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꾸는공학도 Aug 23. 2023

[글감] 기억의 단편1

#1. 평소보다 이른 시각 회사 구내식당에서 아침을 먹다가 문득 대학교 1학년 첫 중간고사를 앞두고 

친구들과 도서관에서 밤을 새우고 먹었던 그날 아침의 학식이 기억났다.


아마 평소와 달리 조금 질었던 밥의 질감 때문이었으리라.

아니면 피곤한 상태에서 마주한 아침밥의 따뜻한 온기 때문이었을 수도.



#2. 그것들이 불러온 기억의 단편은 내게 반갑게 다가왔다. 대학교 1학년 첫 중간고사. 나와 친구들은 도서관의 큰 스터디룸을 예약해 밤샘 공부를 할 준비를 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정 시간 내에 주어진 자료를 학습해서 문제를 풀어야 하는 시험 준비하는 데 그리 효과적인 방법은 아니었다. 공부는 거의 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그때 우리에게 일종의 통과의례가 아니었을까 싶다.


우리의 스터디룸은 일종의 만남의 광장이 되어있었다. 친한 애, 어색한 애, 아는 애, 모르는 애 친구들의 거의 모든 친구들이 한 번씩 관련 내용을 물어본다는 핑계로 스터디룸에 들어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늘어 놓다 갔다. 옆 구석 바닥에서 자고 가는 애들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걸어서 몇 분 거리인 기숙사 가서 편하게 자면 되는데, 그것도 하나의 통과의례였을까...? 싶기도 하고)


돌이켜보면 무학과로 입학한 우리였기에 수강 과목이 거의 비슷했고, 대학생이 되어 보는 첫 중간고사라는 설렘 비슷한 감정들 같이 공유하고 있었던 것 같다.  



#3. 이유가 어떻든 평소엔 나도 모르는 의식 속 저 아래 감추어져 있다가 특정 Trigger를 마주하면 나를 찾아오는 지극히 개인적인 기억의 여러 단편들이 있다.


그 조각들은 때론 반가운 것들도, 때론 조금은 부끄러운 것들도, 그리고 때론 그 긍정과 부정을 나눌 수 없는 감정을 불러일으기도 하는데. 현재는 동영상처럼 흘러가고, 우리는 그것을 조각내어 기억의 단편으로 간직하게 되는걸까. (그렇다면 미래는 아직 확정되지 않은 여러 영상들이 확률적으로 혼재된 상황으로 보면 되려나...?)


지난 현재를 모두 붙잡고 모든 내용을 간직하고자 하면, 우리는 우리에게 더 좋은 확률을 보장하는 미래로 한 걸음 더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더 나은 미래는 보장되는 개념이 아니라, 나아가는 행위이다. 그리고 그 행위에는 에너지가 필요하겠지.


잘 다듬어진 기억의 여러 단편들은 지금 내게 두 발을 당당히 이곳에 서게 하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준다. 그 조각들이 가끔 Trigger를 통해 나를 희붐하게 찾아올 땐 아련해지기도 하면서 동시에 훈훈한 긍정의 힘을 준다.


나도 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도록 힘을 여러 기억의 단편에서 하나의 역을 맡고 있기를.


그때 그 스터디룸의 친구들 얼굴이 유독 보고 싶은 밤이다.  

작가의 이전글 [글감] Do your job.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