품들을 비롯해 CUFFS 작품군은 밝고 화사한 비주얼의 이면에 가족의 사정에서 비롯된 마음의 갈등이나 번뇌를 그린 내용이 많다. 자매 브랜드인 Sphere에서 08년도에 내놓은 게임이 그 유명한 『요스가노소라ヨスガノソラ』로, 10년도 애니메이션판의 근친상간과 배덕감에 포커스를 맞춘 전개는 지금도 회자될 정도이다.



Summer Days



위에서 언급한 Garden의 추가 루트나 버그 수정을 포함한 최종 버전의 수정 패치는 자체 용량만 670MB다. 이즈음 PC 게임이나 인터넷에 접속하여 플레이하는 게임 분야 전반에서 보이는 경향인데, 음악・음성・영상・고도의 연출에 따른 시스템의 복잡화와 인터넷 고속 회선의 보급과 맞물려, 회사가 추가 및 수정 파일을 빈번하게 웹 배포하는 식의 유저 대응이 두드러진다. 때때로 수정 데이터가 굉장히 대용량인 경우도 있는데, 에로 게임에서 가장 극단적인 사례로 개발진의 사보타주로 마스터업 며칠 전 부랴부랴 근처의 니트로플러스에서 엔진을 빌려와 우겨넣어 만든 『Summer Days』(2008)가 있다. ‘최초’ 패치 파일이 2.5기가, 이후에 나온 게 1.5기가. 게임 본편부터 6기가에 달하는 마당에 패치 파일까지 전부 합치면 사실상 10기가에 준하는 용량이었다.



해피니스はぴねす!



⑥『해피니스はぴねす!』 그리고 낭자애男の娘의 행보


05년 10월, 윈드밀ういんどみる은 마법이 존재하는 세계관의 일본에서 비보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소동을 그린 학원 연애 AVG 『해피니스はぴねす!』를 발매한다. 작중 팬클럽까지 보유할 정도로 귀여운 여장소년 캐릭터 와타라세 쥰渡良瀬準이 큰 인기를 끌었고 06년도의 팬디스크에선 기어이 공략 가능 캐릭터가 되어버린다. 쥰은 훗날의 2차원 분야의 낭자애男の娘 장르 확립의 초석이 되는 캐릭터 중 하나다. 단 05년도 당시엔 낭자애라는 어휘와는 직결되지 않았으며 공식 홈페이지의 캐릭터 소개문에는 여장남자オカマちゃん라 기술되어 있었다.



와타라세 쥰渡良瀬準



낭자애는 여장소년이나 로리쇼타 같은 개념과 일부 겹치지만 뉘앙스가 다르다. 투박하게 말하면 ‘작품의 수용자로부터 여성성에 대한 귀여움을 받는 소년’이랄까, 어디까지나 외부의 평가에 의존하는 개념이라고 이해해 두도록 하자. 일 년 전인 04년도에 팅커벨ティンカーベル에서 발매한 『하나마루はなマルッ!』에서 히로인 중 한 명의 정체가 남성인데, 이 경우 여성의 마음으로 주인공과 함께 고민하는 내면에 유저의 시선이 집중된지라 ‘낭자애’의 맥락과는 그다지 맞지 않음을 대비・대조적으로 참조하면 알기 쉽다.



브리짓ブリジット



에로 게임 바깥으로 눈을 돌려보면 아케이드 대전 격투 게임 『길티기어XXギルティギアXX』(2002)의 등장인물인 브리짓ブリジット이 있다. 여자아이로 길러진 영국인 소년으로 수녀풍 미니스커트 복장에 스패츠를 입은 귀여운 용모 때문에, 등장 당시 여자아이겠거니 생각하던 수많은 유저들은 충격의 도가니에 빠졌다. 그러면서도 ‘고기의 성별을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맛만 좋으면 된 게 아닐까’ 식의 사고방식에 따른 인기를 얻게 되어, 낭자애 붐을 거슬러 올라갈 때 주요 고전 사례로 인용되는 캐릭터이다.



나의 피코ぼくのぴこ



성인용 애니메이션에서는 장르로서 드문 쇼타물로 『나의 피코ぼくのぴこ』가 있는데, 정식 출시는 06년도지만 이미 그 전부터 인터넷에 유출된 사전 정보들로 주목을 받고 있었다. 본작은 성인용 콘텐츠 유통 판매회사 소프트 온 디맨드ソフト・オン・デマンド에서 06년도 9월 매상 톱을 기록했는데, 시청자의 폭을 늘리기 위해 여장 묘사를 넣은 점이 혁혁한 공적을 올린 셈이다.

00년대 후반부터 10년대에 걸쳐 이 분야는 난숙기를 맞는데, 낭자애・여장소년을 콘셉트로 명기한 잡지나 DVD도 나올 정도였다. 05년도에 이치진샤一迅社는 게임 속 여장소년 캐릭터 50인을 소개하는 『공상(게임)여장소년 컬렉션空想(ゲーム)女装少年コレクション』이란 책을 내놓는데, 캐치카피는 “이렇게 귀여운데 여자아이일 리가 없어!こんなに可愛いのに女の子のはずがない!”… 인터넷에서 유행어처럼 퍼진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여자아이일 리가 없잖아”를 베끼다시피 한 문장이었다.



Trans- 나와 나의 경계선僕とアタシの境界線



에로 게임으로 이야기를 되돌려 보자. 00년대부터 카티아カティア란 메이커에서 『Trans- 나와 나의 경계선僕とアタシの境界線』(2002) - 보쿠僕는 주로 남자아이가, 아타시アタシ는 주로 여자아이가 쓰는 1인칭 대명사다 – 나 『Cloth×Close ~내가 여왕!?ボクがくぃ∼ん!?~』(2006)에서 남성향 혹은 여성향으로 고착되지 않은 여장 팬 취향 전문 브랜드로 활약했으며, 또 앞서 소개한 CAGE 작품군이 로리쇼타에 치중한 여장소년 캐릭터로 주목받는 등의 현상이 더해져 그 모든 것들이 낭자애의 인기를 견고히 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낭자애의 개념을 제작자 측에서 의식한 이후의 에로 게임으로는 공식 페이지의 시놉시스에 대놓고 어휘가 등장하는 c;drive의 『달려☆있어ツイ☆てる』(2007)가 있다.



Cloth×Close ~내가 여왕!?ボクがくぃ∼ん!?~



10년대에 들어서면 뇌내그녀脳内彼女의 11년도작 『여장산맥女装山脈』가 자칭 장르명으로 ‘남자와 낭자애는 섹스할 수 있다구 AVG 男と男の娘はHできるんだよ AVG’를 내걸었으며, 당해 모에 게임 어워드에서 화제상 금상을 수상하였다.



여장산맥女装山脈



여성향 BL과는 구별되는 남성향 소년애 작품이라는 영역은 장르 파고들기로는 만화계가 선행했지만 에로 게임에서도 앞으로 다양한 시도가 행해지기를 기대한다.



ToHeart2



⑦ 전연령 게임의 에로 게임화


세가 새턴, PS1 시절부터 에로 게임이 전연령 콘솔판으로 이식되는 일은 흔했지만, 거꾸로 전연령판으로 처음 나온 타이틀이 PC용 에로 게임으로 발매되는 역이식 사례도 종종 있었다. 04년 12월, AQUAPLUS는 『ToHeart2』를 PS2 소프트로 발매한다. Leaf 비약의 시기에 크게 공헌한 투하트의 이름을 잇는 속편으로, 리프 비주얼 노벨 시리즈로선 5탄 째에 해당한다. 이미 타카하시 타츠야, 미나즈키 토오루를 비롯한 전작의 주요 스태프들은 회사를 떠난지라 2는 작품 세계관을 공유하면서도 등장인물 진영은 일신되었으며 캐릭터 디자인 및 원화는 동경개발실의 미츠미 미사토, 아마즈유 타츠키가 바통을 받았다. 덕분에 2 자체만으로 신선한 작품으로 자립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인기 성우 이토 시즈카伊藤静가 연기한 소꿉친구 누나 캐릭터 코우사카 타마키向坂環, 일명 타마 누나タマ姉는 활기찬 성격과 발군의 몸매로 특히 화제가 되었으며, 팬들은 ‘타마 누나 못 참겠어(タマ姉たまんねえ타마네에 타만네에)’을 여기저기서 연호했다. 00년대 이후 지금까지도 리프 작품군을 통틀어 대표 인기 캐릭터라 할 수 있다.

“동경・오사카 개발실 공동으로 PS2용 소프트를 만들자”는 기획이 올라오자 한 스태프가 “그럼 투하트 2라도 만들까”라고 반 농담으로 내뱉은 게 제작 동기였다고 한다. 다행히도 투하트 2는 시작부터 히트했지만 작품이 작품이다 보니 “야겜으로 하고 싶어”라는 유저의 목소리가 드높아졌고, 발매 일 년 후인 05년 12월 기존 CG의 속옷 노출과 정사 장면을 추가한 ToHeart2 XRATED가 발매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토모요 애프터智代アフター ~It’s a Wonderful Life~



한편 ‘본편은 전연령, 외전은 에로 게임’이란 접근을 행한 대표 사례는 Key의 세 번째 작품 『CLANNAD』(2004)로, 본편에 나오는 히로인 중 한 명인 사카가미 토모요坂上智代를 주역으로 한 외전 『토모요 애프터智代アフター ~It’s a Wonderful Life~』(2005)는 정사 신이 포함된 채 18금으로 발매되었다. 일정 기간마다 기억이 리셋되고 그때마다 자신과의 관계를 잊어버리는 중병을 앓는 본편 주인공 토모야를 향한 토모요의 비장한 사랑과 각오를 그린 내용으로, 기획・시나리오를 맡은 마에다 쥰의 AIR와는 또 다른 농후한 특색을 엿볼 수 있다.



리틀 버스터즈 엑스터시リトルバスターズ! エクスタシー



마찬가지로 Key의 『리틀 버스터즈リトルバスターズ!』는 이식과 관련해 특히 흥미로운 경과가 있었다. 07년에 전연령판이 나오고, 내용을 증보하고 18금화한 『리틀 버스터즈 엑스터시リトルバスターズ! エクスタシー』가 08년에 발매되었는데, 12년에는 또 엑스터시의 내용을 기반으로 콘솔판을 포함한 모든 이식판의 새로운 요소를 망라한 『리틀 버스터즈 퍼펙트 에디션リトルバスターズ! PERFECT EDITION』을 전연령판으로 발매하였다. 즉 전연령 → 18금 → 전연령 순으로 이식을 거듭한 셈이다. 참고로 엑스터시에서 파생된 외전 『쿠드 와후타クドわふたー』(2010)는 18금이다.



시온의 혈족~이 불확실한 세계와 천사들의 윤무곡~シオンの血族∼この不確かな世界と天使たちの輪舞曲(ロンド)∼



《에로 게임의 역사 (1)》 시작 부분에서 언급한 ‘놀이 + 에로’와 ‘에로한 놀이’를 환기해보자. ‘놀이 + 에로’ 유형의 성질을 지닌 에로 게임은 어떻게든 에로를 분리시키기 용이한데, 거꾸로 역이식 타이틀 역시 에로를 합치는 것도 분리시키는 것도 할 수 있다. 이 점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흥미로운 사례로 catwalk의 『시온의 혈족~이 불확실한 세계와 천사들의 윤무곡~シオンの血族∼この不確かな世界と天使たちの輪舞曲(ロンド)∼』(2011)을 들 수 있는데, 이 게임은 『하느님의 메모장神様のメモ帳』으로 유명한 스기이 히카루杉井光의 동명의 라노베를 18금 게임으로 만든 것이다. 라노베 → 에로 게임의 케이스로 지금까지도 흔치 않은 사례이다.



바리스 크로스ヴァリスX(クロス)



조금 더 이야기를 해 보자면, 꽤 특수한 경우로 80~90년대의 전연령 게임이 십 수 년 후 갑자기 에로 게임으로 리메이크된 사례가 있다. 니혼텔레넷日本テレネット의 『몽환전사 바리스夢幻戦士ヴァリス』(1986)의 에로 게임 타이틀 『바리스 크로스ヴァリスX(クロス)』(2006)가 그것이다. 원작부터 색기 넘치는 비키니 아머를 입은 히로인이 펼치는 판타지물이지만 게임 자체는 호쾌한 횡스크롤 액션 양작으로 PC-88 시절부터 패미콤, 메가드라이브, PC엔진 등 가정용 콘솔로 플레이했던 추억을 지닌 팬이 여럿 있다. 그만큼 성인용 게임화・읽어나갈 뿐인 AVG화・히로인의 비주얼이 인상 면에서 크게 개변했다는 점 등이 강한 반발을 샀고, 분노하여 들고일어난 사람들 중에는 원작에 참여한 전직 스태프도 있었다. 00년대 후반의 니혼텔레넷은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바리스에 이어 『ARCUS』, 『마법소녀 실키 립魔法の少女シルキーリップ』 등 왕년의 대표작들을 차례차례로 에로 게임화했지만 그러한 궁여지책조차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07년도에 사실상 도산하였다.





⑧ 야근병동, 유흥업소와 콜라보레이션


한때 에로 게임과 유흥업소의 콜라보레이션이 시도된 적이 있었다. 아니, 업소에서 무단으로 간판이나 찌라시에 캐릭터를 박는 거 말고 정식으로 말이다.

