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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나무 Jan 25. 2024

매도버튼을 누르는 마음

반려주식 떠나보내던 날

"여보, 오늘은 무조건 팔 거야."

"며칠 더 지켜봐 봐."

"아니야. 3년 버텼으면 많이 버텼어. 지금이야."


거래되고 있는 가격보다 300원 높게 매도가를 지정하고 전량 매도버튼을 눌렀다. 잠시 체결됐다는 톡이 왔고, 이로써 나의 반려주식이었던 삼성전자는 계좌 잔고에서 사라졌다.


나는 개미다. 2020년 10월에 주식에 입문한 개미다. 안전하지만 지루한 적금이나 목돈이 있어야 하는 부동산 말고 소액으로도 가능하면서 오르는 재미도 있는 주식에 관심이 생겼다. 얼마가지 않아 알게 된 건 '재미'라는 건 내가 가진 주식이 오를 때나 느끼는 감정이라는 사실이었다.


내가 입문했던 2020년 하반기는 다른 때와 다른 점이 있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위협하고 있었고 이 때문에 세계 각국의 경제가 위축되었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연준이 양적완화를 선언하며 현금이 어마어마하게 풀리고 현금가치가 떨어지면서 현금유동성이 증가하였고 그 여파로 부동산, 주식 등이 급상승을 하였던 전례 없던 시기였다. 그러다 보니 나를 포함한 주식에 전혀 관심 없던 사람들까지 다 주식에 관심을 보이고 입문하던 시기였다. 그때는 우스갯소리로 자고 일어나면 돈이 복사된다는 시기였고, 실제로 자고 일어나면 푼돈이지만 주가 상승과 더불어 내가 가진 돈도 늘어나곤 했다.


매일 오르는 수익률이 신기했다. 투자한 돈이 적어서 수익률에 비해 수익금은 아주 미약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어쨌든 적금이나 예금에선 볼 수 없는 수익률을 접할 기회가 그전에 전혀 없었으니 말이다. 간이 작아서 비트코인처럼 24시간이 장이 열리고 등락이 심한 건 해보지 못하고 소소하게 개미의 본분을 지키며 주식을 하곤 했다. 주식에 재미를 붙인 나는 저축할 수 있는 돈을 대부분 주식계좌로 넣었고 내 시드(종잣돈)도 몸집을 조금씩 불리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내가 만족할 시드를 모았고, 이제 오르기만 하면 된다는 뭣도 모르는 기대를 가졌다. 이제까지 수익을 가져다준 게 초심자의 행운이었다는 걸 까맣게 몰랐다. 그 행운은 6개월이 채 되지 않아 끝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지독한 개미의 현실이 이어지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간이 작은 덕에 국내 주식에서 가장 시총이 크고 그나마 안전하다는 삼성전자 주식의 비중이 가장 컸다는 거다.


계속 오를 것만 던 상승세가 멈춘 뒤 하락은 끝이 안보였고, 1% 상승하면 다음날 2%가 하락하는 식의 날들이 이어졌다. 뒤늦게 차라리 이 돈을 적금에 넣어놨다면 연이율 4~5%라도 얻었을 텐데 하는 후회도 해봤지만 소용없었다. 절대 손절은 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조금씩 추가매수를 하며 평균 매입가를 낮추었다. '본전만 와봐라. 무조건 팔 거야.' 라며 다짐하길 여러 차례, 수익이 목표였던 나는 어느덧 탈출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고 가볍다. 애증의 주식 '삼성전자'는 작년 12월 크리스마스 즈음부터 매일 상승하여 본전을 넘어 수익률 9%까지 상승했다. 본전만 오면 팔겠다던 나는 어느새 욕심을 부리고 있었다. '그래, 딱 10% 채우면 깔끔하게 나오는 거야. 내일이면 드디어 판다. 3년 만에 10%면 나쁘지 않지.'라며 기대를 한껏 했다. 그리고 정확히 그다음 날부터 주가는 다시 하락하며 열흘 만에 수익률이 마이너스가 되었다.


수익률이 플러스가 되기까지 3년이 걸렸는데 다시 마이너스로 복귀하는 데는 열흘밖에 걸리지 않았다. 욕심부렸던 며칠 전의 내가 원망스러웠다. '이제 진짜 본전 되면 뒤도 안 돌아보고 매도한다.' 다짐에 다짐을 했고, 지난주 금요일 드디어 매도버튼을 눌렀다.


그렇게 3년을 넘게 가지고 있던 나의 반려주식, 애증의 삼성전자를 지난주 금요일에 전량 매도하였다. 3년 넘게 가지고 있었지만 수익이었던 기간은 아무리 많이 세어봐야 20일이 되지 않는다. 다행히 그를 보낼 땐 2.3%라는 작지만 소중한 수익률을 얻었다.

그럼 난 이제 주식을 하지 않느냐고? 삼성전자는 가장 비중이 큰 주식이었을 뿐, 물려있는 다른 주식들이 있기에 아직 매도 버튼을 누를 일은 여러 번 남았다. 가지고 있던 기간으로 따지면 삼성전자보다 오히려 남은 종목들이 반려주식이 되지 않을까 싶다.


주식을 하면서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돈이지만 내 노력과 상관없이 돈이 불어나고 줄어드는 걸 경험하면서 내가 수고한 만큼 돈을 버는 일이 소중하다는 것도 깨닫고(몇 달치 월급이 계좌 잔고에 마이너스로 찍히기도 했다ㅠ) 노력과 상관없이 돈을 버는 게 생각보다도 더 기분 좋은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 욕심은 끝이 없고 내가 돈을 좋아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비록 지금은 탈출이 목표가 되었지만 주식을 하는 동안 우리나라와 미국(미국주식도 했다가 탈출 성공)의 어떤 분야에 어떤 회사들이 있으며, 시장에서 이슈가 되는 것은 무엇인지 등 예전에 관심을 갖지 않았던 국내 및 세계 경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니 주식을 하며 소소한 금전적 이익만 얻은 건 아니다. 돈보다 더욱 값진 걸 얻지 않았나 싶다.


그나저나 남은 주식들도 얼른 탈출해야 할 텐데. 잔고에 남은 모든 주식 수익률이 플러스가 되는 그날까지 개미로서 충실히 주식을 하려 한다.

  



새해에는 흘러가는 시간을 잠깐 멈추어 세워 나의 '일상을 살피는 마음'을 가지려고 합니다. 의미 없이 지나친 순간도 그러모으면 하루를 사는 비타민 한 줌이 될 거라 믿어요. 아무리 바빠도 매일 글 쓰는 작가 여섯이 꾸려가는 공동매거진 <일상을 살피는 마음>을 구독하고 당신의 일상에도 영양을 듬뿍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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