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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sepina Dec 13. 2022

그들의 현재에서 내 미래를 그렸다.

2022 god 완전체 콘서트

 조금 다른 날이었다.

'퇴사 마렵다'는 말은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분기에 한 번씩은 뱉는 '배고프다' 같은 관용어 이겠지만 최근 들어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는 빈도가 잦아지더니 그날은 진심으로 울컥 솟아올랐다.

 일과 나를 동일시해서는 안된다는 걸 알지만 나는 허드레 일을 도맡아 하는 '하찮은 사람'이라는 자괴감과 늘어가는 일에 그 어떤 보상이나 인정도 받지 못한다는 분노가 온통 나를 압도하던 하루였다.

 변화의 흐름이 있다면, 그리고 그 흐름이 널 밀어내는 것 같다면, 그래서 너무 힘들 것 같으면, 그만 놓는 것도 한 방법이라는 조언을 친구가 해주었다.


내 감수성과 정서력의 팔 할 이상은 10대에 이루어졌다고 할 만큼 어린 시절 많은 노래를 들었고,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를 봤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가요를 많이 들은 탓에 내 나이에 맞지 않는 옛날 노래들을 참 많이 알고 있는데(가사도 완벽히 외우고 있다. 역시 공부는 어릴 때 해야 하는 게 맞는 듯...) 어릴 때엔 이게 나름의 장점(?)이 되기도 했는데 요즘은 안 그래도 옛날 사람인데 더 옛날 사람으로 인식되는 것 같아 굳이 아는 척을 안 할 뿐이다.

 중2병은 나도 피해 갈 수 없었던 건지, 아니면 그 시절 나의 주장대로 나의 음악적 조예가 깊었던 탓인지 나는 조금 남달랐다. 본격적으로 아이돌이 등장하고 그 아이돌 팬들이 편을 가르며 싸울 때(참으로 소모적인 행동이었다만) 나는 그저 그들을 관망하며 '얼굴만 보고 좋아하는 한심한 애들'이라는 생각을 (속으로만) 하며 '자고로 가수는 음악성이다'라는 신념을 지켜(?) 나갔다. 당시에 나는 singer-song writer를 추종했고(지금도 여전히 최소 27년 이상의 팬심을 이어가고 있다.) 음악 방송 라디오를 즐겨 들었으며 전교에서 몇 안 되는 이 비주류(?) 친구들과 은밀한 음악적 교감을 나누곤 했다. 무난하고 조용했던 성향과는 별개로 한번 좋아하는 것엔 저돌적이고 무지막지한 집요함이 있는지라 반 아이들도 내가 누구를 좋아하는지 다 알 정도였다.

 친하지 않은 아이들도 니가 좋아하는 그 사람 어제 무슨무슨 프로에 나왔는데 봤냐고 다음날 물어볼 정도였으니까. (아마 그들도 날 이상한 애라고 속으로 생각했을 거다.)


 그러니까 내 인생에, 유구한 팬질 역사에 아이돌은 존재하지 않았던 거다.

그러던 어느 날의 한 순간이었다. 국민 예능 프로 '재민이의 육아일기'를 나도 대세에 맞춰 보다가 한 멤버의 어떤 결정적인 장면 하나에 정신을 놓고 만다. (내가 대게 사람에게 빠지는 순간은 '말'에 있었다.) 지금 내 외장하드엔 육아일기 전편이 있는데 다시 볼 때도 내가 사랑에 빠진(?) 그 장면은 몇 번이고 다시 돌려보곤 했다. 아무튼 나는 그 순간 그를 좋아하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내가 대세 아이돌을?'이라는 무너진 나의 기준에 자존심이 상했던지 "나는 우리 오빠를 좋아하는 거지, god를 좋아하는 건 아니야" 라며 의미 없는 말을 꽤 오랫동안 하고 다녔다.(이건 마치 내가 '성시경 노래를 좋아하는 거지, 성시경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조오금 비슷한 맥락... 얼마 전에 성시경 팬클럽 재가입비 냈다...)

