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sepina Sep 24. 2023

숨 막혀도 떠나고, 숨 쉴틈만 있어도 떠난다.

가다가다, 하다 하다 북유럽까지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근황 이야기]

편치 않은 몇 개월을 지나왔다.

내가 받는 돈에는 일에 대한 대가뿐 아니라 그 일과 관련된 모든 굴욕, 치욕, 수치심 값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새삼 절감하고 또 실감했던 시간들이었다.

어쨌든 현재는 일단락되었고, 잘 마무리되었고, 나도 다시 일상과 마음의 평온을 찾았다.


그리하여 이제야 적게 되는 7월 북유럽 여행기.

쓸 시간도 없었고, 귀찮기도 했고, 사실 딱히 쓸만한 얘기가 떠오르지도 않았다.

고작해야 과거의 내가  마지막 패키지를 가면서 '내 인생에 다시는 패키지는 없다'라고 했던 기억이 생생히 살아났을 뿐. (물론 이때도 여지는 남겨놨더라..)


[하지만 이번엔 이게 내 인생의 마지막 패키지여행이라고 선언하고 떠났다.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뭐... 호.. 혹시나 (지금은 생각하고 있지 않지만) 자유로 다니기 힘든 여행지가 가고 싶어 진다던가 이번처럼 자유일정이 많은 패키지라면 또 모르겠다.(라고 말하고 여지 남기기) 2019년 크로아티아 여행기 中]


하지만 다시 시간을 돌린다 해도 나는 어쩔 수없이 7월 북유럽 패키지를 선택했을 것이다.

엄마의 숙원 사업은 해결해야 했고, 최근의 나는 도저히 자유여행을 준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숙제처럼 마음의 짐으로 남아있던 북유럽 일기를 이제야 꺼낸다. 드디어 해치운다.

왜냐하면 이걸 써야 다음 예정된 여행기를 또 쓸 수 있기 때문에. 재미없어도 할 수 없다. 딱히 이렇다 할 정보도 없을 것이다. 그래도 안 쓰는 것보다 뭐든 써두면 낫다.


북유럽 날씨

 상대적으로 북유럽에 대한 정보는 다른 유럽에 비해 적다. 날씨정보도 마찬가지였다. 오로라를 보겠다는 일념이 아니라면 북유럽 성수기는 길게 봐도 5~9월. 그중 피크인 7~8월에도 날씨 정보는 고작해야,

'낮에 해님이 나면 덥고요. 아니면 쌀쌀해요'

'비가 오면 춥고요, 더울 땐 또 더워요 '

'해가 나면 낮엔 따뜻하고요. 일교차가 심해요'

 어쩌란 말인가. 이런 말은 안 가본 나도 하겠다.

근데 가보니 알겠다. 이 말 말고는 할 말이 없다. 누군가 나에게  북유럽 여름 날씨가 어떠냐고 물으면 나도 저 이상 더 해줄 말이 없다.

 원데이 포시즌. 패딩과 민소매가 모두 공존하는, 말 안 되는 소리 같지만 진짜고 현실이다. 그래서 현지 가이드가 그랬다. 여기는 옷장정리라는 걸 할 필요가 없다고. 사계절 옷을 내내 입는다고.

 조금 전까지 햇빛이 쨍쨍하던 곳에서 한순간 비바람이 몰아치는가 하면, "내일은 가장 추운 곳입니다" 해서 겹겹이 초겨울처럼 입었던 날은 가장 더웠다. 예측이나 예상이 무의미한 곳. 날씨 예보 따위는 아무도 믿지 않는 곳. 그곳은 그랬다. 난민들을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이 없는 이유 중에 하나도  그것이라 했다. 어차피 그들은 이곳에 정착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고 했다.

  해가 짧고, 날씨가 춥고, 물가가 비싼 곳. 그래. 나도 살진 못하겠다.

 아! 여름은 백야라서 10시에 해가 지고 새벽 3시쯤이면 해가 떴다. 암막 커튼 없이 잘 수가 없었다.

하지만 겨울엔 반대로 10시에 해가 뜨고 오후 3시면 어둑어둑해진다고 했다.

 아무리 복지국가라 해도... 난... 못 살겠다.

날씨가 좋을 땐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스웨덴에서 하나 남은 기억.

 스웨덴 시청사를 갔다. 노벨 시상식이 열리는 곳. 가장 유명한 곳은 블루홀... 어쩌고...

