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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행복의 가벼움

by shini

어릴 때부터 나에게 인생의 가장 큰 꿈이자 행복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유능한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나는 위인을 동경하고 지식을 쌓거나 잠재력을 개발하면서 그려왔던 이상적 자아에 가까워질 때마다 달콤한 희열을 느꼈다.


그런데 성인이 되고 언젠가 행복이라는 감정과 멀어진 나를 발견했을 때 처음으로 행복의 정의에 의문이 들었다. 성격은 타고난 게 아니라 습관이라는 말도 있듯이 행복은 내게 성취가 아니라 내가 이것 말고는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을 몰랐던 게 아닐까?


그때부터 행복에 관한 책과 영상들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그들의 가르침대로 내 인생의 행복 그래프를 그려봤다.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나의 행복도가 가장 높았던 시기는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내가 왜 그때를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하는지 분석해 보니 당시 나에겐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었고, 그것을 이루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으며, 무엇보다 그것을 하면서 느끼는 기쁨과 고통을 함께 공유할 사람들이 있었다. 나의 행복에 성취가 큰 파이를 차지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나는 사람들과 내면을 나누는 것에서 큰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이들의 노년을 살펴보면 많은 돈을 기부하거나 강의를 하고 책을 쓰는 등 자신의 재능을 나눠주면서 시간을 아낌없이 쓰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가 돈을 갖고 싶어 하는 것도 어쩌면 사회적으로 귀중한 것이라 통용되는 재화의 힘을 빌려 그것으로 자신의 영향력을 공유하고 싶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자신의 우월한 능력 때문이 아니라 그 능력을 활용하여 타인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치면서 자신보다 커다란 무언가에 연결될 때 행복을 느낀다. 그리고 무언가를 이루지 않더라도 그것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행복과 같은 감정을 경험한다.


몇 년 전 내가 하던 일을 갑자기 관두고 뜬금없이 미술작가가 되겠다고 설쳤을 때 아빠는 당황하는 엄마 옆에서 '은지가 행복하면 되지. 하고 싶은 만큼 해봐.'라며 나를 지지해 줬다. 몇 년이 흐른 지금 나는 아빠에게 내가 성공은 무슨 그저 먹고살기 빠듯하고 사실 내가 뭐가 되고 싶은지 모르겠다며 투정을 부렸다. 누구보다 지탱하듯 무겁게 살아온 아빠는 철없는 딸에게 '그냥 가볍게 살아.'라고 말할 뿐이었다.


어이없게도 그 순간 나는 행복을 느꼈다. 찰나에서 내가 이룬 것은 없었지만 아빠는 내 가벼운 투정에 숨은 무거운 감정들을 깊이 알아봐 주었기 때문이다. 버겁게 느껴지는 내 욕망과 그것에 수반될 수밖에 없는 불안, 두려움, 그리고 자랑할 만한 딸이 되지 못했다는 죄책감까지.


우리는 마음 한편에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라는 의문을 품고 살아간다. 하지만 우주적 관점으로 보면 하나의 인생은 먼지 한점보다 아주 보잘것없다. 삶에 대한 주체성과 책임감을 생각하면 우리는 괴로울 정도로 심각해지기 마련이고 수많은 먼지에 불과한 자신의 존재를 자각할 땐 허무함 속에서 허우적댄다.


그럼에도 당신이 의미 있는 삶을 택하고 싶다면 여기 아주 가벼운 방법이 하나 있다. 바로 누군가의 삶에 의미를 주는 것. 특별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바로 옆에 있는 사람에게 좋은 영향력을 주고 그 사람의 인생에서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면 우리는 한 인생에서 의미 있는 사람이 되고 의미 있는 삶을 살게 된다. 나에게 그래왔던 내 삶의 위인,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우리 아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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