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sepina Feb 12. 2024

널 만나려고 몇 년을 기다렸는지(치앙마이 4)

님만해민에서 보낸 세련된? 넷째 날.

그동안의 일정을 치앙마이의 특색을 느낄 수 있는 것들로 구성했다면 오늘 하루는 세련되고(?) 도시적인(!)것들로 채울 예정이다.

 치앙마이는 크게 올드타운(구시가지)과 님만해민(신 시가지로)으로 나뉘어 있고 주 서식지(!)를 어디로 할 것이냐가 초행자들의 단골 고민거리다. 나는 내 여행 취향을 이제 어느 정도 간파했기에 큰 고민 없이 올드타운으로 선택했지만 3:7, 4:6의 비율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님만해민을 조금 더 선호하는 듯했다.

깔끔한 쇼핑몰. 정비된 도로, 조금 더 늦게까지 활보할 수 있는 밤거리 등이 그 이유인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나는 지역특색이 더 강한 올드타운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님만해민을 안 갈 수는 없지. 오늘은 쇼핑몰 쇼핑을 작정하고 장바구니를 몇 개씩 챙겨서(치앙마이 쇼핑몰은 일회용 봉투를 제공하지 않는다.) 숙소를 나선다.


쇼핑할 땐 내일이 없는 것처럼

님만해민의 기준점. 마야 쇼핑몰에 도착한다. 그리고 결연한 표정으로 계획한 대로  태국에 오면 늘 가는 상점 쇼핑을 1층부터 시작한다.(작년에도 갔던 곳들인데 왜 매번 살 게 생기는 걸까요? 이유 아시는 분?!)

 엄마가 좋아하는 나라야 매장은 특정 통신사를 이용하면 7% 할인이라고 해서 일부러 그 통신사 유심을 설치해서 갔는데! 앱도 깔라고 해서 깔았는데! 안 돼서 직원에게 물어보니 너 외국인이라서 안된단다. 그래요. 다행히 그 통신사가 내가 평소 사는 통신사 유심보다 싸서 다행입니다. 몇 푼 차이 안 나지만 억울할 뻔했네요.

 와코루 속옷 가게는 2천바트 이상이 되어야 택스리펀이라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리고 물건을 넣었다 뺏다 하며 금액을 맞춰 2008바트를 찍는다. 피팅룸을 여러 번 들락거리며 매장을 몇 바퀴나 돌던 나를 사장님이 참 열심히 따라다니던데 미워서 그런 거 아니겠지. 손님도 없었잖아요. 이럴 때는 외국인이니까 봐주십쇼.

 오전 쇼핑을 끝내고 맛집이라고 소문난 깔끔한 푸드코트를 찾는다. 꼭 가야 한다는 팟타이 집은 역시나 문전성시. 태국 푸드코트는 보통 선불형 충전식 카드를 사용하는데 이것도 GLN이 있으면 즉시 바로 결제가 가능. 무적의 GLN이구나. 파타이+쏨땀+바나나 로띠 조합. 완벽하다.

자국민 후기 보고 선택하면 실패하지 않음.

 부츠 매장에 가서 화장품을  비롯한 몇몇 제품을 쓸어 담은 후 지하 마트로 간다. 광활한 방콕 대형 쇼핑몰보다는 작은 마트. 그래서 물건 보긴 편했다. 대신 수량이 원하는 만큼 없는 경우가 많아서 있는 품목은 다 쓸어와야 했다. 분명히 택스 리펀이 된다고 알고 있었고 계산할 때 물어보니 직원이 '쩌기'를 가리키길래 나중에 로비층 인포데스크에 와서 영수증을 냈더니 마트 물건은 안 된다고 했다. 음? 내가 잘못 알았나? 돌아서려고 하는데 엄마 말,

 "마트 층에 따로 하는 데 있었던 거 아냐? 지난번에 방콕 갔을 때도 맨날 길 물으면 쟤들 제대로 안 알려주고 대충 저기라고 하더라. 한번 내려갔다 와봐."

 해서 마트로 다시 내려갔더니 진짜로 따로 있던 택스리펀 데스크. 엄마 똑똑이.

심지어 햇빛 덜 받으려고 가장 가까운 문으로 나가려고 쇼핑몰 내 경비분께  길 물었더니  또 '저~어기'라고 해서 빙 둘러 나갔더니 거기가 젤 먼 출구였다. 진짜네. 태국 사람들 길 설명을 제대로 못하네. 나 같은 방향치한테 길 잘못 알려주는 건 너무 치명적인뎁쇼?


 깔끔한 현대식 쇼핑몰. 근데 그게 다였어.

횡단보도 두 개를 건너 신식 쇼핑몰이라는 원님만으로 향한다. 이미 마야 쇼핑몰에서 든 짐이 한 덩어리지만 원님만에는 짐을 맡아 주는 곳이 있다는 걸 내가 알고 있지요. 하핫. 입구에서 짐을 맡기겠다고 했더니 여권 정보를 쓰는 노트를 건네줬다. 정보를 기재하려고 보니, 세상에! 앞에 적혀 있는 모든 정보가 죄다 한국 사람이다. 어떻게 알았냐고? 번호가 다 010으로 시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긴. 이 사람들이 다 카페에서 정보를 주고받고, 그 정보를 주워 먹은 나도 짐을 맡기러 온 거지. 갑자기 타국에서 느껴지는 단일 민족의 냄새라니.

