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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집 이야기 Sep 26. 2016

다시 한번 25살로 살기

-반복되는 숫자가 내게 말하고 싶은 것-


끝났다고 생각한 25라는 숫자가
반복되고 있다.


꿈속에서 나는 학교 복도를 걷고 있다. 3학년 1반을 지나고 3학년 2반을 지나 3학년 5반 앞에 왔을 때 나는 내가 2학년 5 반인 게 생각났다. 아래층으로 내려가 2학년 5반으로 간다. 


그게 시작이었다. 현재 나는 35살이다. 그런데 나는 3학년 5반으로 가지 않고 스스로를 2학년 5반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재미있게도 2학년 5반은 나의 25살을 의미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25살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졸업을 해서 취업을 하는 시기였는데 24살부터 꿈틀대기 시작한 우울증에 거의 잡아 먹히기 직전이었다. 매일 밤 나쁜 생각을 했고 아침에는 겨우 눈을 뜨고 무기력함에 짓눌러 일상을 보내기 일수였다. 그런 25살이 다시 생각나는 꿈들이 이어졌다. 25살 이후로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대학교 생활은 무척 즐거웠다. 새로운 친구들이나 연애에 대한 기대가 아닌 과제를 완성하는 데서 오는 만족감이었다. 매일 밤 좋아하는 밴드의 음악을 들으며 머리를 쥐어짜며 자취방에서 혼자 수십 개의 썸네일을 만들어 냈다. 새로운 생각들이 튀어나오고 그 생각들을 다듬느라 늘 시간은 부족했다. 그래도 즐거웠다.


마음에 드는 책을 읽고 그 작가의 다른 책들을 몽땅 찾아 읽기도 했고, 들을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음악을 들으며 나만의 취향을 만들어 갔다.

그런 내가 4학년부터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수업은 겨우 들어갔고, 과제는 대충 마무리 짓고 겨우겨우 졸업전시회를 마무리했다.

더 이상 좋아하는 밴드의 음악도 찾아 듣지 않았으며 그냥 이 시간이 지나가기 만을 기다렸다. 좋게 포장된 시크함과 해탈을 가장한 무기력이 삶의 전부였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그런 25살이 되었다. 나는 스스로 모든 가능성을 차단하고 침잠하고 있었다.


그런 25살이 꿈으로 반복되고 있었다.


어느 날 나는 동생에게 250 사이즈 화장실 슬리퍼를 사다 주기도 하고

엄마와 동생을 데리고 호텔에 머무르며 비싼 호텔비 결제에 전전긍긍하는데 작은 전광판에는

25라는 숫자가 표기된다.

너무 듣고 싶은 수업이 있는데 수업료가 25만 원이다. 그런데 나는 그 비용이 없어 포기한다.


꿈은 나에게 25살로 돌아가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처음 이 꿈을 꾸었을 때 나는 오랜 프리 생활을 마치고 어느 디자인 회사에 들어가게 된 직후였다. 꿈은 나에게 25살로 돌아가 그때 이루지 못한 사회적 과업을 이루라는 듯했다. 거기엔 물론 동생과 엄마에게 한 투사가 일부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내게 동생은 여전히 사회활동을 하기에는 안쓰러운 존재이며 엄마는 오랜 시간 사회생활을 하지 않는 가정주부였다.


그런데 나는 그 회사에서 2달째에 나와야 했다. 나는 그곳에서 이상한 사람이었고 말이 통하지 않는 이방인처럼 서로 소통이 되지 않아 불편을 겪었다. 나는 내 속을 보이지 않는 사람이며 피드백이 원활하지 않은 사람이 되어있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회사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조금도 마음이 가지 않았다. 껍데기만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사회에서 내 과업을 이룬다는 소망은 무산되었다.


다시 25살의 시간 속에 갇힌 것만 같았다.

그래도 나에 대해 생각하고 그림에 대해 생각하고 각했다. 지금까지 내가 단 한 번도 진심을 보이며 작업을 한 적이 없음을, 매니아라고 포장하며 스스로 세상에 나서기가 두려워 비겁함과 적당히라는 이름으로 내 실력이 멈춰있는 걸 용인하는 자신과 마주했다.


어쩌면 그 꿈들은 25살로 다시 돌아가 나에게 다시 시작할 시간을 준 게 아닐까? 25살은 나에게 새로운 가능성이 시작되는 시기였지만 나는 우울증에 갇혀 마음은 닫히고 재정적 어려움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10년 뒤 나는 또다시 그때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다. 사회적인 직업을 잃었으며, 알바로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그때와 다른 건 다행히 우울증은 없고 10년의 시간을 보내며 생각하는 것만큼 나쁜 일은 바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아직도 꿈이 주는 메시지를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지금의 나는 25살로 살고 있다. 비정규직에 몇 년간 그렸던 그림들을 다시 헤집으며 이제야 나를 이야기하는 그림을 그리겠다며 퇴근 후 작업실로 몸을 끌고 와 앉아 이것저것을 끄적인다. 모든 것에 가능성을 열고 있는 25살처럼 그 시간을 다시 살고 있다. 


때때로 올라오는 불안에 휩싸이기도 하지만 그 불안을 잠시 바라보고 다독일 수 있는 정도의 여유도 부리고 있다. 그러다 보면 그렇게 지나버린 25살은 다른 의미로 색을 더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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