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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sepina Jun 06. 2022

용서할 순 없지만 기억해 줄게.

'별 볼 일 없는 나를 사랑해주세요' 일드 리뷰

 길고 긴 서론(??)을 끝냈으니 이제 특정 드라마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제목은 '별 볼 일 없는 나를 사랑해주세요'인데 일드엔 이런 느낌의 제목이 많아서 처음엔 번역체인가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냥 이게 일본 특유의 스타일이었다. 이제까지 본 일드의 제목들도 비슷한 결을 유지하는 게 참 많은 걸 보면.( ex.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혼인 신고서에 도장을 찍었을 뿐인데, 오늘은 회사 쉬겠습니다... 등등) 뭐랄까 굉장히 직관적인 느낌이다.(지금 생각나는 대로 정한 것 같은)

 인터넷을 찾아보니 번역하면서 미묘하게 뜻이 달라졌다며, 원 제목의 맛이 완전히 살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건 내가 일어 마스터가 되지 않는 한 알 수 없는 차이라 알기를 포기한다.

 일단 제목에 큰 오류(?)가 있는데 여주인공이 별 볼 일이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쁘다.

나이는 먹었고(그래 봤자 30), 할 줄 아는 건 하나도 없고, 사람을 잘 믿고, 늘 사기를 당하는, 어떻게 보면 민폐 of 민폐인데... 그래도 예쁘다.(딱히 외모지상주의자는 아닙니다만..)

 사실 나라마다 선호하는 외모가 달라서인지, 우리나라 연예인에 익숙해져서인지 일드, 중드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대부분 남주에 비해 여주 외모가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여주에게 마음을 주는 데 시간이 더 걸리곤 했다.(딱히 외모지상주의자는 아닙니다만 2...) 그런데 여기 나오는 여주는 예뻤다. 알고 보니 나 빼고 다 아는 일본 유명 배우란다. (나는 옛날부터 지금까지 통틀어 아는 일본 연예인이라곤 '기무라 타쿠야' 밖에 모르는 그런 낡은 사람이었음을 고백한다.)

 모처럼 예쁜 여배우가 나왔는데 제목과 배우가 언밸런스하고 막상 보다 보니 내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드라마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너무 건조하다. 로맨스인데 스킨십이 적다. (大 실망의 부분) 너무 스킨십이 남발되어도 나는 짜게 식는 편인데(몹시 까다로운 시청자) 중간중간에 한 번씩 나오면서 애타게 해야 하는 부분도 별 볼 일 없이(?) 넘어간다. 이럴 거야?! 나, 화낼 거야!!! 로맨스의 본분을 다하라!!

 게다가 서른살인 여자를 이제  인생 다 끝난 폐품이라 칭하는 반복되는 대사도 불편하다.(2016년 드라마이면 그 정도로 옛날도 아니건만) 또 가만히 생각해보면 관계도가 막장인데 그걸 아무렇지 않게 정상처럼 그려내는 것도 이상하다.

 그래도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부분에서 튀어나오는 주인공들의 티키타카 센스에 혼자 여러 번 웃었고(일드가 이런 지점들이 많았다. 기습적으로 웃게 되는) 갑자기 후려치는 대사에 서늘하게 마음이 내려앉기도 했다.

 원작이 만화라는 사실을 알고 원작도 궁금해 점포정리 중인 우리 동네 만화가게도 방문해봤는데 구매는 실패했다.


나는 딱히 불행한 건 아니다.
트라우마도 없고 극적인 고생도 하고 있지 않다.
그냥 인생이 좀 잘 안 풀릴 뿐이다.

1회의 이 나레이션부터 숨이 턱 하고 막혔다.

저마다의 인생이 다 그러하겠지만 문을 열고 들여다보기 전엔 평범의 범주에 있다. 내 인생도.

그래서 감히 불행하다고 할 수 없었다. 함부로 힘듦을 이야기해서도 안됐다. 쉽게 넘어가는 일 하나 없이 인생의 분기점마다 곤두박질치는 이유는 내가 최선을 다해 살지 않은 탓인 것만 같았다. 억울했지만 누구나 인정할만한, 그런 드라마틱한 인생의 곡절은 내게 없었다. 낱낱 개의 비극적 에피소드를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비단 내 삶만 그런 건  아닐 것이다. 상흔은 깊지만 쉽사리 보일 수 없는, 위로받기엔 애매한 평균에 조금 못 미치는 인생살이들.

 그런 거였다. 지독하게 불행한 건 아니지만 인생이 유독 안 풀릴 뿐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몰라요. 모르는 게 당연하죠.
다들 '보통'이라고 하는 걸 저는 못하겠어요.
어른이 되면 보통 사람들처럼 연애하고 일도 하고 보통 사람들처럼 남자 친구가
생겨서 보통 사람들처럼 결혼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보통이라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보통사람들처럼 사는 건 저한테는 사치였던 거예요
'보통'이라는 것에는 힘든 일들도 포함되는 거 아닐까?
다들 생각보다 필사적으로 평범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을지도 몰라.

