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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ghyun Kim Oct 22. 2019

존댓말은 필요할까?

존댓말 없이도 상대를 존중하는 말하기 

존댓말은 불편하다. 특히 어떠어떠한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심지어 어쩔 수 없는 기분으로 존댓말을 써야할때에도, 기분이 나쁘다기 보다는 불편하다는 느낌이 더 많이 든다. 꼭 통행세를 무력으로 받아내는 양아치들이 버티고 있는 가까운 길을 피해, 멀리 돌아가는 것처럼, 존댓말은 아주 불편하다. 물론, 가끔 통행세를 내지 않고 지나려다가 곤혹스런 문제에 봉착하기도 하지만.



     한국어의 존댓말은 다소 시대착오적인 기능이 되어버렸다. 아무리 상대와 어른에 대한 공경심, 타인에 대한 존중이라는 식상한 이유로 존댓말의 의의를 포장하려 하지만, 분명 그것은 시대가 지금과는 달랐을 때의 일이다. 21세기 대한민국 서울에서 존댓말은 별 의미가 없다. 존댓말을 쓴다고 해서 상대가 나를 존중하고 예의를 갖춘다고 단순하게 생각하거나

존댓말을 쓰지 않는다고 해서 상대가 나를 무시하고 우습게 생각한다고 단순하게 판단하는 것은 어리석을만큼 단순한 착각이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예의는 알량한 '존댓말'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평말이라 해도 그 안에는 무수히 많은 의사소통의 촉수들이 꿈틀거린다. 어조, 억양, 말씨, 목소리, 말투, 손짓, 그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크고 작은 의사소통의 촉수들의 조심스런 탐지는 행하는 사람과 느끼는 사람 모두에게 '존중'의 의사표현으로 충분히 받아들여 질 수 있다.


     시대는 변했는데, 존댓말에 대한 맹신은 사라지지 않는다. 인터넷에서, 영화에서, 소설에서 이미 많은 사람들은 존댓말의 권위를 자신들도 모르게 유폐시켜 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삶속에서는 마치 죽은 자리를 맴도는 유령처럼, 존댓말은 불구의 몸으로 떠나지 않고 있다.


존댓말이 없으면 얼마나 편하고 신나며 효율적인 의사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혹은 어쩌면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존댓말은 그 어법이 기형적으로 왜곡된 것은 아닐까? 원래의 존댓말이 이렇게 불공평하고, 비민주적이며, 억압적이고, 맹목적이었을까? 알 수 없다. 학교에서 존댓말의 기원이나 어법에 대해서 정확히 공부한적이 별로 없으니. 


 아이러니 하게도 오히려 존댓말에 대해서 진지하게 공부하는 것은 한국에 있는 외국인들이다. 어느정도 한국어학당에서 공부를 잘 한 경우, 대체적으로 그들은 양아치같은 고등학생들 보다도 훨씬 더 존댓법을 잘 알고 있다. 그만큼 존댓말의 사용은 맹목적으로 관성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특히 나이와 학번으로 대표되는 모든 연번의 순위를 기준으로. 이것도 사실 웃기는 일이다. 존댓말에서 높임의 대상은 반드시 나이로만 결정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결국 존댓말은 그 본래의 고유한 의미를 상실해 버렸고, 이젠, 나이주의나 전근대적 위계질서를 공고히 하는 고집스런 수단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그렇다면 이제 존댓말을 차라리 없느니 못할 것이다. 굳이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편한 말을 놔두고 권력의 위선적인 시녀역할이나 하는 존댓말을 쓸 이유는 없지 않을까?


     특히나 영화에서 존댓말은 서사이해의 가시같은 존재다. 서로 죽고 죽이는 영화에서 "--했어요" 서로 열렬히 사랑하는 연인들의 영화에서 "--합니다" 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 답답하다. 그래서인지 요즘의 영화들은 존댓말을 현실에서만큼이나 엄격하게 지키고 있지 않다. 나이도 대충 건너띄고, 형 동생 사이도 대충 건너띄고 불편한 존댓말 대신 편한 말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사실, 그게 더욱 흡인력 있지 않은가?


     억지스럽게 존댓말을 이끌고 가느니, 편하게 말하면서도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지킬수 있는걸 배우고 가르치는 것이, 내 생각에는 백만배 더 중요하다. 존대말을 사용하지 않고도 상대방을 존중해서 말하는 법, 그게 진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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