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팅 없는 강원도 명소

겨울, 용화해수욕장

2021년 12월, 그해 삼척은 왜인지 참 따스했다. 기껏 챙겨간 방한용품이 무색할 정도였고 몸을 데우는 차 한잔만 있다면 밤일지라도 모래사장에 앉아 사방에서 쏘아 올리는 불꽃을 한 시간도 넘게 구경할 정도였다.

이제는 알고 지낸 지 10년도 넘은 대학 동기, P 씨는 회사에서 계약한 리조트 회원권을 사용하고 싶어 했다. 임직원 숙박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어 지역만 골라 훌쩍 떠나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삼척으로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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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던 사실이지만 삼척은 장호항이 유명하다고 한다. '한국의 나폴리'라 이름 붙여져 스노클링 명소로 꽤 알려진 모양이다. 해변가를 따라 옹기종기 모인 민박집은 여름철에 빈방이 없어 난리라고 택시 아저씨는 말하셨다.

겨울 바다는 사람의 살갗이 비치지 않았다.

장호방파제에서 평평한지 휘어진지 잘 가늠이 되지 않는 수평선을 오래 쳐다보았다. 한때 지구가 둥글지 않았던 시대에 태어났다면 직선이라고 믿었을 법도 하다. 대상은 두 눈을 통해 그이가 보고 싶은 대로 굴절한다. 어떠한 진실도 사람을 거쳐서는 진실이 아닐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람만이 사람을 곡해하나 보다.

P 씨와 함께 해상케이블카를 타고 장호항에서 용화해수욕장으로 움직였다. 캐빈 바닥이 투명해서 발 밑으로 파랑이 일었다. 누구든 통째로 삼켜버릴 기세였지만 바다의 품도 결국 '품'이니까 그다지 차갑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우리는 하얗고 고운 모래 위에 쪼그려 앉기도, 소금기 밴 바람을 정면으로 맞서보기도 했다. 파도를 쫓는 세 명의 서퍼 외에는 사람이 없었다. 짧게 자른 앞머리와 긴 코트 자락이 아무렇게나 나부껴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부러 비수기에 바다를 찾은 목적은 여기에 있었다. 사람 무리가 내게 닿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서울 안에서는 사람들로부터 벗어날 도리가 없다. 감각이 부풀어올라 갖은 편견, 목소리 따위를 의식하도록 종용한다. 면식이 있든 없든 다수는 소음이었고 늘 익숙지 않다. 더 이상 견뎌지지 않을 때쯤 인적 드문 풍경에 갇히기를 먼저 자처한다.

어떤 동물은 위협을 피하고자 종종 주변 환경에 맞게 변색한다. 여행 내내 걸친 하얀 코트는 모래사장에 섞이기 알맞은 색이라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