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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body Jan 26. 2021

캘리포니아 와인 여행 1

로스 올리보스와 산타 리타 힐스

캘리포니아 와인을 특별히 좋아한 적은 없다. 섬세하고 가벼운, 서늘한 기후에서 생산된 와인을 좋아하기 때문에 알코올이 강하고 진하고 비싼 캘리포니아 와인을 일부러 찾아마시지는 않았다.


그런데 재작년 11월에 미국 갈 일이 있어서 캘리포니아에 들르게 되었고 사흘밖에 여유가 없었지만 캘리포니아 와인 산지에 갈 수 있었다. 그렇게 얼떨결에 로스앤젤레스 공항에서 로스 올리보스로 향하게 되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가까운 팰로스 베르데스에 사는 언니와 둘이서. 그때 떠났던 짧은 와인 여행이 이제는 전생처럼 아득하게 느껴지고 그때 더 오래 머물지 못한 것이 더 아쉽다.


캘리포니아를 찾은 것은 거의 17년 만이었다. 그리고 와인 산지는 처음이었다. 원래는 가장 유명하고 규모가 큰 나파밸리를 계획했는데, 거리와 시간, 일정 때문에 로스앤젤레스에서 가까운 로스 올리보스, 산타 리타 힐스, 카멜 밸리 정도로 여정을 짰다. 나파 밸리에서 유명한 카베르네보다는 산타 리타 힐스와 카멜에서 많이 생산되는 피노 누아를 더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늦가을에 접어든 서울에서 초겨울 시카고를 거쳐 다시 늦여름으로 돌아온 것 같은 캘리포니아...... 와인 여행인지 시간 여행인지 피곤하고 정신없었지만 탁 트인 창밖 풍광을 보니 숨통이 트였다. 영화 <사이드웨이>보다는 조니 뎁이 주연으로 나온 <애리조나 드림>을 떠오르게 했다.




인터넷 메뉴를 통해 예약이 되는 곳도 있고 이메일로 예약하는 곳도 있다. 전화로 방문 예약을 해야 하거나 아예 방문객을 안 받는 소규모 와이너리도 있다. 우리나라에 수입되지 않는 와인을 맛볼 수 있는 중소 생산자 위주로 미리 예약을 해두었는데, 첫 번째 와이너리는 로스 올리보스에 있는 삼사라 Samsara라는 곳이었다. 와이너리, 아기자기한 가게, 식당이 좀 있는 동네 로스 올리보스는 <사이드웨이>를 촬영한 곳이다. 영화에서는 산타 바바라라고 나오지만 실제로는 영화사들이 있는 할리우드에서 가까운 로스 올리보스에서 촬영했다고 한다.

 포도밭과 양조장이 표시된 지도, 그리고 각 밭의 특징을 설명하는 직원


기온이 높은 미기후 포도밭에서 자란 포도라 농염하고 화려한 향이 올라오고 알코올이 높다.

로스 올리보스의 삼사라 와이너리는 와인을 만드는 양조장이 아니라 시음장 Tasting Room으로, 홍보와 판매를 목적으로 운영하는 곳이다.  양조 과정이나 포도밭을 볼 수는 없지만 흔하지 않은 와인들을 (유료로) 편하게 시음할 수 있다. 팁 공화국이다 보니 여기서도 팁을 반갑게 받는다.


와인 여행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1. 운전 (시음하는데 걸림돌이자 아무리 맛있어도 마시지 못하는 고문) 2. 와인을 사지 않고  참기다. 운전은 미안하게도 언니가 다 했는데, 시음을 마음 편히 하다 보면 와인을 사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 문제였다. 세금 안 내고 해외여행에서 반입할 수 있는 와인은 딱 한 병인데 말이다. 몇 달 전 독일 와이너리 여행에서 운전이라는 제약이 있었는데도 가방에 들어갈 수 있는 만큼 와인을 잔뜩 사서 채운 덕에 인천공항에서 내 트렁크는 구급차처럼 라이트가 번쩍이는 자물쇠를 달고 수하물 벨트 위에서 시선을 모았고, 나는 꼼짝없이 세관에 가서 관세를 짭짤하게 냄으로써 국고에 기여했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는 와인을 딱 한 병만 사리라 결심을 하고 왔건만 첫 번째 놀이터에서부터 6 가지를 시음하고 알코올도 무지막지한 14%짜리로 피노 누아 한 병을 사버렸다. 그런 다음 30분 거리의 산타 리타 힐스 Sta. Rita Hills에 있는 샌포드 Sanford 와이너리로 갔다. 기온은 25도가 넘었지만 포도밭은 수확이 다 끝난 상태였고 가을 색을 입고 있었다.



날씨가 워낙 좋다 보니 포도 말고 늙은 호박도 잘 자라는지 호박에 상호를 딱 새겨놓고, 오크통을 화분으로 재활용하는 센스가 돋보이는 중견 와이너리였다. 이 동네에서는 선발 주자인 편이라 여러 군데에  포도밭을 가지고 있었다.


샌포드 와이너리 입구
시음장 뿐 아니라 양조장과 포도밭이 있는 진짜 와이너리




대부분 알코올이 높은 와인들로 시음을 이미 한 상태라 정신이 없고 약간 힘들었던지라 샌포드에서는 스파클링 위주로 시음을 했다.




부르고뉴 스타일을 지향하는 절제되고 우아한 피노 누아와 샤르도네


빈티지 스파클링을 글라스로 맛보는 재미



샌포드는 삼사라에 비하면 꽤 큰 회사이며 포도밭과 양조장도 몇 군데에 있다. 기념품도 만들어 팔고 나름 기업 같은 면모를 갖춘 것 같았으나 시음을 도와주는 젊은 여직원이 열정 없는 회사원 스타일이라 맛은 있었는데도 구매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었다. 오, 땡큐! 하지만 만약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천천히 시음을 더 하고 한 병 사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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