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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똥 Jan 26. 2024

아이의 언어를 이해하는 마음

아이를 통해 진짜 어른이 되는 것

아이들의 세계는 마치  꽉 찬 언어창고와도 같다. 그곳에서는 내가 생각할 수 없는 상상의 날개를 단 단어들이 하나 둘 튀어나온다. 정제되지 않은 작은 언어들이 살포시  마음속에 닿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예쁘고 예쁘다.


문득 상대와 대화를 하던 자신을 떠올린다.   자신에게 유리한 말을  하거나, 상대보다 돋보이고 싶어서 잘난 척을 하기도 했다. 유식해 보이고 싶었고, 단순한 언어에 온갖 치장을 했다. 나는 어른으로서 아이의 언어를 통해  마음이 맑아지는 연습을 하고 있는 중이다.  



밤사이 눈이 소복이 내린 날이었다. 출근 전부터 내린 눈을 보며 운전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언젠가 운전도중 내린 눈에 미끄러진 차는  뱅글뱅글 헛바퀴돈 적이 있었다. 그날 이후부터  눈 내린 날이면   사고라도 날까 봐 노심초사다.

아침 7시가 되어 어린이집 등원을 위해 지하 주차장에 내려왔다. 아이들은 눈이 걸 모른다.  밖에 나와 보니 역시 온 세상이 하얗게 물들었다. 자동차는 일제히 속도를 줄이며 달리고 있었다. 엎친데 덮친 격이라고 눈발은 점점 굵어졌고 거세졌다. 겨우 어린이집에 갈 뿐인데, 평소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직장으로 가는 길이 까마득해 보였다.  빨간 신호등에 걸려 자동차를 멈췄다. 창밖으로는 하염없이 눈이  내리는 중이었다.  아이는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말한다.


" 엄마, 저건 눈 새야. 눈 새가 뭐냐면, 새는 하늘을 날잖아. 눈이 날개가 달려서 새처럼 날아다니는 거야."


지겹게 눈이 많이 내린다며 짜증을 내던 나와 다르게 아이는 하늘을 훨훨 날고 있는 눈에게 '눈 새'라고 이름을 만들어 주었다. 그래, 정말 눈은 그냥 눈이 아니라 눈 새가 맞다. 네 말이 맞다. 저어기 새가 하늘을 난다.



아이들은 찐계란을 좋아한다. 계란 한 판을 사서 열댓 개 정도를 찐다. 다 찐 따듯한 계란을 아이들에게 건네면 좋아서  환호성을 지른다. 계란껍데기를 하나 둘 깔 때 우리 집은 하하 호호 즐거운 목소리로 가득 찬다. 한 개 , 두 개 세 계속 껍질만 까는 아이들. 딱딱한 껍질을 벗기고 나온 계란은 뽀얗고 쫀쫀한 하얀 속살을 드러냈다.  아이들은 계란을 맛있게 먹기 시작한다. 아이들이 계란을 먹는 개수만큼 이상하게 노른자가 점점 쌓여갔다. 어른의 시선에서 노른자는 흰자보다 뻑뻑하고 맛이 없긴 하다. 나도 노른자보다 흰 자를 더 좋아한다.  그러기엔 노른자 숫자가 너무 많아졌다. 이유가 뭔지 아이들에게 물었다.


"엄마, 노른자는 병아리야. 병아리를 먹으면 불쌍하잖아. 얘는 먹으면 절! 대! 안 돼! "


아이는 모아놓은 노른자 전부를 냉동실에 가져다 넣었다. 어른으로서 불쌍한 병아리를 냉동실에 넣은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불가지만 병아리를 먹지 않고 살려준 건 맞다. 병아리는 살아있다. 삐약삐약...




아이들은 지인이나 가족들에게 종종 용돈을 받는다. 특히 시골에 갈 때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아이들 손에 용돈을 쥐어주셨다. 맛있는 거 사 먹어라, 옷이라도 사줘라, 장난감 사라... 실제로 아이들은 돈으로 할 수 있는 게 많다고 생각한다.  집에 돌아온 아이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용돈 박스에 돈을 넣는다. 얼마 전 지인이 오만 원씩 준 용돈이 있어서 꽤 많은 액수를 모았다. 엄마보다 더 알뜰한 아이를 보며 감탄할 즈음,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다.


"이 걸로 엄마 황금반지와 황금 책을 사줄 거야. 엄마 황금 반지 없잖아. 내가 황금 반지랑 황금 책 사줄 테니까 기다려. 알았지?"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감정에 북받쳐 눈물이 났다. 아빠보다도  나은 아이들이다.

여기서 궁금한 건  실제 황금으로 도배한 책이 있을까 하는 것이다.  바꿔 생각해 보면 , 아이가 말한 황금책이란 만원 대 책일지라도 만원 이상의 지혜를 담을 수 있는 책을 말하는 것일 테다. 아이는 알까. 엄마는 만 원대 책이라도 네가 사주는 책은 모든 황금책으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황금 반지와 황금 책을 선물 받을 그날을 꿈꾼다. 마음까지 황금으로 노랗게 변한 것 같다. 아이가 황금똥을 쌌다. 어이구 귀해라.



나는 별도로 글 쓸 공간이 없어서 주방식탁이 내 서재다. 이사를 왔어도 책상을 구입하지 않았다.

덕분에 글을 쓰며 아이들 텔레비전 소리, 아빠의 코 고는 소리,  심지어 방귀 소리로 여러 번 놀라도 견딜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다. 너희들이 어떠한 잡음을 낸들 이 엄마의 글쓰기는 끝날 줄 모른다. 식탁은 내게 끝까지 쓰게 하는 담력을 만들어주었다.


아이들은 나의 식탁서재에 앉아 펜을 갖고 낙서를 하거나 장난을 치지 않는다. 이건 아기였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낙서를 하고 싶다면 자신만의 노트를 갖고 아이들의 공간에서 색칠을 하고 그림을 그린다.

종종 내가 책을 보고 있거나 다이어리에 기록을 하고 있을 때 그곳에 그림을 그려도 되는지 정중하게 묻는다. 내가 허락한 작은 공간에 토끼를 그리거나, 아빠를 닮은 잠만보 캐릭터를 그리며 웃는다.

어느 날 아이에게 왜 이곳에 낙서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낙서는 색종이에 하는 거예요"


색종이는 접어서 비행기나 돛단배만 만드는 줄 알았는데, 낙서를 한다는 아이의 마음이 놀라웠다.


사전적 의미로 다 성장한 사람을 '어른'이라고 한다. 하지만  진정한 어른이란,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끊임없이 배우려 하는 사람이다. 나는 이사실을  어른이 돼서야 깨달았다.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 키를 낮추고, 귀를 쫑긋 세울 때 비로소 아이의 언어마음속에 파고들었다.




새해에는 흘러가는 시간을 잠깐 멈추어 세워 나의 '일상을 살피는 마음'을 가지려고 합니다. 의미 없이 지나친 순간도 그러모으면 하루를 사는 비타민 한 줌이 될 거라 믿어요. 아무리 바빠도 매일 글 쓰는 작가 여섯이 꾸려가는 공동매거진 <일상을 살피는 마음>을 구독하고 당신의 일상에도 영양을 듬뿍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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