06년 9월부터 08년 3월까지 영업한 해당 점포의 상호명은 ‘노예 간호사・리얼 조교 SM 클럽 『야근병동』奴隷ナース・リアル調教SMクラブ 『夜勤病棟』’ …그렇다, 밍크의 야근병동 시리즈와의 연계이다. 도쿄의 시부야渋谷・도겐자카道玄坂의 유흥업소가 밍크와 제휴 계약을 맺고 작품 세계관을 재현했다. 현재까지 처음이자 마지막 시도였지만, 에로 게임이 콘텐츠로서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는지 가늠하는 의미에서 기억해 둘 만하다.



⑨ 앨리스소프트 아카이브즈 확충


06년 9월, 이전부터 과거 작품 일부의 자유 배포를 선언해 온 앨리스소프트의 ‘앨리스소프트 아카이브즈’에 『투신도시2闘神都市Ⅱ』나 『귀축왕 란스鬼畜王ランス』 등을 포함한 열세 작품이 추가되었다. 아카이브즈에 등록된 소프트웨어에 한해서는 가령 소프트 소유자가 파일 공유 프로그램 등을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배포하는 것도 허용된다. 거꾸로 말하면 배포 시 위법이 되는 소프트군과 분명히 선을 그었다는 의미도 된다.

여러 면에서 후대에 남기기 힘든 성인용 게임의 성질을 고려하면 앨리스소프트의 방침은 의미가 깊다.



Fate/Zero



⑩ 우로부치 겐과 타입문의 콜라보 소설 『Fate/Zero』


06년도 말, 니트로플러스의 우로부치 겐이 타입문과 콜라보하여 『Fate/stay night』 본편보다 십 년 전 일어난 제4차 성배 대전을 그린 스핀오프 소설 『Fate/Zero』를 발표하였다. 나스 키노코의 설정을 차용, 우로부치 겐이 집필하는 전기 액션 장르의 대형 공동 작업이란 점과, 페스나 본편에서 부분적으로밖에 다루어지지 않은 과거사가 명확해진다는 점에서 뜨거운 이목이 집중되었고, 07년 1월부터 위탁판매를 개시한 동인 숍에선 점포마다 매진 사태가 속출했다. 페이트 제로 속에서 일어나지만 페스나 본편 시점에서 이미 확정된 사건들의 정합성을 위해 필요한 스토리상 설정이나 조건은 산더미 같았으나, 우로부치는 그것들을 전부 해결하고, 세계 평화를 실현하려다가 막판에 세계의 터무니없는 진실에 좌절하는 남자 에미야 키리츠구衛宮切嗣의 비극을 시작으로 성배전쟁 참가자들의 이상과 유열愉悅과 절망을 그려내며, 이윽고 다가올 본편에 희망을 맡겨 보였다.

이후 코단샤에서 상업문고화가 되었으며, 11년과 12년에는 분할 2쿨 형식으로 TVA 방영되었다.



연희무쌍~두근☆소녀 일색의 삼국지연의~恋姫†無双 〜ドキッ☆乙女だらけの三国志演義〜



⑪ 역사책 인물들의 여성화


07년 1월 Baseson은 『연희무쌍~두근☆소녀 일색의 삼국지연의~恋姫†無双 〜ドキッ☆乙女だらけの三国志演義〜』을 발매하였다. AVG 파트와 SLG 전투 파트가 조합된 게임으로, 현대 일본의 젊은이가 이세계로 튕겨 들어와 삼국지 등장인물과 같은 이름을 가진 소녀들이 군웅할거하는 세계관에서 스스로 한 명의 영웅이 되어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속편으로 『진 연희무쌍 ~소녀요란☆삼국지연의~真・恋姫†無双 〜乙女繚乱☆三国志演義〜』이 제작되었으며, 미디어 전개도 활발한 인기 작품으로 자리매김했다. 역시 어지간한 남자는 삼국지를 좋아하고 에로 역시 좋아하니 말이다.

페이트 시리즈의 메인 히로인 세이버 역시 아더왕 전설의 주인공이 실은 어린 소녀였다는 설정에서 비롯되었는데, 이런 식으로 역사책의 유명 인물을 여성으로 설정하는 발상은 어느 시대든 일정한 인기를 구가했다. 에도 시대부터 이어지는 가부키 18번歌舞伎十八番의 연극 제목인 시바라쿠暫에는 타이라노카게마사平景政를 헤이안 시대의 여성 무장 토모에고젠巴御前으로 호환한 버전인 온나시바라쿠女暫가 있으며, 이는 남장 페티시나 타카라즈카 가극 문화 쪽과도 모종의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귀축왕 란스鬼畜王ランス



에로 게임에서 사례를 찾아보자면 앨리스소프트의 안티 히어로 이야기인 란스 시리즈 중 전투 SLG물인 『귀축왕 란스鬼畜王ランス』(1996)와 『전국 란스戰國ランス』(2006)의 세계에는 JAPAN이라는 국가가 존재하며, 전국 시대의 실존 무장을 모델로 한 여성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여자라는 설도 있는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은 뻔하다면 뻔하다. 또 작중 배경과 실존 모델의 시대와는 갭이 크지만 제국주의 일본 해군 연합함대 사령장관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五十六의 이름을 가진 히로인이 란스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만드는 전개도 있다.



히라구모쨩 –전국 하극상 이야기- 平グモちゃん-戦国下克上物語-



앞선 글에서 소개한 라이어소프트의 『행살♥신센구미行殺♥新選組』(2000)는 주요 인물의 과반수가 여성화 캐릭터다. 쿨 뷰티 신센구미 부장 히지카타 토시조土方歳三나 병약소녀 신센구미 1번대장 오키타 소지沖田総司는 그럴듯한 느낌이지만 신센구미 국장 세리자와 카모芹沢鴨를 금발 거유 혼혈 술고래 미녀 카모밀 세리자와カモミール・芹沢로 만든 건 발군의 센스가 아닐 수 없었다. 라이어소프트는 2012년에는 『히라구모쨩 –전국 하극상 이야기- 平グモちゃん-戦国下克上物語-』라는 작품에서 마츠나가 히사히데松永久秀가 애호한 다관(차를 달이는 솥) 코텐묘히라구모古天明平蜘蛛나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호화로운 저택 쥬라쿠다이聚楽第 등을 모티프로 히로인을 조형했다. 이는 여성화인 동시에 의인화라 할 수 있다.



영웅*전희英雄*戰姬



10년대에 들어서는 콘솔판 이식도 활발하게 이루어진 『전극희戰極姬』 시리즈(2008년 첫 출시), 마물로 구성된 오다 노부나가와 가신들이 각국의 여성화 무장을 능욕하는 『전국마간戰國魔姦』, 일본을 포함하여 세계 각국의 메이저・마이너를 불문한 온갖 영웅호걸들을 여성화한 텐코天狐의 『영웅*전희英雄*戰姬』(2012)가 있다. 카메하메하 1세Kamehameha I(하와이 군도를 최초로 통일하여 하와이 왕국을 건국한 군주)의 여성화는 그야말로 공전절후일 것이다. 영웅전희의 형식은 전략 SLG지만 앨리스소프트를 의식하여 ‘지역제압형 SLG’를 자칭 장르명으로 내걸고 있다.



일기당천一騎当千



연희무쌍 이야기가 나왔으니 첨언하자면 전연령 서브컬처 작품 중 삼국지의 여성화를 꼽는다면 단연 『일기당천一騎当千』일 것이다. 손책, 주유, 관우, 여포를 비롯한 폭유 여고생들이 폭력적인 유방을 요란하게 흔들면서 생사를 걸고 싸우는 격투 만화로, 마침 08년과 10년에는 일기당천 애니메이션 3기와 4기가 각각 진연희무쌍 1기, 2기와 같은 분기에 방영되면서, 삼국지 2차 창작물(관전 포인트 : 가슴)의 위용을 떨쳤다.



48~그림의 사랑図形の恋~



⑫ 수다스런 에로 게임, 음어淫語의 과잉화


여명기부터 비교하면 에로 게임의 시나리오의 질이나 볼륨은 현격히 상승했으며, 음성 역시 풍부하게 사용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이에 따라 이 시기는 이를 최대한으로 활용할 궁리 역시 엿보였다.

예를 들면 배경 음성Background Voice. 에로 신에 진입하면 대사와 별개로 BGM처럼 앙앙거리는 소리를 끊임없이 반복하여 들려주어 평범한 지문을 읽고 있을 때도 음욕의 공간에 있음을 잊지 않게 하는 연출이다. 애니메이션에서 사람이 많은 공간의 웅성거리는 소리의 효과와 비슷하다. 비교적 초기에 이를 시도한 건 48수 체위를 그리는 그림장이를 소재로 한 13cm의 시대물 에로 게임 『48~그림의 사랑図形の恋~』(1997)으로, 이때부터 하나둘 배경 음성을 에로 신에 활용하는 사례가 늘기 시작한다.



이발소 아줌마床屋のおばちゃん



그 밖에도 재미있는 시도로는 캐릭터 하나에 목소리의 성질이나 연기가 다른 복수의 성우를 기용해 취향에 따라 옵션에서 선택할 수 있게 한 사례가 간간이 있다. 12년도 Guilty+의 『이발소 아줌마床屋のおばちゃん』라는 숙녀 취향 게임에선 교토 사투리를 쓰는 히로인들에게 각각 두 명의 성우를 붙여서 말투의 경쾌함의 차이에 따른 개성을 드러냈다. 이 회사는 과거에도 이러한 옵션을 시도한 적 있는데, 04년도작 『여교사 치욕의 선율女教師・恥辱の旋律』에선 캐릭터 하나에 성우 세 명을 기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에로 게임에서 음성이나 대사 텍스트를 살리는 꽃은 음어淫語일 것이다. 히로인이 입에 담는 성기나 성행위를 나타내는 야한 대사를 눈으로 읽고, 동시에 귀로 듣는 시청각의 만족. 전통적으로 외설스런 단어를 나열하는 게 기본이지만 여기선 거기서 한층 진화하여 과하게 야하고 과하게 긴 대사로 플레이어의 혼을 쏙 빼놓는 작품 사례들을 보도록 하자.



공주기사 안젤리카 ~당신은 정말로 최악의 쓰레기야~姫騎士アンジェリカ 〜あなたって、本当に最低の屑だわ!〜



신호탄이 된 작품은 07년 2월, 일시적으로 활동을 휴지休止했다가 재개한 실키즈의 『공주기사 안젤리카 ~당신은 정말로 최악의 쓰레기야~姫騎士アンジェリカ 〜あなたって、本当に最低の屑だわ!〜』다. 판타지 계열 조교 SLG 장르는 앨리스소프트의 『DARCROWSダークロウズ』(1999)를 시작으로 옛날부터 인기가 있었고, 엘프(실키즈)산 능욕물 역시 정평이 나 있었다. 그렇지만 그보다는 과격하다 못해 코믹한 영역에 다다른 음어와 그를 연기하는 성우 사토 유키サトウユキ(대표작 : 연희무쌍 손권)의 열연이 화제가 되었다.

주인공은 인간 청년으로 모종의 사정으로 자신을 떠난 전 연인인 여자 엘프에게 복수하고자 그녀가 다른 남자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 안젤리카를 능욕 조교하기 시작한다. 공주기사의 이명을 지닌 굳센 안젤리카 공주는 처음에는 강하게 반발하지만 조교가 계속될수록 태도가 변화한다…는 내용이다. 조교의 진행도는 레벨로 나뉘어져 있으며, 시작 단계인 레벨 1에선 손을 대면,


「최악이야!」

「최악, 정말이지 최악!」

「당신은 정말로 최악의 쓰레기야!」

「이 변태!」

「최악이야, 정말 최악의 쓰레기야!」

「당신 따위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라고 격하게 매도해온다. 조교 완료 직전인 레벨 4를 보자.


「으앗, 으앗!」

「갱장해, 갱장해앳!」

「가, 강다! 가버어!」

「가, 가아아아아아아아앗!」

「곤쥬님의 보ㅈ는 엘만의 거야아! 곤쥬님의 젼부는 예매 완료에요오!」

「학실하게 임시인!, 오쥼 질질거리면서 가앗!」


이렇게 완전히 쾌락에 몸을 맡겨 본능에 미쳐 날뛰는 상태로 전락한다. 참고로 이건 주옥같은 대사들 중 노멀에 가까운 편이다. 이러한 과한 음어표현을 통해 코어 팬층을 형성하며 탄력을 받은 실키즈는 뒤이어 『학원최면노예~방금 전까지 정말 싫어했을텐데~学園催眠隷奴 〜さっきまで、大嫌いだったはずなのに〜』(2008), 『풍기위원장 세이라~당신 따위 정말 싫어, 죽어버렸으면 좋겠어~風紀委員長 聖薇 〜あなたなんて大嫌い、死ねばいいのに〜』(2010), 『공주기사 올리비아~벼, 변태, 이 변태남! 조금은 부끄러운 줄 알아요!~姫騎士オリヴィア 〜へ、変態、この変態男!少しは恥を知りなさい!〜』(2011)에서 똑같은 접근을 거듭하였고, 이 작품들은 모두 사토 유키가 히로인을 연기하였다.



공주기사 올리비아~벼, 변태, 이 변태남! 조금은 부끄러운 줄 알아요!~姫騎士オリヴィア 〜へ、変態、この変態男!少しは恥を知りなさい!〜



실키즈의 작품들이 일종의 정형으로 자리 잡은 건지, 머지않아 여기저기서 다른 메이커들이 공명하듯 비슷한 방향성의 음어 게임을 내놓게 된다. 안젤리카와 비슷한 시기의 사례를 들자면 모닝もーにんぐ의 『ㅈ물 뿌리기!!~선배는 우유 범벅~ぶっかけ!! ∼先輩はミルクまみれ∼』(2007), 클락업CLOCKUP의 『문질문질 코스프레! 당신 취향의 코스프레 섹스를 해줄게こっすこす!あなた好みのコスプレHしてあげる』(2008), 맨발소녀裸足少女의 『행복한 공주님~약혼은 아이 만들기를 위해~しあわせなお姫さま∼エンゲージは子づくりのために∼』(2008) 등이 있다.