됐다. 기억 안 난다. 오슬로 시청사 사진이랑 놓고 구별해 내라고 하면 자신 없다. 강하게 남은 스웨덴의 기억은 이거다.

 여전히 지금도 시의회장으로 열리는 그곳의 복도를 지날 때, 쭉 진열되어 있는 두상 조각상들을 보며 현지가이드가 저 사람들이 누구일 거 같냐고 물었다.

 역대 왕, 역대 시장 등 뻔한 대답이 나왔다. 나도 이것 말곤 생각이 안 났다. 다 틀렸다.

 "대부분 역대 왕이나 시장들을 얘기하세요. 아닙니다. 저 조각의 주인공들은 이 시청을 지을 때 벽돌을 날랐던 사람, 땅을 판 사람, 기둥을 올린 사람... 실제 시청을 만든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있었기에 이곳이 만들어졌다고 스웨덴에서는 실제로 이 건물을 완성하기 위해 땀을 흘린 이들을 기억하자는 의미로 그들의 조각상을 저 위에 올려두었습니다."

 머리가 띵하고 울렸다. 이것이 진정한 선진국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전 예습에도 없었던 내용이고 중요한지 몰라서 사진도 못 찍고 지나왔다. 돌아와서 검색해 보아도 어디에서도 그런 내용과 사진은 찾을 수 없었다. 역시나, 여전히, 모두가, 대표적인 사실만 알고, 전해지고, 기억하는 것일까.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이런 사실들을 알게 될 땐, 패키지 현지 가이드의 힘이 느껴진다.) 아니면 이런 역사에 전율하고 감동하는 나 같은 존재는 소수인 걸까.(아니라고 해줘요)

 스웨덴은 이것 말곤 하나도 기억에 남지 않았지만 그 어떤 나라에서의 보고 느낀 것보다 강렬했다.

아쉬운 대로 시청사 내.외부

핀란드는 자일리톨과 무민의 나라 아니었어?

 날씨가 너무 사랑스러웠던 날, 헬싱키 대성당과 마켓 광장에서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나의 관심은 오로지 납작 복숭아. 옆에 있던 아줌마가 가이드에게 주변에 무민샵이라는 게 있냐고 물었다. 부탁받은 게 있다고 했다. 근데 아무리 봐도 주변에 없게 생겼다. 가이드도 난감해했다. 못 참고 내가 끼어들었다.

 "공항에 가면 있어요." 6년 전 스페인을 가기 위해 헬싱키 공항에서 경유했던 어쭙잖은 정보였다.

 "어어, 맞아요. 공항에 있어요. (날 보며) 아시네?"(분명히 가이드도 있다고 했다.)

핀란드에서 다음 여행지 덴마크는 항공 이동이었다. 그러니 자유시간이 없는 패키지 일정, 정 안되면 공항에서 사시라, 나의 조언이었다.

헬싱키 공항에서 그 아줌마는 나를 찾아내 내 팔을 붙들고는 "여기 공항 말하는 거 맞죠?" 재차 물었다.

그리고도 면세점에서 나를 만나면 "혹시 어딨는지 알아요?" 했다. 세상에! 공항에 있던 무민샵이 없어졌다. 나중에 여쭤보니 여러 가지 팬시 잡화를 파는 곳에서 겨우 무엇 하나를 구매하셨다고 한다.

 무민뿐만 아니라 휘바휘바! 자일리톨도 공항에서 찾을 수가 없다. 6년 전에도 그랬던 것 같은데.. 분명히 자일리톨 껌, 자일리톨 정, 자일리톨 치약... 종류가 엄청 많다고 했는데 면세점에 없다. 팔 생각이 없니?

 우리처럼 면세점에서 김도 팔고, 마스크팩 10개들이 박스채로 팔고, 홍삼도 팔고 그러란 말이야!!

크루즈에서 자던 날, 그 배안의 면세점이 꽤 저렴하다고 해서 나는 핀란드에서 유명하다던 수분크림 정도를 겨우 구매할 수 있었다. 기후 특성상, 추위에 피부를 보호하는 특징을 가진 화장품이 발달되었다고 해서 샀는데, 수분크림 뭐 거기서 거기겠지 했는데 좋다.... 짜증 나.... 많이 사 올걸ㅠㅠ.

