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뒤샹의 ‘레디 메이드’ 개념이 정의된 <샘> 소변기 전시를 대학시절부터 지금까지 20여 년이 넘게 여러 장소에서 목격했다. 디자인 공부를 시작했던 1996년 전공 교양으로 미술사를 공부했다. 당시 마르셀 뒤샹의 ‘레디 메이드’는 단순히 순수 아트에서 현대적 접근법과 디자인적 사고로 전환의 시작점이라고만 여겼다. 그렇게 현대미술 초기의 기념비적 작품으로만 인식되었다.
2014년 조광제 철학자의 <현대미술을 보는 철학의 눈> 강의를 들을 때도 대학시절 이해하지 못했던 예술사 전반의 지식들을 우리의 삶과 어떻게 연결시킬 수 있는지 고민했었다. 21세기를 살아가며 나는 공부를 한다고 했지만, 통합적인 사고를 이끌어내기는 쉽지 않았다. 그건 지금 아이를 키우면서 더욱 강해지는 생각인데, 학교 공부는 실제 삶 속에서 연계성을 그다지 고려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결혼 후 아이를 키우며 조금 더 이해하려 노력하고, 공부하려 애쓰며, 그것을 통해 나만의 방향성과 삶에 대한 해석을 내려보자 했다. 내 아이가 나에게 인생에 대한 고민을 질문했을 때, 나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말해주고 싶었다. 함께 미술관을 다니며 작품에 대해 상호 작용하고 대화를 하며 삶을 이해시켜 주고 싶었다.
어제 종로도서관에서 철학 강의를 들었다. 조광제 교수의 <현대미술을 보는 철학의 눈> 제1부였다. 그의 주제가 마르셀 뒤샹과 레디-메이드의 예술사적 혁명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가 정립한 현대미술 시초의 3가지 기류는 '팝아트', '미니멀리즘', '개념미술'로 정의된다. 그리고 그의 Ready-Made 작업은 이러한 현대미술의 토대가 되었고, 우리가 현재 가장 많이 접하는 난해한 현대미술을 이해하는 단초 역할을 했기 때문에, 그는 예술사에 한 획을 그은 위대한 인물이 되었다.
마르셀 뒤샹(1887~1968)보다 조금 더 앞선 시대를 살았던 실존 철학가 칸트(Immanuel Kant, 1724-1804)가 적립한 예술을 보는 눈에 있어서 필요한 '무관심성'과 '단칭성'이 현대미술의 바라보는 눈이라 했다. 조광제 교수의 설명을 빌어 말하자면, '무관심성'은 우리들이 요즘 말로 '멍 때리는 순간' 즉 명상을 통한 사물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자세, 그것을 통해 하나의 사물은 본질로 써가 아닌 현존으로 존재하는 순간을 말한다. '단칭성'이라 함은, '모든 장미꽃은 아름답다'가 아닌 '이(저, 그) 장미꽃은 아름답다'라는 하나만 지칭하는 것, 즉 현존으로 존재해서 대체 불가한 것을 일컫는다.
즉, 어느 한 물질이 본질(=이성=개념=돈=실리)로서 판단되지 않으며, 그 자체(현존=실존=순전한 바라봄)로 받아들여지는 순간, 그것은 현대미술로 분류되어 예술작품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이 마르셀 뒤샹이 이야기하고자 했던 Reday-Made라고 한다. 적어도 내가 어제 2시간 정도의 강의를 통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이 정도였다.
‘현대미술을 바라보는 철학의 눈’을 배운 지 8년이 흐른 최근 지나영 소아청소년 정신의학과 교수의 ‘본질 육아’가 새로운 육아의 개념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녀의 책을 읽고 내가 미처 깨우치지 못하고 성장했던 80년대 어린 나를 되돌아보며 스스로에게 위로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곤 한다. 이해 불가했던 마음의 방황들에 대해 오랫동안 답을 찾아 헤매였다. 엄마가 되고 아이를 키우며, 어린 시절 상처 입었던 나를 대면하는 것은 정말이지 버거웠다. 그저 존재 자체로 바라봐 주기를 간절히 바랐던 자의식이 강한 아이였었다. 그렇지만 나의 성장기에 사회도 우리 부모도 더 굴곡진 혼란과 성장통을 뚫고 앞으로 나가기 위해 애쓰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지적 교육이라는 미명 하에 미래를 이끌어 나갈 아이들의 교육에 모두가 진심으로 집중했다. 생각보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왔고, 20022년 나에게는 문득 삶의 행복이 무엇인지가 더욱 중요해졌다. 나 자신에 대해 제대로 꿰뚫수 있는 혜안을 가지고 싶었다. 이유는 반백년을 살아가고 있는 시점, 내 나머지 인생 50여 년을 어떻게 살아가야 가치 있을지에 대한 고민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존재 자체로 나와 내 아이 그리고 남편을 바라봐 줄 때 상대가 가장 합리적이 된다고 말씀해 주신, ‘당신이 옳다’의 저자이자 정혜신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는 나에게 새로운 관점의 가능성을 전해 주었다. 마르쉘 뒤샹이 전하고 싶었던 현대를 바라보는 시각은 바로 ‘멍 때리는 그 순간’ 즉 명상을 통해 무엇이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그 오직 하나의 실존에 대한 시선과 사랑은 마치 어린 왕자에게 존재했던 그 하나의 장미에 대한 이야기와 동일한 것이다.
알 수 없는 미래의 불확실성 앞에서 우리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 줄 단 한 가지는 오직 존재하는 너와 나. 사랑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세포의 핵이라는 씨앗을 통해 태어나게 되었고, 다양한 관계와 경험 속에서 사랑받고 때론 상처 입고 성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신을 믿고 사랑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 그렇게 수많은 부딪힘 속에서도 자기 자신의 삶으로 당당히 나아갈 수 있다는 그 가장 쉽지만 어려운 이야기를 해 주는 것이 아니었을까.