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sepina Dec 23. 2019

냉철함 속에서 발견한 온기

2019 성시경 콘서트

 분주했던 한주의 끝에는 콘서트 일정까지 계획되어 있었다.

1월에 갔던 콘서트 이후 그다음 콘서트가 12월이라니. 올해 내 삶이 얼마나 불안했고 불안정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성시경 콘서트와는 기막힌 악연이라고 할 정도로 연이 잘 닿지 않았다. 가장 돈이 없던 시기라  1+1 카드 행사를 했는데도 티켓팅 자체를 시도하지 못했고, 잔뜩 예매 대기를 하고 있다가 눈 돌아가게 바쁜 통에 잊고 있다 야근하며 밥 먹다가 "아!! 성시경 콘서트 예매!!"소리를 질러서 밥 먹던 사람들을 다 놀래킨 적도 있었다.

 몇 년 전에 겨우겨우 야외 콘서트를 처음 갔는데 팬은 아니니까 좋은 자리에서 굳이 볼 필요는 없겠지 했다가 마치 초대권으로 온 것 같은 ,  공연에 집중하지 않는 주변 관객들의 태도와 야외 특성상 퍼져나가는 음향에 낭패를 봤다.(이후로 아무리 좋아하는 가수여도 야외 공연장은 다 패스한다.)

 노래 듣는 게 목적이더라도 다음엔 괜찮은 자리를 예매하고 봐야겠다 마음먹은 지가 몇 년 전인데 여전히 한 번을 보지 못했다. 하필이면 내가 여행 가 있을 때 티켓 오픈을 한다던가, 여행 가는 날짜에 콘서트를 한다던가 기가 막히게 내가 갈 수 없는 날만 골라서 티켓 예매를 하던가 공연을 하더라.

 "아!! 안가안가!! 진짜 더럽게 가기 힘드네"  

 라고 말은 했지만 작년엔 티켓 오픈을 놓쳐서 못 갔다. 이틀에 한번 티켓파크와 예스24 공연 티켓 소식을 수시로 보는 나인데 뜬금없이 하나티켓에서 예매를 했네?

 "나랑 안 맞는다니깐. 안 간다고!!"라고 작년에도 센 척했지만 올해 공연 소식이 들리면서 하나티켓 티켓 오픈 상황도 수시로 체크하고 있었다.

 분명히 이틀 전에 공지 없는 걸 확인했는데

 "야, 어제 티켓 예매했다는데?"라는 소식을 친구가 전했다. 내가 오전에 확인한 그날 오후 공지가 떴고 내가 알았을 땐 이미 전날 오픈이 된 상태였다.

 "아으 진짜! 이렇게 더럽게 안 맞을 수가 있냐? " 난 안 가기로 마음먹었다.(이상한 오기) 그런데 친구가 못내 아쉬워한다.

 "그럼... 입금 안된 표가 오늘 자정 넘어 풀릴 테니 내가 한번 보기는 할게."(마음 약한 타입. 오랜 예매 경력으로 티켓 예매는 내 담당)

 그리고 12시 땡 하면서부터 새로고침을 누른 결과(할 거면 최선을 다하는 스타일) 2층 3열 괜찮은 자리를 건졌다. 다른 연말 콘서트 계획이 없으니 그래 어디 내가 한번 가주마! 마음으로. 그렇게 12월 21일 공연을 다녀왔다. (사족이 기네요? 오랜만에 글을 썼더니 또 말이 많아집니다.)


 나는 성시경을 좋아한다기보다 성시경 노래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조금 더 정확하게는 유희열, 윤종신, 김형석 곡 스타일에 성시경 음색을 좋아 한다랄까. 

 성시경이라는 사람은 뭐랄까... 조금 까칠하고, 냉정하고 약간 다가가기 어려울 것 같은 사람의 느낌이라(다가갈 일도 없지만) 그냥 이상하게 좀 정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몇 년 전 그가 예능프로에 나와서 하는 어떤 말을 보고 큰 깨달음을(?) 얻은 적 있었다. 

