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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호 Nov 23. 2020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Just do it

 얼마 전, '유 퀴즈 온 더 블록'이라는 프로그램에 박진영 씨가 나온 것을 봤다. 박진영 씨는 자기 관리에 혹독하기로 소문난 유재석 씨 조차도 초월한 진정한 자기 관리의 끝판왕이라고 한다. 물론 이 프로그램을 보기 전엔 이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 박진영 씨는 일주일에 절반 이상을 20시간씩 금식을 한다고 공개했다. 조금만 먹어도 살이 찌는 체질이기 때문에 최고의 무대를 소화할 수 있도록 가벼운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유재석 씨는 자신이 금연을 하게 된 계기를 공개했다. 그리고 그는 하루에 2시간씩 꾸준히 운동을 한단다. 프로그램에 집중하기 위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 프로그램을 보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떤가? 


 유재석 씨와 박진영 씨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나와 유사한 부분이 꽤 있는 것 같았다. 물론, 나는 그들에 비해서는 아직 한참이나 모자라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내가 어떻게 나를 관리해왔는지 돌아보는 셈 치고 이 글을 시작해볼까 한다. 




 우선 내가 내 삶을 통틀어 가장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 바로 금연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운이 좋게 대학교 수시에 합격하게 된 나는 친구들과 함께 담배를 시작했다. ‘이제 나도 어른이지’라는 생각에서 시작한 담배는 이후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나와 함께였다. 그때만 해도 길거리에서 흡연하는 사람들, 건물 내에서 흡연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고 흡연에 대한 혐오 정서가 지금처럼 강력하지 않았을 때였다. 한 번은 고3 겨울방학 직전에 학교에 담배를 들고 간 적이 있었다. 매일같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드나들던 교문을 통과하기가 어찌나 떨렸는지 너무나도 부자연스럽게 두리번거리던 나를 친구들이 타박했던 기억이 난다. 무사히 교문을 통과하고 나서도 하루 종일 재킷 안주머니에 있는 담배가 신경 쓰여서 전전긍긍했었다. 학교를 끝마치고 나오는 길에 인적 없는 곳에서 친구들과 모여 담배를 피웠던 기억이 난다. 동네에서 좀 노는 형들이나 할 법한 행동을 내가 하고 있자니 기분이 굉장히 묘했다. 12년 동안 학교라는 곳을 다니면서 내가 했던 최고의 비행이었다. 

 나는 담배를 너무 좋아해서 보통은 하루 1갑을 피웠지만 하루에 2갑을 피우던 날도 많았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나는 유명한 골초였다. 담배를 시작한 이후로 담배가 건강에 해롭다는 사실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서 잘 알고 있었지만 내가 이렇게나 좋아하는 담배를 포기할 마음은 전혀 없었다. 호주에 있을 때에는 담뱃값이 너무 비싸서 말아서 피우는 담배를 피우기도 했다. 그러다가 25살 겨울, 문득 담배를 끊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나는 나름 8개월 정도 금연을 했었다. 당시에 국토 대장정에 참가했었는데, 국토 대장정을 하던 중간에 한 번 담배를 피웠었다. 결국 이게 화근이 되어 8개월의 금연이 허망하게 무너졌다. 한 번 입에 붙은 담배를 다시 떨어뜨리기란 너무 어려웠다. 담배와 내 입술에 강력한 자석이 붙어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적어도 이때, 나는 내 금연의 가능성을 봤다. 

 다시 흡연자가 된 지 4년쯤 지났을 무렵, 나는 다시 금연을 시작했다. 나의 금연은 전적으로 아기 때문이다.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기라는 뜻밖의 선물이 우리 부부를 찾아왔고, 와이프는 내가 담배를 끊지 않으면 아기를 절대로 만지지 못하게 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흡연자가 아이를 만질 경우, 흡연자의 손과 호흡에 섞인 담배 성분들이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기 때문이란다. 내 아기를 내가 만질 수 없다니. 용납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어린 아기가 나로 인해 간접흡연의 피해자가 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담배를 너무나도 좋아하지만 내 아이보다 좋을 순 없다. 와이프와 함께 찾은 산부인과에서 임신 확진을 받은 그날, 나는 담배를 끊었다. 대학생 때에도 마찬가지였지만 금연 보조제나 보건소의 도움은 받지 않았다. 물론, 이런 것들을 통해서 천천히 금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그런 것들과 맞지 않는다. 나에게만큼은 그것들이 금연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나의 금연 의지를 더욱 약하게 하기 때문이다. 나는 단칼에 끊어내지 못하면 계속해서 미련을 가지는 사람이라 금연도 단칼에 했다. 금연을 시작한 지 5년째가 되었는데 아직까지는 잘 참고 있는 중이다. 요즘도 가끔씩 꿈에서 담배를 피운다. 너무 행복한 순간이지만 이내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깨곤 한다. 그리고선 후회한다. 조금만 더 피우고 깰걸… 하면서. 흩어지는 담배연기만큼 깨버린 꿈이 아쉽기만 하다. 


