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을 도둑맞아 비로소 쓰인 여행의 짧은 기록들 9
첫 자전거 여행
뒤셀도르프에서 근교 지역 노이스에 있는 Insel Hombroich라는 미술관에 가고 싶었다. 거리는 멀지 않지만 차가 자주 다니지 않는 것 같아서 자전거를 타기로 결심했다. 거리로는 왕복 30km 지만 헤매고 다닌 걸 생각하면 40킬로는 족히 넘은 것 같다. 넥스트 바이크라는 공용자전거 서비스를 이용했는데 처음이라 자전거를 빌릴 때부터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결론적으로는 여러 번의 실패 끝에 마지막 시도였던 전화로 성공했다! 전화영어만큼은 피하고 싶었는데 결국 전화영어에 성공했다는 것이 엄청나게 뿌듯했다.
날씨는 좋았다. 너무 좋아 태양이 무자비하게 내려 꽂혔다. 아침부터 목적지를 향해 쉼 없이 달리다 다리에 힘이 풀려있을 즈음이었다. 난 자전거를 좋아하지만 잘 못 타는데 특히 취약한 게 커브와 턱이다. 그런데 그놈의 턱에서 또 힘없이 미끄러져서 넘어지는데 굉장히 순차적으로 결국 바닥에 널브러지게 되는 상황이 되었다. 장신국 자전거 프레임이 높아 내가 잘 컨트롤하지 못하기도 했고.
"진짜 넘어지네애에에" 하고 천천히 느끼면서도 조금도 세이브하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졌는데 기운도 모두 바닥나서 그냥 바닥에 널브러져 버렸다. 그때 내 옆을 지나간 남자가 자전거를 다시 돌려서 돌아와 내게 괜찮냐며 일으켜 주었다. 내 자전거가 문제가 없는지 보더니 어디 가는지 묻는다. 홈브로이히 에 간다 했더니 길을 알려준다며 같이 가자 했다. 그렇게 네덜란드 사람 압신을 만나 홈브로이히 미술관까지 자전거를 타고 동행하게 됐다.
정말 지쳐 있을 때 기적같이 나타난 압신이 안내하는 길로 가다 보니 정말 생각지도 못한 풍경이 펼쳐졌다. 다행히 그날의 감동을 페이스북에 남기기 위해 카메라 액정을 찍어 올렸던 사진이 간신히 남아있다. 뒤셀도르프에서 자전거 도전은 정말 커다란 도전이었고 그만큼 내 몸 곳곳에 아직도 맥박이 뛰듯 기억이 남아있다. 특히 라인강의 모래톱, 강가로 펼쳐진 숲에서 말을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 촘촘한 나무들 사이로 길게 드리우던 저녁 그림자와 꽃 농장에서 꽃 더미를 나르는 트랙터, 그리고 홈브로이히의 풍경들.
그곳은 언젠가 다시 찾게 될 것 같다. 나는 한국에 와서 그날을 여러 번 떠올렸다. 뙤약볕에서 갈증에 시달리다가 마침내 만난 슈퍼에서 사 마신 그날의 물은 여행 중 마신 물 중 가장 시원하고 달았다.
* 일련의 여행기는 2015년 여름 40일간의 여행 후 쓴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