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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적인 사람

by shini

매일을 바쁘게 살아가다 보면 내면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방치하게 된다. 그러다 감정에 대한 책들을 읽게 되면 이때다 싶어 과거에 나를 지배했던 감정과 그 감정을 다뤘던 미숙한 방식들을 적어본다. 처음은 부끄럽고 조금은 수치스럽게 시작하다가 중반부에는 감정에 빠져 허우적대지만 마지막쯤엔 나를 보살펴줬다는 왠지 모를 뿌듯함이 생기는, 굉장히 사랑스러운 작업이다.


감정적이라는 말은 어느 순간 비난을 뜻하게 되었지만 감정에 선악은 없다. 어느 순간 나를 오래도록 괴롭혔던 불안은 미래를 상상하고 계획할 줄 아는 장점이 되었고 내면에 품고 있던 화는 내가 결심한 일을 끝까지 해내는 의지와 열정이 되었다. 힘든 시절 찾아왔던 외로움은 내가 스스로를 성찰할 기회가 되었고 이후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씩 도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게다가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나도 친밀감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덕분에 곁에 있는 사람들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고 아끼게 되었다.


무엇보다 부정적으로 여겨졌던 내 감정들은 작업을 하면서 조금씩 빛을 발할 수 있었다. 전시를 할 때마다 어쩌다 지금처럼 귀엽고 동화 같은 작품을 추구하게 되었느냐는 질문을 받곤 하는데 내 작품들이 갖고 있는 밝음 이면엔 어둠이 담겨 있었다. 나는 슬픔, 불안, 분노, 두려움, 외로움 등 겪어왔던 부정적인 감정을 통해 성장해 왔었고 내 작업들은 내면의 어둠이 승화되어 사무치게 빛나는 화사함이었다.


좋아하는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 어른이 되는 건 기쁨이 줄어드는 일이라는 대사가 나온다. 어른이 되면서 순수하게 기쁨이라고 부를 수 있는 감정은 분명 줄어들고 있지만 헤어짐 뒤의 아쉬움, 과거를 추억하며 느껴지는 아련함, 밤에 가끔 빠져드는 우울의 달콤함까지 어렸을 땐 알 수 없었던 복잡 미묘한 감정들을 나는 감히 행복의 영역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우리를 힘들고 괴롭게 만드는 것은 감정이지만 설레고 행복을 느끼는 것도 감정이다. 쓸데없는 경험이 없듯이 느껴선 안 되는 감정은 없으며 우리의 삶은 다양한 감정들이 다채로운 빛을 내는 덕분에 농도 짙은 행복으로 물들어간다.


미숙한 시절엔 감정을 느끼는 내 모습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고 구태여 그것을 밖으로 표현하고 싶지 않았다. 감정은 나를 대부분 비효율적으로 만들었기에 늘 조심하고 피해야 할 대상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타인과 서로의 깊숙한 감정을 꺼내야만 느낄 수 있는 울림들이 좋다. 또 그것을 좋아하는 내 모습이 썩 밉지 않고 꽤나 사랑스럽다. 서로에게 못난 모습을 보여주고 품어주며 깊은 관계로 나아가듯이 나도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나를 인정해야 나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기에, 감히 모든 감정들을 느끼고 담을 줄 아는 감정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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