 "저는 사진 찍는 걸 싫어해요. 근데 누가 계속 사진을 찍자고 하면 '내가 사진 찍나 봐라. 절대 안 찍는다' 이런 마음을 먹어요"(너무 큰 깨달음이라 진짜 정확하게 기억함)

 주변에 있던 MC와 패널들은 그런 그의 태도에 야유를 퍼부었지만 난 순간 몸이 굳었다.

나를 보는 것 같았다. 하나도 틀리지 않고 정확히 내 모습이었다. 아... 그 뭔가 말할 수 없는 까칠함이 나를 보는 것 같아서 난 싫었던 거구나. 난 그냥 내가 싫었던 거구나. 하고. 그때부턴 그를 좀 달리 봤던 것 같다. '그래. 난 너의 마음을 이해해. 니가 무슨 말 하는 건지 알아'와 같은 혼자 느끼는 동질감


4시간이나 이어진 긴 공연에는 그의 아이돌 댄스도 있고, 피아노 연주도 있고 감동적인 발라드 열창도 있고 다채로웠지만 만 하루가 지난 이 시점에선 이상하게  그의 노래보다 그가 남았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러 갔지만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주었던 그.

 그는 여전히 너무도 나와 비슷했다. 얼마 전 어쩔 수 없이 SNS을 시작하면 욕받이가 된 그의 말.

"전 SNS 하고 맞지 않거든요. 개인적인 걸 노출하는 걸 안 좋아하고(응. 나도)

사진 찍는 거 싫어해서 사진도 없고요.(응. 나도. 여행 갈 때 아니면 사진 안 찍어)

SNS는 다 좋은 것만 보여주잖아요. 전 근데 그게 가짜 같거든요. 욕 들어도 솔직한 게 좋고.

근데 제 성격상 한번 시작하면 열심히 해야 한단 말이에요.(저요 저요! 그런 사람 여기 또 있습니다!)"

 같이 간 친구가 날 보며 웃는다. 뭐? 왜? 왜 웃는데!!ㅋㅋ


처음 가사를 보고 '와.. 세상에 이런 가사를 쓸 수 있어?' 했던 내가 진짜 좋아하는 히든 곡인 '그 자리에 그 시간에'라는 노래. 오늘도 불러줬으면 좋겠다 생각하고 있는데

 "제가 서른 중반까지 가장 슬픈 곡이라고 생각했던 노래예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데 이 곡 하겠다니까 노래는 좋은데 유명 곡도 아닌데 왜?라고 하셨어요. 연주하기 어려운 노래거든요"라며 불러줘서 소름이 돋았다.

 또 유명하진 않지만 내가 좋아하는 '눈부신 고백'이라는 노래.

꼭 참아왔었던 그 말
널 사랑한단 말
늘 하고 싶던 말 애써 감추려 해도 더 이상 나 참기 힘든 말  
이제껏 하고 싶은 말 눈부시게 빛나는 말
널 사랑한다고 처음부터 늘 그래 왔다고  
수줍은 한마디 너를 사랑한단 말                    

좋아는 하지만 너무 어려운 노래라 듣고 있는데도 내가 고음을 하는 것처럼 힘든데 노래 끝나자마자,

"아.. 진짜 힘든 노래예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면 되지. 뭘 자꾸 하기 힘든 말, 하고 싶은 말.. 그러는 건지"라고 해서 감동을 빵 터뜨렸지만 참 캐릭터에 맞는 대사라고 생각했다.ㅋㅋ


"나 울지도 몰라."라고 친구에게 미리 경고를 해둔 상태였다. 노래 특성상 분명히 어떤 지점에서 내가 울 것이라고 예견했다. 게다가 너무 오랜만에 간 콘서트이고 콘서트에 갈 수 없을 만큼 올 한 해는 너무 비루했으니까.

'거리에서' '넌 감동이었어' 등등의 위기 곡들(?)이 여러 차례 지나도 마음의 준비를 해서인지 눈물이 나진 않았다. 그런데.