그럼요. '여기가 유럽입니다.' 사진

좋은데 왜 기억 안 나, 덴마크

세계 3대 허무 관광지 중 하나인 인어공주 동상 앞에는 늘 사람이 바글거려서 사진 찍기가 힘들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일빠로 가서 아무도 없을 때 깨끗한 사진을 찍을 수 있었지만 어디 보여줄 만한 사진의 관광지는 아니긴 하다.  차라리 안데르센 동상이 더 관광지 사진 같은디

안데르센 동상의 시선은 아이들이 있는 놀이공원? 을 향하고 있다고 했던거같다.

 약간 외곽으로 나가면  프레데릭스 보르 성과 캐슬정원이란 곳도 있다. 북유럽의 베르사유로 불리는 곳인데 날씨가 좋아서 사진 찍기도 좋고 예쁘긴 했다. 하지만 이것도 베르사유를 갔다 온 사람이라면 큰 감흥이 없을지도. (일단 북유럽을 온 사람 중에 베르사유를 안 간 사람은 거의 없어서....)

 그래도 가장 덴마크 느낌이 나는 것은 뉘하운 항구에서 타보는 운하 유람선. 날씨가 도와줘야 하는데 우리는 도움을 받았다. 약간 베네치아 부라노 섬 느낌이 나긴 하는데 이것도 부라노 섬 갔다 온 사람은 우스울(?) 수 있지만 북유럽 중엔 그래도 덴마크가 가장 아기자기한 느낌이 난다.

(하지만 사진 펼쳐놓고 이 궁전은 어느 나라에서 찍었을까?  이 시청은 어디게? 하면 난이도가 높아진다. 성당, 시청사, 궁전, 광장은 다 너무 비슷해.......)

좌: 프레데릭스 성/ 우: 뉘하운 항구

북유럽의 꽃은 노르웨이긴 하죠.

 다 1박씩 했던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를 거쳐 드디어 노르웨이다. 피요르드를 보러 가는 곳. 로맨틱 열차라는 것을 타고 폭포를 보는 곳. 장엄한 자연환경에 감탄하게 되는 그런 곳. 풍광에 압도당해서 숨 쉬기도 벅차다는 그런 곳.

 맞다. 그랬던 거 같기도 하다... 사진을 보면 그래 보이는데... 사실 기억이 잘 안 난다. 사람은 많고, 시간엔 쫓기고, 주어진 시간에 화장실도 가야 하고, 정신이 없었다.

 여행이란 굉장한 것을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게 뭐가 됐든 간에 내 마음속에 있던 무언가와 반응을 하고, 교감를 하고 그러면서 내가 무엇을 느끼는지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한데 그럴 여유와 자유는 주어지지 않았다.

이런 피요르드 사진 찍은 순간도 잘 기억나지 않아..

오히려 마지막 날 갑작스럽게 주어졌던 오슬로에서의 반나절 이상의 자유시간이 노르웨이 전체 기억을 좌우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돌아다니기만 해도 좋았던 길거리. 비싸기만 하고 살건 없던 기념품 샵. 저녁을 해결해야 해서 급히 검색해서 찾아갔던, 돈 주고 사 먹으니 역시 맛이 달랐던 연어 음식점. 지나가는 사람들만 쳐다보며 먹어도 좋았던 젤라또 간식. 그리고 그제야 보였다. 사람들의 여유가. 평화로움이. 북유럽이 주는 아늑함이. (아.. 역시 패키지는 정말 나하고는 맞지 않는다. 하지만 가야 할 일이 또 생길지도...)

모든 사진엔 여유로움과 평화로움이. 저 연어음식은 에피타이저1, 메인1, 음료1 해서 6~7만원 나온듯

여전히 가장 어리고, 이상한 것에서 느끼는 성취감

북유럽 패키지는 아무래도 나이대가 높은 편이라 예상대로 내가 막내였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이번에도) 나를 많이 찾으(?) 셨다.

 "젤 젊은것 같아서 내가 오늘 아침밥 먹으면서 물어보려고 기다렸어요.. 나 이거 전화기가...."

 "사진 찍는데 소리가 안 나는데...."

"이게 유명하다고 하는데.... 혹시 보관을 어찌해야 하는지 아가씨 알아요?"