그 억울한 마음에 대해 답해주는 것 같은 대사가 이렇게 이어졌다. 솔직히 크게 위로가 되진 않았지만 나만 애쓰고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 알고 보면 현재를 유지하기 위해 모두 백조의 다리처럼 발버둥 치며 일상의 힘듦을 견뎌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어리광을 부린 것 같아 살짝 머쓱해진다. 모든 삶에는 명암이 있고 내가 볼 수 없는 다른 이들의 삶의 이면에는 각자가 짊어진 무게가 있을 테니까. 내가 볼 수 있는 부분은 다분히 편집된, 행복만 진열하는 타인의 SNS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게으름 피우지 마.
저 누구보다 야근 많이 하는데요?
서른 넘은 사회인이 자기 혼자 열심히 한다는 건 게으른 거야.
넌 주의 주는 것보다 야근하는 게 편한 것뿐이잖아.
자기가 일하는 것보다 남을 부리는 게 더 어려운 거라고.
앞으로 결혼할 가능성이 0%인 이상 넌 평생 일을 해야 해.
앞으로의 동료들은 전부 너보다 어리겠지.
그 정도 지도력은 갖추지 않으면 힘들 거야.

너무 충격적인 대사라 보자마자 즉시 앞으로 돌려 한 번을 더 봤다.

신입도 아닌 직장인이 혼자 야근을 많이 한다는 건, 성실한 게 아니라 게으른 거라는 생각지 못한 날카로운 팩폭이었다. 남을 부리거나 일을 나눌 수 있는 주변머리가 없어 혼자 다 끌어안고 끙끙대며 야근하는 것이 자랑할 일이 아니라는 말은 책임감이 강해 일을 너무 열심히 하는 사람에겐 상처일 수 있으나 그렇기에 생각해 볼 만한 말이었다. 안타깝게도 내 주변에도 이런 사람이 많다. 나의 경우는 업무의 성격과 직책상 일을 나누거나 지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일단 발뺌을 하지만 일반 회사생활을 했다면 나라고 크게 달랐을 거 같지 않다. 맡은 일을 떠넘기며 주변에 폐를 끼치는 월급루팡들에게 1차적 책임이 있지만(개인적으로 정말 싫어하는 인간 유형이다.) 필요 이상으로 모든 일을 떠맡아하는 것이 습관인 사람도 어쩌면 '내가 아니면 안 될 것'이라는 지나친 자기 우월적 생각에서(자각하지 못할 뿐) 기인된 행동이 아닌지 냉철히 돌아보아야 한다.

 슬프지만 모두 다 알고 있지 않은가.

 (대부분의 경우) 나 없어도 회사는 잘만 돌아간다.


결혼을 전제로?
네. 저랑 아야씨는 취미도 잘 맞고 운명인 것 같아요.
결혼에 있어 중요한 건 강점보다 약점이 같아야 한다는 거야.
무슨 뜻이에요?
결혼에서 중요한 건 좋아하는 게 같은 것보다 싫어하는 것이 같아야 한단 거지.
심오하네요.


(.............)
그게, 좋아하는 건 상대에게 맞추면 즐거움이 배가 되지만 싫어하는 건 상대한테 맞출 수 없으니 말이야. 싫은 걸 참고 있으면 고통이 늘어날 뿐이니까.

 맞는 말 같기도 하고 아닌 말 같기도 하고,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하다.

결혼이라는 어른의 세계는 잘 모르겠지만 연애 과정에서만큼은 상대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관계의 지속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건 맞는 것 같다. 그리고 사실 그게 더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흔히 좋아하는 것 한 두 가지가 같으면 덮어놓고 '통한다'라고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대부분의 다툼과 불화는 누군가의 '싫어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으니까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끌림'이 시작되는 지점이 공통점을 찾아 공감대가 형성될 때라는 것을 생각하면 처음부터 싫어하는 부분을 맞추는 것 또한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뭐 좋아하세요?"라고 묻지

"뭐 싫어하세요?"라고 물어보진 않으니까.(비관주의자인 나라면 가능)

 싫은 것을 참아주고 맞춰주는 것 또한 사랑이 아닌가 반문한다면 그 또한 무조건 부정할 수는 없지만 한쪽의 일방적인 인내와 고통의 결과라면 그걸 참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다시 물음이 원점으로 돌아온다.

 모르겠다. 어렵다.

그냥.. 요즘 같은 때엔 좋아하는 것이든, 싫어하는 것이든 한쪽만 맞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것도 행운이지 싶다.


이미 알던 이야기도 다시 생각하게 만들어 새롭게 깨우쳤고, 심저의 막연했던 생각과 느낌을 명료화할 수 있게 만드는 대사들 때문에 나는 이 드라마를 중간에 놓지 못했다.

로코의 탈(?)을 썼지만 사랑뿐 아니라 사회생활에 대한 자세, 보이지 않는 인생 너머에 대해 요란하게 가르치지 않으면서 고요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준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로맨스 드라마가 마지막 회 10분 전까지 건조했던 것까지 용서해 줄 순 없다.(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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