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폴리매스
직장을 일정 기간 다녀본 이들은 알겠지만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팀장→임원으로 이어지는 사다리의 윗단계로 올라가면 갈수록 경쟁은 치열해 진다. 당연히 본 업무의 실력 차이는 거의 없다. 조직의 팀장이나 사업부장 정도의 위치까지 가려면 본인의 특화된 실력은 기본이고 전체를 아우르는 통합적 사고능력이 아주 중요시 된다. 가령, 제품 사업부 조직의 장이 되려면 사원때 부터 줄곧 개발만 해서 특허를 줄줄이 낸 최고 전문가 보다는, 특허 갯수는 조금 부족하더라도 개발 업무와 함께 생산이나 고객 영업 경험이 있는 후보자가 사업통찰력 측면에서 훨씬 더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단지 회사 내에서만 일어나는 일일까?
퇴직을 하게 되면 자신을 감싸주는 보호막이 완전히 걷혀진 상태에서 더 드라마틱한 현실 세계가 전개 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2년이 지난 시점에서 실시된 회사의 희망퇴직 기간에 다양한 풍경이 연출되었다. 등떠밀려 마지못해 퇴직원을 쓰는 40대 중반의 차장, 다른 기업으로 이직을 준비하기 위해 회사를 떠나는 30대 초반의 대리, 더 늦기전에 공무원이나 공사 시험을 치르기 위해 퇴직을 신청하는 20대 후반의 사원까지...
그 중에서도 단연 여유있는 모습을 보이는 퇴직 신청자들은 나이나 직급에 상관없이 자신만의 사업이나 일을 이미 하고 있거나 상당부분 진척이 있는 이들이었다. 우연히 접하게 된 유투브 동영상이 계기가 되어 제빵사 시험을 합격한 영업팀 과장은 본인의 이름을 내건 베이커리 개업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교육 분야에서 일했던 대리는 심리학 공부와 함께 상담사 자격증까지 취득해서 홀로서기를 준비 하던 차에 희망퇴직을 고민없이 신청하였다. 또한 나이 지긋한 연구팀의 부장님은 자신의 특정 연구분야는 물론이고 제품생산 경험까지 인정받아 국내 대학의 부교수로 임명 되었다고 했다.
마지못해 퇴직서를 작성하며 씁쓸하고 불안한 모습으로 한숨짓던 사람과 회사를 떠나는 순간에도 기대와 설레임으로 가득 차 있던 사람의 차이점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책 『폴리매스』 는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는 다양한 영역에서 출중한 재능을 발휘하며 방대하고 종합적인 사고와 방법론을 지닌 사람을 지칭한다.어디에서든 다양한 호기심과 학습욕구를 가지고 여러 분야에 도전하는 이들은 성공확률이 높다. 한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세상에서 사는 현대인들에게 '한 우물' 만을 파야 한다는 관습적 틀은 정말 위험해 보인다.
과도하게 전문화된 사회가 도래했으며 사람들은 업종 내지는 직업 혹은 활동 분야를 기준으로 정체성을 규정하게 되었다. 현대인은 자기가 이해 할 수 있는 틀 안에 타인을 단단히 가두고 선명한 이름표를 붙이고 싶어 한다. (160)
현재와 같은 전문화 시스템은 자아실현을 방해하고, 창의성을 옥죄고, 생존 능력을 떨어뜨린다. 불행한 현실에서 벗어나려면 사고방식을 재구성해야 한다. (188)
책 『폴리매스』는 사고 방식을 재구성 하기 위한 6가지 요소로 개성, 호기심, 지능, 다재다능함, 창의성, 통합 을 제시한다. 이 중 <개성 :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능력> 부분을 특히 흥미롭게 읽었다. 자기자신의 본질을 모르면서 그저 이것저것 하는 일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리 각자는 (유전자와 경험에 이끌려) 고유한 궤적 위에 놓이고, 그 결과 모든 뇌는 저마다 다른 내적 삶을 지닌다.
스스로 자신의 모든 것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평생을 살면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모른다는 사람이 부지기수이다. 내가 흥미있어 하는 일에 진지하게 몰입하며 다양한 방법으로 경험하고 자신을 관찰하는 것이 폴리매스로 가는 첫 걸음이다.
우리 안에는 발견되기만을 기다리는 다양한 가능성이 있으며 최적의 자아를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마땅한 도리이다.(207)
좋은 삶이란 자신의 가능성들을 하나하나 실현하며 자기를 확장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수반한다. 여기에는 반드시 용기가 필요하다. 온전히 자기 힘으로 인생을 개척해나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208)
제빵사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미주 영업팀 과장은 자신이 빵 만드는 일에 이렇게 몰입하면서 꾸준히 할거라는 생각을 처음에는 하지 못했다고 했다. 우연히 본 미국의 유명 요리사 동영상을 보고 따라한 것이 시작이라 했다. 상담사 준비를 하는 교육팀의 대리는 심리학이 재미있어 더 깊게 공부해 보고 싶다고 한다. 연구팀의 부장님은 재직기간동안 터득한 연구.개발.생산 경험을 통합한 살아있는 지식을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싶다고 하셨다. 이들의 생각과 행동은 유연하고 결단력이 있으며, 삶은 다채롭고 풍요로워 보였다.
한가지 일만 하는 전문가로서 살지 않을 때 정신이 훨씬 자유로워진다. 자신에게 제약을 두지 않는다면 훨씬 신속하고 유연하게 변화할 수 있다.한 자리에 머물지 않고 춤을 추듯이, 모험을 떠나듯이, 여러 개의 공을 동시에 돌리는 저글링처럼 옮겨 다녀야 한다. (245)
다양한 경험은 세상을 이해하는 도구인 동시에 자기를 이해하는 도구가 된다. 다양한 외적 경험이 내적 성찰에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는 뜻이다.한 우물만 파는 사람이라 해도 경험을 다각화하는 데 시간을 투자하면 자신이 하는 일에서 새로운 발상을 하고 사고를 전환할 가능성이 올라간다. (259)
내 일 하나 하기도 바쁜 세상을 살면서 다양한 일에 관심을 가지고 도전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또한 그저 이것저것 건드려 보고 흐지부지 끝내는 수준이 아니라 일정 기간 몰입해 결과물을 내는 것은 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의지를 가지고 현실성 있게 시간 배분을 하며 꾸준하게 시도 한다면 못할 것도 없는 세상이다. 수많은 온라인 자료나 도서관에 널려 있는 많은 책들은 자신이 도전하고 싶은 세계를 충분히 경험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보편적이면서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거대한 기계의 부품의 되어 한가지 일, 시키는 일만 평생토록 하고 싶지 않는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지와는 상관없이 죽는 그 순간까지 재미있고 설레이는 삶을 살아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