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으로 취소된 혼주드레스 투어 15
사실 결혼식 준비에 뭐가 옳다 그르다 하는 기준은 없고,
예신과 예랑이의 의견 조율을 통해 여러 형태로 결혼식 준비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신기하게도, 결혼식 준비의 테마가 우리는 '싸움'이었다.
그것도 서로의 극단을 먼저 경험할 수 있을 정도의 큰 싸움.
그래서 어떤 일을 추진하면 매끄럽게 진행되는 부분은 하나도 없고 항상 취소를 염두에 두어야 하는 불안정한 과정이었다.
확실히 결혼식을 하기 싫다고 마음을 결정(?)해서인지 내 예랑이의 결혼식 준비에 대한 저항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거셌다.
혼주 드레스 투어를 할 때, 우리 친정어머니와 예비 시어머니의 투어일을 동일하게 잡아야 서로 어울리는 스타일을 결정하기도 쉽고 두 분이 생소한 의상을 접해보시는 자리라 예랑이와 같이 봐드리면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나의 판단이 하루아침에 취소가 되어버릴 줄은 몰랐다.
예비 시어머님의 경우, 지방에서 먼 길을 오셔야 하기 때문에, 미리 모든 일정을 말씀드리고 혼주 드레스로 입고 싶어 하시는 스타일을 우리 친정 엄마랑 각각 미리 결정하시게 한 다음에 5벌 정도 두 분이 겹치는 의상으로 같이 입어보시면 좋을 거 같아서 P인 내가 나름 J스럽게 열심히 준비한 방문이었다.
혼주 드레스 방문일 일주일 정도 전 예랑이의 예복 가봉일이었다.
아침 식사를 하고 치우면서 예복점 방문을 위해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내가 그동안 하기 싫은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쌓여온 부정적인 감정들이 폭발하는 사건이 생겼다.
열심히 차려주는 아침도 별로 탐탁지 않게 먹더니 틱틱 거리는 말투로 냉랭하게 나를 대하던 예랑이. 조금씩 거슬리기 시작했다. 설거지도 당연한 듯 도와주지 않고 방으로 들어가더니 계속 핸드폰만 보고 있는 예랑이의 모습에 울컥한 감정이 조절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뜨거운 화를 예랑이에게 쏟아냈다. 우선은 예복 가봉 시간에 맞춰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준비는 했지만 서로 감정이 안 좋은 상황에서 함께 예복점으로 가는 길은 너무나 멀게 느껴졌다. 밀실에서 제일 싫어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아침에 계속 예복점에 갈 준비는 안 하고 핸드폰만 보고 있던 예랑이의 모습을 복제하듯 차에서 말 한마디 없이 핸드폰만 보았다. 내면의 화가 너무 커져서 도저히 가봉을 하러 같이 갈 수가 없어 예랑이 혼자 예복점으로 보내고 나는 카페로 향했다.
통제가 안 되는 억울함과 분노를 어느 정도 가라앉히려고 노력을 하면서 카페에 혼자 앉아있다가 혼자 가봉을 끝내고 온 예랑이를 못 본 척하며 차에 탔다. 얼굴을 보면 더욱 화가 날 것 같았다. 그리고 서로의 감정에 대한 대화를 하다가 지속적으로 결혼식에 대해 반감을 드러내는 예랑이의 태도에 나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고, 예랑이에게 심한 욕을 하면서 싸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정말 파혼의 1mm 전까지 간 순간이었고, 이 일로 인해 서로 결혼까지 다시 생각하기로 얘기가 나와서 혼주드레스 투어도 취소가 된 것이었다.
그리고 나와 예랑이는 결혼을 다시 생각해 보기 위한 시간을 무기한으로 갖기로 했다.
감정이 가라앉고 화해를 시도하려던 나는 차가워질 대로 차가워진 예랑이의 시간을 달라는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