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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수현 May 26. 2023

브런치란 무엇인가

  네 번의 시도 끝에 얻게 된 '브런치 작가'타이틀. 그것은 내 생애 몇 안 되는 성취 중 하나였다. 하물며 어린 시절부터 작가의 꿈을 키워온 나로서는 이것이 더더욱 뜻깊게 여겨졌다. 


  그런데 막상 글을 몇 편 발행하고 나니 의문이 한 가지 떠올랐다. 도대체 브런치란 게 무엇일까?


  사실 이 '브런치'라는 플렛폼을 알게 된 건, 5년 전 한 교회지인의 소개 덕이었다. 내가 '글짓는 일을 업으로 삼고 싶다'고 고백했을 때 이 플렛폼을 소개해 준 것이다. 당시에 나는 어줍잖은 글을 몇 편 써서 '작가'자격에 응모했고, 두 번을 대차게 탈락했다. 이후 바쁜 일상 때문에 '브런치'라는 것은 아예 잊어버리고 말았다. 

  사실 완전히 잊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바쁜 일상이래봤자 군전역과 대학원 진학이 전부였다. 브런치 계정은 탈퇴하지 않았기에, 카카오톡으로 매일매일 추천글이 올라오곤 했다. 하지만 오만하게도 나는 모든 추천글들을 무시했다. 


  어쩌면 20대 시절, 녹록치 않았던 현실이 다시금 서슬퍼런 정체를 드러내는 형국에 겁을 먹어 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에서는 백작의 수상한 낌새를 느낀 주인공이 겁을 집어먹고 '글로써' 모든 일을 기록하기 시작하지 않던가. 마찬가지로 나는 단지 대학원 연구를 위한 글을 쓰기보다 '글로서' 쓰는 글을 찾아 헤매기 시작한 것 인지도 모른다. 벽을 통과하고, 사람 피를 빨아먹는 현실에 대한 방어기제로서 글을 찾은 것인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그렇게 나는 브런치 작가에 다시 도전했고, 4번의 도전 끝에 '작가'자격을 얻어냈다. 


  그 와중에 떠오른 의문은, '<브런치>라는 것은 누가 운영하며, 누가 향유하고, 누가 무시하는 것인가?'라는 의문이다. 표절이나 도작에는 어떻게 대처하며, 책으로 출판도 해준다는 글은 대체 어떤 기준으로 뽑는가? 등. 갖가지 의문과 호기심이 생겨났다. 브런치에 발행된 글들을 다 읽어가며 어느 정도 해답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얻는다한들 그것이 답이 아닌 '납득'이라면 할 이유가 없다. 


  브런치는 이제 어엿한 칼럼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왠만한 작가나 칼럼니스트들은 브런치에 계정을 갖고 있는 듯하고, 글쓰기를 업으로 삼지 않은 사람들도 브런치에 '작가'로서 글을 발행한다. 따지고보면 브런치는 일반 블로그 형태가 살짝 변형된 것뿐이다. '브런치'라는 블로그 공간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심사위원들로부터 임명된 블로거들이 글을 올리는 것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브런치는 '글'쓰는 사람들의 공간이므로 어느 정도의 필력과 꾸준함이 요구된다. 


  '작가'의 위상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되면서부터 이 '<브런치>가 무엇이냐'는 의문은 더 깊어진 것 같다. 낭만주의 시대에 그것은 천상으로부터 부여받은 재능으로 숭상되었지만, 근대에 들어서면서 출판이라는 사업과 맞물리며 결국 '판매부수'로 위탁되는 존재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유튜브에 'AI소설 공모전'이라는 광고가 올라오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인공지능과 힘싸움을 해야하는 처지에 놓였나 보다. 하지만 작가라는 자가 무엇과 씨름하든, 글은 누구나 쓸 수 있다. 시인 오규원이 '시 쓰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잘 쓴 시, 잘못 쓴 시가 있는 것이다'라고 한 것처럼, 글이란 것은 '누구나 쓸 수 있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아무나 못 쓰는 것'이다. 


  세 줄 이상의 글은 읽지 않는 시대가 도래하였고, 그런 점에서 이 브런치라는 기획은 나름 당위성을 지닐 수도 있다. 못 해도 '세 줄 이상의 글'들이, '세 줄 이상 읽을 용의가 있는 사람들'에게 읽히는 공간이 아닌가. 하지만 '글'이 무엇이며, 앞으로는 무엇이 될 것이라는 따위의 질문으로 관점을 되돌려보면, <브런치>도 지나갈 시대의 한 갈무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셰익스피어가 넷플릭스 시대에 태어나면 어떻게 될까 고민해 보는 것처럼 터무니없어 보이기도 하다. 


  이 글은 중구난방인가?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누구인가? 누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으며, '좋아요'는 누가 누르고 있는가? '좋아요'를 누른 사람은 이 글을 읽기는 한 것인가? 이 글은 누가 썼으며 누가 발행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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