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여행 전 이상한 징크스가 있다. 대체로 여행 직전에 자주 아프다. 몇 번을 반복하니 주변에서 신기하게 다 똑같은 얘길 했다.
"너.. 그거 가기 전에 공부 너무 많이 해서 아픈 거야."
생각해 보니 패키지여행 전엔 그런 적이 없어서 진짜 그런가 싶었다. 그래서 늘 출국 전에 병원을 갔고, 병원에 가서 의사 선생님한테 항상 똑같은 얘길 했다.
"저기... 제가 곧 출국을 해야 해서 약을 좀 넉넉히..."
그런데 주변에서 하는 똑같은 얘기가 또 있다.
"괜찮아. 너, 출국하면 안 아플 거야."
코로나 창궐 후 마스크, 손 씻기를 생활화하면서 많은 이들이 그랬듯 감기에 잘 걸리지 않게 되었다. 2020년 이후 코로나 한번 걸린 것 외에 감기는 한 번도 걸린 적 없다. 하지만 괌 가기 전엔 컨디션이 좀 좋지 않았다. 테라플루를 출국 전 며칠 동안 먹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 정도면 선방이지.
그리고 2023년 12월. 이제 남들은 마스크를 잘하지 않지만 난 여전히 출퇴근 길 마스크를 하고 다니고(방한 용이 첫 번째 이유) 점심 먹으러 갈 때도 꼬박꼬박 마스크를 한다. 출국 전, 최상의 컨디션을 위해 전 주 주말에 밖에서 만나자는 친구의 제안도 정중히 거절한다.
"주변에 감기 환자가 너무 많아. 사람 많은 데는 안 가려고"
그리고 그 말을 한 다음날, 바로 감기에 걸린다.
내, 너를 그리 쉽게 놓아줄 줄 알았느냐... 와 같은 세상과 나의 밀당.
출국은 금요일. 주말을 골골 대고 월요일 병원을 간다. 한 시간 반 대기 끝에 만난 의사는 코로나, 독감 모두를 의심한다.
"코로나 검사 두 번 했는데 아니던데요."
"독감 주사도 맞았는데요.(사실 독감이라 할 정도로 심하진 않았어요)"
"둘 다 음성이지만 내일 양성이 나올 수도 있어요" 의사는 보수적으로 진료한다.
나는 이번에도 똑같은 대사를 뱉는다.
"저기... 제가 금요일에 출국을 해야 해서... 약을 좀 많이..."
의사 선생님은 엉덩이 주사도 처방하고 항생제도 들어있는, 아침저녁 알약이 무려 7개나 들어 있는 약을 일주일치나 내게 내렸다. 진료는 보수적인데 처방은 굉장히 진보적?이다.
억울하고, 걱정돼.
조금 억울하다. 컨디션도 신경 썼고, 이번엔 막판에 그리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다.
치앙마이는 나도 처음 가는 곳인데(2019년부터 벼르고 벼르다가 이제야) 여행 트렌드 역시 굉장히 빠르게 바뀌는 통에 무수히 많은 새로운 어플을 깔았고, 미리 공부했다. 예약하는 방법도 기존 메일에서 라인, 카톡, 페이스북 메신저 굉장히 다양해져 버렸기에 해야 할 일은 많았지만 이미 11월에 모든 예약은 끝낸 상태였고 볼트(택시 어플), GLN(현금 이체 서비스)등은 현지에서 부딪쳐봐야 할 수 있는 것이기에 개념만 넣은 상태로 에라.. 모르겠다 조금 놔버린 상태였다.
근데 왜 아파? 나 뭐 했다고 아파? 입안은 왜 다 헐어 있어? 11월에 공연을 그렇게 미친 듯 뛰어도(관객으로) 멀쩡했는데 기다렸다가 이제 아픈 거야?
다행히 코감기로 와서 다른 곳들은 괜찮았기에 일상생활을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 며칠 약 먹으면 금요일 전에 다 나을 거야... 그럴 거야.. 처음엔 병원 약을 먹으니 확실히 나은 것 같았다.