 원님만은 2017년에 오픈한 대형 아웃렛 느낌의 쇼핑몰인데 아기자기한 상점과 브랜드 샵들로 이루어졌다. 공터에선 요일마다 야시장이나 마켓 행사도 열린다고 하는데 일단 원웨이 구조로 만들어진 쇼핑구조가 비효율적이라 느껴졌다. 무슨 의도로 이렇게 건물을 설계했는지 모르겠... 쇼핑품목도 우리 취향은 아니었다. 이런 것들이 같은 여행지를 두 번은 와야 하는 이유. 두 번째 온다면 이 코스는 과감히 뺄 것 같다. 아, 물론 유럽풍 느낌이 나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냥 나는 아닌 걸로. 전 유럽풍 말고 그냥 유럽에 가고 싶어서요.

중간 공간에서 하고 있는 행사? 구경은 안 해봤음.

한 시간 만에 다시 짐을 찾고(무료 2시간까지 맡아준다.) 예약한 마사지 샵으로 가야 하는데 가방 찾으면서 혹시나 직원에게 길을 물어보니 내 생각과는 전혀 반대 방향을 알려준다. 이 길로 가라고? 보통 나 같은 방향치는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길 반대로 가야 그 방향이 옳은 거긴 한데 아무래도 이상해서 구글을 보니 진짜 반대로 가고 있다. 얼른 다시 돌아 나간다. 엄마 말 맞다. 태국 사람들 굉장히 친절하지만 길은 묻지 않기로 다짐한다.


뻥 뚫린 곳에서는 술을 마시고 싶어 지죠.

 마사지를 끝내고 가는 곳은 회심의 저녁식사 장소 리버프런트라는 리버사이드 식당.

하루 정도는 분위기 좋은 강변에서 식사를 하고 싶어서 전통적으로 오래된 식당을 맘속으로 정해두고 있었는데 검색 과정에서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식(?) 강변 식당을 찾았다. 아직 우리나라 사람에겐 많이 알려지지 않아 현지인이 주라는 곳. 깨끗하고 위생적이며 라이브 음악까지 들려준다는 곳. 쓰지도 않은 페이스북 메신저를 깔고 되지도 않는 영어로 소통해서 겨우 야외 자리 예약을 했었다. 계획형 인간인 나는, 마사지 샵에서 식당으로 넘어오는 시간이 퇴근시간이고, 퇴근시간에 교통체증이 있다는 걸 감안해 6시 30분이면 도착하겠지만 넉넉하게 예약은 6시 45분으로 해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6시 30분으로 해줄게. 10분 전에 와.'라고 하면서 확정 정보를 주길래 불안해져서

 '아니 아니! 그럼 6시 45분으로 해줄래? 그 시간에 니네 차 엄청 막힌다며? 45분까지 갈게'라고 했다.

너무 아무렇지 않게 'ㅇㅇ' 같은 느낌으로 답하고 수정된 예약컴펌을 주지 않는 것이 내심 찜찜했는데(모든 게 100% 완벽, 깔끔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입니다만...) 설상가상 마사지 시간에 맞게 도착했는데 10분도 더 기다려서 시작을 했고, 역시나 끝나고 택시는 조금 기다렸다. 그래도 식당에 도착했을 땐 6시 39분. 와우! 직원에게 나 요세피나! 나 예약했음! 내 자리 어디? 하니 뷰가 좋은 자리를 안내해 줬다.

  하지만 그 예약석 정보에는 6시 30분으로 시간이 수정되지 않은 채 적혀 있었다. ㅋㅋㅋㅋ 나 9분이나 늦은 사람 됐네? (늦는 거 굉장히 싫어함. 나도. 상대방도) 그래도 자리 안 치우고 연락도 따로 안 했네?! 고오맙다!

듣던 대로 분위기는 아주 좋고 시설도 깔끔했다. 엄마가 생각보다 좀 흥분했다. 나이가 드니 이젠 뻥 뚫린 데가 좋다나 뭐라나.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후기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아는 메뉴와 모르는 메뉴를 섞어 시켰다. 술은 일절 입에도 안대는 엄마는 기분이가 몹시 좋았는지 칵테일을 마셔보겠다고 했다. (조금 당황. 내가  칵테일 잘 모름) 그나마 아는 이름 중에 골라주려고 했더니 매우 독립적인 자세로 메뉴를 살피더니 싱가폴 슬링을 먹어보겠다고 했다.

 "싱가폴 슬링 알아? "

 "응. 전에 TV에서 봤어."(그녀의 애청 프로그램 : 걸어서 세계 속으로, 세계테마기행, 톡파원 25시,  이하 여행 프로 등등)

 "이거.. 좀 도수 있는데?"

 "괜찮아."(기분이 좋아서 이런 건지, 싱가폴 데려가달라고 하는 시위인지 약간 헷갈림-근데 이 글 초안 쓸 때만 해도 계획에 없었는데 저... 어쩌다 보니 지금 싱가폴 예약해 둔 상황입니다.-)

 
그녀는 칵테일, 저는 태국 맥주로도 충분합니다. 슬링은 도수가 높지 않았어요. 내가 싱가폴 갈 때 비행기에서 준 것만 높았나 보오.

 카드 결제는 안되고 GLN은 된다고 알고 왔는데 물어보니 카드 결제도 된다고 한다. 그 새 정보가 업데이트되었나 보다. 하긴... 현금으로만 결제하기엔 저렴한 곳은 아니었다.

 분위기 있고, 너무 시끄럽지도 않으면서 음식 맛도 적당한 곳이라 다음에 오면 또 오고 싶었는데 왠지 그때 되면 너무 알려져서 이런 조용한 분위기는 아닐 것 같은 슬픈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슬픈 예감은 여간해선 틀리지 않지... 흑.

 엄마가 뻥 뚫린 데가 좋다고 하니 내일 짜놓은 일정 중 하나도 마음에 들어 할 것 같다.

 내일 점심도 뻥 뚫린 데를 갈 거거든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