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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모음 Dec 31. 2021

[찬실이는 복도 많지] 돌고 돌아서 다시 영화

저요, 사는 게 뭔지 진짜 궁금해졌어요. 그 안에 영화도 있어요.

저는 늘 목말랐던 것 같아요.
사랑은 몰라서 못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만은 나를 꽉 채워줄 거라고 믿었어요.
근데 잘못 생각했어요.
채워도 채워도 그런 걸로는 갈증이 가시지가 않더라고요
목이 말라서 꾸는 꿈은 행복이 아니에요.
저요, 사는 게 뭔지 진짜 궁금해졌어요. 그 안에 영화도 있어요.


평생 영화 일을 할 거라고 자만하던 때가 있었다.

전국 각종 영화제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있었고,

한 달에 5-6편씩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있었고,

영화 잡지를 구독하고, 영화와 관련된 강의까지 듣고 있었기에 그런 생각을 하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그토록 바라던 것과는 거리가 먼 일을 하고 있다.

인생은 참 모르겠다. 아이러니하다.


대학 졸업 후, 꽤 괜찮은 예술영화 홍보 배급사에 들어가긴 했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출근한 첫날부터 "망했다"라고 속삭이게 만든 곳이었지만.

입사 첫날,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에 퇴근을 해야 했었다.

특별한 업무가 주어졌던 건 아니었다.

선배들이 퇴근할 때까지 자리를 지키는 것이 의리라고 믿는 곳이었을 뿐.


과연 이 회사에서 계속 일할 수 있을까란 의문이 들려는 찰나,

영화사 대표가 자존심을 자극하는 말을 뱉었다.

"힘들면 나가도 된다. 너 말고도 여기 들어오고 싶은 사람이 세고 셌다"

그때라도 "예, 예 그렇군요.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라고 웃으며 뛰쳐나왔어야 했다.

근데 나는 그 말에 이상한 오기가 생겼다.

결국 다음 날에도 부지런히 준비하여 출근을 했다.


막차를 타고 퇴근하는 일이 밥 먹듯이 익숙해져 갔고,

주말 없이 출근하는 것도 아무렇지 않은 일이 될 때쯤,

사무실의 '내'가 아닌, 평범한 일상의 '나'는 소멸해가는 중이었다.


영화가 좋아 시작한 일이었는데, 영화관에서 영화 한 편을 볼 시간 없이 바빴다.

머릿속에는 간절히 원하던 곳에서 일하려면, 이 정도 열정과 희생은 있어야 한다는 자기 합리화만이 가득했다.

그 사이 집에서 가족들에게는 짜증이 늘었고, 집 밖에서 친구들과의 관계는 소홀해져 갔다.


한 해가 지나고 나서야 내가 진짜로 망해가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사무실에서 들리는 작은 소리 하나하나가 숨을 막히게 했다.  

퇴근하고 집에 오는 길에는 아무 생각 없이 눈물부터 쏟아져 나왔다.

아무도 없는 곳에 숨어 깊은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일이 많아졌다.

두 손 모아 소망하던 일이, 어쩌면 애초부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을 거란 생각이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다.  


그런데도 쉬이 일을 그만두지는 못했다.

어릴 때부터 꿈꿔왔고, 준비해왔던 일이기에 결정이 쉽지 않았다.

과거의 행동과 말과 다짐이 다 '영화'를 향해 있었다.

그 모든 걸 뒤로 하고 다른 일을 할 자신이 없었다.

긴 고민한 끝에, 결국 두 손 들고 나오게 되었지만.


영화사를 그만두면서 일 년 정도는 영화관을 가지 못했다.

좋아하는 일을 포기했다는 자책감 때문이었다.

더 이상 영화를 좋아할 자격이 없다는 마음이 들었다.

스스로 내 눈치를 보며 영화를 봤고, 영화제에 갔고, 영화 잡지를 읽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 대사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던 건

그녀가 놓지 못하고 있는 영화에 대한 그 마음을 알 것 같아서였다.  


찬실이처럼 나도 궁금하다.

사는 게 뭔지, 영화가 뭔지.

글을 쓰다 보면 언젠가는 알게 될까.




[ 인생은 오마쥬 ]

영화  장면이 뜻하지 않게  인생에서 리플레이될 때가 있다.

*'인생은 오마쥬'는 매주 금요일에 한 편씩 업로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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