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sepina Jan 28. 2024

널 만나려고 몇 년을 기다렸는지(치앙마이 3)

느슨할 줄 알았더니 몹시 쫄깃? 했던 셋째 날.

 가기 전에 엄마에게 그랬다. 바쁜 날-안 바쁜 날-바쁜 날... 이런 식으로 일정을 짰다고. 그리고 오늘은 가장 한가하고 여유로운 일정이라고 했다. 이렇게 말한 게 화근이었나 보다. 택시 안에 갇혀 피 말리는 경험을 하고 말았다.


더운 나라에서 더 덥게 온천을 해보자.

치앙마이 외곽으로 가면 곳곳에 온천이 있다. 사실 꽤 질이 좋은(?) 온천수라는데 더운 나라 사람들이 이걸 관광지로 개발할 뜻이 없어서 좋은 물을 그냥 썩힌다는 말도 있을 정도로 아무튼 좋은 물이란다.(블로그에서 본 정보니까 객관적 사실인진 모른다.-무책임-) 그중에서 나는 치앙마이 온천 중에서 가장 크고 대표적인 유황온천 산캄팽을 선택했다. 시설은 다소 낙후되어 있지만 정부에서 물을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믿을 수 있고 이용하기도 편리하다고 해서.

TV에서 많이 봤던 달걀 삶는 온천수.  생각해 보니 이런 거 첨 해봤다.

 어제 불렀던 기사를 이틀 예약 했기 때문에 오늘도 그의 차를 타고 한 시간가량을 이동했다. 뭔가 평화로웠다. TV에서만 보던 달걀 삶아 먹는 곳도 바로 나타났다. 처음 해보는 경험이라 신난다. 6개 50바트 사려고 했는데 엄마가 많다고 3개만 사자고 했다. 맛있어서 결국 먹고 3개 더 샀다. (처음부터 나는 6개 사려고 했다.) 사람들이 껍데기 잘 안 까진다고 하던데 그렇게 먹는 게 아니다. 달걀 바구니에 들어 있는 간장을 빼고 익힌 후, 달걀 머리 껍데기만 제거해서 간장을 넣고 숟가락으로 파 먹는 거다. (노른자 안 먹는 나 같은 편식쟁이는 좀 곤란한 부분)

달걀 삶기 정도도 시간이 다 안내되어 있음. 친절친절.

 그렇게  달걀 까먹으며 족욕하며 몸을 좀 달군(?) 후에 이제 진짜 온천하러 간다. 내가 선택한 건 가족탕 대신에 게스트 하우스 대실.

수건, 물 무료 제공에 쉴 수 있는 테이블과 침대까지 있는데 가격까지 더 저렴! 사람들이 잘 모르는 정보라 내가 다 아쉬웠던.. 가족탕보다는 작아서 2인, 최대 3인까지 간다면 유리하다.

한  시간 쉬기에 충분. 탕은 보기보다 크고 깊다.

내 점심, 내 시간 어디 갔어?!

순조로웠다. 2시간 대기 후 다시 만난 기사에게 구글 지도까지 펴 보이며 맛집으로 유명한 이 식당으로 가달라고 했다. 그리고 기사가 우리를 그 식당에 내려주고 나는 돈을 지불하면 우리의 인연은 거기서 끝나고 나는 점심을 먹은 후 볼트 택시를 호출해서 숙소로 돌아오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략 40분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나는 이상함을 감지하기 시작했다. 좁은 이면도로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서 있는 우리의 차와 그 주변으로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졸업가운을 입은 학생들... 주변 대학 졸업식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미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인데 본능적으로 싸한 느낌에 구글 지도를 펴본다. 사방으로 온통 빨간색. 기사는 이리로 저리로 차를 열심히 우회해 보지만 도착 2분을 앞둔 거리의 골목 안에서 20분째 꼼짝을 하지 못한다. 심지어 그 식당은 언제나 웨이팅이 있다고 했다. 나는 그 모든 걸 감안하고도 점심 먹고, 숙소에서 물놀이도 하고 이후에 마사지를 받을 수 있게 여유롭게 예약해 두었다.

 점심을 먹고, 이 난장판 속에서 택시를 다시 잡고, 마사지 예약 시간 전에 돌아갈 수 있을까? 얼른 볼트앱을 켜본다. 모든 택시가 잡히지 않는다고 나온다. 그럴 경우를 대비해 비싸도 잡힌다는 그랩 앱을 켜본다. 아니 아니! 얘도 안되는데! 이젠 점심이 문제가 아니다. 차를 못 잡으면 숙소로 돌아가는 게 난감해지고, 뒤로 예약해 둔 마사지 일정도 줄줄이 차질이 생긴다. 빠른 판단을 해야 한다. 기사가 영어를 잘 못하는 것 같기에(너 말이야.. 내가 미리 나 영어 못하니까 양해해 달라고 메신저로 대화할 때... 너도 그렇다고 왜 양심선언 안 했어!) 번역기를 돌려서 묻는다.

 '이 아비규환 속에서 나 점심 먹고 택시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기사가 고개를 갸웃한다. 생각 중인 표정이 아니라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눈치다. 재빠르게 언어를 태국어로 바꾼다. 그제야 '잘 모르겠어'라고 대답하는 그에게 나는 지체 없이 다시 번역한 태국어를 내밀었다.

 '미안한데, 우리 그냥 숙소로 데려다 줄래?'

 얘를 보냈다간, 이 차에서 내렸다간 오늘 이후의 일정이 모두 망할 것 같다는 예감이 강력히 들었다. 보내면 안 된다. 죽어도 못 보내. 내가 어떻게 널 보내.

