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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디 Nov 03. 2020

잘 살고 있는지 아는 방법

죽음이 들려주는 솔직한 목소리

“툭”

그건 끝을 암시하는 소리였다.
가파른 바위를 내려가던 중 몸을 의지했던 밧줄이 그만 끊어져 버린 것이다. 주마등이라 할만한 것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뒤로 굴러 바닥에 머리가 닿기까지 강렬한 인상 하나가 스쳤다.

‘아직 하고 싶은 것이 남았는데..!’라는 허탈한 목소리가 내면 깊이 울리고 있다.




다행히도 그날의 ‘끝’은 암시에서 끝이 났다. 내가 떨어지는 쪽에 일행이 서있어서 목이 꺾이지 않을 만큼은 나의 몸무게를 받아냈던 것이었다. 나흘이 지난 오늘, 내면에서 울린 찰나의 목소리를 다시 회상해본다. 만약 내게 그려놓은 미래가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막연한 두려움을 이기려고 스스로를 독려하는 것이 아닌, 죽지 못해 사는 것이 내가 보내온 시간들이었다면 그날의 암시는 내게 어떤 목소리를 들려줬을까? 아마 이랬을 것 같다.
‘젠장 이 따위로 살고 끝난다고? 억울해서 눈을 못 감겠다.’




, 솔직한 대답을 주는 그것


모든 '끝'은 마음 한 구석에 숨겨놓은 솔직함을 끄집어낸다. 일의 마감기한이 다가와서야 스마트 폰에 한 눈 팔았던 시간을 후회하고, 연인이 곁을 떠나서야 그동안의 행동을 후회한다고 시인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끝을 맞아 느낄 수 있는 후회는 의외로 소중한 순간이다.  왜냐하면 인생의 체감은 너무 길기 때문에 그 끝을 생각해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삶에서 우리의 솔직한 소원을 끄집어내기도 그대로 살아가기도 굉장히 어렵다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더 이상 살아있을 기회가 없다는 것을 깨닫기 이전에 마음속에서 솔직함을 끄집어내지 못하면 후회를 피할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날그날의 일에 치인다.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챙기는 것에 정신이 팔려 있느라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이 없다. 시간이 잠시 남더라도 분주했던 일상 때문에 그동안 참아온 즐거움을 누리느라 휴식마저 바쁘게 보내버리곤 하니 말이다. 가끔 ‘잘 살고 있는 걸까?’라는 의문이 찾아오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다. 깊은 고민 사치로 치부되기 쉽다. 그러고는 다시금 바쁜 삶을 향해 돌진하는 것이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이 아닌가? 다행히 내가 운이 좋아서 그럴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는 끝을 가정이라도 해볼 수가 있다.



딱 두 달

이렇게 가정해보자. 당신은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뭘 하든 남은 시간이 두 달뿐이다. 무엇을 해야 후회가 없을까? 그것은 마음속에 담아놓은 말일 수도 있고, 돌이키고 싶은 관계일 수도 있으며, 입에는 올린 적이  없지만 마음 깊이 동경해온 업무나 경험일 수도 있다. 이제 당신은 죽음 이전에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충만한 경험 뿐이라는
사실과 당면해버렸다. 당신의 내면은 무엇을 향하라고 솔직한 목소리를 들려주는가?



회상하는 것이 타인의 아닌 자신의 죽음이라면 그것은 축복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기억하라. Memento M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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