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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sepina Jun 23. 2022

널 그리는, 널 부르는, 내 하루는

일상을 찾은 첫 콘서트, 성시경의 '축가'를 보던 날.

 5월 27일.

  코로나 이전까지만 해도 매년 열리던, 그러나 2년 동안 열리지 못했던 성시경의 '축가' 콘서트에 다녀왔다. 몇 년 전에도 이 컨셉의 콘서트를 갔었지만 비싼 콘서트를 많이 본, 쓸데없이 고퀄이기만 한 내 귀에 야외 콘서트의 음향은 마음에 들지 않고, 무엇보다 통제할 수 없는 변수에 불안감이 극도로 높은 나에게 날씨에 대한 부담감은 콘서트를 보기 전부터 신경쇠약에 걸리게 했다. 이후로 아무리 좋아하는 가수라도 야외 공연장은 다 패스를 해왔지만 이번엔 갔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신기하게도 코로나 전 마지막 콘서트가 그의 콘서트였고, 코로나 제재가 풀린 첫 콘서트 가 이번 그의 콘서트였다.

https://brunch.co.kr/@cherry0327/56

 (위에 글에도 거듭 쓰고 있지만 나는 딱히 '성시경'의 팬은 아니다.)

코로나 기간에도 뮤지컬은 몇 차례 봤었고 타 가수 콘서트도 갔었지만 찍 소리도 내지 못하게 하고 기립도 안 되는 콘서트라 노래도 발라드밖에 부르지 않았고 그랬기에 사실 반쪽 콘서트도 되지 못했다.(소리를 못 지르는 콘서트라니!! 이건 고문이다!!)


 성시경 콘서트는 예매 자체가 어렵기로 유명한데 지난해 첫 유료 팬클럽을 모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특권에 팬클럽 선예매권을 준다기에 그 선예매권을 하나 갖자고 팬클럽에 가입했다.(딱히 팬은 아님.2  창피해서 변명하는 거 아님.)

 그래. 돈을 냈으니 뽕도 뽑아야겠고, 제대로 된 콘서트가 너무 가고 싶었기에 싫어하는 여러 요소를 안고도 가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유독 성시경 티켓팅에 안 좋은 기억이 많았기에 '으하하. 나는 이제 선예매권을 가지고 있는 팬클럽이지. 이제 피켓팅의 스트레스에서 자유롭다' 하고 오만방자했는데. 악연은 괜히 악연이라 부르는 게 아니다. 분명 선예매권을 줬는데도 결국 나는 팬클럽 선예매 두 번, 일반 예매 두 번, 토탈 4번의 피켓팅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과정은 생략한다. 이 이야기만 한 꼭지 스토리를 쓸 수 있다.)

1차 열 받음.
2차 열 받음.
글쓰는 게시판도 없는 팬클럽 사이트에 대한 분노. 안티 아님. 팬클럽 회원 맞음.

"첫 공연 날 눈물 날 것 같아요." 란 그의 말처럼 나도 따라 울고 싶어서 우여곡절 끝에 첫공을 예매했고, 평일이라 오후 반차까지 냈다.(딱히 팬은 아님3. 부끄러워서 변명하는 거 아님.)

 급한 마무리를 하고 허둥지둥 사무실을 박차고 나온 보람이 있게 평일 낮의 한가로움을 달콤했다. 여유롭게 친구와 커피를 마시고, 이른 저녁을 먹고, 퇴근 직후 빵을 먹으며 공연장으로 뛰어오는 직장인들을 보며

"으이그, 으이그! 그러니까 반차를 냈어야지"라고 못된 발언을 재수 없게 뱉으며(친구한테만 들리게) 허세도 부려봤다.

 저녁을 먹고 공연장으로 걷던 길.  

춥지도 덥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에 인도 담벼락을 덮은 예쁜 장미.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계절인 여름으로 달려가는 이 시점과 지금의 여유로움이 좋아서 입 밖으로 그 말을 꺼냈다.

 "나, 지금 너무 좋아. 이 공기. 평온함."

 예전의 나라면, 혹시라도 그런 말을 입 밖으로 꺼낸다면 불행의 신이 다가와 '오호라. 너, 그런 말을 했단 말이지?' 하며 가진 것도 빼앗아 갈까 봐 생각으로 끝냈을 거다.

 하지만 조금은 달라졌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 작은 것도 느끼려 하는 연습. 순간을 놓치지 않는 자각.

지금 이 순간이 다시는 오지 않는다는 것을 이젠 머리가 아닌 몸으로 안다. 좋은 감정은 최대한 부풀려 나에게 인지시켜주고 싶다. 그것이 인생의 경험치 덕분인지 코로나라는 외부 상황이 준 일상에 대한 절실함인지는 모르겠지만 일생이 비관주의자였던(지금도 아직은..) 내겐 분명히 고무적인 변화다.

