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정말 혼자가 되겠지만
완전히 (경제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독립한 지 5년이 넘었다.
나고 자란 집을 '우리집'이나 그냥 '집'이 아니라 '고향집', '본가'같은 단어로 부르기 시작했을 때, 나는 내가 더이상 부모님과 동생까지 함께했던 4인가구의 구성원이 아니라 심리적으로 독립한 개인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대학 시절에도 고향집을 '본가'라고 부르기는 했으나, 그때 내가 살던 곳은 집이 아닌 방이었고 방학이나 몸과 마음이 힘들다면 언제든 모든것을 내팽개치고 돌아갈 수 있었기에 완전한 심리적 독립이라고 하긴 힘들었다.
경제적 독립이야 보험비, 통신비같은 자잘한 돈부터 먹고 사는 데 드는 작고 큰 경제적 문제를 혼자 해결하면서 시작된 것이고. 오히려 심리적 독립보다 딱 잘라 말하기 쉬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독립 후 한 번도 혼자 살았던 적이 없다.
앞서 경제적, 심리적 독립 운운하며 길게 말한 것 치고는 밍숭맹숭하다. 하지만 경제적, 심리적으로 독립했기 때문에 더욱이 동거인이 필요했다고 말하고 싶다.
첫 동거인이었던 J가 대학 졸업을 앞두고 같이 살자고 제안했었다. 나는 오로지 돈만 생각했는데, 나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된 J는 이렇게 말했다. "연고 하나 없는 우리가 서울에서 서로 의지하며 살아간다면 좋을 것 같았어"라고. J의 말을 듣는데 내 자신이 얼마나 속물처럼 느껴졌는지. 지난 사고방식을 되돌아보았던 기억이 난다.
J와는 투룸에 살았다. 우리는 각자 방이 필요한 사람들이고,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서로의 방에서, 룸쉐어하는 남처럼 살다가도 주방과 부엌 어드매에 서서 한두시간씩 수다를 떨곤 하는 게 우리의 일상이었다. 엄마는 '그럴 거면 왜 같이 사니? 같이 밥좀 먹고 해!'라고 불평하곤 했지만 서로의 일상을 분리하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그 덕에 집 계약 만료일까지 싸움 한 번 없이 동거 생활을 지속할 수 있었다.
그리고 2020년 1월. 나는 새로운 동거인들을 맞이했다. H와 Y. 두 친구 역시 J와 마찬가지로 대학 동기이며, 각자 '자기만의 방'이 꼭 있어야 한다는 것을 (당연하게도) 이해하는 친구들이었다. 우리는 서울 전역을 뒤져, 세 명의 교통이 모두 편한 곳. 금액대가 너무 높지 않은 곳. 거기에 더해 사람이 살만 한 쓰리룸을 찾아냈다.
동거인이 하나에서 둘로 늘었다. 따지자면 여자 셋, 햄스터 둘 가구의 구성원. 그러나 총 3명의 동거인을 맞이하고 떠나보낸 후에도 '나는 1인가구'라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친구들을 사랑하고, 또 한 집에 사는 가족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누군가 사고를 당해 입원했을 때 수술동의서에 사인할 수 없는 사이다.
그러니까 나의 1인가구는 조금의 빈정거림이 섞인 표현이다. 경제적 1인 가구. 법적 1인 가구. 주민등록등본을 끊어보면 세대주는 나 하나고 구성원도 나 하나다. 사람도 많고 건물도 많은 서울 땅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위로 이외의 모든 부분에서 나는 나 혼자인 것이다.
가끔 혼자 하늘을 본다. 하늘을 보면서 생각한다. 1인가구이면서도 심리적으로는 항상 사랑을 만끽할 수 있는 공동체에 속해한 시간에 대해. 집 계약이 끝나면 흩어지는 공동체에 대해. 내가 지금껏 함께해 온 사람들에 대해. 어쩌면 <자기만의 방>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이러한 공동체가 가장 이상적인 형태가 아닌가에 대해.
반대여야 하는 게 아니냐고? 하지만 버지니아 울프도 말하지 않았던가.
'고정된 수입이 사람의 기질을 엄청나게 변화시킨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라고요...그러므로 내가 여러분에게 돈을 벌고 자기만의 방을 가지기를 권할 때, 나는 여러분이 리얼리티에 직면하여 활기 넘치는 삶을 영위하라고 조언하는 겁니다.'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이미애, 민음사, 2016, 132p
자기만의 방이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오직 나로 있을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면. 자기만의 집을 고집하지 않고 심리적 공동체 속에서 나만의 방을 가지고 있는 지금이. 경제적 1인 가구로 내가 번 돈을 나를 위해서만 쓸 수 있는 지금이. 연고 하나 없는 서울 땅에서 집 계약에 맞춰 흘러다녀야 하는 나에게 가장 큰 행복을 안겨줄 수 있다고.
당장의 위안을 위해 스스로를 속이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나는 지금 평온하다. 당연히 미래에 대한 걱정이 있고 눈꺼풀 너머로 느껴지는 빛처럼 매일밤 불안이 일렁이지만, 이 순간의 평온함에 굳이 돌을 던지고 싶진 않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멀고 먼 부정이 아니라 눈 앞의 긍정을 바라보며 살고 싶다는 말이다.
해일이 오는데 조개를 줍는 사람이 싫었다. 가장 먼저 해일을 발견하고 가장 먼저 가장 멀리 도망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당장 눈앞의 멋진 조개를 포기하면서까지 수평선 너머만 바라보며 살고싶지 않다. 아름답고 또 사랑하는 조개를 품에 안고 해일에 휩쓸려 생각지도 못한 곳에 도달할 수 있다면 그 또한 멋진 일이다.
죽지 않는다면.
해일에 휩쓸려도 죽지 않기 위해 공부하고, 운동하고, 또 커리어를 쌓는다. 이것이 내가 경제적 1인 가구와 심리적 공동체를 동시에 유지하며 살아가기 위해 선택한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