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지 않은 다시 쓰는 마음
자유가 주어졌고 시간은 많아졌다.
스위치를 끌 수 있으니 마음이 편했고 마음이 편안하니 행복했다.
"어떻게 지내?"라고 물으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너무 행복하다."라고 답했다.
그와 동시에 아무것도 안 쓰기 시작했다. 메모조차 하지 않았다. 읽고 쓰는 스위치까지 내려버리니 더 행복했다.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자유. 매일매일이 꿀 같고 꿈같았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게도 진심으로 행복이 시작된 그 시점부터 몸이 삐걱거렸다. 그렇다고 명명된 진료과 병원을 찾아갈 정도는 아니었다. 몸 곳곳에서 염증 반응이 나타났고, 면역력이 떨어진 듯 보였으며, 몸의 어느 부위가 은근하게(대놓고 안 좋으면 병원이라도 가지) 신경 쓰이기 시작하면 아무리 잠을 많이 자고 실컷 쉬어도 정상적으로 회복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곤두세우고 있던 긴장감이 와르르 풀리면서 쏟아진 반응일 것이다, 몸이 쉼을 원한다는 신호이다, 스트레스가 과했던 탓이다, 주변사람들의 갖가지 추측과 조언이 있었다.
그 와중에 콘서트도 보고, 뮤지컬도 보고, 팬미팅도 가고, 효도 여행도 가고 할 건 다 했다.(나 이 여행기를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쓸 수 있나, 쓸 수 없나를 생각 중이다.)
"나 진짜... 하는 게 없는데... 몸이 왜 이러지?" 하면, 친구들은 그런다.
"저걸 다 하는데 왜 하는 게 없어?"
그런가..? 하긴... 일본 효도여행을 다녀온 바로 다음날부터 다음 여행지 공부를 시작하긴 했다.(여행 공부 할 때는 완벽한 고시생 모드)
내 몸, 내 마음 어디선가 밸런스가 안 맞는 부분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그래,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에너지를 쓰는 일이다. 아무것도 안 해도 되면 아무 생각 없이 안 해야 하는데, 몸은 침대에 뉘어놓고 마음은 자꾸 엇박자를 냈는지도 모른다. 그거...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이거... 해야 하는데 언제 하지...?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나를 보며 결국 최후 변론? 변명? 은 똑같았다.
'하기 싫으면 하지 말자.'
잊을 거면 완벽히 쉬고, 할 거면 생각만 하지 말고 움직여야 하는데 뒹구는 몸뚱이를 보면서 죄책감을 느꼈다. 몸과 마음이 따로 놀았다. 체감하기로는 그다지 불안하지도, 불편하지도 않았는데 나도 모르는 깊은 무의식에는 그게 숨어 있었나 보다. 나조차도 나를 완벽히 속였을지 모른다.(기어이 이런 생각을 하고 마는 것도 스트레스를 자초하는 것이건만)
이 작은 깨달음을 얻은 일은 참으로 하찮은 일에서 기인한다.
몸 담고 있는 팬클럽 중 한 곳에 장문의 의견개진(이라고 그럴싸하게 쓰고 쉽게 '항의'로 읽는다.) 메일을 썼다.
참고 참다, 벼르고 벼르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불공정, 불공평, 비합리적, 비계획적, 불통, 깔끔하지 않은 일 처리.. 모두 내가 참을 수 없는 부분이다.) 응집된 화가 도를 넘어서 '수용 하든, 안 하든, 블랙리스트에 오르든 말든 할 말을 하고 장렬히 전사(?)하겠다는 큰 뜻(?)이었다.
그런데 이 계획을 마음에 품고서 자리 잡고 글 한자 쓰는 데까지가 너무 힘들었다
뭐 대단한 일이라고... 그만큼 쓰는 일은 내게 많이 멀어져 있었고 어려운 일이 되어 있었다.
겨우 하루 날 잡고, 3시간 동안 메일을 쓰고 나니(애정이 있으니까 팬클럽에 이렇게 정성스러운 쓴소리도 하는 겁니다.) 이상하게 마음이 개운했다.
머릿속으로 미루고만 있던 일을 드디어 해치웠기 때문인지, 오랜만에 글로 감정을 표현해서인지 모르겠지만 (둘 다 인 것 같지만) 체증이 내려간 것 같았다. 하루종일 가뿐했다.
나는 원래 일을 미루는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미리 하고, 빨리 준비해서 주변 사람들을 피곤하게 하는 스타일이다. (일 할 때 기한을 어기거나 약속 시간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아주아주 극도로 싫어한다.) 해야 할 일을 먼저 해놓고 마음 편하게 쉬는 걸 택하는 편인데 그렇기 때문에 부지런하다는 평가를 꽤 듣는 편이다. 나도 이건 쑥스럽게나마 인정하는 편이고 따라서, 해야 할 일을 묵히고 있는 건 내게 꽤 큰 스트레스 요인인 셈이다.
그렇다면...
그렇다고 생각한 적 없지만 나는 '읽고 쓰는 일'을 나도 모르게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의무 카테고리에 넣고 있었던 걸까. 그걸 하지 않아서 여기저기 몸이 계속 불편했던 걸까. 나는 원래 성실한 사람인데 이토록 글과 멀어져 게을러진 나를 보는 게 참을 수 없이 못마땅했던 걸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게 맞는지 아닌지를 알아보려 브런치를 열어(진짜 여기까지 오는 것도 힘들었음) 끄적거려 본다. 이런 일기라도 썼을 때, 진짜 내 마음이 나아지는지, 뭐라도 다시 해볼 마음이 생기는지 들여다보고 싶어서.
일단 읽는 것부터 다시 시작하고,
거창한 글이 아니더라도 사브작 사브작 일기거리라도 써 보도록 해야겠다.(라는 생각은 예전에도 한 것 같지만..)
아... 일본 여행은 효도 관광이라서 뭘 쓸 여행기가 없는데 '이걸 어쩌나'는 계속 고민 중이다. (J라서 이거 건너뛰고 다음 여행기 쓰면 마음이 불편)
생애 처음 간 일본에서 느낀 거라곤, '엄마 아빠는 진짜 안 맞는다.' 밖에 없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