행복한 공주님~약혼은 아이 만들기를 위해~しあわせなお姫さま∼エンゲージは子づくりのために∼



이완이 극에 달한 표정 묘사 즉 뿅 간 얼굴アヘ顔과 이러한 과한 대사의 조합은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에로 만화에서 유입된 표현이다. 특히 장황하면서도 혀가 말려들어간 대사 쪽은 후타나리(남성기와 여성기를 같이 가진 여자)를 곧잘 그리는 에로 만화가 겸 일러스트레이터 미사쿠라 난코츠みさくらなんこつ(동인 서클 하스닐ハースニール 주최)의 양식미에 깊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측한다. 이차원 에로 매체 유저 사이에서 미사쿠라어語 하면 비슷하게들 연상한다.

미사쿠라어 내지 음어 게임 텍스트에서 볼 수 있는 기본적인 작법은 다음과 같다.


- 쾌락에 취해 ‘굉장해すごい’를 ‘갱장해しゅごい’, ‘안돼だめ’를 ‘앙대애らめぇ’ 라고 혀 꼬인 발음으로 말한다

- 종래에 ‘아앗ああ’ ‘아잉いや’ ‘아앙あん’ 식으로 담백한 앙앙대는 소리를 내는 반면 ‘끄허어어어んほおおお’ ‘뜨어아아아ぬほおおお’ 이렇게 괄약근에 힘이라도 주는 기합 소리를 내어, 보다 짐승스럽고 격렬한 정사를 여실히 드러낸다

- ‘간다いく’를 ‘강다아いぐぅ’, ‘으윽ひぃ’을 ‘그으윽ひぎぃ’이라 하는 등 탁음을 넣어 쾌락과 고통이 종이 한 장 차이임을 나타낸다.

 - 앙앙거리는 사이사이에 ‘■■의 △△한 ●●가 ××해서 ◇◇해버렷!’ 식으로 몸에 일어나고 있는 일을 장황하게 보고한다.

- ‘ㅈ지 우유おちんぽミルク’ ‘농후하고 짙은 정액濃厚こってりザーメン’ ‘육변기 신부肉便器花嫁’ 등 곧잘 쓰이는 관용구를 구사한다.


대충 이 정도다. 이 중에서도 히로인이 스스로 얼마나 깊고 격렬하게 성감에 물들었는지 과하게 설명하는 장황한 대사는 흥미로운 요소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그렇게나 느끼고 있다면 말을 할 여유도 없지 않을까. 그러나 희곡의 독백과 같은 서사 속 장치로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기분 좋은 마음’을 화면 너머의 플레이어에게 표현하기 위한 장치 말이다.

앞선 글에서도 말했지만 에로 게임은 단순히 옷 벗기기 게임과 동일 선상의 눈요기로 성립하던 시절과 달리 스토리를 염두에 둘 정도로 변모하는데, 이에 따라 주인공뿐 아니라 히로인 자신도 무언가를 생각하고 마음에 품는다는 전제가 생겨난다. 그렇게 되면 히로인이 정사 신에서 ‘정말로 느끼고 있다고는 보증할 수 없다’(연애물이라면 ‘진심으로 호감을 갖고 있다고 보증할 수 없다’)는 불확실성이 생겨난다. 확실성을 보증하는 대처로 손쉬운 방안은 히로인 시점이나 직접적인 내면 묘사를 삽입한다든지, 전지적 나레이션을 활용한다든지 하는 것이지만, 또 다른 극단적인 방안은 맨 정신으론 절대로 말 못할 자기 보고를 기어이 연이어 외치게 하는 것이다. 즉 마음의 밑바닥까지 말소리로 드러내게 함으로써 히로인의 뱃속에 아무것도 남지 않게 하는 방법이다. 왜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안 될까, 노골적인 이야기지만 ‘마음껏 시원하게 뽑아대기 위해’서다. 에로에 따른 실용성을 중시한 유형의 작품이라면 유저를 거북하게 하는 요소는 배제하는 게 제일일 터이다. 비평적인 성질의 이야기로 굳이 거북함을 자아내는 작품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Wind~a breath of heart~



마지막으로 음어 게임과는 다른 종류의 장황한 대사를 탁월하게 살려낸 게임으로 minori의 『Wind~a breath of heart~』(2002)를 살펴보자. 주인공의 소꿉친구로 장래를 약속한 히로인 나루카제 미나모鳴風みなも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주인공에게 묻는 장면이 있는데, ‘좋아하는지 아닌지 확실하게 말해주지 않으면 자신은 언제까지고 질질 끌며 주인공을 마음에 품고 있을 수밖에 없어 괴롭다’고 몰아붙이는 내용의 단독 대사의 문자수가 2800여 자쯤 되며, 음성을 전부 들으면 장장 10분이 소요되는 긴 호흡의 대사다. 음어 게임의 경우와는 반대로 히로인의 내면에 잔뜩 쌓아둔 말이 있다는 사실을 플레이어를 붙잡아두고 들이미는 사례이다.



‘빈유는 스테이터스다, 희소가치다!’ - 이즈미 코나타泉こなた



⑬ ‘빈유는 스테이터스다, 희소가치다!’ ‘클라나드는 인생!’


07년 4월부터 방영한 TVA 『러키☆스타らき☆すた』 4화에서 오타쿠이자 PC게임 헤비 유저 설정의 주인공 이즈미 코나타泉こなた가 ‘빈유는 스테이터스다, 희소가치다!’라는 뻘소리를 하였고 이는 인터넷 일부에서 유행어처럼 번졌다.



마유미 타임麻弓=タイム



대사의 원전은 04년도 에로 게임 SHUFFLE!에 등장하는 빈유 히로인 마유미 타임麻弓=タイム이 주변의 가슴이 빵빵한 히로인들을 질투하며 “작은 가슴은 귀중한 거야, 스테이터스라고!?” 라고 생떼를 쓰는 장면이다. 이를 오히려 빈유를 당당히 어필하는 대사로 교묘하게 어레인지한 것이다. 참고로 만화책에서는 04년도 연재본의 에피소드에서 치는 대사로, 셔플이 04년도 1월에 출시된 걸 생각하면 발빠르게 패러디한 셈이다.



돌핀 다이버즈Dolphin Divers



2012년 엑셀AXL의 『돌핀 다이버즈Dolphin Divers』에서 등장인물이 러키스타의 그 대사를 인용하는 장면이 있다. 에로 게임 → 전연령 애니메이션 → 에로 게임으로 똑같은 대사가 돌고 도는 게 재미있다.



‘클라나드는 인생クラナドは人生’



그 밖에도 유행어 하면 유저 발언이 발단이 된 ‘클라나드는 인생’이란 어구가 있다. Key의 04년도 전연령 게임 클라나드를 둘러싸고 2007년 10월 5일 금요일 오전 11시 31분 22초에 인터넷 게시판 니챤넬2ちゃんねる 뉴스 속보판에서 탄생한 어구다. 클라나드 TVA를 두고 “클라나드 1화만 보고 똥겜 같은 말 하는 놈은 멍청이. 마지막까지 본 다음에 평가해라.” 라는 제목의 스레드가 올라왔는데, 댓글의 향연 중 이런 말들이 오갔다.


“클라나드를 에로 게임으로 착각하는 놈들 슬슬 짜증난다. 에로 게임 아니거든. 제로의 사역마가 훨씬 에로 게임이야.”

(‘에로 게임이 아니면 뭔데’ 하는 댓글이 쇄도하자,)

“인생…일까?”

“나는 클라나드의 캐릭터한테 모에 같은 감정은 없지만 스토리에 매료되었음.”


굳이 저 말을 해체하자면 클라나드 게임 본편이 전연령이라 에로를 포함하지 않는다는 단순한 사실과, 주인공 오카자키 토모야과 히로인 후루카와 나기사의 학창 시절부터 결혼 후의 가족 생활까지의 이야기 그리고 외전에서는 하나뿐인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강한 마음을 다루는 스토리라는, 인간군상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압축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얼핏 봤을 때 “에로 게임이 아니라 인생”이라는 뉘앙스가 큰 반향을 얻는 바람에 다소 곡해된 채 비꼬는 의미로 퍼져 버린 것이다. 후에는 여기서 파생된 어구들까지 도매금으로 묶였는데, 앞선 글에서 밝힌 ‘페이트는 문학, 새의 시는 국가, 클라나드는 인생’이 그것이다.

사족이지만 원 발언자는 제로의 사역마의 작가와 일러스트레이터가 둘 다 에로 게임 출신인 걸 알고 있었던 걸까, 문득 궁금해진다.



네가 주인이고 집사가 나고君が主で執事が俺で



(2) 00년대 후반의 에로 게임 – 2



① 미나토소프트みなとそふと의 등장


캔디소프트의 츠요키스 제작 이후 시나리오 라이터 타카히로는 06년도에 인터하트를 퇴사한다. 그리고 본인 명의의 주식회사 호크아이ホークアイ와 브랜드 미나토소프트みなとそふと를 런칭한다.

07년 5월 미나토소프트는 처녀작 『네가 주인이고 집사가 나고君が主で執事が俺で』(약칭 키미아루)를 내놓는다. 주인공과 누나가 가출하여 경제난에 시달릴 무렵 명가의 당주인 여성과 만나게 되고, 당주를 포함한 세 자매 중 누군가의 전문 집사와 메이드로 일하게 되는 내용이다. 본작 이후 출시한 무예 소녀 공략 AVG 『진지하게 나를 사랑하도록!真剣で私に恋しなさい!』(약칭 마지코이)에서도 인터하트 시절부터 이어진 타카히로의 취향인 ‘누나’나 ‘츤데레’를 주축으로 하여 연이어 히트하게 된다.



진지하게 나를 사랑하도록!真剣で私に恋しなさい!



참고로 타카히로 작품군이나 그린그린 시리즈나 사립 아키하바라 학원 등은 서브 캐릭터를 중시하여 극을 확장한다든지, 종종 다양한 개그나 패러디 등을 삽입하여 작품 세계를 풍부하게 하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조연이나 단역으로 일반 계열의 거물급 성우를 캐스팅해 유저를 놀라게 하기도 한다.

단 이러한 유희거리와 동시에 군상극 혹은 블록버스터를 지향하려면 비용이 늘어나기 십상이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일 년에 몇 작품씩 만들 수도 없다. 메이커에 따라서는 비교적 빠른 텀으로 내놓을 수 있는 저가 단편 소프트(3,4천 엔 정도로 보통의 장편 에로 게임의 루트 한두 개 정도의 볼륨을 지닌)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는 길을 택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식으로 방향성에 따른 에로 게임 개발의 양극화가 일어나게 된다.



연인끼리 하는 일 전부こいびとどうしですることぜんぶ



② 꽁냥거리는 연애いちゃラブ물 양작 『연인끼리 하는 일 전부こいびとどうしですることぜんぶ』


07년 11월 시리우스シリウス는 『연인끼리 하는 일 전부こいびとどうしですることぜんぶ』(이하 콘부)를 발매한다. 고백해서 사귀는 게 종착점이 아니라 오히려 출발점인 게 특징으로, 상대방의 부모님께 인사드리고 동거를 시작하고 그 이후까지 그려가는 학원 연애 AVG다.

히로인은 소노오 쿠우園生玖羽 단 한 명인데, 10년대 중후반 이후에야 DLC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캐릭터별로 분할 파트를 내놓는 메이커가 많아졌지만 당시 풀프라이스 에로 게임으로서는 드문 케이스였다. 꽁냥거리는 연애いちゃラブ물 양작이라 할 수 있는 작품으로, 주인공도 히로인도 다른 이성 캐릭터에게 일절 휘둘리지 않으며 서로 꽁냥거리는 바보 커플 상태를 초지일관하며 서브 캐릭터들의 응원이나 축복을 받을 뿐이다. 이러한 작품이 취향인 유저들에겐 뜨거운 지지를 얻었으며, 어떤 유저들은 ‘이런 방향성도 있구나’ 라며 새로운 발견이라 평했다.

반복하여 설명하자면, 가령 츤데레는 마음에 거짓말을 하며 싫다고 고집을 부리는 이면에 ‘거꾸로 말하면 숨기고 있는 호감은 진짜’라는 보증을 연출하고, 얀데레는 ‘마음이 부서질 정도니까 그 사랑은 진짜’라는 보증을 연출한다. 숨은 의미를 파악할 필요가 없는 포르노였던 에로 게임에 마음의 이면을 그리는 드라마나 복수 히로인들을 둘러싼 평행세계와 같은 분기 시스템을 도입하며 캐릭터의 연애 감정에 메타 단계의 극단적인 불확실성이 발생했고, 그 반동으로 진심을 보증 받고 싶은 수요도 극단적이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콘부는 이러한 반동의 또 다른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복수 히로인에게 여지를 주는 일도 없고, 자신의 마음을 배신하는 말에 얽매이지도 않고, 자신이나 연인과 관계된 사람들을 없는 사람 취급하지도 않는다. “아니, 그런 투명한 군상들로 이야기가 성립은 되나?” 하는 질문이 있을 수도 있는데, 이게 또 어떻게든 이야기는 굴러간다. 본작의 커플은 꽁냥대기만 하는 게 아니라 꽁냥거릴 공간을 얻고자 생활 기반을 확보하는 고생을 감수하므로 그런 완급조절의 균형은 취하고 있음을 밝혀 둔다.



