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광걸 Apr 16. 2020

‘힘의 논리’에 의한 피해자들

 개인의 삶이 거역할 수 없는 운명에 의해 좌우된다고 느낄 때 우리는 체념하거나 겸허하게 순응할 것이다. 그런데 그 운명이 알고보니, 신이 명령하거나 예정한 것이 아니라, 강대국의 이해관계나 국제역학관계에 기인한 것이라면 어떨까? 막강한 권력을 가진 한 개인의 신념이 어떠한 인연도 없는 미지의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면 우리는 저항할 것인가 아니면, 체념할 것인가? 우리는 초인간적인 힘에 의해 자신의 삶이 결정지어질 때 이를 거역할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내가 타국에서 만난 몇몇 사람들은 마치 하나의 실타래처럼 엮여 있음을 몇 년 후에 알게 되었다. 내가 그 사람들을 만난 것이 운명적이었을까? 누구도 쉽게 말하지 않는 진실, 나에게는 왠지 잔잔한 소름이 끼쳐졌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섬에 구축한 중세성, 휴양지(몬테네그로)

 검은 산을 뜻하는 국가인 몬테네그로(Montenegro)는 2006년 세르비아몬테네그로에서 분리 독립한 발칸반도에 있는 나라다. 검은 색의 험준한 바위 산이 병풍을 두른 듯이 아드리안해안에 접하고 있는 아름다운 나라이다. 우리가 탄 비행기는 예정시간보다 늦게 티밧(Tivat) 공항 상공을 배회하며 착륙비행을 하고 있었다. 밖은 이미 어두웠다. 마침내 다소 둔탁한 소리를 내며 경착륙을 했다. 비행기는 두 번정도 들썩이다가 순항했다. 기내는 갑자기 우레같은 박수소리와 환호성, 휘파람 소리로 꽉찼다. 조금 전까지 숨죽이듯 조용했던 비행기 안은 왁자지껄한 활기로 가득 찼다. 이 비행장은 유도등이 없어 야간 착륙은 않되는데, 조종사가 수동착륙을 감행(?)했던 것이다. 조종사의 비행술과 안전한 착륙을 축하하는 안도와 행운의 박수였다.      

공항안내 방송설비

 티밧 공항은 지중해 휴양지와의 접근성이 좋아 관광객의 항공 수요가 폭증하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우리 조사단은 티밧공항을 공식 방문했다. 공항 관계자들과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곧 실무협의를 했다. 종종 있는 일이었지만, 그들의 요청사항은 공식문서에 기술한 내용보다 많았다. 2007년 티밧공항을 방문할 당시 비행기의 이·착륙 시간과 운항정보를 알리는 게시판은 기계식이었다. 기계식 게시판은 얇은 알미늄판으로 된 검정색 바탕에 흰글자가 조합되어 항공편 정보를 알려 주었다. 게시판이 넘어갈 때마다 “촤르르”하는  소리와 함께 게시판 내용이 바뀌었다. 기계식인 까닭에 고장도 잦고 오작동이 많았다. 항공편의 운항정보를 알려주는 컴퓨터시스템을 ‘FIDS(Flight Information Display System), 비행 정보표시 시스템’이라고 한다. 최신식 FIDS를 이 공항에 설치하고, 검색 및 보안 그리고 화재설비 등 공항 시설을 업그레이드 하기 위한 실무 조사가 금번 출장의 목적이었다. 

 우리나라가 ICAO 즉, 국제민간항공기구를 중심으로 세계 항공부문에서 급성장해 온 위상에 걸맞게 ICAO 회원국의 지원요청에 응하고, 상호 협력의 폭을 확장하기 위해 공항 관계기관들 간에 사전 협의를 거친 사업이었다. 요청사항에 대한 세부내용을 전문가들이 검토하고 실제 소요될 예산액을 산정하는 일이었다. 이 사업을 과연 ODA로 추진하는 것이 타당한가? 이 사업으로 기대되는 상호호혜적인 이익은 무엇인지 고민했다. ODA 사업으로 선정된 후 우리나라 업체가 사업을 수행할 경우 현지에서 겪게 될 다양한 문제와 대비책들도 함께 토의하고 협의했다.      

자이툰 도서관내 기록관(이라크, 아르빌)

 저녁 식사를 위해 해변가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전문가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어느 덧 석양이 늬엇늬엇 저물어갔다. 해변을 걷고 있는 데 한 젊은이가 반대편에서 오고 있었다.     

“어디서 왔어요?, Where are you from?”

“한국에서 왔어요, Korea, I am from Korea.”

