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해서 산 지가 거의 인생의 반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혼자’는 누구의 간섭없이 가장 ‘나 자체’일 수 있는 편한 상태가 되었다.
친구들과의 만남도 즐거웠지만, 혼자 카페가기는 물론이고 혼자 여행하기, 혼자 고기 먹고 혼자 쇼핑하며 온전히 나를 위한 하루를 보내는 게 가장 재밌었다.
그런 나에게 혼자가 더욱 편해지게 된 커다란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허리디스크 발병.
갑자기 찾아온 허리디스크라는 뜻밖의 병으로 혼자 누워 지내야 하는 시간이 늘어났고, 수술 후 재활을 하면서도 들쑥날쑥한 컨디션 때문에 사람들과의 만남을 자제하게 되었다.
좀 괜찮은 날 누군가를 만나더라도 걷는 것도, 앉아 있는 것도 쉽지 않았던 내 허리 상태에 맞출 수가 없어서 스스로 더욱 고립되어야만 했다. 하지만 혼자의 상태를 즐겼던 나였기에 이 상황이 나쁘지 않았다.
아니, 사실 꽤 괜찮았다.
한창 건강할 땐 몇달 동안의 약속과 볼일들로 다이어리를 빽빽이 채웠던 나였기에 주변 사람들은 걱정하기도 하고 집에만 있다는 나를 의심하기도 했지만 (ㅎㅎ) 나는 혼자, 아주, 잘 지냈다.
수술 이후에는 실업급여를 받으며 온갖 OTT를 섭렵하면서, 학창시절 이후 처음으로 아무 생각없이 텔레비전을 보며 쉰다는 게 얼마나 편한지 알게 되었고, 사랑해 마지않는 동네의 골목들을 걸으며 행복했다.
혼자라는 상태가 만족스러웠고, 불편하지 않았으며, 즐겨야만 했던 첫 번째 사건이었다.
5개월의 실업급여 기간이 끝나고, 이제는 재활비를 벌기 위해서라도 일을 구해야만 하는 시점이 도래했다.
살면서 여러 도시와 나라까지 바꿔가며 살았던 나였기에 다른 도시로 가는 것도 크게 부담은 없었다. 다만 사랑하는 서울을 많이 벗어나지 않으면 좋겠다는 한 가지 소망만 있었다.
그렇게 일을 구하다가 인천으로 이직을 하게 되었고,
내가 살던 홍대에서 인천까지는 공항철도 덕분에 다닐만 하다 생각했지만 9개월 동안 수술 후 최소한의 재활운동만 하며 지냈더니 체력이 너무나도 떨어진 게 문제가 되었다.
일을 제외한 나머지 일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더 커다란 문제는 출퇴근길의 혼잡한 지하철에서는 허리로만 지탱을 해야 했기에 허리에도 무리가 왔다.
빠르게 이사를 결정했다.
인천에서 서울까지는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 정도의 거리고 차로는 3-40분이면 갈 수 있지만, 막상 인천에 살게 되니 서울이 너무나도 멀어 보였다.
‘혼자’라는 상태가 너무나도 깊숙이 느껴졌다. 뾰족한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꽤 오랜만에 마음속에서 자라나 자꾸만 나를 콕콕 쑤셔댔다.
서울에서의 혼자가 자발적이었다면,
인천에서의 나는 어쩔 수 없는 혼자다.
자발적 혼자와 어쩔 수 없는 혼자는 너무나도 달랐다.
섬에 갇힌 기분.
마치 좋아하는 취미가 직업이 되어 해야만 하는 걸로 바뀌면 부담스럽고 싫어지기도 하는 그런 마음과 비슷한 걸까.
아니면 나는 워낙에 유명했던, 외국 살 때도 한강을 그리워해서 한강에 대한 글을 쓸 정도로 자타공인 서울러버였기에,
그저 서울을 너무 그리워하는 상태인 걸까.
인천에서 다시 혼자의 상태를 즐기기 위해서,
먼저 이 도시와 사랑에 빠져보기로 했다.
그 프로젝트의 첫 번째로 도서관 카드를 만들었고,
두 번째로는 가장 좋아하는 골목투어를 시간 날 때마다 하는 중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외로움을 느낄 새 없이 바쁘도록 공부를 시작했다.
이곳이 빠른시간 안에 유배가 아닌 일상이 되길 바라며
오늘은 동네 카페를 검색해서 다녀왔다.
카페는 생각보다 예뻤고, 달달한 크림라떼는 맛있었다.
덕분에 오늘의 인천은, 조금 달았다.
덕분에 오늘의 혼자도, 조금 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