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생들은 정말로 특별할까?
90년생들이 사회에 나오기 시작했다. 1990년에 태어난 사람이 2020년 현재 31세일 테니 이제 막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지 2-3년 혹은 4-5년 차 정도 되었을 것이다. 이 정도면 회사에서도 신입사원을 벗어나 주임이나 대리 정도 되는 직급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특별할 것 하나 없을 법 한 이들을 주목받게 만들어준 책이 있다. 바로 "90년생이 온다"이다. 제5회 브런치 북 프로젝트에서 은상을 수상한 작품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전 직원에게 선물해줬다는 사실이 뉴스에 보도되면서 각종 매체에서 엄청난 주목을 받게 된 책이다.
이 책은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90년생들이 어떤 특징과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작가는 왜 90년생들에게 주목했을까? 90년생들은 이전 세대들과 무엇이 어떻게 얼마나 다르기에 책까지 펴낸 것일까? 이 책의 전체적인 내용은 90년생들의 특징을 3가지로 요약하고, 이런 특징을 가진 90년생들이 사회에 나왔을 때와 소비자가 되었을 때 어떤 양상을 보이는지를 설명해 준다. 수많은 사례와 이야기들이 있지만 대표적으로 몇 가지만 살펴보자.
공무원과 소확행
50-60년생들, 조금 넓게는 70년생에게는 이른바 "평생직장"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평생을 몸담아 일할 수 있는 직장이라는 개념이다. 정년이 보장된 직장이 있다는 것은 굉장한 축복이다. 고용불안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마불사의 법칙을 깨고 대기업을 포함한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하루아침에 도산하던 IMF와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겪은 이후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고용불안에 시달리게 된 사람들은 조금 더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 헤매게 되었고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종신고용이 보장된 직업이 있었다. 바로 국가 공무원이다. 해직 사유에 해당되는 일을 하지 않는다면 평생직장이 보장되는 공무원은 평생직장을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꿈의 직장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이러한 직업환경은 IMF와 세계 경제위기 이후에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 80년생들을 시작으로 90년생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노량진에는 각종 국가 공무원을 준비하는 청년들이 넘쳐나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고등학생들도 수능 공부와 공무원 공부를 병행하기도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하지만 이토록 수많은 사람들이 갈망하는 공무원은 대표적인 박봉 직업이다. 공무원들의 급여 시스템은 연차가 쌓이면 월급이 오르는 호봉제이기 때문에 초봉이 작을 수밖에 없다. 공무원을 준비하는 청년들 혹은 이제 막 공무원에 합격한 청년들은 경제력이 크지 않기 때문에 사치를 부릴 여유 따윈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소소하지만 확실한 소확행을 추구한다. 용돈을 차곡차곡 모아서 평소에 먹고 싶었던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거나 비싼 공연이나 전시회를 가는 것 등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것과 월급은 작지만 정년이 확실히 보장된 공무원을 추구하는 모습은 닮아있다. 어쩌면 그들이 소확행을 추구하는 것, 공무원을 꿈꾸는 모습은 그들을 둘러싼 주변 환경 속에서 그들에게 주어진 유일한 선택지 인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꼬집는 부분도 바로 이 부분이다. 외부적인 환경요인으로 인해 제한되는 선택지. 공무원과 소확행. 씁쓸한 부분이다.
90년생들의 3가지 특징
저자는 90년생들의 특징을 3가지로 꼽는다. 간단함과 병맛, 솔직함이다. 재미를 추구하는 병맛 문화나 상호 간의 신뢰를 추구하는 솔직함은 엄밀히 말하자면 90년생들 뿐만 아니라 다수의 세대에 걸쳐서 나타나는 특징일 것이다. 물론, 인터넷의 발달과 핸드폰의 발달로 인해 정보 습득에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사라진 90년생들에게서 이러한 특징들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 중에서도 나의 관심을 끈 것은 "간단함"이었다. 90년 이후에 출생된 세대들은 줄임말을 통해 그들 나름대로의 언어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버카충" 혹은 "행쇼" 정도의 줄임말만 알고 있던 나에게 그들이 사용하는 "얼죽아" 혹은 "할많하않" 등의 신조어들이 생경하기 그지없었다. 더욱이 "ㅇㄱㄹㅇ ㅂㅂㅂㄱ"와 같이 초성만을 사용하는 극단적인 줄임말은 인터넷 검색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그들만의 언어이다.
