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교육쟁이 Jan 12. 2020

성교육이 페미니즘 교육일 수밖에 없는 이유

 

성교육 중 아래의 사례를 다뤄본다고 치자.     


                

임신과 출산,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와 그에 따른 책임감을 강조하는 성교육은 이 사례를 다루기 어렵다. 특히 성교육이 성의 폭력성과 위험성을 강조해 청소년의 성적 행동을 억제하는 데 집중한다면, 위 사례는 ‘더 강하게 저항했어야 했다’ 같은 말밖에 해줄 게 없다. 결국 그 교육은 ‘피해자의 책임’이라는 메시지만 남기게 될 것이다.

 

우리의 성교육이 청소년의 성적 행동을 억제하는 관점으로 접근하기 때문일까? 실제로 상당 수 청소년은 피해자의 책임을 물었다. “B가 잘못했지만 합의해 준 A도 잘못했다”, “지웠다는데 B 탓 좀 그만해라”, “다음부터는 그런 거 합의해 주지 마”, “애인이라도 자신의 의사를 명확하게 얘기해야 한다” 등등. ‘성폭력 피해자를 탓하지 말자’는 말을 부정하는 청소년은 아무도 없지만, 조금만 이야기를 비틀거나 복잡하게 만들면 여지없이 피해자를 비난하는 말이 쏟아져 나온다. ‘명백한 폭력’과 그로 인해 ‘상처받은 순수한 피해자’라는 추상적인 개념으로 성폭력을 이해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위의 사례와 같이 보다 복잡하고, 때문에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즉, 무엇이 진짜 동의인지, 여기서는 어떤 젠더 권력이 작용하고 있는지, 성적 대화란 무엇이며 성적자기결정권이란 무엇인지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B의 집요한 요구가 없었다면 과연 A가 동영상을 촬영했을까?’, ‘A의 동의는 정말로 동의였을까?’, ‘성관계 동영상 촬영을 거절하면 진짜 피해자고 거절하면 가짜 피해자일까?’, ‘진짜/가짜의 기준은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예-짧은 치마를 입고 술집에서 취한 상태에서 성폭력을 당하면 가짜 피해자고, 밤길을 걸어가다가 성폭력을 당했으면 진짜 피해자일까?)’, ‘완전 순결 무구한 피해자란 무엇일까?’, ‘그 기준은 누가/어떻게 만드나?’ 같은 질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질문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페미니즘이다. 페미니즘은 젠더 권력에 대한 예민한 성찰을 통해 성차별을 비판하기 때문에, 우리 사회 성차별을 심화하는 성교육을 대체하는 대안적인 성교육을 가능하게 만든다. 


성교육에 페미니즘이라니, 잘 연결이 안 될 수 있다. 특히 페미니즘을 여성우월주의로 이해하는 이들을 중심으로 ‘편향적’인 성교육을 반대하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페미니즘은 이 사회의 평등이 무엇인지, 성평등이란 어떤 상태인지, 무엇이 그것을 막고 있는지 고민하는 학문이자 운동이다. 구체적으로 성별 간의 위치성과 차이를 이해하고 권력 격차로 인한 차별, 배제, 폭력의 문제를 다룬다. 그렇게 봤을 때 결국 페미니즘은 우리 사회의 성평등을 지향하는 운동이며, 대안적인 성교육의 방향성과 맞아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는 성교육과 성평등 교육을 별개로 보는 시선 또한 존재한다. 이 둘을 분리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성을 생물학적인 성으로 한정해 보기 때문에 성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가치 및 신념을 다루는 성평등 교육을 성교육과 다른 것으로 이해하곤 한다. 


하지만 언제까지 성교육에서 ‘동영상을 찍자고 한 B도 잘못했지만 합의한 A도 잘못했다’라는 얘기를 들어야 할까? ‘네 몸은 소중해!’, ‘타인의 성적 수치심을 자극하지 말자’라고 얘기하는 게 성교육의 전부라면, 과연 현실의 다양한 맥락 속에서 ‘타인에 대한 존중’, ‘폭력에 대한 비판적 사고’, ‘사회 정의를 위한 책임감’ 등을 발현시킬 수 있을까? 모든 교육의 목적이 민주 시민을 육성하는 것이라면, 성교육 역시 생물학적인 지식을 전달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어떤 편견이 있으며 그 편견이 어떻게 성차별을 용인하는지 성찰할 수 있는 지표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성교육은 성에 대한 지식, 태도, 생각, 행동 등을 넘나들며 성평등을 지향하게 되며, 자연스럽게 성정체성, 혐오, 연애 및 스킨십, 성관계, 성소수자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룰 수밖에 없다. 


2018년, 초중고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청원이 21만 명을 돌파하고, 청와대에서 답변이 나왔다. 실태조사, 매뉴얼 보급, 프로그램 운영 등을 약속했지만 2020년 현재, 과연 무엇이 변했을까? 2018년 스쿨 미투가 한차례 휩쓸고 지나갔지만 성평등한 학교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그렇다면 페미니즘 관점의 성평등을 성교육에서 다뤄 보는 게 어떨까? 이는 성교육에서 다룰 수 있고, 사실상 다뤄야 할 분야다. 그러려면 지금의 주류적인 성교육이 변해야 한다. 청와대 답변원고 또한, “성교육과 페미니즘 교육은 개념이 다르”며, “페미니즘 교육이 인권 교육과 통합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표현함으로써 사실상 성교육과 페미니즘 교육이 다른 것으로 선을 그었지만, 성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기존의 성차별과 우리의 통념을 점검할 수 있는 내용으로 성교육이 실시된다면, 그 자체가 이미 페미니즘 교육일 수밖에 없다.



작가의 이전글 ‘두 개의 성’이라는 함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