 ''호텔로 가자고?"

"응!!!"

 차를 돌린다. 그래도 여전히 길은 꽉 막혀있다. 수영장 일정은 이미 날렸고, 잘못하면 점심은 고사하고 마사지 시간도 빠듯해진다. 입술이 탄다. 똥줄도 탄다. 겨우겨우 막힌 구간을 지나서 숙소로 돌아오니 마사지 예약 시간 한 시간 전. 하.... 다행이다. 점심을 아무거나라도 먹고 갈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은 된다.

 아무거나라니.... 내 여행 일정에서 밥을 '아무 데나'에서 먹는 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인데! 따질 상황이 아니다. 끼니를 주입해야 한다. 그냥 숙소 바로 앞에 있는 밥집으로 직행한다.

 "여기 사람 많네. 괜찮은 덴가 봐."

"서양인들이 많네. 유럽에서 유명한 맛집인가 본데"라고 한 마디씩 꺼내서 서로를 위로(?)하면서.

 그 와중에 최선의 선택, 실패하기 힘든 푸팟퐁커리, 솜땀, 텃만꿍을 시킨다. 정보가 없는 집이라 혹시 몰라 "노 팍치" 고수 노노. 를 외치며.

다행히 실패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조금 비쌌지만 엄마를 굶기지 않은 것만으로 하느님 감사합니다. 외쳤던 순간.

도대체 왜 그렇게 차가 미친 듯 막혔을까. 그날 밤 치앙마이 카페에서 본 정보로는 정말 졸업식이 원흉(?)이었던 것 같다. 누군가도 졸업식 때문에 짧은 거리를 건너오는데 너무 오래 걸려서 죽는 줄 알았다고 했으니까. 치앙마이 대학은 학교마다 졸업시기도, 요일도 다 다르다고 한다. 그러니 아무리 내가 극 계획형 인간인들 이것까지 정보를 알아갈 수는 없었다.

 대신 이제 누군가에게 말해 줄 수는 있겠지.

내가 오가는 동선에 대학교가 있는지도 알아보세요. 치앙마이 대학 졸업식 때는 사돈에 팔촌, 4대까지 오는 거 같습디다. 그리고 나는 치앙마이 대학 졸업식 때 어떤 형식의 꽃다발을 주는지도 알아요. 왜냐하면 두 시간 동안 차 안에 갇혀서 지켜봤거든요. 그들 중 누구는 내 슬픈 눈빛을 보았을까요..........


 치앙마이 와서 선데이마켓 안 가는 건 반칙

점심을 먹고, 숙소에 올라가 손까지 한번 씻고 마사지 샵에 3분 전에 도착해 정해둔 일정 안에 세이프했다. 식사 후 바로 마사지받는 일정은 지양이라 모든 걸 고려해 텀을 두었는데 밥 먹자마자 엎드리기라니. 하핫. 어쩔 수 없다.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오늘따라 핫스톤 마사지가 몸을 더 노곤노곤하게 만든다.

 마사지가 끝나니 5시. 일요마켓이 시작되는 시간과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당연하지? 그렇게 일정을 짰으니까?) 아직은 사람이 몰리기 전이라 설렁설렁 걸으면서 사람이 더 몰리기 전에 저녁도 해결한다.

 사람이 너무너무 많아서 구경하기 힘들었다는 후기도 꽤 됐는데 개인적으로는 토요마켓 보단 공산품, 먹거리 구분도 잘 나뉘어 있고 길도 그냥 꽤 길지만 일직선으로 되어 있어서 오히려 편했다. 사람이 많아도 못 볼 정도는 아니었고 게다가 우리 숙소는 마켓 한가운데 위치. 힘들면 언제고 들어갔다 나왔다 할 수 있는 위치였다.  이 점도 숙소 선택 시 이점 중 하나였는데(하지만 일요일 체크인, 체크아웃이 걸리면 단점이 된다.) 둘 다 강철 체력인(여행에만 특화된) 우리는 한 번도 쉬지 않았다. 대신에 발이 아플 것을 대비해 30분~1시간 발 마사지 가능한 샵을 미리 알아두었고 그래서 야외에서 발 마사지 30분을 받으며 느물 느물 해지는 몸으로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도 한다. 숙소에선 전혀 볼 수 없었고,  올드타운 지역에서는 많이 보지 못했던 한국 사람들 여기서 다 만날 수 있었다. 다들 어디 계시는 거요? 님만해민(신시가지)에 계시는 겁니까?

마사지받으며 사람구경/유명한 타페게이트. 이때 한  번밖에 못 갔네/그냥 사방 천지에 있는 사원 야경.

사니, 안 사니 해도 막상 방으로 돌아와 쇼핑한 것들을 풀어헤치니 자잘하게 꽤 된다. 귀고리는 못 샀지만 비녀를 샀다. 괜찮다. 괜찮은 척해본다. 아직도 이렇게 얘길 하고 있다. 쿨 하지 못한, 미련이 어마어마한 나란 인간. 그런 인간. 간장 종지 같은 마음. 흑.

  놀라운 건 벌써 세 번째 밤이라는 거다. 택시 안의 시간만 뺏긴 게 아니고 여행 일정 전체 시간을 자꾸 도둑질당하는 기분이다.

 왜 여행지에서의 시간은 늘 이렇게 불공평하게 흐르는 것일까.

신선놀음 하고 있으니 도낏자루가 썩고 있는 걸 못 느끼는 걸까.

근데 가는 날까지는 시간에 계속 가속도가 붙을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널 만나려고 몇 년을 기다렸는지(치앙마이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