마법은 비의 빛깔?魔法はあめいろ?



콘부의 원화 담당은 미야스 리사ミヤスリサ로 우타츠키 카오리가 부른 주제가 Do you know the magic?으로 유명한 시리우스의 이전작 『마법은 비의 빛깔?魔法はあめいろ?』(2004)을 담당했으며, 훗날 WHITESOFT에서 『네코나데 디스토션猫撫ディストーション』(2011)의 원화를 맡기도 했다.



블라스레이터ブラスレイター



③ 니트로플러스와 TVA


08년 4월 니트로플러스가 애니메이션 제작사 GONZO과 합작한 OSMU 기획 『블라스레이터ブラスレイター』의 애니메이션이 방영되었다. 사자死者가 이형・이능의 존재로 되살아나는 근미래의 독일에서 펼쳐지는 초일상 배틀을 그린 하드한 작품으로, 초시공요새 마크로스超時空要塞マクロス 등의 초고속 공중 전투 신의 연출, 이른바 이타노 서커스板野サーカス로 알려진 전설적인 크리에이터 이타노 이치로板野一郎가 감독을 맡았다. 시리즈 구성은 당연히 니트로플러스 소속의 우로부치 겐. 지금이야 흥행 보증 수표이자 자기만의 색을 시장에 확립한 우로부치지만, 첫 애니메이션 참여에서 이타노 이치로에게 배울 수 있었다는 것은 뜻깊은 순간이었을 것이다.



프린세스 러버プリンセスラバー!



④ 로맨스와 하드 에로의 조합, 『프린세스 러버プリンセスラバー!』


08년 6월 Ricotta는 데뷔작 『프린세스 러버プリンセスラバー!』(이하 프리러버)를 발매한다. 사고로 양친을 잃은 일반인 청년 앞에 대부호인 조부가 나타나고, 후계를 잇기 위해 명문가 자녀들이 다니는 학원으로 편입해 사교계에 데뷔할 것을 명령한다. 그곳에서 일국의 공주나 기사 가문의 검술소녀나 젊은 디자이너 겸 모델 등 지위가 높은 히로인들과 만나게 되고, 서로 이끌리게 된다…는 남성향 현대 로맨스 판타지를 본편은 다루고 있다. 주목할 점은 에로 신에 뿅간 얼굴あへ顔(감당할 수 없는 쾌락에 얼굴 근육이 전부 이완되어 흰자위를 뜨고 아랫입을 늘어뜨리고 혀까지 내미는 표정 묘사), 방뇨, 임신으로 배가 나온 상태ボテ腹(보테바라)에서의 섹스 같은 하드한 장면이 등장한다. ‘에로 농도가 옅은 순애 계열’ ‘에로 농도가 짙은 즐딸 계열’ 같은 고정 관념을 넘어섰다는 게 이 게임의 특징으로, 이를 살려 애니메이션도 TVA와 성인용 OVA로 두 차례에 걸쳐 출시되었다. 단 성인용 OVA의 경우 공주와의 섹스는 등장하지 않으니 참고하시길.



R18!


⑤ 일반 미디어에서 등장하는 에로 게임


픽션 작품에서 미소녀 게임이 언급되거나 향유층이 묘사되는 경우들이 있다. 손쉽게 떠올릴 수 있는 상황이라면 에로 만화 초반부에서 혼자 사는 남자가 에로 게임 삼매경에 빠져 있다든지 하는 거겠지만 여기선 일반 작품에서 에로 게임을 다룬 경우를 나열해 보자.

우선은 업계물인데, 망가타임 키라라 MAX에서 07년 11월호부터 연재한 4컷 만화 『R18!』이란 작품이 있다.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굳이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4컷 만화 중에는 사회인을 메인으로 한, 직장인물お仕事系이라고도 불리는 장르가 있으며, 본작은 에로 게임 제작사의 일상을 무대로 하고 있다. 작가는 실제로 에로 게임 회사에서 그래피커를 했었다는 말도 있다.



목소리로 일하자こえでおしごと!



업계물로서 한층 어느 분야를 파고든 작품으로 08년도에 월간 코믹 껌月刊コミックガム에서 연재를 개시한 콘노 아즈레紺野あずれ의 만화 『목소리로 일하자こえでおしごと! 』가 있다. 성우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시대에 그를 소재로 하는 건 자연스러운 발상이었지만 본작은 한층 더 나아가 에로 게임 성우 업계에 이야기의 초점을 맞춘다. 성경험이 없는 여고생 주인공이 에로 게임 성우일을 한다는 설정으로, 에로에 대해선 하나도 모르지만 트랜스 상태(일종의 접신이나 빙의)에 돌입하면 절정하는 목소리 연기만으로 듣는 사람의 아랫도리를 강타할 수 있는 힘을 발휘한다는 꽤나 역동적인 내용을 그리고 있다.

에로 게임 유저의 모습을 묘사할 때, 소년소녀가 메인인 작품에서 18금 게임을 묘사하는 건 아무래도 민감한 문제이므로 예를 들면 헤비 게이머가 플레이하는 수많은 게임 중 에로 게임도 포함되어 있음을 살며시 드러낸다든지 대사 중 에로 게임에서 유래한 발언을 하는 등 가벼운 소재로 다루는 경우가 많다. 러키스타에서 이즈미 부녀의 만담이 좋은 사례이다.



내 여동생이 이렇게 귀여울 리 없어俺の妹はこんなに可愛いわけがない



그러나 스토리 진행에 필요해서 ‘본래 플레이해서는 안 될 에로 게임을 탐닉하는 미성년자’를 그리는 경우도 있다. 라이트노벨 『내 여동생이 이렇게 귀여울 리 없어俺の妹はこんなに可愛いわけがない』에선 주인공 쿄스케의 여동생 키리노가 여동생 속성 에로 게임을 애호하며 이것이 발각됨으로써 남매와 가정의 드라마가 진행되는 원동력이 된다. TVA에서도 이는 변함없다.



아키타 코마치あきたこまち



⑥ ‘아키타 코마치あきたこまち’와 미소녀 캐릭터


00년대 전반부터 소레치루, 셔플 등으로 에로 게임 유저의 인기를 얻은 니시마타 아오이는 08년 9월 아키타 현秋田県 우고마치羽後町의 우고농협うご農業協同組合 상품 ‘아키타 코마치あきたこまち’의 쌀 봉투에 미소녀 캐릭터 일러스트를 그려 화제가 되었다. 아키타 코마치는 화제가 되어 TV에도 곧잘 등장하게 되었으며, 세간에서 니시마타의 지명도는 급격히 상승, 이후 게임 외 분야에서 일러스트 의뢰를 다수 수주하게 된다. 기어이 09년에는 조지 루카스 공식 의뢰로 스타워즈 기념 화집에 참여하는 세계의 일러스트레이터 100명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리게 된다.(『Star Wars Visions』, 2010년 11월 간행)



빙쵸탄びんちょうたん



의인화나 이미지 캐릭터 자체는 예를 들면 비장탄(숯의 일종)을 의인화한 『빙쵸탄びんちょうたん』처럼 이전부터 있었지만 아키타 코마치는 판촉의 일환으로 접근한 게 큰 반향을 얻었고, 원산지의 대표상품에 미소녀나 미남자 캐릭터의 일러스트 포장을 첨부하는 움직임이 각지에서 활발하게 일어나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개중에는 유별나게 세련된 비주얼로 ‘에로 게임이나 걸 게임 포장 같다’는 반응을 얻은 상품도 있으며, 실제로 에로 게임에 종사한 적 있는 일러스트레이터가 기용되기도 했다. 



제비뽑기 트라이앵글ふくびき!トライアングル



⑦ 리먼 사태 ~에로 게임 속 불황~


08년 9월 15일 미합중국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한다. 이른바 리먼 사태Bankruptcy of Lehman Brothers의 발생으로 세계 규모의 금융 위기가 각국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일본은 이 이전부터 장기 불황에 빠진 상태였는데, 이즈음 게임에서 생생하게 묘사되는 경제 상황에도 팍팍한 현실이 여지없이 묻어나고 있다. 잠깐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는 장면에는 여지없이 ‘불황이니까’ 같은 넋두리가 나오고, 주인공이나 주인공의 아버지가 일자리를 찾느라 고군분투하는 상황 묘사에서도 절절하게 전해진다.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건 가령 대부분 셔터를 내려 삭막해진 상점가의 모습을 배경 CG로 넣는 연출을 들 수 있다.

일반 계열의 메이저한 게임이라면 가령 지방 도시를 무대로 한 『페르소나4ペルソナ4』(2008)에서는 대부분 셔터를 닫은 상점지구가 그려져 있었다. 에로 게임의 사례로는 블루 게일ブルーゲイル의 2010년작 『제비뽑기 트라이앵글ふくびき!トライアングル』에서 한 가게가 제비뽑기의 특상으로 얼굴 마담인 미소녀 자매와 2주간 즐길 수 있는 티켓을 걸어 주인공이 당첨되어 버리는 내용을 그리고 있다. 가게에서 그런 제비뽑기를 주최한 데는 시골의 적막해진 거리에 어떻게든 사람을 끌어모으기 위해서라는 눈물겨운 이유가 있다.



소꿉친구 아줌마~돌싱 숙녀와 음란 미망인~馴染みのオバちゃん 〜バツイチ熟女と淫乱未亡人〜



Guilty+의 2010년작 『소꿉친구 아줌마~돌싱 숙녀와 음란 미망인~馴染みのオバちゃん 〜バツイチ熟女と淫乱未亡人〜』에서는, 주인공이 소속된 미식축구 실업팀이 해산하고 간신히 다니게 된 회사도 불황의 여파로 도산해 결국 실직자가 되어 고향에 돌아갔더니 그리운 상점가는 대부분 셔터를 내린 채, 이러한 침울한 시놉시스로 시작되는 한편 옛날과 변함없는 귀여움과 익살로 반겨 주는 도시락집 주인인 소꿉친구와 옛정을 되살리다 보니 남녀 관계로 빠져든다는… 그런 전형적인 숙녀물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에로 게임에서는 종종 수고를 덜고자 배경에 엑스트라 캐릭터를 그리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 작품에 등장하는 거리에는 애당초 물리적으로 사람의 발길이 없다. 아아, 산업화에 따른 이촌향도여!

또한 이런 경우 꼭 제작자가 현대 사회를 바라보는 메시지를 우겨넣는다든지 하는 머리 아픈 공작을 하지 않고, 단순하게 수용자가 실감하기 쉽게 그려낸 풍경으로 작품에 몰입하게 하여, 결과적으로 시대상을 반영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감정 이입의 계기는 캐릭터 속성 같은 특정적인 취향 뿐 아니라 서민 생활의 전체 양상에 걸쳐 있다고 짐작할 수 있겠다.



우리들에게 날개는 없다俺たちに翼はない



⑧ 육 년 만에 출시된 『우리들에게 날개는 없다俺たちに翼はない』


09년 1월 Navel은 『우리들에게 날개는 없다俺たちに翼はない』(이하 오레츠바)를 발매한다. 원화 니시마타 아오이, 시나리오 오우 쟈쿠손. 소레치루에 참여했던 콤비가 새로운 회사에서 다시 뭉친 작품이다. 이전 글에서 설명했듯 소레치루는 이별을 당한 사람의 심경을 우화적으로 풀어낸 수작으로, 좋아하는 상대에게 잊히는 저주에 고통 받아 연애를 부정하던 주인공이 다시 사랑을 긍정하게 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오레츠바는 오우 쟈쿠손이 육 년 반 만에 내놓는 신작으로 주목을 받았다. 당초 기획안이 올라오고 네이블 공식 사이트에 업로드된 건 03년도로, 몇 번이고 거듭된 연기 끝에 결국 육 년이나 걸린 것이다. 어느 도시를 무대로 다섯 개의 이야기로 펼쳐지는 군상극으로, 이는 동시에 모종의 심리학적 화제에 따라 단 한 사람의 내면을 더듬어가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이런 독특한 구성으로 여러 플레이어들이 본작에 매료된 바 있다.



수레바퀴의 나라, 해바라기의 소녀車輪の国、向日葵の少女



영화든 만화든 애니메이션이든 1인칭 등으로 하나의 시점에 국한된 작품을 접할 때 우리는 곧잘 ‘이 장면은 대체 뭘 보여주고 있는 건지(그리고 뭘 보여주지 않고 있는 건지)’ 하는 음미 요소를 넘겨버리곤 하는데, 굳이 그런 요소를 환기시키는 작품도 곧잘 나오곤 한다. 에로 게임 중 그런 면이 유독 부각되는 작품으로는 05년에 아카베소프트 투あかべぇそふとつぅ에서 발매한 『수레바퀴의 나라, 해바라기의 소녀車輪の国、向日葵の少女』와 이 오레츠바가 단연 손꼽힌다.



레이프레이レイプレイ



⑨ 『레이프레이レイプレイ』 소동


09년 2월, 3D CG를 활용한 치한물 에로 게임 『레이프레이レイプレイ』(2006)가 영국에서 물의를 일으켜 일본 내 성인 게임 시장에 강한 풍파가 몰아치게 된다. 이와 더불어 소프륜이 강간 등 성폭력을 묘사한 이른바 ‘능욕 계열 소프트’의 심사 기준을 재검토하기에 이른다.