손님이 올 것을 대비해 집에 사둔 맥주는 손님이 오지 않으면 1년이고 2년이고 집 냉장고에서 썩어가지만 난 여행지와 기내에서만은 맥주 욕심내는 사람이 아니던가.(왜 이런지 나도 모름) 목요일까지 말끔히 나은 후 금요일 기내에서 "흐흐.. 저 맥주 주세요. 버드와이저요"(대한항공엔 카스와 버드와이저 두 종류가 있음)라고 해야지.라고 목표를 세운다.
그런데... 수요일부터 목요일까지 계속 정체기다. 나아졌나 싶다가도 코가 미친 듯 막히고, 흐르고, 티슈 한통을 다 쓰기에 이른다. 아.. 젠장.. 다 틀렸다 싶다. 그래도 목이 안 아픈 게 어디냐, 열이 안 나는 게 어디냐, 코로나가 아닌 게 어디냐, 위로 삼는다.
출국날인 금요일 아침까지도 콧물을 질질 흘리면서 준비를 한다. 아침약을 먹고 공항철도를 탄다. 어? 이상하다? 괜찮아지는 것 같다. 공항에 도착한다. 신기하다. 씻은 듯이 나은 것 같다. 콧물이 안 난다. (물론 나을 때 돼서 나은 거겠지만) 에헤라디야. 라운지에서 점심 해결 후, 미리 신청한 특별 기내식을 한번 더 먹은 후(응?),
"헤헤. 저 맥주 주세요. 버드와이저요" 란 말을 뱉고 목표를 달성한다.
"약 드실 때 술 드시면 안 돼요" 란 약사선생님의 엄중한 경고가 있었기에 양심상 맥주 마시고 2시간 후 점심약을 먹는다. 이제 다 나은 것 같지만 항생제는 그래도 길게 먹어야 한단 얘길 들은 터라 다음날까지의 약은 세 번 다 복용한다. 다음날까지 착하게 맥주도 안 마셨다.(이상해.. 평소엔 먹으라고 해도 여간해선 안 마심.. 술 싫어해 난...)
아무튼 이번에도 깨진 못했다. 출국 전에 아픈 징크스와, 공항 가면 안 아파지는 마법을.
밥 먹자마자 맥주 달라고 한 가짜 알코올중독자
오랜만이네요. 이런 긴장감.
최근 4 연속 대한항공만 탔는데 요즘 대한항공을 타면 출, 도착 때 여행 노래를 틀어준다. 착륙 성공 후 김동률 '출발'(사람들이 제목을 '여행'으로 알고 있는데 아닙니다.)이 나오면 마음이 막 몽글설렘 해지는데 이번엔 상공에서부터 전에 없던 엄청난 긴장감이 몰려왔다.
처음 가는 여행지+보호자 및 가이드 역할+많은 신문물(여행의 중심 역할을 해야 하는 처음 쓰는 앱들)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감기가 사라지니 새로운 걱정을 찾아냄)
잘할 수 있을까? 잘 되겠지? 엄빠 지인 부부가 얼마 전에 처음으로 그 연세에 자유여행으로 방콕+치앙마이를 다녀오셨다는데 그래.. 나도 할 수 있겠지. 애써 마음을 다스리며 빠르게 수속을 끝내고 수하물을 찾아 나간다.
