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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공학도 Apr 13. 2024

[그때그곡] 그때의 '봄바람'

'라일락 꽃 거리마다 가득 코끝이 아려와

햇살 같은 연인들의 미소 눈부신 날이야

그래 햇살 탓일까 아지랑이 피는 하늘

잠시 감은 눈에 나도 몰래 생각이나'


#1. 당신은 청춘 하면 어떤 장면이 떠오르시나요?

벚꽃 핀 거리를 걷다 보면 문득 이렇게 물어보고 싶을 때가 있다. 나는 이문세 님의 '봄바람'을 들으면 생각나는 청춘의 한 장면이 있다. 아마 대부분의 대한민국 남자라면 갖고 있을지도.


2015년 2월의 포항은 너무도 추웠다. 낯선 도시, 낯선 사람들. 아직 스스로에 대해 최소한의 것도 정립하지 못했지만 나는 국방의 의무를 먼저 해결해야 했다. 아니 이를 해결해 가면서 나를 정립할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훈련소 생활은 그간 나를 대표하던 루틴들을 와장창 깨트려 버렸고, 나를 시작부터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너한테 진짜 중요한 게 도대체 뭔데? 어떻게 살 거냐고'


수료를 앞둔 7주 차 즈음이었다. 4월 초였는데, 봄날의 새벽 아침이 그렇게 추운지 나는 비로소 그때 처음 알았다. 동시에 4월 오후의 햇살은 너무나도 따스했다. 많은 사람들이 거쳐간 방탄모를 턱끈에 조이고, 무거운 군장을 어깨와 허리에  채 한참을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그간 머릿속을 떠다니던 많은 것들이 6주라는 짧은 시간 동안 침전되었다. 발바닥에 물집이 터져 군장을 맨 어깨와 발바닥이 걸음마다 시큼했다. 내내 허기가 졌지만 피곤이 동반한 졸음이 그 허기를 쫓았다. 그렇게 '터벅, 터벅' 우리들은 발을 맞추며 만개한 벚꽃나무들이 줄을 지어 서있던 그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걸으며 목표지를 향해 나아갔다. '이 여정도 언젠간 끝이 날 거야' 종종 봄바람이 불어와 이따금 벚꽃잎과 함께 빽빽이 열을 맞춘 우리들 사이로 아름답게 흩날렸다.


'봄바람처럼 살랑 날 꽃잎처럼 흔들던 사람

꿈처럼 지난날들 이제 다시 돌아갈 수 없지만

봄바람처럼 살랑 내 가슴을 또 흔드는 사람

언제나 나에게 그대는 봄이야'


#2. 그렇게 7주라는 시간이 지나고 수료식 당일이 되었다. 서있는 자리에 가족들이 찾아오면 늠름한 모습으로 경계해야지 라는 애초의 내 계획은 가족들의 얼굴을 보자마자 와르르 무너져버렸다. 내 속의 어떤 감정이 용솟음치듯 올라와 나는 차마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하염없이 눈물만 계속 흘렀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7주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가족들의 얼굴이 갑자기 낯설어 보였달까.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의 모습이 나와의 관계 속 형태가 아닌 세 명의 독립된 사람의 모습으로 보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때 오히려 더 깊은 감사의 마음을 느꼈다.

 거리에는 봄바람에 벚꽃잎들이 춤을 추며 흩날렸다. 그리고 땀과 눈물이 범벅된 얼굴과 머리에 벚꽃 잎이 내려와 붙었다. 그때 거리에서 이 노래가 들려왔다. 평소 좋아하던 가수 이문세 님의 신곡 '봄바람'이. (사람들은 본인이 입대할 때 나왔던 곡 '입대곡'을 보통 기억하는데, 나는 이 곡이 마음에 남는다. '수료곡'이라고 해야 하나..?)


이 노래를 들으면 나는 그때 포항에서의 봄이 생각난다. 그 해 겨울에서 봄으로 지나가는 그 풍경을 함께 마주한 전우들의 얼굴. 꽁꽁 언 땅을 기어코 파내어 번개탄을 넣고 쭈그려 앉아 먹었던 밥. 몸을 떨게 한 바랏바람과 차가웠던 겨울바다. 차디 찬 바닥에 누워 서로를 의지하며 각자의 침낭 속에서 세던 별. 수료식 날 먹고 싶은 음식과 같이 이야기했던 꿈. 매일 저녁잠에 들기 전 편지를 기다리던 그 마음. 그리고 마음이 담긴 그 편지들. 어쩌면 그 낯선 환경 속에서 나는 하나씩 나를 발견해 가며 계속해서 나를 살아갈 결심과 용기를 얻었는지도.


쓰다 보니 마치 그때를 미화하는 것 같지만, 힘든 상황에서도 의미를 발견하고 추억할 요소들을 정제해 간직하는 이 능력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고 믿는다. 앞으로도 이런 능력이 촘촘하게 나의 장면을 빛내주기를, 그래서 나의 한 걸음 한 걸음에 이런 마음들이 켜켜이 겹쳐있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지난날은 다시 돌아갈 수 없지만, 봄은 또 돌아오니까.


어느새 24년의 또다시 눈부신 봄이다.


'다시 돌아오는 계절처럼 나를 찾아오는 그대

영원할 것 같던 그 순간이 어제 같은데

봄바람처럼 살랑 날 꽃잎처럼 흔들던 사람

꿈처럼 지난 날들 이제 다시 돌아갈 수 없지만

봄바람처럼 살랑 또 하루하루 멀어지지만

어느새 또다시 눈부신 봄이야'



이문세 [봄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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