몇 번의 봄을 흘려보냈을까요.
모두 별일 없길 바라며.
그저 안녕하길 바라며
우리 참 잘 견뎠어요.

그 생각 끝에 도착한 공연장 앞에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코로나와 함께하며 보낸 시간에 저 문구는 이제 한 글자 한 글자 그냥 흘려지지 않는다. 별 일 없이 안녕하기만 해도 우린 참 잘 견뎠다. 그것만으로도 참 다행이다. 몇 년 동안 일상을 잃고, 좋아하는 것을 하나도 하지 못했어도 나... 그래도 이 공연장에 다시 올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하고 큰 일 없이 살아주어서 진심으로 감사했다. 나에게도. 세상에게도.


 '축가'라는 명백한 컨셉을 갖고 있는 만큼  모두가 아는 유명한 노래와, 인지도 높은 게스트들이 촘촘하게, 또 열정적으로 시간을 채웠다. 성시경 보다는 성시경의 노래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의 앨범 곳곳에 숨어 있는 명곡을 들을 수 없는 게 다소 아쉬웠다. 물론 그는 이미 공연 전 공연의 주가 될 곡들의 성격에 대해 설명했고, '제 노래만 듣고 싶으면 제 개인 콘서트에 오세요'라고 공지를 했지만 말이다. (그의 유튜브도, 인스타도 보지만 딱히 팬은 아님4. 남사스러워서 변명하는 거 아님.)


"나이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는 게, 나이가 들어서 좋은 점은 이런 거 같아요. 내가 생각하고 믿고 있던 기준들이 계속 바뀐다는 거예요. 절대 안 돼. 절대 싫어. 이랬던 것들이.. 나이가 들고 인생을 겪고 나면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이럴 수도 있지' 하게 되고.. 싫어하던 것들을 좋아하게도 되고, 용서 못할 것 같던 일들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되고... 그게 물론 나이가 들어서 에너지가 없어져서 싸울 힘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는데, 세상에 대해서 단정적으로 생각하지 않게 된다는 거예요."


그래. 맞다. 끄덕끄덕 하는 나를 보면서 같이 나이 들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물론 여전히 나는 호불호가 강하고, 싫은 것이 너무 많고, 고집이 세고, 화도 많고, 둥글둥글한 이상적인 어른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생전 하지 않던 말을 입 밖으로 냈던 공연 전의 내 모습이 달라질 수도 있는 미래를 조금은 더 어른인 그가 그려주고 있는 것 같았다.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코로나 전의 행복을 느끼게 해 줘서,

 고되게 견뎌오던 일상을 잠시나마 벗어나게 해 줘서,

고마운 시간이었다.

앵콜에만 허락되는 촬영 시간. 이 정도로 가깝게 본 건 처음이었는데 소문(?)처럼 3미터 거인은 아니었다.

*쿠키 에피소드*

 몇 달 전, 채널을 돌리다 아주 오래전 방송했던 그의 히든싱어를 보게 되었다.(팬이 아니니 딱히 그의 프로그램을 챙겨본 적은 없었다.) 때마침 마지막 결승 라운드가 시작되어서 나는 숨죽이고 진짜 싱어 찾아내기에 집중했더랬다.


나     (미간 찌푸리고 집중 후) 1번은 무조건 아니고... 2번이네. 2번. 다른 애들은 지금 흉내 내느라 바빠서 호흡이 달리잖아. 성시경은 끝음을 저렇게 안 내거든. 끝까지 단단하게 힘 있게 낸다고. (아주 전문가 납셨다.)

-정답이 공개되었고 내 판단은 적중했다.

나     (기고만장) 맞지? (엄마한테 왜 으쓱하는지) 내가 팬클럽이라구!

엄마  (놀람) 니가? 니가 성시경 팬클럽이라고??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을 전부 다 안다. 갑자기 없던 리스트가 나오니 의아해함.

나    (엄마가 너무 놀라니까 갑자기 한발 물러섬) 아... 음.. 저기... 가입하면 공연 선예매권 준다고 해서..

공연 봐야 하는데 예매하기가 너무 힘들거든..(변명이 길어짐) 그래서... 친구를 꼬셔서... 가입을 했....

(엄마 더 이상 안 듣는데 계속 설명함..)


다 쓰고 보니까 나 조금은, 약간, 일정 부분, 팬 맞는 것 같은데 계속 아니라고 하는 게 (이유는 모르겠지만) 왠지 창피하기도, 부끄럽기도, 남사스럽기도 한 모양이다.

 성시경 팬 분들! 공격하지 마세요! 저 팬클럽 회원입니다.!!(이럴 땐 팬클럽으로 선 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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