 '두 사람' 노래를 끝내고 관객 중 누군가의 흘리는 눈물을 보고 울컥한 그가 눈물을 훔쳤다. 동시에 그렁대지도 않던 내 눈에서 갑자기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나는 나를 당황시켰다.

 "어머, 나 왜 이래.."(노래 들을 때 울면 아련하니 감성쟁이로 보이기라도 하지)

 난 그의 팬도 아닌데 이 눈물은 뭘까. 전혀 울 것 같지 않은 사람이 눈물을 보일 때 두배로 터져 나오는 측은지심인지 곧 어디선가 터질 눈물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의 약한 부분을 뚫고 방류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오래된 팬 인 것처럼 주책을 떨었다.


"이번 일 때문에 힘들었고 지금도 힘들어요. 살면서 '와~나를 이렇게까지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고?'이런 느낌 받으신 적 없죠? 모르시길 바랄게요. 그래도 걱정하진 마세요. 젤 쓸데없는 게 연예인 걱정인 거 아시죠? 그래도 절대 자살 같은 건 안 합니다. 누구 좋으라고?"

 부러웠다. 아무리 팬이어도 일정 거리를 유지하는 게 좋다고 하는 그의 많은 면은 나와 비슷하지만 내겐 저것이 없다. 강한 멘탈. 튼튼한 자아. 그래서 그런 남자를 많이 만났지. 마음은 흔들되 정신을 잡아 줄 수 있는 건강한 에고를 가진 사람을.

 "제가 마지막으로 한 바퀴를 돌 거예요. 근데 손 잡아달라고 손을 내미시는데 못 잡아드리면 제가 나쁜 새끼 같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지나갈 때 그냥 손 인사만 해주세요"

 그는 미리 원하는 것을 정확히 말하고  한 바퀴를 돌았고 그의 말대로 모두 질서 정연하게 손만 흔들었다. 깔끔했다. 내가 원하는 공연문화의 끝이었다.

나 역시 가수들이 이런 마지막 퍼포먼스를 할 때 관객들이 질서 없게 너나없이 달려드는 걸  싫어한다.

 


가끔은 오해를 살만한 말투에 너무하다 싶게 냉정한 태도가 때론 반감을 살 여지를 주는 것 같지만 본인의 행동에 비해 과한 비난을 받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다.(지금 약간 내 변명하는 기분이 든다.)

 명명백백한 것을 좋아하고 개인의 사적인 영역을 중시하기에 그것을 지키고자 하는 행동들이 너나없는 공동체 문화와 좋은 게 좋은 거라는 관습과 엉키면 까칠함이라는 화살로 돌아오는 것 같다.(계속 내 변호중..?)

"내가 이럴까 봐 미리 시간이 없다고 지난번에 말했잖아. 나한테 먼저 동의를 구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아.. 또 까칠하게 구네. 피곤하게."

 무례한 사람은 순식간에 상대방을 피곤한 사람으로 만든다. 사전에 미리 상황을 설명하고 확실한 의사표현을 했던 나는 이런 신경질 나는 상황을 너무 많이 겪는다. 그러면서도 늘 '내가 이상한 거야?'란 생각은 떨칠 수가 없다. 난 튼튼한 자아를 갖고 있지 못한 사람이라서.

 그래서 어제 그가 들려준 노래보다 그의 말이 더 기억나는 것 같다. 

지난주에 조금 더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썼지만 그 말은 어쩌면 나 스스로 알고 있는, 닿지 않을 꿈에 외쳐보는 공허한 바람 같은 것일지 모른다. 

 괜찮아. 그런 채로 살아도. 그게 너니까. 나도 그래. 

그는 내게 전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런 메시지를 읽었다.

노력은 해도 너무 애쓰진 말자. 언제나 누구에게나 모든 상황에 따뜻할 필요는 없으니.

너무 뜨거운 것에는 데이는 법이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더 나아지고 싶다. 보여줄 수 있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