단 이 시점에서의 기준 재검토는 ‘구체적인 표현의 마지노선은 개별 작품에 대응한다(특히 패키지상 표기 등에 유념한다)’는 골자에 대한 소프륜 가맹회사들의 의지를 확인하는 정도로, 조금이라도 강압적인 성교 장면에 대해 퇴짜를 먹인다든지 하진 않았다.

어찌됐든 능욕물이 에로 게임 시장 안에서든 밖에서든 민감한 상태에 놓인 건 분명했다. 이 소동 직후, 능욕을 나타내는 단어가 들어간 제목을 발매 직전 급하게 변경한 작품도 있다. 또 겉으론 잘 안 보이지만 기획 단계에서 여지없이 수정 당한 작품도 있을 것이다.



젖가슴 하트~그녀는 짐승 발정기!?~おっぱいハート〜彼女はケダモノ発情期ッ!?〜



단 소동 직후 주목할 만한 움직임이 하나 있는데, 능욕 방면에서 억제를 당하는 세태에 따라 결과적으로 ‘화간 차원에서의 하드 플레이 경향’이라는 절충안이 촉발되었다는 것이다. 소동 이전의 사례로는 프린세스 러버의 뿅 간 얼굴 묘사의 삽입이 그렇고, 『학원学園』 시리즈로 다크 계열 및 하드 계열 학원 능욕물을 내세워 온 BISHOP도 화간 계열을 모색하여 레이프레이 소동 이후 『젖가슴 하트~그녀는 짐승 발정기!?~おっぱいハート〜彼女はケダモノ発情期ッ!?〜』(2010) 같은 종래의 하드한 에로스와 밝은 분위기를 합친 작품을 선보여 신기축을 이루었다.

여러 번 반복되었듯 에로 게임의 포르노 미디어로서의 과격화는 사회의 윤리적 지탄을 예고한다. 발판은 동요하고 터전은 사라진다…, 그럼에도 에로 게임은 형태를 찾아 진전해 나간다.



MangaGamer ( http://www.mangagamer.com/allages )



⑩ 미소녀 게임과 해외


그럼 애당초 어떻게 일본 내수용 게임 레이프레이가 유라시아 대륙 너머 영국에서 문제가 된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인터넷 시대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첫 번째 가능성은 인터넷 대용량 통신의 발달이 배경이 되어 파일 전송 네트워크에 의해 소프트의 위법 배포가 행해져 해적판을 실제로 플레이한 사람의 경우다. 이건 일본 국내든 국외든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문제고,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한국 내 에로 게임 유저들 대부분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이용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두 번째는 정규 라이선스를 받아 해외에 판매된 경우다. 이 경우 일본의 미소녀 게임의 텍스트를 영문 번역하여 다운로드 판매하는 형식이 주를 이룬다. 시장으로선 영세 상인이나 다름없어 툭하면 판매 사이트가 증발해버리지만 지금도 확인 가능한 유명 사이트로는 JAST USA(現 JBOX)나 MangaGamer를 들 수 있다. ( http://www.mangagamer.com/allages ) JAST USA에는 『번개 전사 라이디雷の戦士ライディ』, 『모에하라 다운힐 나이트 –고개 최속 전설-萌えろDownhillNight-峠最速伝説-』, 『셔플SHUFFLE!』, 『스쿨 데이즈School Days(HQ판)』, 『소꿉친구는 대통령幼なじみは大統領 My girlfriend is the PRESIDENT.』 등 신・구작을 망라한 라인업이 약 30~40달러 선에서 판매되고 있다. MangaGamer는 2010년, 크리스마스 파티가 작중 중요 요소로 작용하는 다카포2를 실제 12월 24일에 판매하는 발군의 센스를 발휘하기도 했다. 이들은 어느 쪽이든 다운로드 판매가로선 비싼 편이지만 번역이나 모자이크 제거 같은 작업을 고려하면 납득 가능한 가격일 것이다. 일본의 메이커 당사가 영문 판매 사이트를 보유한 케이스로는 니트로플러스USA( http://www.nitroplususa.com )가 있다.

또한 애당초 해외산 에로 게임 분야가 옛날부터 존재했으며, 최근에는 일본 취향 포맷을 차용하여 외국 기업이나 유지자가 걸 게임이나 에로 게임을 제작하는 사례도 있으나, 이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서 다루어보도록 하자.



인공소녀人工少女 3



⑪ 3D CG 에로 게임의 진화


손으로 그린 원화나 채색 또는 2D 애니메이션 동화動畫의 짜임새가 세련되어 가는 AVG 분야와는 별개로 실사체를 지향하는 영상으로 실시간으로 캐릭터의 동작이 그려지는 3D CG 에로 게임도 시대를 거듭하며 눈부신 진화를 이루었다. 단 그를 짊어져 온 회사라 하면 오랫동안 일루전이나 자매 브랜드 유파에서 도맡다시피 한 게 사실이며, 앞서 소개한 레이프레이 역시 일루전 작품이다. 00년대 일루전의 대표작이라면 머리카락이나 눈동자 색부터 유륜의 형태까지 세세하게 커스터마이징한 히로인과 무인도에서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우하우하 꽁냥거리는 『인공소녀人工少女』 시리즈(초판 2004년), 리조트 섬에서 수영복 히로인들과 관능의 나날을 보내는 설정의 『섹시 비치Sexyビーチ』 시리즈(초판 2003년) 등이 있다. 후자의 경우 마침 3D 대전 격투 게임 데드 오어 얼라이브의 히로인들이 비치발리볼을 하며 리조트에서 노는 내용의 외전인 『데드 오어 얼라이브 익스트림DEAD OR ALIVE EXTREME』(2003)과 시기가 겹쳐, 그런 쪽의 리비도를 주체할 수 없는 유저들의 욕망의 배출구가 되었다.



스쿨메이트すくぅ∼るメイト



게다가 학원 연애 AVG를 실시간 3D 애니메이션으로 그려낸 『스쿨메이트すくぅ∼るメイト』(2007)에서는 캐릭터의 이목구비를 캐릭터 디자이너 토니T2의 데포르메로 최대한 구현한 모델링을 시도하였고, 이러한 노선은 자매 브랜드 TEATIME과 FULLTIME에서 한층 특화된다. 이에 따라 실사 극화체란 이유로 3D 콘텐츠를 기피하던 에로 게임 유저들이 대거 진입하게 된다.



섹시 비치 프리미엄 리조트Sexyビーチ プレミアムリゾート



3D CG 에로 게임의 특징은 역시 데이터가 기본적으로 크고 무겁단 점일 것이다. 00년대 중반에도 이미 일루전 게임을 설치하려면 5~7기가의 여유 용량이 요구되었다. 15년도의 『섹시 비치 프리미엄 리조트Sexyビーチ プレミアムリゾート』에 이르면 필수 용량은 무려 14기가. 권장 용량은 16기가에 달한다. 저가형 AVG 에로 게임 스무 개는 깔 수 있는 용량이다. 용량도 용량이거니와 이를 수용할 CPU나 램이나 그래픽카드도 고스펙을 요구한다. 그러나 원래 3D 게임이라는 게 타협의 마지노선만큼 돌아가는 법이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그만큼 상승된 하드웨어 스펙으로 커버가 가능해지고 말이다.

그렇다고 해도 사전에 구동 양상을 확인해보고픈 건 당연한 심리다. 그를 위해 공식 사이트는 컴퓨터의 동화動畫 성능을 테스트하는 소프트(벤치마크)를 배포하는 게 일반적이다. 일루전은 그런 단계부터 탁월한 서비스 정신을 발휘하고 있으며, 여체 모델의 바스트 모핑bust morphing 등 선정적인 소재와 관련해 수치를 계측하고 개선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거유 판타지巨乳ファンタジー



⑫ 가슴 페티시를 위한 게임 『거유 판타지巨乳ファンタジー』 


09년 10월 Waffle에서는 시나리오 라이터 겸 소설가 카가미 히로유키鏡裕之가 기획한 판타지물 에로 게임 『거유 판타지巨乳ファンタジー』가 발매된다. 시원찮은 낙제 기사라 깔보이던 주인공이 실은 누구보다도 넓은 도량과 덕을 지닌 인물임이 밝혀져, 사람들의 마음을 서서히 사로잡으며 출세해 나가는 대기만성형 성공 이야기다. 제목의 선정성만 믿고 방심하던 유저에게 의외로 감칠맛 나고 풍미 있는 시나리오를 들이대 탄성을 자아내는 수법인 셈이다.

어쨌든 카가미 히로유키는 첫째도 가슴, 둘째도 가슴, 그야말로 가슴에 죽고 사는 작가다. 03년도까지는 이즈미 토키히코和泉時彦라는 핆명으로 활동했으며, 카가미 히로유키 명의로 각본을 집필하기 시작한 주요 에로 게임을 나열하자면, 블루 게일 온 디맨드ブルゲ ON DEMAND의 『밀크 정키MILK・ジャンキー』 시리즈, flap의 『러브러브 슴가らぶらぶボイン』 시리즈, 밀크파이みるくぱい의 『가슴 페티시乳フェチ』 시리즈, 모닝스타モーニングスター의 『가슴 부인オッパイ妻』 시리즈 등등이 있다. 한결같이 거유 콘셉트를 관철하며 어떤 작품이든 가슴만으로 절정에 다다르는 장면을 반드시 넣는 고집엔 장인 정신마저 느껴진다. 명의를 변경한 03년도에는 주브나일 포르노 소설 『브라 버스터ブラバスター』로 소설 분야에도 진출했다. 음마 소녀에게 호감을 산 가슴 페티시 소년이 천사들에게 노려지나 오히려 그들의 가슴을 주물거리며 반격하는 내용으로, 꽤 오랫동안 연재되었다. 카가미의 매니아들 중에는 숙녀 여닌자가 메인 히로인인 『J컵 학원인법첩Jカップ学園忍法帖』(전 3권, 2008~2009)을 꼽는 사람들도 있다.



거유마녀巨乳魔女



또한 2010년에 내놓은 에로 게임 『거유마녀巨乳魔女』는 카가미가 시나리오를 쓴 통산 50번째 타이틀이 된다. 거유 페티시라는 외길을 관철하며 묵묵히 다작을 쌓는 모습은 직인 기질의 발현이라 할 수 있다.



ANGEL MAGISTER



⑬ 원화가 우사츠카 에이지兎塚エイジ(사와가니サワガニ)


09년 7월 비주얼아츠 계열 브랜드 mana에서 『ANGEL MAGISTER』가 발매되었다. 제로의 사역마 삽화로 이미 알려진 우사츠카 에이지兎塚エイジ의 원화 ‘데뷔작’이다. 단 사와가니サワガニ란 활동명으로 예전부터 에로 게임 스태프로 활동한 바 있다. 왜 작은따옴표를 굳이 넣었을까?

타임라인을 정리해 보자. 한 청년이 오사카 상업대학 졸업 후 비주얼아츠의 사원이 되었다. 청년은 사와가니란 펜네임으로 비주얼아츠 계열 브랜드에서 일을 했다. 이윽고 사와가니는 부업을 금지하는 회사 방침을 어기고 몰래 일러스트 의뢰를 받게 되며, 그를 위해 우사츠카 에이지란 명의를 사용한다. 게임 그래피커 사와가니로 활동하면서 한편으론 삽화를 담당하는 제로의 사역마의 인기로 일러스트레이터 우사츠카 에이지의 이름이 명성을 얻게 된다. 그러나 07년 6월 결국 양다리를 걸친 게 발각되었다. 비주얼아츠 소속 라이터가 위키피디아를 보던 중 우사츠카 에이지 문서의 이력란이 사와가니와 일치한다는 걸 발견하고 겸업 사실을 간파한 것이다.(이상의 경위는 DENGEKI HIME지 09년 2월호의 본인 인터뷰에서 발췌) 결국 08년도부터 게임 개발과 개인 일러스트 활동 둘 다 우사츠카 에이지 명의로 활동한다는 사실이 비주얼아츠 광고지에 발표되었고 이윽고 ANGEL MAGISTER가 공개되었다… 는 이야기다. 결국은 만사 해결이 된 셈이다.

정리하자면 제로의 사역마의 작가 야마구치 노보루도, 삽화가 우사츠카 에이지도 결국 에로 게임으로 업계 데뷔를 한 사람들이란 이야기다. 지금까지도 여러 사례를 봐 왔듯이 특히 00년대엔 에로 게임의 시나리오 라이터나 원화가가 일반 미디어 그 중에서도 라이트노벨 분야에서 활약하는 동향이 활발해졌다. 이와 더불어 심야 애니메이션 중 에로 게임의 미디어믹스 작품이 기세 좋게 나온 시기에서 라이트노벨의 미디어믹스 애니메이션이 두각을 드러낸 시기로의 전환을 돌이켜보면 끄집어낼 수 있는 논점이 이것저것 있을 것이다.




(3) 에로 게임 주제가와 가수들



지난 편에서 나는 00년대 전반이 에로 게임의 전성기라고 표현했다. 그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만 그 중 하나로 ‘(에로 게임을 비롯한)서브컬처 전문 아티스트들의 출현’을 빼놓을 수 없다. 90년대 말 투하트, 화이트앨범 등에 사용된 주제가는 유저의 감성을 자극하는 데 크게 일조했으며, 카논의 Last regret와 바람이 다다르는 곳風の辿り着く場所은 겨울 배경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었다.