그들이 정보를 습득하는 방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읽어야 할 양이 많거나 시간이 오래 걸리는 동영상들은 과감하게 걸러지게 되고, 그런 정보들 밑에는 어김없이 "3줄 요약 바람"이라는 댓글들이 달린다. 본인의 시간을 들여 이 콘텐츠를 소화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다른 누군가가 핵심 정보를 3줄로 요약해 달라는 의미이다. 이런 생활이 습관이 되다 보면 이들이 책을 읽으려고 할 것인가? 사실 긴 글을 읽거나 긴 영상을 시청하기보다는 여러 링크를 넘나들며 훨씬 더 다양한 정보들을 얻는 것이 오히려 이득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 대목에서 조지 오웰의 "1984"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가 떠올랐다. 이 두 소설은 모두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그리는 대표적인 소설들이다. 흥미롭게도 이 두 소설에서는 모두 사회 지도자들이 민중들에게 "책 읽기"를 금지한다. 사회 지도자들은 민중의 계몽을 이끄는 독서가 그들을 피곤하고 귀찮게 만들기 때문에, 나아가 그들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을 만한 강력한 무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독서를 금지한다.
독서를 금지하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인터넷의 신뢰성에 있다. 요즘에는 유튜브에 동영상을 올리고 포털사이트나 블로그에 글을 쓰기가 매우 쉽기 때문에 인터넷에 노출되는 정보들의 신뢰성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정보의 생산자"가 되기 위한 진입장벽이 낮아서 정보에 대한 신뢰성이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한, 인터넷에서의 기사들도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것에만 치중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언론에, 가짜 뉴스에, 루머에 호도될 가능성도 높다. 정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잘못된 정보와 거짓 뉴스에 휘둘리지 않을 정도의 의식과 지식을 갖지 못한다면 우리의 미래가 걱정될 수밖에 없다.
90년생들에게 주목해야 하는 이유
이 책을 읽었을 때 80년대 생인 내가 느끼는 충격과 놀라움도 컸으나 그 이전의 세대들이 읽었을 때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을 것이다. 아직까지 기업을 비롯한 사회 각계각층에서 가장 큰 영향력과 권위를 가지고 있는 세대는 6070 세대들인데 이들이 과연 90년생들을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이해하려고 할까? 기성세대들은 그들의 세계를 인정하려 하지 않고 자신들의 세계를 어른들의 세계라고 정의하면서 90년생들을 그들 쪽으로 끌어들이려고만 한다. 마치 그것만이 정답인 것처럼. 하지만 그들은 이미 꼰대라 불리며 소통이 불가능한 존재가 되었고 조직에서 도태되고 있으며, 화려했던 그들의 시대도 막을 내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그들도 한때는 신세대로서 모든 변화를 주도하던 세대였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한편으로는 자연스러운 일인 듯싶기도 하다). 은퇴한 그들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80년생들이 될 테고 이들은 필연적으로 90년생들과 일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반드시 90년생들을 이해해야만 한다. 기업을 운영하고 현장에서 고객들과 소통할 사람들 또한 90년생들이고 기업의 가장 큰 소비자가 될 사람들도 90년생들이다. 이는 비단 90년생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90년생 이후에 다가올 00년생, 10년생 등등 새로운 세대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는 필수적이고 이를 게을리하는 집단은 자연스럽게 도태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생각해본다면 한 나라 정부의 수장이 이 책을 관료들에게 돌렸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