 그래 놓고는 언행불일치로 인기가요 보려고 독서실에서 시간 맞춰서 돌아왔고, 하루 온종일 god 노래만 들었고, (팬 아닌 사람들도 노래 좋은 건 인정?) 가용자금을 최대한 활용하여 무언가를 사모았다.


 하지만 아이돌의 생리와 생명이 다들 비슷하듯 그들도 비슷한 수순을 밟고 있었고 이미 성인이 되어 서울에 온 나는 singer-song writer, 내 최애의 콘서트를 쫓아다니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그들을 잊고 있었다. 몇 년 뒤 정신을 차리고(?) 솔로 활동을 하는 오빠의 공연장과 팬미팅을 쫓아 다니며 "우리 오빠를 실물로 보다니!!" 다시 두근거림을 얻긴 했지만 이상한 허전함이 있었다. 그게 뭔지 그때는 몰랐다.

 그러던 2014년.

15th Anniversary Reunion Concert

기적과 같던 완전체 콘서트를 가게 된다.

불꽃 튀는 예매 전쟁에서 그나마 겨우 구했던 자리.
도대체 그동안 숨어있었던 그들은 얼마나 많았던가.(....)
앨범 발매되고 고작 며칠이 지났을 뿐인데 신곡들은 다들 랩까지 어떻게 그렇게 잘도 외워하는 건지.
 
나는 또 어땠나. 오글거린다고 해놓고 잘도 그 오글거리는 응원법을 따라 하고 그 많은 랩들을 다 기억하고 있는 것도 신기했지만 심지어 안 틀리고 따라 불러. 반복된 몸의 기억은 참으로 무섭다.

보고 있는데도 믿기지 않아 처음 몇 곡 동안은 내내 머리가 쭈뼛서고 온몸에 소름이 돋는 전율이 이어졌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 내가 보고 있는 이게 진짜 맞지.  

좋아하는 가수들의 공연을 수도 없이 갔고 그때마다 격한 감동과 환희와 기쁨을 느껴봤었지만 이건 또 다르다. 내 인생에선 처음 보는 5명의 공연이었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공연이기 때문일까.

저 노래를 들을 때의 나.
저 노래를 좋아하던 친구와의 추억.
저 노래 인기가요에서 1위 하는 거 보려고 독서실에서 빨리 정리하고 돌아오던 기억.
모든 게 아무렇지 않게, 어제 일인 것처럼 제자리로 돌아와 퍼즐이 맞춰지는 것 같았다. (....)

준비된 이벤트 순서에 맞춰 앵콜 곡 사이에 팬들이 모두 펴내 보인 '다신 헤어지지 말자'플래카드에 놀라고 감동받은 그들은 울었다. 나도 울었다.(....)

"니가 다시 오기를, 우리가 다시 다시 만나기를"이라는 노랫말이 이토록 가슴 절절하게 와닿은 적이 있었나 싶었다.

아주 오랫동안 묵혀둔 정기적금을 찾은 기분.
(이런 기분 모르지만 이런 기분일 것 같은 기분)
어젠 난 나에게 그런 말을 했더랬다.
"살아 있어 줘서 고맙다."

 -2014년 미니홈피 기록中-

 콘서트가 시작될 때부터 온 몸에 소름과 전율이 계속 이어지다가 중반 이후부터는 그냥 계속 펑펑 울었다.

이렇게 울다가 실신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내내 울었다.


'헤어질 때 우리 다시 만나자고 맹세했던 그 약속 지키려고 하늘색 풍선 가득했던 You&Me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하늘색 약속中)
'다 모두 다 말할 거야.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니가 다시 오기를 우리가 다시 다시 만나기를' (다시 中)


저 구절에서 얼마나 목이 터져라 부르며 울어댔는지 아직도 저 노래를 들을 때마다  순간이 생각나 몸이 부르르 떨린다.