음악 산업 관계자들에게 이는 분명 큰 매력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90년대까지 애니메이션과 게임에서 주제가를 부르는 경우는 주로 다음과 같았는데, ①하야시바라 메구미, 카사하라 히로코 등 성우 출신 아티스트, ②이이지마 마리, 킨게츠 마미, 노다 쥰코 등 출연 작품을 통해 아이돌 반열에 오른 성우, ③카게야마 히로노부, 후쿠야마 요시키, 오쿠이 마사미 등 언더 출신 록커들 ④가끔 유명한 작품에 참여하는 하이컬처에서 이미 유명한 아티스트들… 이들의 공통점은 커리어 자체를 애니송으로 시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금이야 저들 대부분이 애니송의 본좌 취급을 받지만, 당시만 해도 애니송을 전문으로 부르는 가수의 개념이 희박했다. 카게야마 히로노부의 밴드 동료였던 이노우에 쥰지井上俊次가 서브컬처 음악 전문 레이블 란티스Lantis를 설립한 게 1999년도였으니 말이다.

1쿨짜리 애니메이션 주제가 타이업 하나 따기도 힘든 아티스트들에게 한 달에 수십 개씩 신작이 출시되는 에로 게임 시장은 반가운 블루 오션이었을 것이다. 또한 인터넷의 보급에 힘입어 웹 라디오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났으며, 아티스트들은 매주 개인 방송과 게임업체 방송에서 자신의 곡을 홍보할 기회를 얻었다. 게임이 입소문을 타면 자연스레 아티스트도 인지도를 얻었고, 그를 통해 신작 애니메이션 주제가를 부를 기회를 얻기도 했다. 또한 참여한 게임이 애니메이션화가 될 경우 높은 확률로 지명되어 주제가를 불렀다.

10대 시절인 00년대에 나는 하루에 몇 시간씩 헤드셋을 끼고 그들의 노래를 들었다. 내 음악적 심상의 대부분은 그들에게 빚진 셈이다. 이 문단은 그 시절의 그들에게 바치는 감사이자 전별이라 하겠다. 




나의 해바라기僕のひまわり



① 쿠니타케 미유키くにたけみゆき


F&C의 초기 대표작들의 주제가로 유명한 쿠니타케는 96년도에 혼성 듀오 Natural Crayon을 결성하며 데뷔한다. 이듬해 그녀는 DOORS MUSIC ENTERTAINMENT에 소속되어 요시다 분よしだぶん이란 가명으로 『버추어 콜 3バーチャコール3』의 주제가 ‘僕のひまわり나의 해바라기’의 작사와 보컬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F&C 게임들의 타이틀곡을 부르기 시작한다.



Autumn Destiny




듣기 편하면서도 호소력 짙은 음색이 특징으로, Autumn Destiny(『Canvas』 주제가), みつめていたい계속 바라보고 싶어(『With You』 주제가), せつない糸애절한 실타래(NATURAL2 -DUO- 주제가) 등 그녀의 대표곡들은 이에 맞춰 차분하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띤다.



푸른 충동蒼い衝動



물론 탄탄한 가성을 지닌 만큼 『Natural Zero+』의 Natural Generation 같은 경쾌한 곡도 일가견이 있으며, 이는 이후 전연령으로 장르를 바꾸어 리듬 게임 쪽에서 트랜스풍 곡들을 부르며 증명해내었다. Dance Dance Revolution, beatmania 등 코나미 게임군에서 그녀가 부른 대표곡으로는 蒼い衝動푸른 충동, MISS YOU 등이 있다.



산고슴도치 안데스 챠키山はりねずみアンデスチャッキー



한편 애니메이션 제작 현장을 다룬 SHIROBAKO시로바코에서 19화 엔딩곡 ‘山はりねずみアンデスチャッキー산고슴도치 안데스 챠키’를 부르며 오랜만에 근황을 알리기도 했다.



Nameless Melodies 〜그러나 그대에게 전하는 노래だけど、きみにおくるうた〜



② 토리이 카논鳥居花音


아사쿠라 네무 초대 성우. 성우이자 가수였던 토리이 카논의 가장 유명한 배역이다. 그러나 토리이의 대표작을 꼽는다면 역시 시리즈 연속으로 출연한 트라이앵글 하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2편의 주요 히로인 시이나 유우히椎名ゆうひ의 설정은 음대생으로, 캐릭터 고유 엔딩곡 Nameless Melodies 〜그러나 그대에게 전하는 노래だけど、きみにおくるうた〜까지 부르게 되는데, 이를 계기로 토리이는 토라하 제작사인 JANIS(정확히는 ivory)에서 본인 명의로 몇 장의 오리지널 음반을 내게 된다.



Chain



연기할 때 내는 목소리와는 전혀 다른 발성으로 부르는 노래들은 솔직히 말하면 올드하다. 정말 80~90년대 아이돌 가수의 느낌이 나서 처음 들었을 땐 이게 정말 00년대에 나온 음반이 맞나 싶었다. 참고로 위의 CANDY TOYS는 03년도에 나온 게임이다.





그러나 노래의 취향을 떠나서 토리이 카논의 커리어는 중요한 의미를 띠는데, 에로 게임 성우 중 처음으로 가수 활동을 병행했다는 점이 그것이다. 캐릭터 명의로 성우가 노래를 부르는 건 오버에서는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지만 에로 계열에서는 사실상 그녀가 선구자나 다름없었다. 이후 에로 게임 성우가 캐릭터 송을 부르고 본인 명의의 노래를 부르는 문화가 점차 자리 잡았지만 사카키바라 유이가 등장하기 전까지 에로 계열에서 성우 겸 같은 명의의 가수로 활동한 케이스는 찾아보기 힘들다. 딱 한 사람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녀에 대한 소개는 맨 마지막으로 미뤄두겠다.



무지개의 저편으로虹の彼方へ



참고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토리이의 노래 두 곡만 뽑자면 토라하 특전 앨범에서 SEENA 명의로 부른 inside of a wilderness(KOTOKO 원곡)과 프리홀리 OP곡 무지개의 저편으로虹の彼方へ다. 가끔 신나는 노래가 듣고 싶으면 전편에서 소개한 『누나 세제곱お姉ちゃんの3乗』 OP곡 キューブdeおねえちゃん도 탁월한 선택이다.



마음의 행방こころのゆくさき



③ 사토 히로미佐藤裕美


원래 20대 때 전문대 졸업 후 보육사나 판매원을 전전하던 사토 히로미는 20대 중반인 94년부터 01년까지 인디 밴드 활동을 했고, 밴드 해산 후 본격적으로 서브컬처 아티스트의 길을 걷게 된다.

당시 신생 브랜드였던 네코네코소프트의 화제작 『은색銀色』 무인판의 오프닝곡 ‘こころのゆくさき마음의 행방’과 엔딩곡 ‘忘れ物、見つけた잃어버린 것을 찾았어’를 부르며 연을 맺었고, 이듬해 『미즈이로みずいろ』의 동명의 주제가를 부르며 일약 스타로 발돋움하게 된다.



미즈이로みずいろ



오랜 인디 생활에서 비롯된 탄탄한 내공으로 저음과 고음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파워풀한 가창력을 자랑하며, 그에 걸맞게 전성기에는 거의 혹사 수준의 타이업 빈도를 유지했다. 당시 타이업 수로는 부동의 톱을 달리던 KOTOKO를 거의 바짝 쫓고 있었으니 말이다.



ZERO



아쉬운 점이라면 노래의 완성도와 별개로 게임 자체가 히트한 케이스가 몇 안 되었다는 점이다. 당장 위의 네코네코소프트 게임군과 윈드밀의 해피니스 시리즈 정도가 그나마 유명하고 나머지는 ‘게임은 모르는데 노래는 들어본 것 같기도 하다’는 인지도의 곡들이 대부분이다.

그래도 동시대 경쟁자였던 KOTOKO와 애니메이션 주제가(부탁해☆트윈즈おねがい☆ツインズ 오프닝곡 Second Flight)도 불렀으니 충분히 의미 있는 족적을 남겼다고 할 수 있겠다.



Second Flight



요즘 세대들에겐 러브라이브에서 비롯된 뮤즈μ’s의 소속사 주식회사S株式会社S의 대표이사로 더 인지도가 높지 않을까 생각한다. 현역 시절 에로 게임 주제가로 날리던 사람이 최고의 성우 아이돌 그룹을 육성했다니 이거야말로 에로 게임 시나리오감이 아닐까.



Close to me...



④ KOTOKO


최소한 커뮤니티 활동 이상의 서브컬처 덕질을 하는 사람 치고 그녀의 이름이나 노래를 안 들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00년도에 음악집단 I've에서 작사가(SAGA PLANET의 게임『PureHeart 〜世界で一番アナタが好き〜』의 동명의 주제가)로 커리어를 시작한 그녀는 맨발소녀裸足少女의 게임 『effect ∼악마의 아이悪魔の仔∼』의 주제가 Close to me…의 작사와 보컬을 의뢰받으며 타이업 데뷔를 이룬다. (여담으로 콘셉트를 잡고자 데모 버전을 플레이했다가 가감 없는 고어 신에 기겁했다고 한다)



I pray to stop my cry



이후에는 사실상 I've의 대표 겸 작곡가 타카세 카즈야高瀬一矢의 뮤즈로서 정말 엄청난 수의 에로 게임 주제가를 부르게 된다. 능욕물이든 순애물이든 장르를 가리지 않았다. 트라이앵글 하트 3의 주제가 눈물의 맹세涙の誓를 부른 이듬해에는 『능욕간호부학원凌辱看護婦学院』 주제가 I pray to stop my cry를 부르는 등 그냥 타이업이 잡히는 대로 다 불렀다.



Shooting Star



그런 노력이 빛을 발했는지 02년도에 부탁해☆선생님おねがい☆ティーチャー의 주제가 Shooting Star를 통해 I've와 KOTOKO는 마침내 애니메이션 데뷔에 성공한다. I've는 이후 작안의 샤나灼眼のシャナ, 블랙 라군BLACK LAGOON을 통해 각각 카와다 마미川田まみ와 MELL을 애니메이션 데뷔시키고 업계 굴지의 음반사 제네온 엔터테인먼트에 입성하게 된다.



421-a will-



인터뷰 등을 들어보면 기본적인 음역이 낮다. 별다른 기교도 없다. 애초에 홋카이도 출신으로 작사를 공부해서 시마미야 에이코의 눈에 띄어 작사가로 I've에 들어온 사람이다. 물론 음악을 공부한 이상 가창에 대한 기본적인 감이 있었고, 시마미야의 트레이닝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들어도 보컬로서의 특색은 평범한 수준이다. 그런 사람이 발라드, 록, 테크노, 트랜스, 그리고 초기 그녀의 가장 큰 정체성이었던 모에송까지 불러댔으니 노력과 운이 엄청나게 작용한 셈이다.



사쿠란보 키스~폭발이야~さくらんぼキッス〜爆発だも〜ん〜



태진미디어에 수록된 전파계 모에송이자 그녀의 최고 히트곡인 사쿠란보 키스~폭발이야~さくらんぼキッス〜爆発だも〜ん〜은 비음과 애교가 폭발하여 이 바닥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듣고 있기 괴로운 노래다. 명백히 사십 줄이 넘어가는 현재까지도 이 곡을 라이브에서 단골로 부르는 그녀의 터프함에 박수를 보낸다.

2012년 6월, 홍대 앞 V-HALL의 작은 스테이지를 종횡무진 뛰어다니며 노래를 부르던 그녀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00년대에 서브컬처 덕질을 하던 사람으로서 그녀의 노래는 항상 곁에 있었다. 그때도 지금도 진정 그녀는 나의 뮤즈다. 



비색의 하늘緋色の空



⑤ I’ve의 다른 보컬리스트들


KOTOKO 하면 I’ve, I’ve 하면 KOTOKO라는 이미지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10년대 이후의 KOTOKO는 I’ve를 탈퇴하며 점차 자기만의 색깔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쨌든 그녀의 소위 리즈 시절이 타카세 카즈야와 함께 한 00년대였음은 부정할 수 없다. 작사가이자 보컬 중 한 명이던 KOTOKO가 점차 타카세의 독보적인 뮤즈처럼 되어가자 다른 보컬리스트들은 자연스럽게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이번 문단에서는 잠시 그들을 재조명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쓰르라미 울 적에ひぐらしのなく頃に



앞서 KOTOKO를 홋카이도에서 발굴한 사람이 시마미야 에이코島みやえい子라고 했다. 시마미야는 강사로 일하던 뮤직 트레이닝 센터 하우라春生楽에서 몇몇 I’ve의 가희들을 배출하는데 그 중 대표적인 세 사람이 KOTOKO, 카와다 마미川田まみ, 그리고 우타츠키 카오리詩月カオリ다. 싱어송라이터 시마미야는 제자들에게 자신의 창법을 전수했고, 그래서 저 세 사람의 창법은 거의 똑같다. 차이가 있다면 KOTOKO는 중간 음역대에서 위아래로 좀 넓고, 카와다는 낮고, 우타츠키는 높다.

KOTOKO가 ‘오네티’로 오버 진출을 달성한 지 4년 만인 2006년 4월, 시마미야 역시 『쓰르라미 울 적에』 TVA OP곡으로 오버 진출을 달성하게 된다. 05년도에 카와다 마미가 『작안의 샤나』 TVA OP곡 비색의 하늘緋色の空로 오버 진출을 달성한 지 일 년만의 일이었다. 이듬해 I’ve 소속 보컬리스트 MELL이 『블랙 라군』 TVA OP곡 Red Fraction, 우타츠키 카오리가 『일곱 빛깔 드롭스ななついろ★ドロップス』 TVA OP곡 Shining Stars Bless를 부르며 I’ve의 오버에서의 입지는 확고해진다. 비슷한 시기 I’ve는 제네온 엔터테인먼트와 협약을 맺고, 애니메이션 쪽에 꾸준히 악곡을 제공하게 된다.