“남한이에요 북한이에요?, South or North?”

“대한민국, 남한입니다, the Republic of Korea, South Korea.” 나는 이런 대답을 할 때 마다 왠지 자존심이 좀 상한다. 그가 비웃듯이 한마디 던진다.

아하, 코메리칸!, Ah, Kormerican!

“...?”      


 순간 잠시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반감을 보이는 외국인을 외국에 나와 처음으로 접했기 때문이었다. 몇가지 생각이 스치면서 내가 이곳에 온 목적을 설명했다. 이 나라의 티밧공항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원조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왔노라고 설명했다. 그러자 자기는 이곳 사람이 아니라며, 사촌이 이라크(Iraq)에서 미군에게 죽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왜 미국을 돕냐, 미국 말을 잘들으니까 코리아가 아니라 코메리카, 너는 코메리칸’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돌발적인 언사에 제대로 응대를 못하고, 나는 ‘마음씨 좋은 동네형’마냥 말했다.

“우리는 전투병력은 보내지 않고 의료, 재건 활동만 한다.”라고 말하며 가던 길을 이어 갔다. 그의 말이 내게는 큰 충격이었다.     

바그다드 미군기지에 착륙하는 헬기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17년 8월말경 나는 이라크 바그다드(Baghdad) 공항에 내렸다. 픽업나온 운전수인 아흐메드(Ahmed)는 매우 충직하고 일에 자부심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의 동생은 미국과의 전쟁에 강제징집 당해 전장터에 나가 죽었다고 한다. 모든 것을 운명으로 여기는 듯 미군에 대한 원한은 조금도 없다고 했다. 후세인이 잘못됐고, 동생의 죽음은 운명이라 말했다. 그런데 그가 10년 넘게 일해온 직장을 잃게 된 이유는 다름아닌 동생의 죽음때문이었다. 컴퓨터 시스템은 15년 가까운 세월 속에서도 모든 것을 기억해서 미군이 관장하는 지역에 들어오는 출입증을 발급해주지 않았다. 나 역시 막막했다. 

아파트벽 총격흔적 (바그다드)

 발칸반도 해안가에서 만난 젊은이는 소위 ‘이라크 전쟁’의 피난민이었다. 그와 같은 원인으로 불행을 겪는 사람이 여전히 남아 내 곁에도 있다니...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뒤에도 불행은 악령처럼 지구촌을 맴돌고 있었다. 복잡다단한 생각이 구름처럼 일었다. 그가 미처 전하지 못한 메세지가 있었던 걸까? 무엇일까?     


 이란과의 접경지역인 할랍자(Halabja)는 사담 후세인이 생화학물질로 거주민을 살상시킨 곳으로 유명하다. 할랍자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희생자를 기리는 희생탑과 당시의 비극적 사실을 알려주는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에는 후세인의 재판기록과 쿠르드족에 대한 탄압사실을 증빙하는 문건들이 꽤 있었다. 미국 콜린파워(Collin Power) 국무장관이 현지를 방문하여 연설한 사진도 걸려 있었다. 그리고 박물관 근처에 아버지가 포대기에 쌓인 아기를 자신의 몸으로 포개어 보호하려는 모습의 조각상이 있었다. 애잔함이 밀려왔다. 날씨 탓인지 모든 것이 희뿌였게 보였다.      

전쟁 고아일까?(바그다드)

 미국 주둔으로 혜택을 받는 아르빌 지역이 반 후세인 정서가 짙은 이유도 이해가 됐다. 그러나 반대편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소위 '후세인의 할랍자 학살'은 미국의 조직적 언론플레이로 조작된 것이며, 이라크전의 대의명분이었던 대량살상무기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에 기초한 주장이다. 이라크가 중동지역에서 패권자로 등장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는 것이다.      


 이라크 전쟁의 희생자는 할랍자의 주민들뿐 아니라, 어쩌면 후세인을 포함한 이라크 지도층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국제정치의 판도변화에 따라 생명줄이 출렁거리는 현지주민들일지도 모른다. 내가 만난 한 명의 이라크인은 ‘유럽의 화약고’인 발칸반도를 떠도는 유랑자의 신세가 되었고, 할랍자에서 만난 쿠르드 출신의 이라크 국민은 미국을 지지하며 쿠루드의 자치 독립을 원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바그다드에서 만난 또 한명의 이라크인, 아흐메드(Ahmed)는 자신의 직장을 잃었다. 무엇이 진실일까?      

자이툰 부대가 건설한 도서관 입구(이라크, 아르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