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행복해지기를 원하지만 우리의 뇌는 행복에 별로 관심이 없다. 뇌의 목적은 오직 생존으로 굉장히 효율적으로 작동된다. 우리가 생각을 많이 하면 뇌의 에너지 소비량이 늘어나기 때문에 뇌는 모호함에 이름표를 붙이고 패턴을 만들려고 한다. 따라서 우리는 충분히 생각을 하기보다 들어오는 정보들을 신속하게 정리하고 결론을 짓게 된다. 사회적으로도 선택을 쉽게 못하는 사람들을 우유부단하다고 표현하고 심지어 결정장애라고 비하하면서 빠른 결정을 장려한다. 덕분에 현대사회의 우리들은 본능에 더욱 충실한 유인원이 되어가고 있다.
요즘의 우리는 관계에서도 모호함을 잃어가려 한다. 많은 사람들이 초면에 자연스럽게 서로의 mbti를 공유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자신의 mbti를 말하는 이유는 나를 구구절절 설명하고 이해시키기 귀찮기 때문이며 타인의 mbti를 물어보는 이유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예측하고 상상하는 스트레스를 줄이고 싶기 때문이다. 심한 경우 mbti를 통해 나와 잘 맞는 사람인지, 나에게 해를 주지는 않을 사람인지 재빨리 판단한 뒤 나와 합이 잘 맞지 않을 것 같으면 더 이상 관계를 이어나가지 않는다.
하지만 모른다는 것은 관계의 실패가 아니라 모든 관계의 시작이자 전제조건이다. 세상엔 나와 잘 맞는 사람과 안 맞는 사람, 2가지로 나뉘어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나와 맞지 않다고 판단한 사람들 중엔 아무리 노력해도 합이 좋지 않을 관계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미처 잘 맞는 부분을 발견하지 못한 과정 속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모호함에 대한 두려움은 타인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자아에게도 해롭다. '나는 어떤 사람이야'라고 쉽게 말하는 사람들은 실상 자기 자신에게 가장 무관심한 사람일 수 있다. 우리는 어릴 때 가정이나 학교에서 들은 말과 기본적인 적성검사, 심리검사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결정한다. 자신의 정체성에 한번 낙인을 찍고 나면 성인이 된 뒤에도 구태여 그것을 재검토하지 않는다. 결국 나머지 자아의 잠재성은 소멸되고 성장과 환경에 의해 선택받은 몇 가지의 자아만 발현이 된다.
과학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지금도 한편에선 mbti나 사주팔자가 꽤나 흥행 중이다. 우리는 어느 때보다 자기 자신에게 관심이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자신의 내면을 향한 관심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하고 불안정한 사회에서 무언가에 소속되고 싶은 욕구의 잔해일 수 있다.
물론 모호함 속에서 나를 깊이 들여다보는 건 괴로운 일이다. 나를 알아가는 건 기존에 규정했던 자아를 계속 지워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존의 자아를 부수지 않으면 우리는 새로운 자아를 만날 수 없다. 판단은 잠시 내려놓고, 세상과 부딪치며 때로는 합쳐지는 나를 관찰하면서 모호함을 즐겨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