Shining Stars Bless



카와다 마미의 명곡이라 하면 위의 비색의 하늘이나 『스타쉽 오퍼레이터즈』 TVA OP곡 radiance를 꼽지만 사실 내 마음 속 카와다의 넘버원 노래는 Selen의 에로 게임 린월隣月의 OP곡 eclipse다. 특히 후렴부의 ‘달이 차고 이윽고 이우는 우울한 하늘에 밝힐 수 없는 대답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외쳤어月が満ちては欠けてく憂鬱な空へ出せぬ答え繰り返し繰り返し唱えた’라는 대목은 지금 들어도 가슴이 아련해진다.



eclipse





우리들이 지켜보는 미래僕らの見守る未来



우타츠키 카오리 역시 『하지라히はじらひ』(부끄러워하는 눈동자恥じらう瞳의 줄임말로 추정) OP곡 우리들이 지켜보는 미래僕らが見守る未来에서 신인의 무서운 기량을 뽐냈다. 지금도 휴대폰의 mp3 목록에 있을 정도로 좋아하는 노래이다.



Do you know the magic?



또 다시 소개하지만 『마법은 비의 빛깔?魔法はあめいろ?』의 OP곡 Do you know the magic?은 우타츠키가 라이브에서 단골로 부를 정도로 완성도도 높고 신나는 노래로, eclipse와 더불어 00년대 전성기 I’ve의 느낌이 가장 진하게 녹아 있는 추천곡이다.



붉은 약속赤い約束



I’ve 보컬들 중 KOTOKO와 더불어 유이한 내한 공연자이자 KOTOKO보다 앞서 내한했던 Lia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가창력과 AIR 주제가라는 타이업 파워로 왕성한 활동은 따 놓은 당상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클라나드에서 Ana, 토모요 애프터에서 Light colors와 Life is like a Melody를 부르고는 소리 소문 없이 오버로 빠져버려 아쉬워하던 와중, 07년도에 오거스트 게임 FORTUNE ARTERIAL의 센도 에리카千堂瑛里華 루트의 절정부에서 갑자기 중후한 첼로의 선율이 흐르더니 이윽고 피아노 반주와 함께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Lia가 Veil이란 예명으로 부른 붉은 약속赤い約束이었다. 첼로 전주를 포함한 풀 버전은 6분이 넘는, 2절이 없이 후렴구 네 번과 브릿지 두 번으로 이루어진 긴 호흡의 곡이다. 에리카와 코헤이의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는, 가히 명불허전이라 할 만큼 웅장하고 멋진 곡이니 온전한 느낌을 받고 싶으면 게임을 직접 플레이하며 듣기를 추천한다.



赤い約束 Electronic Piano Cover



이쪽은 내가 직접 연주한 음원이다.



힘내라 타마쨩がんばれ、たまちゃん!!



⑥ 모모이 하루코桃井はるこ


“모에萌え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전부 마스터할 거예요!(萌えにも色々ありますが全部極めるです!)”

03년도 방영한 TVA 『병 속의 요정瓶詰妖精』에서 동네 여자아이 타마쨩たまちゃん 역을 맡은 모모이 하루코가 부른 캐릭터 송 ‘힘내라 타마쨩がんばれたまちゃん’의 가사의 한 소절이다. 돌이켜보면 모모이 하루코의 반생, 아니 이제는 2/3생은 이 문장 하나로 정리되지 않았을까 싶다.

유수의 연예인들을 다수 배출한 동경도립요요기고등학교東京都立代々木高等学校 재학 시절, 모모이는 자신보다 두 살 많은 미즈노 아오이水野あおい의 무대를 본 게 계기가 되어 아이돌 가수를 목표로 하게 된다. 이윽고 모모이는 아키하바라 거리로 뛰어들어 기약 없는 인디 생활을 시작한다.



Adolescence



안경, 빵모자, 프릴 드레스를 비롯해 말 그대로 아키하바라가 아니면 녹아들 수 없는 개성적인 패션을 하고는 오타쿠들이 지나다니는 길 한복판에 앰프를 설치하고는, 특유의 코맹맹이 소리로 호불호 갈리는 전파송을 부르는 모모이의 모습은 그야말로 온몸으로 아키하바라를 보여주는 느낌을 받았다. 모모이 이전에도 아키바를 거점으로 인디 활동을 하던 아티스트는 많았지만 모모이 이후에 등장한 아키바 아이돌은 어떤 식으로든 그녀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비뽑기 언밸런스くじびきアンバランス



아티스트로서 모모이의 정체성이 확립된 시기는 코이케 마사야小池雅也와 결성한 유닛 UNDER17 활동기였다. 소위 ‘어설픈 록커’로 지칭되는 UNDER17의 음악 스타일은 서브컬처 쪽에서 큰 반향을 얻어 수많은 에로 게임 주제가에 이어 TVA 『현시연げんしけん』의 극중극 『제비뽑기 언밸런스くじびきアンバランス』의 동명의 오프닝곡의 형태로 공중파에까지 진출하는 성과를 이룬다.



우타마루 그리는 노래うたまるえかき唄



또한 다카포 애니메이션의 우타마루 역을 맡은 모모이는 비슷한 시기 열린 라이브 공연에서 노가와 사쿠라, 호리에 유이, 타무라 유카리를 비롯한 동세대 1군 아이돌 성우와 같은 무대에 오르기도 하였다.



https://www.nicovideo.jp/watch/sm8843505



가수로서나 성우로서나 작곡가로서나 모모이는 자신만의 영역과 입지를 확고히 구축한 몇 안 되는 케이스이다. 20대 초반에 아키바식 복장으로 노상 라이브를 하던 모모이는 20대 중후반에는 같은 복장으로 잼프로젝트와 나란히 무대에 섰고, 30대에는 그 패션과 그 음악 스타일 그대로 오쿠이 마사미의 15주년 헌정 앨범에 ‘사랑을 해요 붙들어요恋しましょうねばりましょう’를 커버하며 참여했다. 헌정사에서 모모이는 자신의 무명 시절 아키바의 스피커마다 흘러나오던 이 노래를 들으며 힘을 얻었다고 밝히고 있다.

10대 시절 내 PMP와 MP3 플레이어에는 모모이의 노래가 없던 적이 없었고, 지금도 그녀의 예전 노래를 찾아서 듣는다. ‘어설픈 록커’ 모모이의 노래는 그때나 지금이나 내 마음을 환기해주고 다시금 용기를 북돋아준다.  



magic a ride!



⑦ nao


서브컬처 계열과 트랜스 음악은 매우 친숙한 관계이다. 신디사이저에서 출력되는 빠른 템포의 전자음이 주를 이루는 곡들은 예나 지금이나 오타쿠들의 영혼을 울리는 무언가를 지니고 있다. 이번에 소개할 가수 nao는 작곡가 야기누마 사토시八木沼悟志와 더불어 오늘날까지 서브컬처 계열에서 트랜스 음악으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fripSide의 공동 설립자이다.



Reminiscence Blue



02년도에 두 사람은 음악 유닛 fripSide를 결성, 이듬해 앨범 first odyssey of fripSide를 통해 동인 데뷔를 이룩한다. 개인적으로 이 팀과 보컬 nao를 알게 된 건 04년 10월에 발매된 미캉바코みかんばこ의 게임 『Reminiscence Blue』의 동명의 주제가를 듣고서이다. 전주부터 귀를 사로잡는 강렬한 전자음 세션과 더불어 청량하고 맑은 보컬이 준 신선한 충격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true eternity



여러 장의 앨범을 내놓았지만 의외로 오버 진출 전 에로 게임 타이업 곡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 중에서도 미려한 작화로 지금도 회자되는 130cm의 『그녀들의 방식彼女たちの流儀』의 주제가 Red -reduction division-, true eternity, misery, fictional moon, ALMA로 여동생 맛을 본 Bonbee!의 『Scramble Heart!』의 주제가 libration crisis와 refine progress, Black cyc의 『Before Dawn Daybreak 〜심연의 가희深淵の歌姫〜』의 동명의 주제가를 추천하는 편이다.



연인 액센트こいびとアクセント



한편 fripSide NAO Project 명의로 모에송도 여럿 냈는데, 이쪽은 대부분 게임 타이업 곡으로 앨범 Rabbit Syndrome에서 명곡들을 감상할 수 있다. 그 중에는 위에서 소개한 ‘콘부’의 주제가 연인 액센트こいびとアクセント도 수록되어 있다.



prominence -version 2007-



그러나 재미있게도 개인적으로 꼽는 nao의 명곡 BEST 3는 전부 타이업이 아닌 오리지널 곡들이다. 각각 sky, prominence, grand blue로 이 중 앞선 두 곡은 nao 시절에 한 번, 난죠 요시노 시절에 또 한 번 편곡된 바 있다. 야기누마 사토시 입장에서도 무척이나 마음에 든 곡이 아니었을까. 비록 오버에서의 입지를 다져준 건 초전자포 시리즈로 대표되는 난죠와의 작업물들이겠지만 가장 동인 혼이 불탔던 시기는 역시 nao의 보컬 역량을 최대한으로 발휘한 00년대였을 것이다.



시뮬레이션 게임도 하고 싶어SLGだって欲しいもん!



여담으로 09년도에 fripSide를 ‘졸업’이라는 형태로 탈퇴한 nao는 곧바로 게임・음악 기업인 5pb.에 소속, 중2병 작곡가 시쿠라 치요마루志倉千代丸의 곡을 받게 된다. 트위터의 개인 발언으로 예나 지금이나 충실히 욕을 먹는 시쿠라지만 곡 하나는 귀에 박히게 잘 쓰는 편이고, nao도 활동 중단 전까지 한동안 가벼운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하무하무소프트はむはむソフト의 『로우 앵글LOあんぐる』의 주제가 시뮬레이션 게임도 하고 싶어SLGだって欲しいもん!는 후기 nao의 몇 안 되는 애니 팝 중 하나이다.



snow of love



⑧ 사쿠라 사오리佐倉紗織


00년대 서브컬처 음악 신에는 fripSide와 쌍벽을 이루는 집단이 있었으니 사쿠라 사오리를 간판으로 내세워 무수히 많은 명곡들을 내놓은 ave;new가 바로 그들이다. 대부분의 곡을 작•편곡하는 a.k.a.dRESS가 학생 시절 친구였던 네모토 히데미根本日出美와 마츠시타 미유키松下美由紀를 끌어들인 게 결성의 계기로, 03년도 7월에 결성 후 세 달 뒤인 10월에 사쿠라 사오리를 보컬로 한 snow of love를 발표한다.



쵸큼 late한 고백 timeチョコっとレイトな☆告白たいむ!!



사쿠라 사오리의 보컬로서의 가장 큰 특징은 역시 호불호가 갈릴 정도의 높은 음역대라 할 수 있다. 헬륨가스를 마신 듯 어리면서도 이질적인 목소리, 이른바 ‘돌고래 초음파’로 대표되는 그녀만의 가성은 예나 지금이나 업계에서 유일무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러블리 앤젤ラブリー☆えんじぇる!!



이런 그녀의 진가는 역시 전파송에서 잘 드러나는데, 주로 성우 겸 보컬리스트 이노우에 미유井上みゆ와 같이 활동하는 전파송 유닛 아베뉴 프로젝트あべにゅうぷろじぇくと 명의로 에로 게임과 전연령 게임을 막론하여 뿌슝빠숑하는 트랜스 명곡들을 남겼으며, 대표적으로 위에서 소개한 쾌도천사 트윈엔젤의 주제가들이 있다.



true my heart



에로 게이머 내지 니코동 폐인들에게 사쿠라 사오리 하면 역시 ‘키시멘’ 부른 사람으로 통할 것이다. 아직까지도 현역에서 일하고 있는 전설적인 원화가 카넬리안CARNELIAN의 수제자 모에키바라 후미타케萌木原ふみたけ는 05년도에 제작사 Lump of Sugar를 설립하고 처녀작 Nursery Rhyme을 내놓는데, 이 때 ave;new에서 OP곡 true my heart와 ED곡 Dearness를 제공했고, 전자의 경우 사쿠라 사오리가 처음으로 작사까지 겸임했다. 에이카드레스의 트랜스 화력과 사쿠라의 돌고래 보컬이 모에키바라의 미려한 작화와 시너지를 일으켜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특히 일명 소라미미空耳로 통하는 비슷한 발음의 가사로 바꿔 부르는 밈이 사쿠라의 혀 짧은 발음과 맞물려 일그러진 사랑을 받기도 했다.



Baby Baby



그 외에도 『DYOGRAMMATON』의 주제가 Longing, 오리지널곡 Baby Baby와 Lovable, GIRLS도 필히 들어볼 만한 곡이라 할 수 있다. 특히 Baby Baby는 사쿠라의 기량을 최대한으로 끌어낸 명곡이다. 비교적 최근에 발표한 『어메이징 그레이스アメイジング・グレイス-What color is your attribute?-』의 주제가 콜드 보이스コールドボイス도 꼭 듣길 추천한다.



사랑은 어떻게? 양방향◎파동OK☆방정식恋はどう?モロ◎波動OK☆方程式!!



이 글을 쓰고 있는 23년 현재 시점에서 보면 ave;new와 사쿠라 사오리의 이러한 방향성은 이십 년째 한결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쁘게 말하면 자기복제와 매너리즘에 빠진 지 오래라는 이야기인데, 여느 롱런하는 아티스트가 그렇듯 소비층은 이제 와서 그다지 새로운 시도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특히나 그들이 한 분야에서 ‘고전’이라 불릴 만한 족적을 남겼으면 더더욱 말이다. ‘이과팝’ 같은 곡을 코나미 리듬 게임에 올린 건 장르의 지평을 넓혔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업적이 아닐까.