 난 술도 정말 좋아한다. 이건 아버지의 영향이 큰 것 같다. 아버지는 '전주 이 씨 치고 술 싫어하는 사람이 없다'라고 자랑 섞인 말투로 말씀하시곤 한다. 알 수 없는 어른들의 세계에서나 통할 법한 말이지만 난 이 말을 부정할 수 없다. 내가 술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다. 술도 마찬가지로 고3 수시 합격한 이후부터 마시기 시작했다. 사실 중3 때 친구들과 모여 맥주 한 캔을 가지고 두세 명이서 나눠 먹은 적이 있었다. 그땐 무슨 맛인지도 모를 이런 이상한 음료를 어른들은 왜 그렇게 밤이 새도록 마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술을 마시기 시작한 이후로, 술이 한잔씩 더해갈 때마다 술자리의 분위기도 얼큰하게 달아오르는 것이 좋았고 몸과 마음이 느슨하게 풀어지는 것도 좋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 속에 깊이 묻어두었던 이야기들도 꺼낼 수 있었고 이런 과정들이 친구들과의 우정을 더욱 깊어지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했다. 어느덧 친구들과 모이면 항상 술을 마시게 되었고, 주량은 점점 늘어만 갔다. 얼마 전까지 한창 술을 먹을 때는 하루에 소주 2병씩을 매일 마셨다. 원래는 맥주를 좋아해서 매일 맥주 2,000ml를 마셨지만 어느 순간, 맥주로는 술에 취한 느낌이 잘 들지 않아서 소주로 주종을 바꿨다. 

 와이프는 내가 술 먹는 것을 정말 싫어한다. 아기가 배운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 아기는 두 돌이 지났을 무렵 나에게 물컵을 들이밀며 “아빠, 짠해야지”라고 했다. 나는 웃었고 와이프는 내게 눈을 흘겼다. 아이 앞에서는 술을 마시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회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술 한잔 생각이 간절했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술자리가 좋아서 시작한 술이었지만 요즘은 혼술을 더 즐기게 되었다. 밖에서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시는 것도 좋지만 아무래도 술 마시고 집까지 돌아오는 길이 번거롭다 보니 어느덧 집에서 혼자 먹는 혼술을 더욱 선호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끊었다. 다이어트를 시작하면서부터이다. 대학교 1학년 때 살이 갑자기 찐 적이 있었지만 곧 다시 원래 몸무게를 되찾았고, 그 이후로도 내 몸무게는 늘 73kg이었다. 그래서인지 난 내가 살이 안 찌는 체질인 줄 알았다. 그러던 내가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매일같이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불어난 살 덕분에 마침내 내 인생 최고 몸무게인 90kg을 찍게 되었다. 살이 찌고 나니 튀어나온 뱃살 때문에 양말을 신을 때 숨을 참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비대해진 몸을 가리느라 사이즈 큰 옷들 위주로 옷을 다시 사야 했다. 내 몸보다 큰 옷을 입고 길을 걸을 때면 사람들이 나의 뚱뚱한 몸을 보고 놀려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정말 문득 들었다. 내가 나를 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운동을 시작했다. 따로 식단 조절은 하지 않지만 평일에는 아침과 저녁 식사 대신 우유 200ml를 마시다 보니 자연스럽게 1일 1식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술을 끊지는 못했다. 금요일과 토요일 저녁에는 꼭 술을 마신다. 사실 술을 끊을 생각은 없다. 다만 내가 나를 관리할 수 있을 정도로 어느 정도의 선을 지키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나 스스로 일주일에 딱 2번만 술을 마시기로 결심했다. 매일 저녁 퇴근길마다 술 한잔의 유혹이 가득하지만 아직 까지는 나와의 약속을 잘 지키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술을 줄인 지 두 달이 되었고 몸무게는 어느덧 10kg 가까이 빠졌다. 살이 빠지자 사람들이 나를 보는 시선을 겁내지 않게 되었고 작아진 옷들도 조금씩 다시 입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나의 변화가 그저 반갑기만 하다. 