그냥. 그 시절이 단숨에 통째로 내게 왔다. 나의 10대가.

연약했지만 그래서 뜨거울 줄 밖에 몰랐던 그때의 내 모든 것들이.

 god 내 오빠를 질투했던 나의 첫 남자 친구와 그 남자 친구를 뺏겠다고 내 앞에선 웃고 뒤에선 온갖 추잡한 짓을 해대던 언니라 불렀던 어떤 여자와의 이상한 삼각관계의 기억과

 지금은 연락이 뜸해졌지만 그때는 나의 하루가 너의 하루일만큼 모든 일상을 공유했던 친구와의 희로애락이 담긴 순간들과

 힘든 수험생활, 책상과 사물함에 코팅된 오빠의 사진을 붙여놓고 하루하루 연명하듯 이어가던 나날들.

그 모든 것들이 기억의 빗장을 열고 쏟아져 내렸다. 이렇게 소중한 추억이 있었노라며.


 다행히 그 이후로 2015년도, 2017년도, 2019년도 공연은 이어졌고 극적으로 티켓팅은 성공했으며 빠짐없이 공연에 갈 수 있었다.


 그리고 2022년.

여전히 티켓팅에서 서버는 다운됐고 표는 겨우 구했으나 친구와 따로 앉을 수밖에 없었지만 이것도 감지덕지 감개무량이었다.

 나는 또 잠시 현실의 나를 잊을 거야. 응원구호를 힘차게 외치고 소리치며 스트레스를 풀 거야. 어릴 때의 나로 돌아갈 거야. 가기 전의 나는 그랬다. 언제나 그렇게 위로받았으니까.

 그런데 이번엔 좀 달랐다. 나는 이번에 다른 것을 보았다.

최저연령이 42세인만큼 댄스 곡을 연달아 몇 곡을 하고 나선 바로 멘트를 할 수 없어,

 "저희에게 시간을 좀 주세요.."라고 하기도 했고

저 끝에 있는 관객석을 가리키며,

"노안이 와서 멀리 있는 건 잘 보여. 가까이 있는 게 안 보인다니깐. 손금이 안 보여"라고 우스개 소리도 했지만 그들은 다르지 않았다.

 늘 하던 댄스곡의 어떤 것도 빼지 않았고 격렬한 안무에 라이브로 몇 곡을 계속 이어 했는데 흐트러지지 않았다. 10대, 20대에 했던 그 노래들을 40대, 50대가 되어 부르고도 말이다.

 심지어 한 번도 부르지 않았던 몇 년 전 발매한 앨범의 댄스곡의 새 안무를 만들어 선보였다. 단지 팬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안무 하나에 한 달을 썼다고 했다.)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몸은 말을 듣지 않고, 안무는 너무 격하고 온갖 좋은 약들을 다 때려 부으며(?) 투혼을 불사르며 연습했다고. 그랬을 거다. 50이 넘은 멤버, 기초체력이 약한 멤버, 애당초 춤을 안 추는 멤버 등... 쉽지 않은 조건(?)인데 저렇게까지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연습과 노력을 했을까 싶었다. 정말 힘들었겠다는 생각과 함께 오랜 시간 피나는 연습을 했겠구나 싶은 마음에 울컥하는 감동을 넘어 존경심이 들었다.

 단순한 팬심이 아닌 인간에 대한 경외심이 불러일으켜졌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위치와 마음을 한 발짝 뒤에서 바라보았다.(bgm 지오디 '길'을 깔아본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곳은 어딘지...)

 곧 새로운 도전의 길을 앞두고 있는 나는 시작도 하기 전부터 이미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잘 못할까 봐, 일을 그르치게 될까 봐, 그리고 혹시 그 결과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까 봐.