다카포 ~두 번째 단추의 맹세~ダ・カーポ 〜第2ボタンの誓い〜



Dream ~The ally of~



⑨ yozuca 그리고 rino


yozuca와 rino는 데뷔 시기도 비슷하고, 둘 다 다카포 시리즈에서 줄창 주제가를 불렀고, 같이 오랫동안 웹 라디오 퍼스널리티를 맡을 정도로 밀접한 관계라 같은 문단에서 다루게 되었다. 이쪽 업계에서 사골 of 사골 반열에 있는 다카포인 만큼 둘이서 부른 주제가 수도 앨범을 몇 장은 낼 정도로 많은데, 일단 yozuca의 D.C. 오프닝곡 ‘다카포 ~두 번째 단추의 맹세~ダ・カーポ 〜第2ボタンの誓い〜’와 rino의 엔딩곡 Dream이 있다. 둘 다 당시 서커스 대표이사, 소위 ‘단장’ tororo가 작사 및 작곡을 맡았고 이는 시리즈 내내 이어진다.



going my way



yozuca의 대표곡들은 단단한 가성을 살린 힘찬 분위기의 곡들이 많다. 다카포 TVA의 벚꽃이 피는 미래의 사랑의 꿈サクラサクミライコイユメ, 걸즈 브라보 TVA의 going my way, 택티컬 로어 TVA의 단 하나의 소망たった一つだけの願い 등이 전성기 그녀의 명곡으로, 세션 역시 일렉 기타가 주류를 이루는 굳이 표현하면 록에 가까운 애니팝이라 할 수 있다.



Happy my life ~Thank you for everything~



그렇다, yozuca는 00년대 애니팝의 선두주자 중 한 사람이었다. 위에서 말한 ‘에로 게임에서 올라온 서브컬처 전문 아티스트들이 타이업 송을 도맡아 부르던 시기=00년대’의 최대 수혜자라고 할 수 있다. 이는 yozuca의 창법과 그녀의 에로 게임 쪽 대표곡들이 그만큼 평이한 팝의 성격을 띠고 있었던 것도 한몫했다. 다카포 2 Spring Celebration의 주제가 Happy my life ~Thank you for everything~은 yozuca와 tororo 조합의 완성이라고 할 만한 곡으로 꼭 들어 보길 추천한다.



센티멘탈センチメンタル



이는 rino도 마찬가지다. 발라드풍의 차분하고 속삭이는 듯한 창법은 데뷔곡 ‘그대가 바라는 영원君が望む永遠’(당시 MEGUMI 명의)에서 십분 발휘되었고, 이후 다카포 시리즈를 거쳐 『미도리의 나날美鳥の日々』 TVA OP곡 센티멘탈センチメンタル(이때부터 애니 쪽은 CooRie 명의), 『쿄시로와 영원의 하늘京四郎と永遠の空』 TVA OP곡 クロス*ハート 등을 통해 非애니팬도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애니송을 선보인 바 있다.



존재存在



그러나 역시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rino의 베스트 송은 다카포 TVA 2기 ED곡 존재存在로, 그녀의 곡 중 가장 차분하고도 슬픈 곡이다.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코토리가 처음으로 좋아하게 된 남자인 쥰이치를 생각하는 애절함이 느껴진다.



모노크롬モノクローム



⑩ YURIA


93년도 Cublic의 나카자와 유리코中澤有里子 명의의 활동까지 고려하면 어느새 데뷔 30주년을 맞은 베테랑 싱어송라이터로, 여러 밴드와 협연하며 여성 록커로서의 존재감을 과시한 인물이다.

보컬리스트로서 그녀의 특색은 혼혈 출신에서 비롯된 이국적인 외모와 독특한 발성이다. 앞선 글에서 소개한 야마구치 노보루의 『카나리아』(2000)를 통해 YURIA 명의로 첫 타이업 곡을 냈고, 이듬해 『그린그린』에서 ED곡 모노크롬モノクローム을 부르며 본격적인 인지도를 올리게 된다. '만남과 이별은 반복되네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의 Monochrome出会い別れ繰り返すいつか会える日のモノクローム' 살짝 스크래치를 넣은 이 첫 소절을 듣는 순간 대단한 실력자가 등장했음을 실감했던 기억이 난다.



Mirage Lullaby



곧바로 이듬해 JAM Project가 주제가를 부른 초중신 그라비온 TVA의 ED곡 Wish를 부르며 화려하게 오버 데뷔, 이후 몇몇 에로 게임의 주제가를 부르고는 04년 1월, SHUFFLE!의 OP곡 Mirage Lullaby로 일약 인기 스타로 자리 잡는다. 미려한 색감과 작화의 영상미에 록 세션과 시원시원한 보컬의 오디오가 어우러진 본작의 OP 연출은 시선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플라스틱 스마일プラスティックスマイル



YURIA가 부른 다른 장르의 곡들 중에도 좋은 곡들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역시 캔버스2 주제가 플라스틱 스마일プラスティックスマイル은 빼놓을 수 없다. 캐럴 느낌이 나는 발라드 곡으로 전작 주제가 Autumn Destiny의 분위기를 훌륭하게 계승했다고 평가한다. 스위츠 탐험대すいーつたんけんたい의 보컬로서 부른 캔버스2 애니판 ED곡 나나이로NA NA IRO도 경쾌하고 신나는 명곡이다.



Remember memories



록커로서의 YURIA의 진가가 빛나는 곡들은 역시 셔플 시리즈 관련 곡들이다. Tick! Tack! ED곡 never say goodbye라든지 Really? Really! OP곡 Remember memories라든지… 한국 태진노래방에 당당히 등록되어 있는 셔플 TVA 주제가 YOU는 일 년에 두 번은 부르는 것 같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 YURIA는 셔플 시리즈의 히로인 시구레 아사時雨亜沙의 어머니 시구레 아마時雨亜麻 역의 성우를 맡아 소녀 연기를 탁월하게 해낸 바 있는데, Really? Really!에선 에로 신까지 소화하는 위엄을 과시한 바 있다. 리스펙트!



LINK



⑪ 하시모토 미유키橋本みゆき


타이업 데뷔 전에는 밴드 활동 이력도 있고, 답이 없는 가창력의 성우를 가르치는 교수 능력도 있다. 잘 뻗은 팔다리와 탤런트 전혜빈을 닮은 외모는 덤이다. 00년대 중반부터 10년대 초반까지 타이업 음반 수만 따지면 서브컬쳐 계열 아티스트로선 부동의 1위가 아닐까 싶은 그녀는 란티스의 최종 병기 하시모토 미유키다.



아키이로秋色



『사립 아키하바라 학원私立アキハバラ学園』 ED곡 LINK로 데뷔, 이듬해 언더에서 『홈 메이드ホームメイド』 OP곡 Cheer up!, 추색연화秋色恋花 OP곡 아키이로秋色, 『Like Life!』 OP곡 Girls Life, 셔플 ED곡 In the Sky, 오버에서 걸즈 브라보 TVA ED곡 여기 있으니까ここにいるから…, 파이널 어프로치 TVA ED곡 LOVE,FATE,LOVE를 부르며 화려하게 승승장구한다.



Faze to Love



보컬로서의 능력은 그야말로 올라운더라 할 수 있다. 어떤 장르의 곡이든 무난하게 부른다. 그래서 특색이 있다곤 못 하지만 곡 쓰는 사람 입장에서나 듣는 사람 입장에서나 믿고 들을 수 있는 보컬이라 할 수 있다. In the Sky처럼 부드럽게 부르는 발라드도, Faze to Love처럼 질러야 제 맛인 메카물 주제가도 일단 하시모토 이름이 걸려 있으면 무조건 중박 이상은 치는 보증수표라 할 수 있다.



TIME



위에서 타이업 음반 수가 부동의 1위가 아닐까 라고 했는데, 이는 곧 나의 10대 시절 가장 많이 노출된 서브컬처 아티스트란 의미이기도 하다. 특히 Navel의 셔플 시리즈나 PURPLE SOFTWARE의 대부분의 타이틀의 주제가를 부르며 하시모토는 그 자체로 일종의 판촉 요소로 작용했다. 셔플 TVA ED곡 innocence나 『미래 노스텔지아未来ノスタルジア』의 동명의 주제가는 노래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 중에서도 『내일의 너와 만나기 위해明日の君と逢うために』 OP곡 TIME은 하시모토 팝의 결정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hello. my happiness



스쿨데이즈 시크릿 라이브에서 하시모토의 진가를 제대로 알 수 있다. 열악한 무대 시설에도 불구하고 음원과 차이가 없는 라이브 실력, 고음부에서도 평온한 표정에 청중의 호응을 유도하는 제스처까지, 이런 가수와 나의 십대를 함께했단 것만으로 운이 좋았다고 말할 수 있다.



Blue Tears



⑫ 쿠리바야시 미나미栗林みな実


아까 토리이 카논 문단에서 ‘사카키바라 유이가 등장하기 전까지 에로 계열에서 성우 겸 같은 명의의 가수로 활동한 케이스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말을 했다.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겠지만 사카키바라 유이도 걸출한 인물인데, 성우이자 싱어송라이터이자 댄서이기도 한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건 무대에서 자신이 부른 에로 게임 노래를 ‘격한’ 안무와 함께 출 수 있던 유일무이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난죠 요시노가 등장했지만 성우로서의 그녀와 fripSide 보컬로서의 그녀는 엄연히 거리가 있었다.

그런데 사카키바라가 등장하기 몇 년 전인 01년, 게임의 타이틀 히로인 성우와 주제가 가수를 겸임하며 하루아침에 일약 스타가 된 사람이 있다. 『네가 바라는 영원』의 스즈미야 하루카 역을 맡고 1부의 충격적인 끝맺음과 동시에 나오는 주제가 Rumbling Hearts의 작사와 보컬을 맡은 쿠리바야시 미나미가 바로 그 장본인이다.

쿠리바야시는 정석적인 실용음악인의 루트를 밟아온 인물로,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단기 대학까지 피아노 전공으로 졸업했다. 그러나 좀처럼 프로 음악인으로 뜨질 못한 채 무명 시절을 버틴다. 그 기간에 부른 타이업 곡이 『네가 있던 계절』의 동명의 주제가였지만 이때는 아쥬가 아직 이름을 알리기 전이었다. 이 시기에 작곡가 겸 기타리스트 이이즈카 마사아키를 만나며 트레이닝을 받고, ‘이거 성공 못하면 음악 접는다’는 심정으로 키미노조에 성우 겸 보컬로 참여한다.



Rumbling Hearts



결과는 모두가 아시다시피 대박. 하루카가 사고를 당했음을 암시하는 바닥의 핏자국과 경찰의 무미건조한 무전, 하루카와의 짧은 여름의 추억을 회상하는 CG가 주마등처럼 휙휙 지나가는 가운데 시작되는 일렉기타 리프, 이윽고 팍 치닫는 곡조와 함께 나오는 하루카의 모습과 ‘네가 바라는 영원’ 로고. 1부를 마무리하는 이런 기막힌 연출과 함께 흐르는 쿠리바야시의 곡은 당시 뜨거운 화제가 되었다.



Precious Memories



원작의 흥행에 힘입어 이듬해 바로 PS2/DC로의 이식이 결정되고, 쿠리바야시는 키미노조 라이브에서 직접 하루카의 의상을 입고 노래를 부르게 된다. 하루카에 지지 않는 쿠리바야시의 미모와 몸매는 삽시간에 화제가 되었고, 점차 오버에서 타이업 요청이 들어오게 된다.



Crystal Energy



이 시기 언더에서는 이이즈카와 작업한 키미노조와 마브러브의 관련 곡들을 계속 부르면서, 오버에서도 크르노 크루세이드 TVA OP곡 날개는翼はPleasure Line으로 인기를 얻는다. 마이히메 시리즈도 보컬을 전담하다시피 했는데, OP곡 Shining☆Days, 마이오토메 1기, 2기 OP곡 Dream☆Wing과 Crystal Energy는 모두 이이즈카와 만들어 낸 걸작들이며, 모두 태진노래방에 등록되어 있다.

쿠리바야시에 대해 아까 전에 정석적인 실용음악인의 루트를 밟았다고 했는데, 그래서인지 보컬 스타일을 보면 빙BEING 계열 아티스트들과 비슷하다. 그러니까 자드, 쿠라키 마이, 아이우치 리나 등의 노래를 시키면 맛깔나게 뽑아낼 스타일이란 이야기다. 그러나 하루카의 성우까지 맡을 정도로 타고난 음색을 가졌음에도 고음에 약하다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 올라가긴 하는데 간신히 끌어올리느라 소리가 얇아진다는 이야기다.



날개는翼はPleasure Line



이를 보완해 준 게 이이즈카의 프로듀싱으로, 쿠리바야시의 목소리가 가장 예쁘게 나올 수 있는 곡을 쓰는 능력은 업계 최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라이브에서 여자 중에서도 장신에 속하는 거유 미녀 쿠리바야시가 한가운데서 마이크를 잡고 그 옆에서 키가 180대인 이이즈카와 타키타가 기타와 베이스를 뜯고 있으니 비주얼 면에선 가히 손색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십대 시절 이들과 함께 한 시간들은 에로 게이머로서, 아마추어 음악인으로서 나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자산이 되었다. 이제는 대부분 활동을 그만두고 남은 건 그들의 음악뿐이지만, 여전히 현재의 나에게는 중요한 영감의 보고이자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근원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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