 내가 소개할 마지막 자기 관리는 영어다. 지난 글에서도 쓴 것처럼, 나는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지만 영어를 못한다. 현재 하고 있는 일도 해외영업이지만 영어는 언제나 나에게 큰 걸림돌이다. 영어라는 언어의 장벽에 절망하고 있을 즈음, 한 유튜브 채널에서 미드 쉐도잉을 소개하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 영상을 보는 내내 "이건 나도 잘하면 할 수 있겠는데? 나에게 도움이 되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역시 선뜻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 '굿 플레이스 (Good place)'라는 미드를 보게 되었고 문득 이 드라마로 쉐도잉을 시작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드라마 자체가 나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줬고, 무엇보다 재미있었다. 더군다나 한 편의 에피소드가 20분 내외의 짧은 분량이기 때문에 쉽게 시작할 수 있었다. 

 '굿 플레이스'로 쉐도잉을 하기 시작한 지 1년 반이 지났다. 하지만 앞서 나가는 나의 마음과는 달리 한 편의 미드를 끝내기란 생각보다 너무 어려웠다. 들을 때에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쉽게 느껴졌던 문장들을 실제로 배우들과 똑같이 발음하려니 혀가 엄청 꼬였다. 내 발음이 너무 딱딱해서 마치 내 혀가 두세 바퀴쯤 꼬여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극의 내용을 따라잡는 것보다 나의 발음을 교정하는 데에 시간이 정말 오래 걸렸다. 더군다나, 나는 야근을 꽤나 많이 하는 편이라 퇴근 후에 집에 돌아와서는 거의 녹초가 되어 뻗어버린다. 주말에는 그나마 시간이 좀 나긴 하지만 아내와 함께 아이를 봐야 한다. 쉐도잉을 하기 위해선 다른 빈 시간을 찾아야만 했다. 처음에는 출, 퇴근길 지하철에서 조용하게 쉐도잉을 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아무리 조용히 쉐도잉을 하려고 해도 발음이 어려운 문장들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지다 보니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아무리 나를 개발하기 위한다고는 해도 이런 시선들을 견뎌내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그러다가 막간의 빈 시간을 만들어냈다. 나는 출근을 꽤나 일찍 하는 편인데 지하철 한 정거장을 먼저 내려서 회사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바로 이 시간을 이용해 쉐도잉을 하기 위해서이다. 15분 남짓하는 시간인데, 이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고작 15분씩이라고는 하지만 어느덧 1년 반 정도를 거의 꾸준히 하다 보니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하고 약 90여 시간을 공부하게 되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분명히 효과는 있었다. 메일을 쓸 때에도, 외국 업체들과 통화를 할 때에도 분명히 효과가 있었다. 쉐도잉에 더해 내년부터는 화상영어도 시작해 볼 계획이다. 




 항간에는 담배 끊은 사람, 다이어트에 성공한 사람과는 상종도 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나는 아직 담배를 완전히 끊었다고도 할 수 없고 다이어트에 성공했다고도 할 수 없지만 사람들은 벌써부터 나를 대단하다고 추켜세우곤 한다. 사실 나는 내가 엄청난 의지박약에 끈기 제로인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무엇 하나 진득하게 전념하여 이루어 낸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금연을 통해서 나는 생각을 바꿨다. 수많은 사람들이 금연에 실패하는 모습들을 바라보면서 나 스스로도 내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 과정을 통해서 나는 조금씩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과 자존감을 갖게 되었다. 

 금연은 나에게 '하면 된다'는 아주 간단한 사실도 일깨워줬다. 술을 줄이는 것도, 영어를 공부하는 것도 그냥 하면 된다.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계획만 열심히 세우는 것이 아니라, 그냥 무작정 실천하면 된다. 운동을 정말 하고 싶지 않아도 그냥 하면 운동을 하게 된다. 퇴근길에 집 앞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 사고 싶어도 그냥 지나치면 술을 먹지 않을 수 있다. 담배가 당길 때도 그냥 참으면 또 참아진다. 참 간단하지만 이 유혹들을 뿌리치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아무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하면 된다. 그럼 된다. 그래서 나는 이 말을 참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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