현지 시각으로 저녁 7시 안팎. 오늘은 체크인->신생 야시장 야식->숙소 복귀. 아주 간단한 일정이지만 사실 굉장히 긴장하고 있었다.(초보도 아닌데 왜 이러나 몰라. 나이 드나 봄 ㅠㅠ)
정액제 택시가 있지만 조금 더 저렴하고, 볼트 택시 앱 시험도 해볼 겸 떨리는 마음으로 드디어 앱을 실행시켜 본다. '기사들이 바빠. 기다려봐.' '다시 기다려봐' 택시가 안 잡히고 연달아 같은 메시지가 뜨니까 식은땀이 난다. 아니야... 카페에서 원래 공항에선 볼트가 잘 안 잡힌다고 했어.. 하지만 계속 잡히지 않자, 빠른 판단을 한다. 사람들이 더 몰리기 전에 정액제 택시를 타자! 다시 공항 안으로 들어가 접수대에서 접수를 하고 택시 승강장으로 빠르게 이동! 접수표를 내민다. 여자 기사님이 배정되었고 나에게 목적지를 다시 묻는다. 이를 대비에 캡처해 둔 태국어로 된 숙소 주소를 보여준다. (비슷한 이름의 호텔이 있기에 만반의 준비)
오 땡큐. 기사는 검색하더니 숙소 사진을 보여준다. 여기 맞아? 응 거기 맞아. 의사소통이랄 게 없다. 오케이 땡큐. 예스로 모든 대화 종료. 그렇게 10분가량을 달려(공항과 시내가 이렇게 가까우면 행복) 숙소 앞 도착. 또 떨리는 마음으로 처음으로 GLN 앱으로 QR 찍고 바코드 결제를 성공한다.(별거 아닌데 처음은 늘 떨려) 숙소 로비는 안쪽에 있는데 어떻게 알고 직원 둘이 버선발로 나와서 마중 나와서 짐을 다 옮겨준다.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숙소라고 할 만큼 숙소 만족도가 너무너무 컸고 숙소의 좋은 기억이 여행 전반을 지배했는데 이건 차차 쓰기로 하겠다. 숙소마저도 앱이 따로 있었는데 요구사항이 있으면 일일이 전화하지 않고 앱으로 채팅해서 요구하면 된다길래 그것도 미리 다운로드해갔다. 그리고 안 지웠다. 다음에 가면 또 여기 예약하기로 이미 확정했기 때문에 다음에 또 쓸라고.(안 쓰는 앱 바로바로 지우는 타입)
"나 니네 앱 미리 다운 받아와쏘" "오구, 그래써? 잘했네" 칭찬 1 받고 짐을 대충 정리한 뒤, 오늘의 유일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다시 밖으로 나온다. 아침, 저녁으로 선선하다며? 왜 안 선선해? 왜 더워? 나 얇은 긴팔 입었는데 왜 더워? 내가 더우면 전 세계 사람 다 더운 건데? 어쨌든 춥지 않아 다행이다.(12월 기온치고 아침저녁 20도가 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가긴 했다.) 또 택시를 부른다. 금방 왔다. 와.. 나 이 앱 잘 쓰고 있는 것 같은데? 근데 목적지까지 잘 데려다주긴 할 거지?
스타트를 잘 끊어보자
분위기+야식 위주의 플온루디 야시장에 도착한다. 점심을 두 번 먹었지만 저녁은 늦은 상태. 가볍게 먹기 좋고 시설이 깔끔하다고 해서 선택한 곳. 잘 찾아갈 수 있을까도 걱정했는데 기사님 바로 코 앞에 내려주고 저기라고 알랴준다.
둠칫둠칫! 공연에, 노랫소리에 긴장이 풀리면서 여행 기분이 난다. 오메. 서양인들이 많네요. 한 바퀴 휙 돌고 새우, 교자, 음료 등등 사서 자리를 잡아본다.
겁먹었던 GLN 현금 이체 서비스. 두어 번 써봤더니.. 쳇 뭐 별거 없네? 안 어렵네? 좀 자신이 붙었다. 오랫동안 써왔던 것처럼 자연스레 결제를 한다. 이제 정말 여행지에서도 카드 불가한 곳도 현금 없는 세상이 되었구나. 격세지감을 느낀다...(물론 혹시 몰라 현금도 여유롭게 환전해 간 걱정 J)
한 시간 정도 머무르다 숙소로 돌아가는 택시를 잡아타고 다시 귀가. 와! 문제없이 숙소도 찾아왔고, 택시도 잘 잡았고, GLN도 잘 썼다. 아직 할머니 아니야. 잘하고 있어!!
내일은 토요일.
치앙마이는 주말에만 열리는 마켓이 많기 때문에 무조건 주말을 껴서 와야 하고, 그러다 보니 의도하지 않게 내일은 바쁜 일정이 예정되어 있다. 별 일 없이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