 강박에서 벗어나려 스스로에게 세뇌를 시켜보려 해도 잘 되지 않아 점점 더 예민해져 갔고 급기야 또 회피하고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차오르던 차에 업무적인 스트레스까지 더해져 폭발할 것 같은 순간이었다.

 공연장을 나오며 한 번밖에 예매 안 한 나 자신을 가장 먼저 탓했고, 그리고.. 과거의 나를 지켜주고, 미래의 길에 대한 내 마음을 다잡게 해 준 오빠들에게 너무 고마웠다.

 시간이 없다는 말은 핑계다.

 나이가 많다는 말은 변명이 될 수 없다.

그들도 저렇게 눈앞에서 증명해 보이는데 아직 피나는 노력을 해보지도 않은 내가 겁부터 먹는 건 건방지고 오만한 거란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 잘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저절로 아로새겨졌다.



언제까지 격한 댄스곡에 라이브를 하며 공연을 해 줄 수 있을까.(얼마 안 남았다고, 곧 앉아서만 노래해야 하는 날이 올 테니 볼 수 있을 때 얼른 보러 오라고 했다.ㅠㅠ)

언제까지 이런 시간들이 이어질 수 있을까.

자주가 아니어도 괜찮다. 100%가 아니어도 괜찮다. 계속 이렇게 서로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관계와 시간이 지속될 수 있으면 좋겠다.

추억팔이라도 괜찮다. 그 추억 돈으로 얼마든지 살 테니.

그러니 제발 아무도 사고 치지 말고 건강하길.

나도 건강 챙기며 티켓값 정도는 걱정하지 않을 재력(?)은 확보해 둘 테니.


*쿠키 에피소드*

2014년 완전체 첫 콘서트 이후 친구(공연에 가지 않은 다른 친구)와 클럽.st 유흥가에 갔다가 사물함 앞에서 완전체 콘서트에 갔다는 어떤 여자아이를 만났다. (어떤 연유로 생판 모르는 여자애랑 그런 얘길 하게 됐는지 계기는 기억나지 않는다.)


나           (호들갑) 으악??!!!!!! 언제 갔어요???? 난 막공!!!

그녀        (더 호들갑) 아아!!!!!전 첫공이요!!!!


동지를 만난(?) 반가움에 우리의 목소리는 커졌고 그녀의 친구는 뻘쭘히 저 뒤에 서 있었다.


나           나 완전 울었는뎅!!!

그녀       저두욧! 저두요오~~~!!!

나          근데 몇 살인데 지오디를 좋아해요? (어려 보였다.) 그 세대가 아닐 텐데.

그녀       아녜요.... 언니(급 언니라고 부른다.) 저 초딩때부터 완전 좋아해서..   

나          아..징짜?(갑자기 반말하는 나...긍데 원래 클럽 가면 반말들 많이 하잖아?ㅋㅋㅋ)

내친구    (급 끼어듦) 누구 좋아했는데?

그녀       저....OO 요..

나, 친구  (동시에) OO????

그녀       넵!!!

나          어머.. 취향 특이하네.

그녀       왜요옹~~~저 얼마나 좋아하는뎅...언니는 누구 좋아하는데요...?

나          나? 나는....

내친구    (또 끼어듦) 얘는 OOO 좋아해.

그녀       아......이 언니 얼굴 보네.

내친구    어...얘 얼굴 본다.

그녀       아~~~이 언니 안 되겠네.


나 우리 오빠 얼굴 보고 좋아한 거 아닌데.. 얼굴 본다는 말에 이상하게 팔푼이처럼 기분이 좋아져서 침묵했다.

그 취향 특이한(?) 클럽 동생(!)도 이번 콘서트에도 왔을지 궁금해진다.

어딘가 한 자리에 앉아 나와 같은 마음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냈길.

우리는 이것을 가족사진이라 부른다. 첫날 사진 어딘가에 나 있다. <출처 : fangod_offi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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