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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ghyun Kim Sep 03. 2019

문화의 이해없는 영어교육

     세련된 영어실력은 궁극적으로는 영어외적인 요소에 의해서 결정된다. 오직 영어만을 위해 영어를 공부하는 것으로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 만큼의 실력있는 영어를 갖추기 어렵다. 역설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영어를 잘 하기 위해서라면 오히려 영어외적인 요소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영어 외적인 요소라는 것은 문화적인 측면을 말하지만 광범위한 개념으로서 문화를 의미하기 보다는 아주 좁은 의미에서 생활문화와 기본적인 역사에 국한된 것으로 봐도 충분할 것 같다. 중고등학교 영어수업 및 대학에서의 교양영어를 통틀어서 돌이켜봐도 영어권의 문화를 위해 개설된 강좌는 없었던 것 같다. 지금의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실제 한국사회의 모습은 영어권의 문화와 풍속을 점점 더 많이 수용하고 있지만 그러한 흐름은 공교육이나 정부차원에서 이루어지기보다는 강남을 중심으로 젊은 학부모들과 사회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집중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할로윈을 기념하거나 집들이 파티, 사교모임파티같은 것들은 영어권에서 유래한 문화적인 영향이지만 한국사회에서 그 수용범위는 지극히 제한적이다. 


     이런 현상은 영어에 대한 과도한 사회적 관심 및 투자 비용을 고려해볼 때 매우 불균형하게 보인다. 언어와 문화가 따로 유입되고 따로 소비되는 현상도 좀 이상하지만, 영어는 우리들의 실생활 매우 깊은 곳까지 아주 오랜시간 동안 침투해온 반면, 그 문화적인 풍속과 이해는 아주 피상적이고 심지어 매우 재수 없게 여겨지는 경우에 이르기까지 아직 적절한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다. 영어권의 문화가 아직 한국에서 보편적인 수긍을 얻지 못하고 있는 부분적인 이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질적인 문화가 한국사회에 토착화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영어에 대한 강조만큼 영어권 문화의 이해는 진지하게 다뤄지지 않는 현실이다. 


     영어 외적인, 즉 문화적인 요소가 중요하다고 말했지만, 위에서 언급한 것 같은 단순한 차원의 영어권 문화 따라하기를 주장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영어권 문화 따라하기는 진지한 차원에서의 영어권 문화에 대한 고찰이 없었기 때문에 생겨난 현상이다. 문화에 대한 이해는 언어에 대한 이해의 폭을 결정한다. 그 문화권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있느냐의 문제가 언어실력을 결정하는데 큰 영향을 준다는 말이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같은 언어를 쓰는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도 우리는 흔히 “말이 안통한다”고 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언어적인 측면에서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객관적인 조건이 주어져 있음에도 사람들이 소통하지 못하는 것은 언어 외적인 면에 있어서 공유되는 부분이 적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인 특성 혹은 취향이 서로 맞지 않아서 생기는 소통의 어려움이다. 흔히 사교적인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언변이 좋아서 그렇기도 하지만 다양하고 이질적인 문화와의 친교능력이 좋아서 그런 경우도 많다. 그런 사람은 대개 교양과 상식이 풍부한 사람일 확률이 높다.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보다 의미있는 소통을 위해서는 언어보다 비언어적인 요소가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러한 상황은 영어를 사용하는 데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많은 단어를 외우고, 표현을 공부하고 문법을 이해해도 정작 세익스피어를 모르고 링컨을 모른다면 아무리 영어를 잘한다 하더라도 소통의 깊이는 한계에 직면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반대로, 영어자체에 대한 능력이 부족하지만 세익스피어와 챨스 디킨스, 비틀즈와 퀸을 안다면 언어적인 불편함은 문화적 공감으로 어느정도 극복할 수 있을지 모른다. 문화와 역사에 대한 이해는 영어에 대한 학습자의 태도를 결정하는데도 영향을 준다. 수백년에 이르는 착취와 수탈의 영국 제국주의 역사를 비롯, 아메리카 인디언에 대한 미국 초창기의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만행, 그리고 현대 전쟁사에 드리워진 미국의 그림자를 살펴본다면 영어를 쓰는 사람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호의와 친절에 관대한 한국 사람들의 행동도 조금은 달라질지 모른다. 


     전반적으로 영어권 외국인에 대해 한국사회는 지나치게 관대하다. 동남아 출신의 외국인이 더듬거리는 한국말로 길을 물어보면 무시하고 지나치던 사람들이 길을 못찾아서 헤메는 영어권 외국인에게는 묻지 않아도 다가가서 도와주는 모습이 영상으로 방영된적 있었다. (EBS에서 실제로 실험한 장면을 유튜브에서 쉽게 찾아 볼수 있다). 많은 한국 사람들은 실제 이상으로 영어권의 제반 문화를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사회보다 높게 평가된 영어권문화에 대한 선입견은 언어를 배우는 자세를 매우 낮추게 된다. 그래서 실제로 잘 할 수 있으면서도 심리적인 문화적 열세감은 늘 영어를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는 결과로 나타난다. 


     영어에 대한 심리적 콤플렉스와 같은 현상이 일본어나 중국어 학습자에게도 나타나는지 나는 궁금하다. 울렁증이라는 특이한 현상은 영어에만 국한되어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이 아닐까 싶다. 영어를 만만하게 여기면 영어에 대한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다. 강남 사거리에서 금발의 푸른눈 외국인이 영어로 길을 물었을 때, 영어가 좀 어렵다 싶으면, 아무렇지 않게 한국어로 대답할 수 있을지 한번 자문해 보자. 중고등학교를 비롯 대학에서 오랫동안 영어를 배워야 했던 사람이라면, 거의 반사적으로 까마득한 기억의 저편에서 영어단어를 더듬더듬 찾아 어색한 문장을 만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지 모른다. 하지만 영어로 물어보는 외국인에게, 한국어로 답하는 것은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한국에 왔으면서 영어로 길을 물어보는 외국인의 의식상태도 별로 달갑게 여겨지지 않지만, 그 영어에 대해서 영어로 대답해야 한다는 알 수 없는 의무감에 사로잡혀 살아야 하는 한국 사회의 분위기도 썩 정상적인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이 모든 것들의 배후에는 문화의 이해가 결여된 영어교육에 원인이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영어는 미국의 언어이고, 유럽의 언어이며 아프리카의 언어이기도 하다. 영어를 둘러싸고 있는 문화의 층은 매우 다양하다. 여기에는 카톨릭이 있고, 기독교가 있고 심지어 이슬람문화를 비롯 힌두문화도 존재한다. 그처럼 다양한 문화의 스펙트럼을 고려하지 않고 영어를 단순히 영국과 미국의 언어로만 간주하거나, 또 그렇다 하더라도 그 문화의 이해를 고려하지 않으면 영어에 대한 건강한 관점을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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