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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나무 Mar 14. 2024

우리의 첫 차를 떠나보내는 마음

차는 떠나고 추억은 남았다

8년 동안 우리 가족의 발이 되어준 차를 팔았다.


연애 때부터 신혼 때까지 우리 부부는 차 없는 뚜벅이 생활을 했다. 신혼집은 서울의 작은 빌라였는데 건물에 주차 공간이 부족하기도 했, 서울은 자차보다는 대중교통이 여러모로 편리했다. 차의 필요성을 굳이 느끼지 않다가 첫째를 임신하면서 차를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면허증은 있지만 운전할 생각이 전혀 없었고, 남편도 운전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초보였으니 새 차보다는 중고차를 사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마침 3,500km밖에 타지 않은 중고차가 매물로 나왔고 그렇게 소형 SUV 쏘울은 우리의 첫 차가 되었다.


큰 차는 아니었지만 우리 둘과 태어날 아기가 타기에 공간이 부족하진 않았다. 차 색깔은 진한 연둣빛을 띠며 풀색, 청개구리색과 비슷했다. 흔히 보지 못하는 특이한 색이어서 만 8년을 타면서 같은 차종 + 같은 색 차를 다섯 번도 보지 못했다. 어쩌다 만나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차 색이 특이하다 보니 차가 수백 대 주차되어 있는 주차장이라도 뒤꽁무니 혹은 차 지붕만 살짝 보여도 차를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누군가를 데리러 갈 에도 설명이 쉬웠고 상대방 역시 금세 우리 차를 알아보곤 했다.


서울을 벗어나 지금의 동네로 이사 온 뒤 나는 억지로 운전을 시작했다. 당시엔 운전을 하지 않으면 아무 데도 갈 수 없는 동네였기 때문이다. 버스 배차 간격은 너무 길었고, 택시도 잡히지 않고(택시는 지금도 잡히지 않음), 지하철도 없는(지하철도 지금도 없음) 동네였기 때문이다. 쏘울은 도심 속 섬 같은 동네에서 내 발이 되어 주었다. 어린아이 둘을 키우면서 짐을 바리바리 안 들어도 되고 덥고 추운 날씨와 상관없이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안전하게 나를 원하는 곳을 데려다주었다.


동네만 왔다 갔다 하다가 용기를 내어 고속도로도 타보고, 그렇게 서울, 안성, 태안까지 운전이 가능한 사람으로 만들어 준 차기도 하다. 처음 차를 샀을 땐 남편과 나, 둘만 탔지만 첫째가 태어나고 둘째가 태어나며 넷을 여기저기로 실어 나르는 차로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했고, 어느덧 주행키로수는 7만 킬로를 돌파했다. 차 상태만 보면 10년은 더 거뜬히 탈 수 있을 것 같지만 남편과 나는 이쯤에서 쏘울과 작별하기로 했다.


지난 주말에 차를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기념도 할 겸 사진도 찍는데 마음이 이상했다. 남편도 이상한 마음이라고 했다. 이 마음은 어떤 마음인 걸까. 왜 이상한지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익숙한 것과 헤어지기 싫은 마음, 8년 동안 큰 사고 없이 무사히 잘 타고 보낼 수 있어 다행이라는 마음, 다음 주인에게 가서도 별 탈 없이 안전 주행하길 바라는 마음이 골고루 버무려진 게 아닐까.


우리 차는 수출된다고 한다. 중고차 매매를 의뢰하면서 수출은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경매 방식으로 진행된 매매에서 가장 높은 입찰가를 제시해 낙찰된 딜러가 우리 차는 수출된다고 알려주었다. 마음이 괜히 더 싱숭생숭했다. 이제 우리나라에서 돌아다니다가 우연히라도 마주칠 일 절대 없다고 생각하니 왜 더 아쉬운지. 어차피 팔기로 했으면서 말이다. 어느 나라로 가서 어떤 주인에게 맡겨질차의 미래가 궁금하다. 인터넷으로 자동차 수출에 대해 알아보니 이집트, 리비아 쪽으로 많이 수출된다고 한다.


번호판이 떼어지고 자동차말소등록도 받았다. 이제 진짜 우리의 첫 차는 우리를 떠났다. 물건에 대한 애착이 별로 없는 나는 아끼던 물건이라도 처분하기로 마음먹으면 그 물건에 잔정이 없는 편이다. 차도 그럴 줄 알았는데 의외로 여운이 길다. 아마도 차와 함께한 추억이 너무나 방대하기 때문일까. 8년 동안 동서남북으로 달리던 길과 목적지가, 아주 두꺼운 앨범 한 권을 내지 끝을 잡고 빠르게 넘기듯 차르르 떠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이제는 우리 동네 동탄을 떠나, 무려 한국을 떠나 배에 실려 먼 길을 떠날 쏘울이가 새로운 곳에서 좋은 주인을 만나 새로운 길을 잘 달려주었으면 좋겠다. 우리 가족에게 안전하고 편리한 이동수단이 되어준 것처럼 제기능을 다하는 그날까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잘해주길!

탁송기사와 함께 떠나는 쏘울,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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