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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글음 Jan 27. 2024

일류 작가가 되고 싶은 마음

픽션과 논픽션 사이

J가 말했다.


"양반, 쌍놈 사라졌으니 계급 없이 모두가 평등한 것 같지? 아니야. 여전해. 자본주의 사회니까 돈 있는 놈, 없는 놈으로 나뉠 수도 있겠지.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같은 일을 해서 돈을 벌더라도 수준별로 계급이 있다는 이야기야."


그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다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며 축구를 예로 들었다. 프리미엄 리그에서 뛰며 몇십 억대로 버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수준에 따라 1부 리그, 2부 리그, 3부 리그 등에서 훨씬 적은 연봉을 받고 뛰는 선수가 있다고.


"교수라도 다 같은 교수가 아니지. 톱 수준의 1군 교수가 톱 저널에 논문을 내고, 일류 작가가 역작을 써내는 거야. 모두 높은 단계로 올라가려고 노력하지만 그게 얼마나 힘들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다' 써붙이며 힘을 내는 건 그것밖에는 다른 방도가 없기 때문이야. 만약 그게 모래사장에서 십 원짜리 동전을 찾는 일처럼 확률이 적다고 쳐. 그래도 내가 찾을 가능성이 존재는 하는 거니까."


그의 말은 늘 그럴싸했다. 시답지 않은 소리를 할 때도 있지만 듣고 보면 어쩐지 씁쓸한 기분이 드는 삶의 단면을 뚝 잘라 펼쳐놓을 때도 많았다. 말투에서 묻어나는 시니컬함을 빼면 참 좋을 텐데. J는 약속이 있다며 다음엔 술 한잔 하자는 의미 없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J와 헤어진 뒤 S는 줄곧 그의 말을 곱씹었다. 나는 어느 층에 속하는 작가일까? 일류, 이류, 삼류? 일단 일류가 아닌 건 확실하니까 지우고. 그럼 이류? 이류의 아랫부분 아니면 삼류의 윗부분은 되지 않나? 내 글이 어느 수준이었더라. 근데 저렇게 나뉘는 게 글을 잘 쓰고 못씀인가, 경제적 이익을 얻고 못 얻고인가. 그런 기준은 대체 누가 정하나 싶어 S는 머리를 흔들어 분류하기를 멈추려 했다.


그러다가 설마 사류도 있는 건 아닌가 싶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S는 몇 년 전부터 하던 일을 그만두고 전업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에세이 작가가 되어 책도 출간하고 근근이 잡지에 기고도 한다. 글만 써서는 먹고살 수가 없어서 알바로 학원 강사일도 병행한다.


그래도 이 정도면 원하는 일 하면서 소신껏 살고 있지 않나 싶다가도 이상하게 글 자체에서만큼은 자존감이 주식시장 마냥 수시로 오르락내리락거렸다. 내리 상승세, 내리 하락세가 없어 더 어지럽다고 S는 생각했다. 문장 하나하나가 유리판 위에 미끄러지듯 매끄럽게 뻗어나가는 글을 완성하고 나면 자신의 필력에 놀라 날아갈 것 같은 마음이 들 때가 있는가 하면 읽을 때마다 정전기가 일어나는 듯한 결과물 앞에서 좌절하기도 수차례였다.   


S는 생각했다. 언젠간 나도 일류 작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계속 쓰고 노력하면 되지 않을까? 앞날은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 정말 내가 모래사장에서 십원을 찾을 수도 있는 거잖아. 희망고문이라는 말도 있지만 그래, 고문을 당할 바에는 절망보다는 희망이 낫잖아. 안 그래? S는 집에 오자마자 노트북을 켜고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일류 작가가 되고 싶은 마음은 고문의 한 종류인지도 몰랐다. 


(끝)



친절한(강조 중임!) 남편과 술 한잔 하다가 1군, 2군, 3군 이야기가 나왔는데 머릿속에 남더라고요. 그러던 중 캐럴 윤숙 계의 <자연에 이름 붙이기>란 책을 읽었어요. 생명이 있는 것을 분류하는 건 인간의 본능에 가깝다 하더라고요. 그중에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 가늠한다고요. 그걸 토대로 각색해 본 이야기입니다. ^^


#소설인듯아닌듯 #일류이류삼류 #사실과허구의비율은4:6




새해에는 흘러가는 시간을 잠깐 멈추어 세워 나의 '일상을 살피는 마음'을 가지려고 합니다. 의미 없이 지나친 순간도 그러모으면 하루를 사는 비타민 한 줌이 될 거라 믿어요. 아무리 바빠도 매일 글 쓰는 작가 여섯이 꾸려가는 공동매거진 <일상을 살피는 마음>을 구독하고 당신의 일상에도 영양을 듬뿍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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