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은집 이야기 Jul 26. 2019

비회사형 인간에게-

 나만의 숙제를 찾아서


2019년 2월에 기록한 꿈에

관한 이야기다.





2019년 2월 26일 화요일

<꿈 제목 : 이 회사에 다니지 말라고 말리는
중학교 때 친구 M양>


회사 2층 문을 열고 중학교 때 친구 M양이 들어온다. 나에게 이 회사에 다니지 말라고 한다. 내가 힘들어질 거라고 한다. 나는 그녀를 밖으로 내보낸다. 그러자 그녀는 더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다시 돌아와서 나에게 이야기한다. 고생할 거라고, 사고가 많이 나서 힘들 거라고 회사를 다니지 말라고 한다.



이 회사에 들어온 지 딱 1년 하고 5일째 되던 날의 꿈이었다. 어떻게 하면 회사를 그만둘까 생각하는 습관적퇴사러인 나에게 계시처럼 내려진 꿈이었다. 나는 흔들렸다.




그래 온 우주가 나의 퇴사를 바라고 있어! 지금이야! 너는 프로퇴사러잖아!

 

나는 몇 번의 퇴사를 반복한 습관적퇴사러다. 통장 잔고나 경력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아니다 싶으면 퇴사를 선택했었다. 몇 년 간의 프리랜서 생활을 마치고 다시 회사로 돌아가는 순간, 이번에는 다르겠지! 다룰 수 있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회사에 들어갔다.

 

삼 년을 목표로 삼았던 회사에서 겨우 일 년이 지났다. 팀 내의 인원이 줄어서이기도 했지만 회사 생활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남들은 다 하는데, 모두 다 아무렇지 않은 거 같은데, 아니 최소한 아무렇지 않게 잘 유지하고 있는데! 나는 뭐가 이렇게 어려울까!!!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을 가관이었다. 대충 말린 머리가 이리저리 뻗쳐 있고, 선크림만 겨우 바른 얼굴은 이미 누렇게 떠 있었다. 손에 잡히는 대로 주워 입고 나온 옷에서는 냄새만 나지 않는다면 괜찮은 편이었다. 평소에도 화장을 한다거나 센스 있게 옷을 입는 편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저 이 하루가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고만 있었다. 나는 유별나게! 유난스럽게! 매일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래 일 년을 버텼으니,

퇴직금도 생겼으니 이제 나가자.”

라고 꿈도 말하고 있다고 믿고 싶었다.

 



꿈은 내게 왜 퇴사를 이야기했을까?
중학교 때 친구 M양은 왜 나왔을까?
벌어진다는 사고들은 무엇이었을까?



꿈속의 회사는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였지만 내 안의 회사였다. 이 회사는 어떤 곳일까? 적은 인원이 움직이다 보니 업무가 모두에게 과중되어 있었다. 한두 시간 야근은 기본이었고, 6시가 되어도 움직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3명이 하던 일을 2명이 나누어서 하게 되자, 회사는 이렇게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더 이상 인원 추가는 없었다. 그 이유는 지금은, 올해는 회사 사정이 어려워서였다. 수당도 없이 이어지는 야근으로 업무는 과중했고, 같이 일하는 상사는 사람을 마른걸레로 만들어 쥐어짜는 사람이었다. 전임자가 왜 공황장애를 얻어 나갔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런 구조적, 환경적인 문제를 제외하고, 가장 큰 이유는 나는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쌓이는 업무들이 늘 너무 과중하게 느껴졌다. 내가 이 일을 하고 있는 이유는 돈이었는데(이건 중요한 이유이다.), 누군가는 이렇게도 살아가는데, 돈을 벌어 스스로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데, 그래서 나도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고 있는데 대체 뭐가 문제일까?


왜 나만 유별나게 어떤 것들을 찾고 있을까, 왜 유난스럽게 따지고 들고 있을까? 일에서 어떤 특별한 것을 실현이라도 하고 싶은 걸까? 아니면 나는 그저 참을성 없는 덜 자란 어른이인 걸까.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이 세상에는 루저라거나 실패자 또는 사회 부적응자라고 불리는 비회사형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회사는 전쟁터지만 나오면 지옥이라는데 그 지옥에서만 살 수 있는 인간이 있는 것이다.






 

꿈속의 중학교 친구 M양과는 서태지를 좋아하면서 친해지게 되었고, 우리는 몇 년간 덕질을 같이 하며 제일 친한 친구가 되었다. 서태지가 은퇴를 선언하던 날 그녀와 나는 대성통곡을 했다.


어린 시절 나는 지금보다 더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내향적인 아이였다. 쉬는 시간에도 잘 움직이지 않았고,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도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런 내가 서태지를 좋아하며 조금씩 변했던 것이다. 내 취향이 생기고, 여기저기 공연을 보러 다니며 생활 반경은 넓어졌다. 덕질이라는 공통분모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라이벌 가수를 같이 씹어대며 다 아는 듯이, 맞다는 듯이 깔깔대며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아닌 타인과의 접점이 생겨났다.

 

그런 그녀가 날 찾아온 것이다. 많고 많은 친구들 중에 지금은 만나지도 않고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나는 친구를 꿈은 굳이 내 앞으로 불러들여 왔다. 그녀는 왜 나를 말리고 싶었을까? 그녀가 말하는 고생과 사고들은 무엇일까?





 


아무리 마음을 감춰 포장하려고 해도 결국 모든 것은 드러난다. 일에 마음이 붙여지지 않았다. 발전은 없었고, 마무리는 엉망이었다. 아무리 해도 열정은 생겨나지 않았다. 크고 작은 사건들은 계속 생겨났고, 난 최악의 직원이 되었다. 스스로의 밑바닥을 보게 되는 순간들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스스로 움직였던 그 시절처럼 살아가길 친구 M양은 바랬을 것이다. 말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스스로 만든 매트릭스 안에서 어서 나오기를! 스스로 불러온 사고에 파묻히지 않기를 말이다.


그것이 현실적으로 퇴사라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몇 개월을 더 꾸역꾸역 버티다가 결국 퇴사를 선택했다. 더 이상 버틸 자신이 없었다. 더 이상 마른걸레가 되어 쥐어짜지고 싶지 않았다.



 

인간은 시기마다 다른 발달 주기를 맞이한다. 어렸을 때는 모두가 비슷했다. 조금의 차이는 있었지만 비슷한 시기에 말을 했고, 두 발로 여기저기를 걸어 다니며 나만의 탐험을 시작했다. 누군가를 때리면 안 되고, 바닥에 쓰레기를 버리면 안 된다는 것도 배웠다. 이런 육체적, 지성적 발달뿐 아니라 인간에게는 각자만의 숙제를 가지고 지나야 하는 발달의 단계가 있는 것 같다. 나의 경우 유별나게, 유난스럽게 사회에 열등한 나에 대한 숙제가 있는 것 같다.(여기에서의 열등은 부족함이 아닌, 미숙함? 정도로 보고 싶다는 개인적인 바람이다.)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만, 이전과는 조금은 다른 방법으로 시도하다 보면 죽었다 깨어나도 안될 것 같은 일들이 쓱-하고 이루어지게 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그런 순간은 마법 같기에,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부디 지금의 시련 앞에 무사히 버티고 서있기를... 그러나 어긋나는 것을 상처가 깊어지도록 붙잡고만 있지 않기를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예민함 꺼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