내가 뭘 사기라도 하면 다가와서, "이게 유명한 거예요???"(필수 쇼핑템이면 나도 알려줘의 눈빛)

 아는 건 알려드리고, 나도 잘 모르는 건 검색해서 알려드렸는데... 저도 기계는 잘 몰라요.

사실 안 젊고, 슬로어답터(기계치를 고급스레 표현해 본다)거든요. 제가 할 줄 아는 건 껐다 켜보는 건데요...

그리고 여행고수들이 온 북유럽 패키지라 그런 건지 다들 나이보다는 뭐든 잘 알고, 잘하셨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조금 더 나은 점이라면 최신정보+극강의 J성향

 오슬로 공항에는 PP카드 제휴된 라운지가 없어서 혹시라도 오기 전 일주일 전까지도 라운지가 있나 검색해 봤는데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공항으로 가는 버스에서 다시 한번 조회했는데 갑자기 튀어나오는 라운지 정보. 응? 이게 뭐지. 정식 라운지는 아니지만 공항에 있는 스낵바에서 얼마간의 바우처로 음식과 음료를 먹을 수 있단 정보였다. 이건 무조건 최최최신 정보다. 유랑 카페에도 없을 정보. 혹시 직원도 아직 모르지 않을까. (유럽애들 뭐든 늦잖아. 의 편견) 조심스럽게 카드를 내밀었다. "이거 쓸 수 있어?"  "그럼. 여기 여기 음식 먹으면 돼." "음식은 됐고(연어 먹고 왔음) 음료도 있닝? 어떤 음료 있니?" 배 안고프다. 하지만 공짜인데 안 쓰면 억울하잖아. 엄마 카드 내 카드 둘 다 내밀고 간식과 음료를 집어 들었더니 친절한 직원님, "금액 남았어. 요만큼 남았는데 더 선택하지 그러니?" 해서 꾸역꾸역 음료 몇 개씩 더 집어 들고 마침 지나가던 맥주사주셨던 패키지 부부님 만나서 좀 나눠 드렸다.

 "대한항공 라운지가 있어요?"

"아.. 대한항공 라운지가 아니고 PP카드 라운지인데 정식 라운지는 아니고.."

"(너 무슨 말하는지 모르겠어) 아... 그래요? 난 까막눈이라... 하하하. 잘 먹을게요." 하셨다. 대한항공만 타고 다니셔서(3월에도 뉴질랜드, 호주 다녀오셨다 함) 대한항공 라운지 밖에 모르시는 것 같았다. 부자이지만 PP카드 요런 건 잘 모르시는구나. 그래. 나는 가난하지만! 기계치이지만! 신문물 사용은 잘 못하지만! 이런 건 아직 괜찮아. 나 아직 쓸모 있어! 하면 성취감을 느껴본다.

요거 찾아내고 어찌나 신나던지. 저 음료 과자가 뭐라고. 일부는 일행 부부 드렸고  음료는 무겁다고 다 엄마한테 줘버림.

후회가 존재하지 않는 유일한 카테고리, 여행

코로나 이후 제대로 처음 개방되어서 그런지 아직 무언가 부족하고 (가이드들도 최신 정보는 모르고) 체계가 잡힌 느낌은 아니었다. 관광객도 대부분 한국인 패키지였다. (이것조차 다른 나라보다 빠름 빠름!). 그럼에도 어디 가도 사람이 많은 걸 보면서 내년부터는 아비규환이겠구나 싶은 마음에 그래.. 결국은(!) 가야만 할 곳이었다면 올해가 적기였다는 생각은 든다. 결단 내리지 못하고 어영부영했다면  나는 여름휴가는 아예 못 가고 날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겨울에 가도 되는데.. 겨울은 또 따로 갈 거라서...)

 비록 가기 전 무너진 마음을 일으키지 못한 채 출발했고, 가서도 딱히 힐링의 시간을 가지진 못했지만(정신머리가 하나도 없는 일정) 그래도 여행만큼은 갈까 말까 고민될 때 무조건 가는 것이 옳다. 이건 매번 그랬고, 한 번도 틀린 적 없는 진리다.

 계획대로 되지 않더라도,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더라도, 기대만큼은 아니더라도 여행지에서 열린 감각은 나도 모르게 무언가를 받아들이니깐. 그리고, 그래서,  언젠가 쓰일 테니까.

 (다 아니더라도.... 그래도... 마일리지는 남겨준다.)

매거진의 이전글 질러놓으면 가게 된다.(괌 0327)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